일기장을 태우기 전에 한 번 읽어본다. 실망스러운 일들, 실패한 사랑들, 평범한 관계들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떠올린다.

이 인종학살의 시작을 돌이켜 생각하다 보면 목구멍에 거대한 덩어리가 생겨난다. 영원히 부끄러울, 터무니 없고 지독한 짓을 했기 때문이다 — 일기장에 불을 붙여 찻주전자 아래에 밀어 넣었다. 쌓아온 기억들로 차를 끓였다.
사실 이런 죄를 저지른 건 두 번째다. 속이 뒤집혀서나 조현병이 있어서가 아니라, 더 큰 재앙이 올까 두려워서였다. 가자는 공유지다. 제한구역이 없다. 이스라엘 식민군이든 동네 도둑들이든 내 집이나 도서관에 들어와 무엇이든 가져갈 수 있다. 누군가 막아세울 걱정도 없다. 그 색색의 일기장들이 기관이며 가정집이며 할 것 없이 휩쓸고 다니는 범죄자들의 손에 들어가면 나는 어떻게 될까. 그들 중 누군가 내 일기를 소셜 미디어에 올린다면? 어느 도둑이 나를 온 세상 앞에 발가벗겨 버린다면? 내 모든 비밀과 약점이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X 같은 데 누구나 볼 수 있게 올라간다면? 누군가 조롱조로 이렇게 쓰는 상상을 한다. “대공개: 팔레스타인 유명 작가 유스리 알굴의 음침한 면모! 알굴의 엉망진창 사생활이 여기 있다. 가자에서 제일 유명한 이야기꾼의 남사스런 비밀이 한가득!”
신이시여! 그런 일이 생긴다면 제 형제 자매들은 어찌 될까. 다른 친척들, 이웃들은? 친구들은? 여자 친구들은? 아내가 내가 현실에서는 못 하니까 일기장에서 자기랑 싸우고 있었단 걸 알게 된다면? 그들이 나를 어떻게 할까? 화형에 처하지는 않을까?
그래서 일기장을 찾아 무너진 집을 뒤졌지만 그곳엔 없었다. 그날은 내 모든 힘과 평정심을 그러모아 대규모 군사 작전을 펼쳤었다. 특공대 엘리트 전사라도 된 마냥 알-샤티 난민촌 골목골목을 파고 들어 집을 향했다. 근방이 텅 비어 있었다. 하늘에서 우리 얼굴을 감시하며 약간의 웃음기마저도, 티끌 만한 기쁨의 기색마저도 암살하려 드는 이스라엘 드론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버려진 집에 도착하자 문을 잠그지 않고 떠난 게 눈에 들어 왔다. 그래봐야 그 일대 — 알-무라비틴에 있는 아르드 알-굴 — 는 폐쇄된 군사 구역이었지만. 떠돌이 토끼밖에는, 살아 있는 것은 보이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 토끼를 — 피란 중에 머물고 있는 — 부모님 댁으로 데려 왔고 친구 삼아 우리가 키우기로 했다. 하지만 이튿날 폭격에 놀라 죽고 말았다. 혼이 영원이 사라져 버렸다.)
집 안은 텅 비어 있었다. 벽조차 무너지고 없었다. 옷장이며 옷이며 티브이며 할 것 없이 전부 무너진 잔해에 파묻혀 있었다. 서재에서도 불길을 견뎌 낸 건 책꽂이 하나밖에 없었다. 그것만은 굳게 서 있었다. 나만 아는 공책을 찾아 책들을 뒤져 보았지만 허사였다. 미처 챙기지 못한 출간한 소설들을 찾는 데 집중하기로 했고, 겨우겨우 암만, 베이루트, 알제리, 이집트 등으로 보낼 수 있었다. 위업을 해냈다고도 할 수 있다. 가자는 포위 당한 상태고, 무기뿐만 아니라 악의로도 중무장한 식민군 병사들은 배운 사람을 싫어하니까. (내 친구 아흘람은 “나비도 싫어하는 치들인걸” 하고 말하곤 한다.)
서둘러 알-샤티 난민촌으로 돌아왔다. 오는 내내 찰리 채플린 영화나 《패트와 매트》에 나와도 될 법한 우스운 꼴이 이어졌다. 토끼가 도망가서 쫓아가는데 드론이 우리에게 미사일을 쏘았고 우리는 다 허물어진 벽 뒤에 숨었다. 다시 한 번 붙잡은 토끼는 몸을 떨었다. 이 말도 안 되는 모험을 살아서 끝낸다면 다시는 나를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것만 같았다.
***
피란 내내 일기장 생각을 놓을 수가 없었다. 어디로 가버렸지? 내게는 전부인데, 어떻게 해야 되찾을 수 있을까? 그러다 또, 군인들이나 도둑들이 발견하면 자기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을 들고 있는지 알기는 할까? 어쩌면 어느 여자가 요리법이나 기념일, 친구나 친척이 찾아오면서 갖고 온 것들 목록 따위로 채워둔 걸로 생각하고 그냥 걷어차 버릴지도 몰라. 누구누구는 밀가루 한 봉지를 가져 왔고 다른 누구는 아우다 웨하스 한 상자를 가져 왔다 — 그리고는 괄호에 유통 기한을 적어 놓은 그런 공책으로. 아니다. 나는 그런 것은 전혀 적지 않았다. 심각한 일 문제나 동료, 친척, 상부, 그 … 자식들의 개인적인 관계 같은 것들을 적었다. 그런 사람들이 일기장을 발견해 기분 낼 거리라도 있나 하고 한 장 한 장 살펴본다면? 그들이 나의 실망스러운 일들, 실패한 사랑들, 팬이나 안티들과의 평범한 관계에 대한 시시콜콜한 이야기들만 보고 말게 될까 두려웠다.
그런 건 괘념치 마시라. 내게 중요한 것은 좀 배운 도둑이 훔쳐가 큰 돈을 요구하며 협박하기 전에 일기장을 되찾는 것이었다. 그런데 도둑들도 글을 읽나? 나나 내 책이나 내 꿈에 관심이 있나? 자신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는 이야기의 행간을 읽는 일이 행여 한 순간이라도 있을까? 물론 아니다 — 아무도 내 개인사에는 관심이 없을 것이다. 내가 왜 사서 걱정을 한 거지. 나도 모른다.
한편, 식민군이 알-샤티 난민촌에 있는 부모님 댁 근처 집들을 표적으로 삼기 시작해 나는 자발리아 난민촌으로 떠났다. 그들은 우리에게 발연탄을, 대포를, 곡사포를, 그보다 더한 것을, 쏘아 댔다. 우리 난민촌에 심판의 날이 도래했고, 우리는 제정신이 아니게 되었다. 생각도 않고 도망 쳤다. 사십일 밤낮이 지나 돌아온 알-샤티 난민촌은 완전히 파괴되어 여기저기 널브러진 벽돌 몇 개만 남아 있었다.
그 즈음, 악마가 다시 한 번 나를 사로잡아 일기장에 관한 끔찍한 생각들을 심어 넣었다. 나는 책장에 파묻어 둔 보물들을 뒤지러 텔 알-하와에 있는 사무실로 가기로 했다. 땅에는 칼을 들고 덤벼 드는 해적이 없었지만 공중에는 전투기가, 정찰드론이, 쿼드콥터가 많이도 있었다 ― 또 한 번의 잊을 수 없는 모험이었다.
대대적으로 파괴된 북가자에서 사람들은 당나귀 수레나 녹슨 툭툭을 끌고서 UNRWA에서 운영하는 학교나 남은 대학 건물들을 향하고 있었다. 끝날 생각을 않는 이 고통이 끝날 때까지 그들의 피신처가 되어 줄 곳들이었다. 그런 가운데서 나는 장거리 달리기를 시작했다. 인파를 뚫고 길을 달려 마침내 다다른 직장 건물은 각지에서 피란 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문을 지나는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어제까지도 출근을 했던 것만 같았다. 4층에 있는 내 사무실에 가보니 전자 기기들 ― 노트북들, 전화기들 ― 은 이미 누가 훔쳐간 뒤였다. 도둑들이 남겨둔 것은 노트북 충전기 하나가 다였다.
하지만 일기장 말고는 아무래도 좋았다. 서랍을 뒤져 드디어 찾았다 ー 세 권 다. 파리에서, 정확히는 프랑스24 방송국 사무실에서 받은 검은색 공책, 쿠알라룸푸르의 쇼핑몰에서 산 초록색 공책, 그리고 우레두 무선통신에서 고객 사은품으로 준 팔레스타인제 빨간색 공책.
요동치는 가슴으로 휘릭, 페이지를 넘겼다. 아아, 마침내 일기장들이 내 손에 들어왔다. 공포가 잦아들었다. 의기양양해져 부모님 댁으로 돌아왔다. 가족과 내가 머물고 있는 방에서 다시 읽어보기 시작했다. 내가 쓴 정치 소설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옷가지들Clothing That Miraculously Survived』에 들어간 글들을 주로 살폈다. 이 공책들의 존재가 나를 위험에 빠뜨린다는 것을, 나를 낱낱이 노출시켜버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잠깐 달뜬 채로, 옥상에서 일기장을 태워버리기로 결심했다. 실은 사춘기 때의 일기장을 태워버린 것도 바로 그 옥상에서였다. 아내가 그걸 다 없애면 같이 살고 아니면 가족들이 있는 집으로 돌아갈 거라는 조건을 걸었었다. 그때나 이번이나 나는 평화를 원했기에 일기를 태웠다. 가슴에도 혀에도, 차맛이 묵직했다.
글쓰기란 광기의 발로다. 글을 쓰는 사람은 평화를 모르는 땅에서 비현실적인 꿈에 빠져 환상의 세계를 살아간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 번 글쓰기로 돌아가기로 했다.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존경하는 출판사, 베이루트의 아랍연구출판원Arab Institute for Research and Publishing에서 새로 쓸 일기들을 묶은 『북향 피란: 굶주림과 고통의 기록Northward Displacement: An Account of Hunger and Pain』을 출간해 주기로 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그 날까지 살아 있을지 아니면 앞서간 많은 친구들처럼 그 전에 사악한 미사일 세례에 삶을 등지게 될지 모르겠다.
나는 아직도 전쟁이 끝나는 꿈을 꾼다. 파이루즈를 들으며 이번 일기장을 쓰기 시작했다. 위에서는 전투기 소음이 파이루즈를 덮는다. 땅에서는 사방을 에워싼 신경을 집중시킨다. 일기장에, 책들에, 서재에 … 내 이야기들, 내 작은 승리들과 함께 완전히 무너져 버린 집에. 내가 버틸 수 있을까. 언젠가 삶을 다잡고 집과 서재를 다시 지을 수 있게 될까. 아마도…
아랍어에서 영어로 번역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