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0월 13일에 이스라엘 점령 당국과의 수감과 교환을 통해 자유를 되찾은 팔레스타인 억류자는 1,968명에 이른다. 그 중 1,718명이 이스라엘의 가자 인종학살 중에 수감된 이들이다. 그들은 신체적 고문, 정신적 가혹행위, 가족과 생이별한 절망의 이야기를 품고서 황폐화된 각자의 마을로 돌아왔다. 석방되던 날까지도 초토화된 가자에서 무엇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지 몰랐다.
하이탐 살렘은 2024년 11월 17일에 자발리아Jabalia 민정 검문소에서 체포 당했다. 가족과 함께 “안전 지대”로 가던 중이었다. 이스라엘 점령 당국은 수천 가족을 지정된 안전 지대로 쫓아보내고는 검문소에서 그들을 모욕하고 겁박했다. 일부는 납치했다. 수백 명이 그 자리에서 체포 당했고, 살렘은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서로 잘 돌보라고 당부하며 눈물을 머금고 가족과 작별해야 했다.
거의 곧장, 살렘은 고문을 당했다. 이스라엘 병사들은 그를 비롯해 여러 억류자들을 가혹하게 폭행하고 온몸을 담뱃불로 지졌다. 상스러운 욕을 해댄 것은 물론 억지로 동물을 흉내내게 시키며 모욕했다. 살렘이 한 병사에게 자신이 무슨 혐의로 잡혀온 거냐고 묻자 그가 소리쳤다. “닥쳐! 넌 그냥 할당량 채우는 거야!”
거의 한 해 가까이 감옥에 갇혀 있었던 살렘은 악명 높은 스데 테이만Sde Teiman 감옥과 오퍼Ofer 감옥에서 보낸 아홉 달은 너무도 가혹하고 도무지 견딜 수 없었다고 말한다. 가차 없는 신체적, 정신적 고문을 당한 곳들이다. 온종일 고개를 숙인 채 무릎을 끓고 있어야 했고 말라 비틀어진 음식만 나왔으며 기본적인 위생도 허락되지 않았다. “너무 심하게 맞아서 나흘을 내리 피가 멎지 않은 적도 있어요.” 죽기 직전에 이르지 않는 한 억류자들은 치료를 받을 수 없었다.
오래도록 기다렸던 순간
살렘은 나흘을 앞두고 자신의 석방 소식을 알게 되었다. 가족을 만날 순간을 열렬히 고대했다. “거의 한 해를 떨어져 지낸지라 너무도 보고 싶었어요. 흥분돼서 잠이 안 왔죠.” 딸 라얀Layan의 생일이 다가오고 있던 때라 살렘은 몰래 선물로 줄 반지가 달린 팔찌를 만들었어.
쇠약해 진 살렘은 억류자 버스에서 내려 애타게 아내와 아이들을 찾았다. 하지만 아무도 마중을 나오지 않았다. 살렘의 아내와 네 아이 모두 가자가 초토화되는 사이 살해 당했던 것이다. 그는 충격이 너무 커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친척 한 명을 붙잡고 계속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달라고 했다. 물론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는 다리가 풀려 쓰러졌다. 통곡하는 그를 친척이 휠체어에 앉혀 옮겼다. “석방된 다른 억류자들이 가족을 만나는데 나만 혼자 서 있자니 견딜 수가 없었어요. 지난 한 해 동안 매 순간을 다시 만날 꿈만 꾸며 지냈는데. 영원히 잃고 말았어요.”
어여쁜 라얀을 위해 만든 팔찌를 손에 쥔 채, 살렘은 울먹이며 덧붙였다. “차라리 석방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 전부 다 세상을 떠났다는 걸 영영 몰랐으면요.”
이스라엘군은 아무 이유도 없이 살렘을 체포해 고문했다. 아무 잘못도 없는 아내와 네 아이가 살육 당하도록 내버려둔 세상을, 작별인사를 할 틈조차 주지 않고 그들을 영원히 앗아가 버린 세상을 용납할 수가 없다.
범죄로 보고하기
《팔레스타인 투데이Palestine Today》 통신원인 언론인 샤디 아부 세이도Shadi Abu Seido는 2024년 3월에 가자시 알-시파Al-Shifa 의료단지에서 방송 보도를 하던 중에 병원에 처들어 온 이스라엘 점령군에 체포 당했다.
구금 겨우 몇 시간 만에 아부 세이도는 발가벗겨진 채 혹독한 구타를 당했다. 여기저기 뼈가 부러지고 온몸에서 피가 흘렀다. 그는 스데 테이만 감옥으로 보내져 인생에서 가장 가혹한 백 일을 보냈다 ― 그 고통을 피할 수만 있다면 죽고라도 싶었다. 아부 세이도는 고정된 자세로 눈가리를 하고 손에는 단단히 수갑을 찬 채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끔찍한 고통을 겪곤 했다. “머리나 입술을 움직여서도, 허리를 펴서도 안 돼요. 그랬다가는 무시무시한 벌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먹을 것은 아예 안 주거나 안 주다시피 했고, 억류자들은 필요할 때 화장실에 가는 최소한의 욕구도 해결할 수 없었다. “곰팡이 슨 조그만 빵 조각을 먹으라고 줬고, 화장실은 ― 수갑을 채워둔 채로 하루에 딱 2분을 줬다는 게 상상이나 되시나요?”
한 이스라엘 관리는 자신이 언론인을 얼마나 많이 죽였는지 자랑하면서 아부 세이도를 고문했다. “내가 너는 안 죽였지만 네 카메라 렌즈는 죽였지. 그리고 너도 죽일 거야”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의 눈을 때려 심각한 출혈을 일으켰다. 함께 있었던 아부 세이도의 변호사 사하르 프란시스Sahar Francis가 그 일을 목격했고 인권 단체에 보고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아부 세이도는 씁쓸하게 답했다. “차라리 동물권 단체에 보고하지 뭐. 우리가 짐승이었으면 이렇게까지는 안 했을 테니까.”
죽었는지 살았는지
자유를 되찾은 순간, 가족을 만난 아부 세이도는 놀라서 얼어붙었다. 이스라엘 관리들이 그의 부모, 아내, 아이들 모두 공습으로 죽었다고, 가자는 완전히 초토화되었고 그에게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고 했었기 때문이다. “나는 비명을 지르면서 그들에게 물었어요. ‘왜 다 죽였어? 그들이 당신들한테 뭘 했길래? ― 나는 뭘 했길래?’” 관리는 차갑게 대답했다. “언론에 도와 달라고 해봐.” 아부 세이도는 잠을 이룰 수 없었고 스스로도 “완전히 제정신을 잃었다”고 생각할 정도로 정신이 피폐해졌다.
그럼에도 아부 세이도는 가족이 무사하리라는 실낱 같은 희망을 놓지 않았고 정말로 그랬다. “눈 앞에 살아 있는 걸 보자마자 가족을 끌어안았어요.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기분이었어요, 말도 못하게 기뻤죠.”
아부 세이도처럼 다른 많은 억류자들도 이스라엘에 속아 집은 폭격 당했고 가족은 살해 당했으며 가자는 사라졌다고 믿었다. 이런 정신적 고문이 깊은 트라우마를 남겨, 그들은 충격에 빠진 나머지 가족이 여전히 살아 있고 가자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얼른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였다.
아부 세이도는 다른 억류자들이 전해 달라고 한 말을 반복하며 눈물로 증언을 마쳤다. “부디 전 세계에 ― 모두에게, 모든 결정권자들에게 ― 우리와 우리의 고통에 대해 말해주세요. 그들에게 우리가 밤낮으로 고문에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고 말해주세요. 우리가 굶고 있다고 말해주세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우리를 꺼내달라고 말해주세요.” 아부 세이도는 온 마음으로 이스라엘의 “산 자들의 무덤”에 있는 억류자들의 고통이 끝나기를 바란다.
살렘과 아부 세이도가 겪은 트아우마와 비극은 이스라엘 점령 당국의 집단 처벌 정책, 의도적으로 무방비 상태의 민간인을 노리는 전략을 보여준다. 살렘은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체포와 고문을 당했고, 아부 세이도의 “죄”는 가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세상에 알린 것이었다.
이스라엘 감옥에 다녀왔거나 지금도 거기 있는 팔레스타인 억류자 수천 명을 생각하면 이 둘의 이야기는 빙산의 일각이다. 그들의 얼마 만한 고통을 겪는지는 말로 다 전할 수 없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끔찍한 신체적 고문, 정신적 학대, 상실, 비탄, 결별을 겪는다. 겨우 일부만이 마침내 악몽에서 벗어나고, 수천 명은 여전히 인질로 잡힌 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