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 보이는 웬만한 물건들은 다 주워 오고 싶어 한다. 어딘가에 쓸 데가 있겠지 싶기도 하고, 그냥 무언가가 버려지는 게 슬프기도 하고 해서. 그런 중에서도 특히 선호하는 것은 무언가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이다. 상자나 가방, 병이나 책꽂이 같은 것에서부터 스피커나 씨디, 비디오테잎, 책 따위에 이르기까지, 물리적인 것이건 아닌 것이건 무언가를 담을 수 있는 물건들은 왠지 소중하다.
인사동에서 어느 도예가의 전시회에 갔다가 마음에 드는 그릇이 있어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어 왔다. 잘게 금이 간 것 같은 저 무늬는 흔히들 크랙이라고 부르는데, 다기의 경우 오래 사용하면 저 선을 따라 찻물이 든다. 일년이나 십년, 혹은 그 이상을 사용하면 사용할 수록, 다기는 다른 모양을 띠게 된다.
식탐이 아무리 많아도 먹는 것에 대한 애착은 크지 않고, 그래서 먹을 것을 담는 그릇에 대해서도 크게 신경쓰지 않지만, 찻물이 든 다기만은 조금 다르다. 매일 한 잔씩 마신 차의 흔적이, 차를 함께 마신 사람들의 흔적이나 차를 마시면서 한 생각들의 흔적이 그릇에 남기 때문이다.
대개 크랙은 정방형이나 원형을 일그러뜨린 것처럼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 그릇은 세로로 긴 모양을 하고 있었다. 마치 낮은 곳을 향해 흐르는 실개천 같은 모양이었다. 무늬를 따라 새겨진 기억들도 아래로 흘러 가운데 고일 것 같은 모습이어서, 참 좋았다.
담아 고으고 싶은 기억들이 참 많은데, 나는 그릇이 너무 작다. 어쩌면 그래서, 그릇들을 모으고 싶어하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