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Qasem Waleed, “Israel has turned Gaza’s summer into a weapon,” Al Jazeera, 2025.07.17.
가자에서 여름은 더 이상 빛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 ― 탈수와 굶주림, 비탄을 가져 온다. 태양마저도 우리 편이 아니다.
카셈 왈리드 (가자에서 활동하는 팔레스타인인 의사, 작가)

서유럽의 올여름을 두고 “전례 없는 폭염”이라는 말이 끊이지 않는다. 언론에 따르면 각지 당국은 사람들이 무더위의 부작용에 대처하고 자신을 지킬 수 있도록 돕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가자에서 지내는 사람으로서, 그 야단에 냉소를 금하기 어렵다.
기온이 오르기 시작하면서 내 고국 ― 적어도 남은 땅 ― 은 지붕 없는 용광로가 되어 버렸으니 말이다.
뜨겁고 습한 지중해의 여름을 또 한 번 맞은 지금, 우리에게는 열기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최소한의 수단도 남아 있지 않다. 유럽인들에게 실내에 있고 수분을 보충하고 선크림을 바르고 힘든 야외활동을 삼가라고 권고하는 기사가 계속 나온다. 그러나 가자에 있는 우리에게는 집도 물도 그늘도 피할 곳도 없다.
우리는 “야외 활동을 제한”할 수 없다.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이 ― 운이 좋으면 한 주에 두 번 오는 식수 트럭, 식량 배급, 잔해 더미에서 골라내야 하는 땔감이 ― 다 바깥에 있으니까. “수분 보충”을 할 수도 없다. 물이 귀하고 제한적으로 배급되는 데다 종종 오염돼 있기까지 하니까. 선크림은? 차라리 화성에서 약을 찾는 게 더 쉬울 것이다.
가자에서 여름이란 바닷가, 안뜰, 나무 그늘에서 맞는 산들바람 같은 것들이 떠오르는 기쁨의 계절이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이스라엘의 공격은 여름을 고통의 계절로 만들어 버렸다. 해변은 봉쇄되었다. 안뜰은 폐허가 되었다. 나무는 재가 되었다. 이스라엘은 가자를 초토화했다 ― 토양은 흙먼지가, 공원은 사막이, 도시는 묘지가 되어버렸다. 이제 가자는 그늘 없는 도시다.
더위가 소리 없이 사람을 죽인다. 하지만 가자의 여름이 죽음을 초래하는 것은 자연적인 일이 아니다. 그저 기후 변화의 또 한 가지 결과인 것도 아니다. 이스라엘의 소행이다. 끝없는 폭격은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먼지와 오염물질로 켜켜이 공기층을 만든다. 불이 마구잡이로 번진다. 쓰레기 더미가 햇살을 받으며 썩는다. 농지가 황폐화된다. 한때는 기후 위기였지만, 이제는 군대가 벌이는 기후 잔학행위다.
씁쓸한 아이러니다. 유럽은 폭염에 기상학적 “열돔”을 탓한다. 뜨거운 공기가 돔 형태로 갇혀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우리를 다른 종류의 돔에 가두어 놓고 있다. 햇볕을 받으면 오븐이나 다를 바 없는, 사람이 가득 들어찬 나일론 천막에. 여기 피란촌들은 무언가를 피해 쉴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 서서히 익혀버리는 공간이다. 열기, 악취, 두려움, 슬픔을 가두어 놓는 공간이다. 그리고 우리 피란민들에겐, 달리 갈 데가 없다.
여름은 더 이상 기다려지는 계절이 아니다. 견뎌야 하는 딜레마다. 태양이 형벌처럼 머리 위에 걸려 있다. 발 밑의 땅을 달구어 대는 통에 슬리퍼까지 타버릴 정도다. 낮에는 천막 속에 있을 수가 없다. 너무 더워서 숨도 쉬기 힘들다. 하지만 밖에도 오래는 못 있는다. 가야만 한다. 물을 받으러, 그 다음엔 음식을 받으러, 한참을 줄 서야 한다 ― 굶주림을 피하려다 일사병으로 쓰러질까 두려운 너무도 혹독한 태양 아래에서.
줄을 똑바로 서라고 한다. 하지만 실신할 지경인 데다 아이가 배를 곯고 있는데 어떻게 줄을 설 수 있겠는가. 사람들을 밀치고 들어간다. 탐욕스러워서가 아니라 절박해서다. 나무든 플라스틱이든 불이 붙는 거라면 무엇이든 연료를 주워 모은다. 천막으로 돌아오면, 그새 더해진 열기 속으로 쓰러질 뿐이다.
밤에도 자비는 없다. 이제 가자 인구 대부분이 해안선 근처에 몰려 있어서, 천막들은 서로를 향해 열기를 토해 낸다. 땅과는 달리 해가 져도 시원해지지 않는다. 고통을 담고 있는다. 마치 열기 자체가 전염되기라도 하는 듯, 이웃의 숨이, 땀이, 슬픔이 느껴진다. 온기에 끌린 벌레들이 물밀듯 몰려온다. 마치 지금도 멀리서 들려 오는 폭격을 쫓아내기라도 하는 듯, 어머니와 누이는 손으로 벌레들을 쫓는다.
천막에서 보내는 두 번째 여름이니 좀 쉬워질 법도 하건만. 그렇지 않다. 더 심해졌다.
칸 유니스 동부에 있는 집에서 쫓겨난 후 맞은 지난 여름엔 적어도 음식이 어느 정도 구색은 있었다. 아직 구호물품이 들어 왔다. 요리는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3월 2일자로 다시 인도적 지원을 차단한 이래, 우리는 인위적인 기아 상태에 빠져 있다.
합중국과 이스라엘은 이제 밀가루를 배급하는 “가자 인도주의 재단”이라는 그로테스크한 쇼를 펼친다. 밀가루 포대를 철제 우리 안에 쌓아 두고 우리를 가축 취급한다. 사람들은 그늘도 존엄도 없이 한데서 몇 시간씩 줄을 서야 한다. 군인들이 소리를 지른다. 모자를 벗으라고, 작열하는 아스팔트에 얼굴을 대고 엎드리라고, 음식을 받으려면 땅바닥을 기라고. 그러고도 결국 빈손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 총에 맞지나 않아야 말이지만.
그들은 우리 존재의 기준을 낮추었다. 우리는 더 이상 안전이나 쉴 곳을 요구하지 않는다. 먹을 게 하루 치는 있는지 물을 뿐이다.
이스라엘은 박탈 수단을 모조리 쓰고 있다. 그늘 없는 더위, 물 없는 탈수, 희망 없는 굶주림. 해수에서 염분을 제거하거나 물을 끌어올릴 전기가 없다. 찔끔 나오는 물을 식힐 연료가 없다. 밀가루가, 생선이, 시장이 없다. 많은 이들에게 이번 여름은 마지막 여름이 될 수도 있다.
이것은 기후 위기가 아니다. 날씨가 무기로 쓰이는 것, 폭탄과 총알뿐만 아니라 더위와 탈수와 느린 죽음이 동원된 전쟁이다. 가자는 그저 불타고 있는 것이 아니다 ― 인간이 만든 태양 아래에서 질식하고 있다. 세상은 가만히 보고 있다. 이걸 “충돌”이라고 부르고 예보를 확인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