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日本労働党 編集部, 「フェミニズム、クィア、パレスチナ…植民地主義なくすため闘いたいーー皆本夏樹さん」, 日本労働党, 2025.01.27. 중괄호로 묶은 말과 각주는 역자 삽입.
팔레스타인 연대운동, 특히 이스라엘과 거래하는 기업에 대한 항의운동을 하고 있는 미나토 나츠키 씨는 그 전부터 페미니즘 운동도 해 왔다. 동기와 문제 의식 등을 들어 보았다. (편집부)
어떻게 운동에 관여하게 되셨나요?
미나토
큰 계기는, 2021년 8월에 있었던 오다큐선 칼부림 사건이었어요. ‘행복해 보이는 여자를 죽이고 싶다’는 남자가, 그저 전철에 타고 있던 20대 여성 대학생에게 칼을 휘둘렀죠. 당시에는 저도 대학생이었는데, 우연히 거기 있었더라면 제가 그렇게 될 수도 있었다는 생각을 했고, 그렇게 ‘페미사이드’ 반대운동을 시작했어요.
페미사이드란, 여성이라는 이유로 살인을 하는 것을 뜻해요. 저는 그 사건을 정신이상자인 범인이 우발적으로 일으킨 일이 아니라 이 사회에 만연한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과 맞닿아 있는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가해자가 사회에 원한을 품은 거라면 어째서 남성 자본가나 정치가가 아니라 ‘남자들이 떠받드는 잘난 여성’에게 살의를 품었겠어요.
가해자는 ‘솔직히 이런 여성과 사귀고 싶었지만 상대해주지 않아 원망스러웠다’고 했는데, 남성이라면 생각대로 되지 않은 여성에게 벌을 내려도 된다는 의식이 있었던 게 아닐까요.
가해자만 그런 여성 멸시 의식을 갖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페미사이드’라는 사회 문제로서 제기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어떤 활동을 시작하셨나요?
미나토
포스트잇에 메시지를 써서 역 내에 붙이는 운동을 혼자 시작했어요. 사회적으로 알리기 쉬해서요. 16년에 서울 강남역에서 똑같이 페미사이드 사건이 일어났을 때 한국 여성들이 포스트잇을 활용한 운동을 펼쳤던 걸 따라한 거였죠.
그러다 페미니스트들이 주최한 시위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게 됐어요. 같은 세대의 동료들을 모아 페미사이드 실태 조사를 촉구하는 온라인 서명 운동을 시작했죠. 한 달쯤 후에 [일본 정부 내각부 산하] 성평등국男女共同参画局 하야시 토모코 (당시) 국장과 면담을 하고 17,000 건의 서명과 요구안을 전달했어요.
사회운동도 시위도 서명운동도 전부 다 처음 해보는 거였지만, 하다 보면 목소리가 전해진단 걸 알게 됐어요. 그리고 페미사이드 반대운동을 하던 중에 노숙인이나 성노동자, 트랜스젠더나 인종적·민족적 소수자 여성이 받는 교차적 차별에도 눈이 가게 되었어요.
페미니즘은 저에게, 자신이 받고 있는 억압이나 차별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는 방법과 함께, 다른 사람들이 받고 있는 억압이나 차별과의 싸움도 알려주었어요.
그 후로는 나고야 출입국관리국에서 [스리랑카인] 위슈마 씨를 죽음으로 몰아 넣은 사건을[1]관련 기사: 〈“20㎏ 빠지고 각혈하는데 병원 안 보내” 언니 잃은 스리랑카 자매 절규〉(한국일보, 2023.07.19. 알게 돼서 출입국법 개악 반대 운동에 참여하기도 하고 관동대지진 때의 조선인 학살을 공부하기도 하고 했고요.
그러다 [재]작년 10월에 이스라엘이 가자에서 학살을 시작하자 미나토 씨는 항의운동을 시작하셨던 거군요.
미나토
대학에서 아랍어를 공부해서 전부터 팔레스타인에 관심이 있긴 했지만 당시에는 ‘내가 나서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페미니즘과 연을 맺고 제가 퀴어(성적 소수자)란 걸 자각하면서 억압 받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낸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게 됐어요. 그러면서 팔레스타인인을 위해 제 목소리를 써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됐고, 행동하기 시작한 게 10월이었죠.
처음에는 팔레스타인에 관한 일본어 정보가 너무 적어서 SNS에 올라오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목소리에 일본어 자막을 달아 공유했어요.
가두시위에도 나가면서 팔레스타인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청년들이나 재일 팔레스타인인들과도 만났고요.
그러다가, 이스라엘의 전쟁범죄를 멈추려면 역시 군수산업을 멈추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렀어요. 이스라엘군에 무기를 공급하는 엘빗사와 거래하는 이토추상사, 일본에어크래프트서플라이에 항의하는 운동을 펼쳤고 실제로 엘빗사와의 MOU를 폐기하게 하는 데 성공했죠. 이건 팔레스타인의 BDS(보이콧, 투자철회, 제제) 운동 역사에 있어서도 큰 승리였어요.
지금은 이스라엘제 공격용 드론을 수입하려고 하는 방위성과 수입대리점 역할을 하는 일본기업 4사에 대한 항의운동에 힘을 쏟고 있어요. 제가 낸 세금이 팔레스타인인을 살해하며 개발된 살인드론 구입에 쓰이는 건 싫으니까요.
미나토 씨는 페미니즘이나 자신의 퀴어성과 팔레스타인이 어떻게 연관된다고 생각하시나요?
미나토
제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은 이른바 ‘화이트 페미니즘’이 아니라 교차성을 중시하는 페미니즘이에요.
화이트 페미니즘은 구미의 유복한 백인여성을 위한 운동이죠. 백인여성의 지위를 높이는 데에는 열을 올리지만 유색인종 여성들이 받는 인종차별과 여성차별의 중첩은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요.
또, 화이트 페미니즘은 자국이 식민지로 만든 지역의 여성들이 식민주의로 인해 받는 차별이나 억압에 관해서도 생각하지 않아요. 심지어 ‘야만적인 현지 남성들에게서 여성을 구하기 위해서’라는 구실로 식민지화나 점령, 군사 개입을 긍정하는 경우도 있고요.
실제로 이스라엘은 가자에서의 학살을 ‘억압 받는 팔레스타인인 여성을 구출’하기라도 하는 양 선전하면서 팔레스타인 여성들을 대학살하고 있죠. 제 생각에 이건 전혀 페미니즘이 아니에요.
이스라엘은 또 ‘퀴어 인권을 배려하는 나라’라는 브랜딩에 돈을 쏟아붓고 있어요. 이건 ‘핑크워싱’, 즉 자신의 국가범죄를 숨기고 눈을 딴 데로 돌리기 위한 여론몰이예요.
저는 퀴어이고, 성적 소수자의 모든 권리는 저에게 매우 중요해요. 그래서 더더욱 이스라엘이 저희의 존재를 이용하는 걸 용서할 수 없어요.
11월에는 이스라엘군 병사가 폐허가 된 가자를 배경으로 (성적 소수자의 상징인) 무지개 깃발을 걸고 찍은 사진을 SNS에 올린 일도 있었어요.
세계 모든 곳에는 어느 정도 수의 퀴어가 존재해요. 물론 팔레스타인에도 수맣은 퀴어가 살고 있는데, 이스라엘은 학살을 하면서 가자에서 무지개 깃발을 걸고 팔레스타인 퀴어들의 구세주라도 되는 양 하는 거죠. 실제로는 팔레스타인 퀴어를 가장 억압하고 최소한의 권리도, 생명까지도 위협하고 있는 게 바로 이스라엘이에요.
팔레스타인이 해방될 때까진, 저 자신도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해요. 페미니스트와 퀴어라는 것, 반식민주의,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은 제 속에서 그만큼 깊이 이어져 있어요.
페미사이드 반대 운동에서 알게 된 사람들은 지금도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을 함께 해나가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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