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 대추리와 도두리, 그곳에 나는 두 번을 가보았습니다. 대추리와 도두리, 둘 중 어느 곳에 가 본 것인지는 확실히 알지 못합니다. 다만 대추 초등학교가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는 것 정도만을 알 뿐입니다. 한 번은 2005년 7월 11일 평택 평화 대행진이라는, 미군기지 주변을 인간 띠로 에워싸는 형식의 집회 때였고, 또 한 번은 같은 해 한여름의 "평화의 종이학" 이라는 실천단 활동 때였습니다. 실천단 활동 중 방문한 나의 모습이 찍힌 사진을 아직도 친구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서 볼 수 있습니다. 나는 환히 웃고 있습니다. 무대와 마이크가 어색해서 나는 웃고 있었지만, 어떤 말을 했는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7월 11일에 오고 두번 째 오는 것인데, 이 너르고 푸른 들을 타인에게 내어준다는 것은, 그것도 전쟁을 위한 미군기지에 내어주는 것은 너무도 아깝다―이곳을 꼭 지키자, 나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그곳에 포크레인이 들이닥쳐 땅을 파헤치던 저녁, 평택이 고향인 가수 정태춘 씨가 진흙탕에 빠지고, 마을에 사는 노인들을 경찰들이 짐짝처럼 들어 나르던 날 나는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반 학회를 마치고, 뒤풀이 후에 몇 안 남은 인원들과 2차를 가서 라면을 삼키며 티브이를 보고 있었습니다. 화면을 가득 메우는 포크레인과 진흙을 보며 나는 라면을 삼키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곳을 지키기는커녕 지켜보지조차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저 라면을 삼킬 뿐이었습니다. 내가 라면을 삼켰던 그 술집은 이제는 사라지고 없습니다. 내가 티브이를 통해 보았던 그 마을도 이제는 사라지고 없습니다. 시간을 내어 평택엘 가보아야 하겠습니다. 광명에 다시 다녀왔던 것처럼, 카메라와 수첩을 들고 평택에를 가보아야 하겠습니다. 내가 지켜보지 못한 그 땅에 들어선 무서운 쇳덩이들을 직접 보고, 마음에 담아 와야겠습니다.
트위터에서 누군가(지금 확인해 보니 계정이 정지되었다고 뜬다)가 “평택미군기지 조성을 위해 기꺼이 땅을 내어주신 대추리 주민분들” 운운하며 ‘참여정부가 조성해 준’ 대체부지를 칭송하는 글을 쓴 것을 보고 화가 났다.
“기꺼이 내어 준 것이 아니라 숱한 피를 흘리고서도 결국 쫓겨난 사람들, 새 집은 번드르르할지 몰라도 ‘마을’을 잃은 사람들. 그들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않으려 하면서 이 따위 프로파간다로 써먹으려 드는 사람.”이라는 메모를 남겼다.
〈작전명 ‘여명의 황새울’, 대추초교를 기억하십니까?〉라는 제목의 2014년 기사를 읽었다. (http://pressian.com/m/m_article.html?no=1187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