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오를 넘기고 느지막히 일어났다. 그러고도 한참을 누워 있었다. 오랜만의 쉬는 날이다. 쉰 날이 없지야 않았지만 해야 하는 일 없이 쉬는 것은 꽤 오랜만이다. 해야 하는 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 시작하지 않았으므로 대강 비슷한 기분이다. 내일부터는 또 한동안 일에 파묻혀야 한다.
잠들기 전엔 누워서 근처에 무엇이 있는지를 검색했다. 영월에 갈까 했지만 버스가 자주 다니지 않으므로 열두 시가 지나 일어나서는 불가능하다. 좀 더 가까운 곳들, 버스가 좀 더 자주 다니거나 걸어서도 갈 수 있을 만한 곳들을 되짚었다. 버스를 타야 하지만 어쨌든 시계 내에 있는 배론성지라든가,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고려 때인지 신라 때인지 지었다는 모전석탑이나 (이전부터 존재는 알았으나 정확히 어떤 곳인지는 아직 모르는) 평안도민묘향동산이라든가. 걸어서 가려면 갈 수 있는, 일부 구간은 버스로도 갈 수 있는 곳으로 정했다. 용두산 삼림욕장.
중국집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오늘도 저번이랑 같이 볶음밥으로 드릴까요, 하는 질문을 받았다. 나오면서는 마스크도 얻었다. 마침 온 버스를 타고 의림지를 지나 세명대 근처에서 내렸다. 서울의 대학가는 여러 곳을 가 보았고 다른 지역에서도 도심에 가까운 곳은 몇 곳 가 보았지만 이런 지리조건에 있는 곳은 처음이다. 교외의 대학가. 관광지 풍의 ― 예컨대 ‘프로방스 풍’을 표방하는 식의 ― 건물들과 특징 없는 원룸 건물들이 섞여 있어 묘했다. 간판들을 걷고 본다면 도시에서 일하다 은퇴하고는 그럴싸한 집을 지어 귀촌한 사람이 많은 동네 같은 느낌이기도 했다.
굽은 소나무가 많은 공원과 의림지보다 상류에 있는 저수지를 지났다. 공원 옆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사들고 걸었다. 대학가라곤 해도 시국과 시기가 이래서인지 혹은 장소가 그래서인지 젊은 사람들보단 중노년이 많이 보였다. 아니면 부부와 아이로 구성된 가족들. 저수지는 물이 맑았다. 데크를 따라 이십 분쯤 걸어 삼림욕장에 도착했다. 야생화 단지인가가 있댔는데 찾지 못했다. 꽃은 없지만 꽃이름 팻말이 여럿 서 있는 작은 꽃밭 같은 것이 하나 있었는데 거기일지도 모른다. 삼림욕씩이나 하진 않았고, 적당한 벤치에 앉아 책을 읽다가 사진을 찍다가 했다. 저수지로 흘러드는 개울이 가까운 곳이었다. 물소리를 듣다가 물가로 내려가 물고기를 보다가 했다.
집까지는 걸었다. (또) 옹심이칼국수를 먹기로 했지만 영업을 하지 않았다. 보리밥집에도 가보았지만 마찬가지. 분식집에 앉았다. 마감 직전이라 김밥만 된다고 했다. 김밥을 먹었다. 밥값을 내려고 보니 카드가 없었다. 저수지를 따라 걸으며 사진을 찍느라 여러번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냈는데 아무래도 그러면서 잃어버린 모양이다. 밥값은 친구가 냈다. 나와서는 빵을 사서 공원에 앉아 뜯어 먹었다. 빵값은 휴대전화로 내가 냈다. 먹고도 좀 더 앉아 있다 들어 왔다. 간만에 크게는 밀리지 않은 일기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