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Interview: From Argentina to Lebanon: “Together, and only together, will we win.”,” Masar Badil, 2026.01.14.
* “압달라는 레바논 태생으로 공산주의 계열 레바논 혁명무장조직(FARL)을 설립한 인물이다. 그는 1984년 전 미국 영사 로버트 옴을 암살하려 한 혐의로 체포됐다. 이후 1982년 파리에서 미 육군 무관 찰스 로버트 레이와 주프랑스 이스라엘 대사관의 야코프 바르시만토프 서기관을 암살한 혐의가 더해져, 1987년에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압달라는 이들을 살해했다는 혐의를 부인해왔다. 다만 자신의 조직이 이들을 암살한 건 “이스라엘·미국의 억압에 대한 저항”이었다고 주장했다.” (천호성, 〈프랑스서 ‘41년 구금’ 레바논 공산주의 활동가 석방〉, 《한겨례》, 2025.07.17.)

조르주 이브라힘 압달라Georges Ibrahim Abdallah는 1951년에 레바논에서 태어난 공산주의자, 반제국주의자, 반시온주의자, 국제주의 투사militant다. 지금까지도 여전히 피다이fidai, 자유 투사fighter인 그는 흔들림 없이 저항에 헌신해 왔다 ―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결코 용서하지 않는 인물이다. 프랑스의 제국주의 감옥에서 고립이라는 고문과 그의 얼을 꺾으려 짓누르는 부르주아 “정의justice[사법]”를 견디며 41년을 보냈지만, 2025년 7월에 마침내 석방되어 레바논으로 추방되었다. 그는 떠났던 모습 그대로 ― 꼿꼿한 투사로 ― 돌아왔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옥중의 투사militant였어요. 전투militancy에 가담하고 싶어하는 수인이 아니라요. 나는 투사고, 그렇기에 감옥 같은 예외적인 환경의 속박 속에서도, 투쟁을 합니다.”
조르주 이브라힘 압달라의 삶은 어린 나이에 팔레스타인 및 전 지구 혁명의 선봉에 몸을 던진 레바논 청년의 역사 그 자체다. 그의 여정은 레바논 내 팔레스타인 혁명의 살아 있는 기억이다. 1967년 이후로 불 붙은 이 운동은 주의를 딴데로 돌리려 드는 정치 지도부의 배신에도 죽지 않았다. 오히려 가자, 서안, 알-쿠드스Al-Quds, 1948년 팔레스타인, 디아스포라 등지의, 쫓겨난 세 세대에 의해 다시 태어나고 급진화되었다.
조르주의 궤적은 1984년 체포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60년대, 70년대 국제주의자들의 뜨거운 공격 속에서 형성되었다. 베트남에서 합중국 전쟁기계에 맞섰던 전 지구적 투쟁, 1968년의 학생-노동자 폭발, 1967년 체 게바라의 삼대륙 호소가 그의 정치적 의식을 담금질했다. 이런 힘들이 한데 모여, 반 세기가 넘도록 꿈쩍도 않고 제국주의 기획을 가로막아 온 투철한 계급의식을 지닌, 한 사람의 투사를 만들어냈다.
전 지구적으로 지정학적 상황은 달라져졌지만 자본의 구조적 위기와 조르주 압달라의 불굴의 혁명 정신은 변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도 아랍 해방 기획에 단단히 뿌리 내리고 있으며, 팔레스타인 투쟁을 아랍 권역 해방을 위해 가장 먼저 해소해야 할 모순으로 여긴다. “팔레스타인 해방은 역사적 가치이자 전략적 가치입니다. 아랍을 혁명하는 과정의 역사적 지렛대예요.”
2025년 12월 18일,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마사르 바딜Masar Badil(팔레스타인혁명운동의다른길Palestinian Alternative Revolutionary Path Movement) 동지들과 만나 조르주 압달라를 인터뷰했다.
문: 지난 사십 년간 원칙과 신념이 약해진 적은 없나요? 어떻게 견디셨나요?
답: 나는 옥중의 투사였어요. 전투militancy에 가담하고 싶어하는 수인이 아니라요. 나는 투사고, 그렇기에 감옥 같은 예외적인 환경의 속박 속에서도, 투쟁을 합니다. 제 관심사의 중심에는 투쟁 자체가 있고, 개인적인 상황은 부차적입니다. 개인적인 여건이 어떻든 혁명을 긍정할 수 있다면 나는 괜찮습니다. 그렇게 지냈어요.
그래서, 저의 원칙들은 지난 41년간 꾸준히 저를 찾아와 준 동지들을 통해 매일 실천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들에게 저와의 연대란 그저 팔레스타인 민족이나 그들을 지지하는 대중과 함께 투쟁에 참여할 명분 같은 거였어요. 프랑스 계급 투쟁에서 팔레스타인 대중의 위치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고요. 노동자들이 노동 조건 개선이나 정치적 요구를 위해 결집할 때, 저와 연대하는 이들은 CGT(프랑스노동총연맹General Confederation of Labour, France)나 다른 노동조합들의 시위에 직접적으로 참여했죠. 저는 20일이나 25일에 한번씩 서신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집회가 열리면 동지들이 저 대신 연설을 하기도 했어요. 창살에 갇힌 팔레스타인·아랍 투사의 성명을 대독하는 거죠. 그런 식으로, 투사의 시간은 투쟁 속에서 흐릅니다. 투쟁 밖에 있는 게 아니에요.
제 석방 조건으로 말하자면, 근본적인 법적 전제에서 내려진 판결이었어요. 조르주 압달라는 밖에 있는 것보다 감옥에 있는 게 국가 안보에 더 큰 위협이 된다는 거였죠. 그래서 풀려난 겁니다. 감옥에서의 제 존재는 투사적 존재였던 거죠. 저는 수감을 그 자체로 목적으로 보는 게 아니라 투쟁의 논리를 통해 봅니다. 내가 감옥에서 처우 개선을 요구하면서 시간을 보낸 게 아니라는 뜻이에요. 석방이나 무죄 증명을 요구한 것도 아니고요. 저는 그런 건 용납할 수 없습니다.
법정에 나가면 프랑스와 유럽에서의 무장 투쟁militant operations에 관한 중심 문제를 논했습니다. 저를 범죄자로 볼 증거가 없었습니다. 나를 “범죄자로 보이게” 하는 건 내 정치적 입장이예요. 나는 이런 무장 투쟁이 옮고 ― 프랑스에서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특히 1980년대 이후로 우리네 사람들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는 제국주의 체제가 지배하는, 그 핵심을 형성하는 지역들에서 ― 반드시 계속되어야 한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현재는 상황이 더 나빠졌죠.
문: 갇혀 있는 동안 바깥 세상과는 어떻게 관계를 맺으셨나요? 그리고 새로운 뉴스들, 사건들은 어떻게 소화하셨나요?
답: 처음에 말한 것처럼, 나는 옥중의 투사입니다. 나를 찾아오는 이들 역시 전부 투사들이었고, 기본적으로 저의 관점을 바깥에 전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였죠. 부차적으로는 투사로서의 제 위치를 흔들리지 않게 하는 것도 있었고요. 이를 위해서 동지들은 언론, 문화, 무장 투쟁 학습에 필요한 온갖 것들 갖다 주었어요. 읽어야 할 것을 다 읽을 시간이 없을 정도였죠. 시간이 너무 많아서가 아니라 모자라서 힘들었어요. 시적으로나 과장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현실이 그랬어요.
동지들이 매주 기사 스크랩만 다섯 묶음 가져 왔어요. 레바논, 팔레스타인, 이집트에 관한, 아랍어, 프랑스어, 영어로 된 기사를 전부 모은 거였죠. 한 묶음당 90쪽 정도였으니, 레바논에서의 팔레스타인 투쟁, 저항의 상황, 이집트 내 대중운동에 관한 기사만 매주 450쪽을 읽은 거예요. 프랑스 언론도 전부 ― 《르몽드Le Monde》나 《뤼마니테L’Humanité》 같은 부르주아 언론은 물론 좌파쪽, 특히 작은 데들에서 나오는 것까지도 ― 볼 수 있었어요. 그런 식으로, 구할 수 있는 정보·문화 자료는 전부 포괄적으로 살펴봤죠.
이론 학습의 경우에는 엄격한 시간표가 있었어요. 아침 여덟 시 반에 수인실을 나오는 걸로 하루를 시작해 오전 열 시 사십오 분에 돌아갔는데, 이 시간은 말하자면 “전투에 맞는” 몸을 유지하기 위해 체력 단련을 하는 데 썼어요. 열 시 사십오 분부터 열한 시까지는 세안과 샤워. 열한 시부터 오후 네 시까지는 동지들이 보낸 편지나 메모 읽기. 시간이 꽤 들었죠. 네 시부터 일곱 시까지는 이론 독서. 저녁에는 이론적인 메모를 작성했어요. 해야 하는 일과 하지 말아야 하는 일 같은 거요. 잠은 네 시간만 자고, 오전 네 시에 일어났죠. 네 시부터 일곱 시까지는 인간성을 지키기 위해 “사소한 편지”를 쓰곤 했어요. 딸이나 동생이나 다른 사람들한테 보내는 거요. 간단한 말들이나 안부 인사 같은 것들이 제가 평범한 사람일 수 있게, 아이를 보면 웃고 꽃을 보면 아름다워 하고 평범한 삶에서 소박한 기쁨을 느끼는 사람일 수 있게 해주었죠. 아침 일곱 시면 간수가 오고 감옥의 하루가 시작돼요. 하루하루를 그렇게 꽉 채워 보냈어요.
문: 레바논 난민촌에 있는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상황을 조금 말해 주실 수 있을까요? 현재 레바논의 전반적인 현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답: 레바논 내 팔레스타인인은 레바논의 역사적 아랍 정체성을 구성하는 유기적 요소예요. 레바논에서 우리는 긴 공동 투쟁의 역사를 공유하죠. 수십 년에 걸친 팔레스타인인, 레바논인의 피바람이 투사로서의 우리 정체성의 기반이에요. 제 세대의 혁명적 성격은 팔레스타인 혁명과 저항 운동의 영향으로 만들어졌어요. 우리 레바논 저항 세력과 팔레스타인 저항 세력 사이에는 깊고 역사적인 시너지가 있죠.
제가 난민촌에서 보는 건, 팔레스타인은 여전히 아랍 혁명의 역사적 촉매라는 사실입니다. 말했다시피 나는 팔레스타인인, 레바논인, 아랍인이고, 무엇보다도 공산주의자예요. 그래서 이 모든 운동들을 총체적 착취 체제의 철폐라는 렌즈를 통해서 보죠. 팔레스타인 해방은 역사적 가치이자 전략적 가치입니다. 아랍을 혁명하는 과정의 역사적 지렛대예요. 둘은 불가분적인 관계예요.
인류학적으로 말하자면, 난민촌은 더없이 내밀한 팔레스타인 정체성이 만들어지는 곳이죠. 어떤 의미에서는 팔레스타인 전부가 일련의 난민촌이에요. 가자에서 보게 되는 것도 난민촌 단지고요. 그런 피난처 중 한 곳에서 매일이 실제로 어떻게 재생산되는지를 목도하고 경험할 수 있을 만큼 잠깐만 살아봐도 알 수 있어요. 1948년부터, 심지어는 그 전부터 이런 삶이 계속되었다는 걸 깨달으면 제국주의-시온주의-반동 세력이 난민촌을 파괴하려 드는 이유를 알게 되요. 난민촌을 파괴하는 건 팔레스타인 정체성을 파괴하기 위해서라는 걸요.
하지만 난민촌은 전투와 혁명의 난공불락의 보루로 남아 있어요. 어느 한 난민촌을 파괴할 수야 있겠지만 팔레스타인인들은 다른 데로 옮겨서 또 하나의 난민촌을 짓죠. 난민촌이 존재하는 건 “사막화”나 빈곤 때문이 아니에요. 우리에게 난민촌이 있는 건 웬 놈들이 사람들이 살던 땅을 점령했기 때문이죠. 팔레스타인에 몇 번이나 무너지고 다시 짓지 않은 난민촌은 없어요.
레바논에서 난민촌은 국내 빈곤층의 주된 피신처가 됐어요. 이제 그저 “팔레스타인” 난민촌이 아니에요. 샤틸라Shatila 같은 곳은 아마 팔레스타인인이 20%밖에 안 될 거예요. 나머지는 레바논에서 가진 것을 빼앗긴dispossessed 사람들이죠, 시리아인, 이라크인, 레바논인이요. 난민촌은 제국주의, 시온주의 전략과의 직접적 모순에서 태어난, 객관적 혁명 과정의 초점이 되었어요.
온간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단단히 서는 사람들을 봤습니다. 우리는 지구 상의 다른 사람들이랑 똑같아요. 뿔도 없고 날개도 없죠. 타협과 투항으로 기우는 사회적 계급들이 있죠. 하지만 우리에게는 아랍 체제들, 그 군대들이 그저 멀뚱히 있기만 할 때 이스라엘 병사들의 눈물을 보면 기쁨이 터져오르는 절대 다수가, 대중이 있습니다. 이 대중은 혁명적 순간의 요구에 부응하는 지도부를 원해요. 지금의 지도부가 그 임무를 다하지 않을지라도, 대중은 끝내 자신들의 실질적인 지도부를 만들고 아랍 세계 전체를 바꾸는 혁명의 불꽃이 될 겁니다.
지금 상황에 대해 말하자면, 레바논은 아랍 국가에서 혁명의 의지와 “규제 받지 않는” 소총이 존재하는 유일한 곳이에요. 그 결과로 우리는 엄청난 압박을 받게 되었죠. 전체 제국주의 체제가, 이스라엘과 연결된 세력들이, 특히 아랍 반동 세력들이 우리를 투항하게 만들려고 지금껏 쌓아 온 혐오와 반동적 증오를 쏟아 붓겠쬬. 하지만 우리 민중은 투항하지 않을 거예요.
우리는 이 총을 지킬 겁니다. 우리는 지금 이집트, 요르단, 만안 보호령들에서 대중의 숨통을 막고 있는 체제들을 터뜨릴 불꽃이 될 겁니다. 이게 제가 레바논에서 찾은 거예요. 살아있는 혁명의 힘이요. 투사를 향한 따뜻한 환대를 받았고 그저 감사한다는 말로는 제 마음을 다 전할 수 없습니다. 얼마든지 기꺼이 희생하려는 대중들을 보아서, 마음이 든든합니다.
우리 민중은 대중의 역량,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수무드의 역량을 입증했어요. 점령에 대한 저항에 있어 우리 아랍 대중에게는, 특히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에서는, 최고 수준의 의식이 있습니다. 이들은 이 압박을 견디는 역사적 역할을 해낼 겁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역사적으로 시온주의 정착에 맞서는 짐을 져 온 것처럼요. 거의 혼자서 그 짐을 졌죠. 이제는 팔레스타인 대중과 레바논 대중이 이 국면의 무게를 버텨야 합니다. 아랍 대중이 마침내 봉기할 수 있도록, 우리가 직접 ― 그 이해관계가 전 지구적 자본의 운동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 독재자들을 없앨 수 있도록 말입니다.
문: 10월 7일의 작전에는 어떻게 반응하셨나요? 당시에 소식은 어떻게 접하셨죠? 당시엔 어떤 인상이었고 지금은 어떤가요?
답: 나는 아랍인, 레바논인, 팔레스타인인이에요. 이 문제가 아랍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죠. 나는 공산주의자입니다. 그래서 이 사건을 그 전 지구적 함의를 토대로, 그리고 이것이 아랍과 국제 혁명 운동들에 미치는 영향을 토대로 분석하고요.
군사 작전으로서의 성격에 관해 말하자면, 사실 10월 7일은 비교적 제한적인 작전이었어요. 대규모 작전이 아니었죠. 팔레스타인 혁명은 마흔 해가 넘었습니다. 그만큼 길게 이어진 투쟁이니 전투원 천 명쯤 동원하는 건 자연스러운 전개예요. 비슷한 작전들이 반복되곤 했지만, 10월 7일은 여러가지 지대한 영향을 낳았죠.
사회정치적 수준에서 ― 그러니까 대중의 즉각적인 반응의 수준에서 ― 우리는, 아랍 사람 대부분이 그렇듯, 어느 피다이가 탱크에 단 시온주의 병사의 머리를 잡아 끌어내는 모습에 모두 환호했어요. 기뻐 날뛰었죠. 물론 이건 피다이들이 정확히 피다이들의 할 일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반응이었어요.
이 작전을 세부적으로 분석해 보면 이랬어야 했다, 저랬어야 했다 말 할 수도 있겠지만, 어떻든 그간 드러나지 않았던 현실을 모두에게 폭로했다는 점에서 성공적인 작전이었어요.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무력을 마주하고는 그들에게 자연스러운 야만으로 응수했죠. 하지만 자본의 관점에서 그 대응은 이 지역 전체를 위험 지대로 만들었고, 그게 이 사안의 핵심이에요.
이스라엘 체제의 성격을 이해해야 합니다. 1970년대까지 이스라엘에는 사유 금융 기관이 없었어요. 은행, 보험사, 주요 금융 기구들이 아직 공공 재산이었요. 1980년대 후반에 소련 출신 정착자 약 백만 명이 팔레스타인으로 넘어오면서 수백만 달러를 가져왔어요. 이 수백만 달러는 심지어 자본주의적 기준에서도 “불법”으로 여겨지는 수단을 통해 ― 즉 자본주의 생산 양식의 법적 틀 바깥에서 ― 들어왔죠. 성매매, 밀수, 부정 거래 같은 데서 나온 돈이었던 거죠. 이 엄청난 자본이 소비에트 시기에 축적된 과학 역량을 가진 정착자 인구와 만나면서 이스라엘이 이른바 이스라엘 “실리콘 밸리”를 건설할 수 있게 된 질적 도약이 벌어진 겁니다.
10월 7일 작전은 이 “실리콘 밸리”와 1970년대 이후 건설된 제도들을 통째로 때린 겁니다. 물리적으로 파괴했다는 게 아니라, 무력 충돌이 벌어지는 곳에서 자본이 안전하게 흐를 수 없게 만들었다는 거죠. 예상 못한 일은 아니에요. 이스라엘이 마지막 장에 돌입한 것이 바로 그래서죠. “실리콘 밸리”가 없으면 네타냐후의 “대 이스라엘Greater Israel” 기획에는 현실성이 없거든요. 이 기술 허브는 고전적인 군사 점령의 길을 닦을 뿐 아니라 해당 지역 전체를 소위 만안 국가들에 가해진 것과 비슷하게 경제적, 행정적으로 지배할 길을 닦습니다. 아랍 마슈리크Mashreq [즉, 서아시아와 동북아프리카 일부를 포함하는 아랍 권역 동부] 전체를 이스라엘 헤게모니 아래에 두는 계획이었어요. 10월 7일 작전은, 꼭 이런 구체적인 차원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다 해도, 이 기획을 무너뜨렸습니다. 이게 10월 7일 작전의 근본적인 차원이에요.
물론 10월 7일은 사우디 아라비아가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정상화하지 못하게 막기도 했죠. 가자가 광대한 감옥이란 걸 잊으면 안 됩니다. 당시의 계획은 이 감옥을 확장하는 거였지만, 10월 7일은 이 감옥을 폭파하고 이 지역 전체에 대한 시온주의의 계획을 바꾸어 놓았어요. 제국주의 서구는 야만과 범죄의 무기고를 탈탈 털어서 썼지만, 팔레스타인 민중은 부상에도 굴하지 않고 투항하지 않고 당당히 나섰습니다. 인류가 본 적 없는 수무드를 보여줬어요. 디엔비엔푸에서도, 스탈린그라드에서도, 그 어디에서도, 가자의 영웅들이 한 것처럼 자신의 존재를 위해 싸운 이들은 없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전 지구적 연대 운동은 가자에서의 저항의 직접적인 결과입니다. 대중들이 들고 일어나는 건 꼭 어느 한 분파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에요. 오히려 그저, 야만의 전형을 보았기 때문이죠. 역사 상 처음으로 인종학살이 생중계되고 그 낱낱의 사건들이 매 시간 추적되고 있어요. 서구 자본주의 지배의 역사 전체가 인종학살 전쟁의 역사이기는 하지만,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파키스탄에서 사람들이 인종학살을 실시간으로 목격할 수 있게 된 건 이번이 처음이죠. 그래서 청년들이 봉기한 겁니다. 인도적 충동에서 시작됐지만 전 지구적 파시즘의 물결에 맞선 정치적 반란으로 나아갔어요. 이건 전 지구적 자본주의 질서가 위기에 처했다는 맥락에서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제국주의 간의 모순에서 비롯되는 또 한 번의 세계전쟁의 문 앞에 있습니다. 유럽과 제국주의 서구에서는 현재 파시즘 세력들이 권력의 자리로 올라가는 과정에 있어요.
이런 맥락에서, 팔레스타인 케피예keffiyeh와 팔레스타인기는 민족의 상징을 넘어서게 됐습니다. 한편으로는 이스라엘 파시즘에의 대항을 나타내는 보편적 기호가, 또 한편으로는 유럽과 전 세계를 잠식하는 파시즘에 맞서는 선봉이 되었어요. 처음에 시위가 시작되자 당국들에서는 그것들을 범죄화했죠. 케피예를 두르면 체포하고 깃발을 들면 반유대주의자 낙인을 찍었어요. 지금은 전 세계 모든 집회에서 팔레스타인기를 흔듭니다. 팔레스타인 민중에 연대해서만이 아니라, 자국의 파시즘에 맞서서요.
이스라엘 체제는 제국주의 서구의 유기적 확장이에요. 역사적으로 말하자면, 서구는 일련의 인종학살 전쟁을 통해 형성됐습니다. 합중국이 어떻게 만들어졌던가요? 북아메리카에는 선주민이 살고 있었어요. 유럽인들이 도착해서는 총체적 인종학살을 저질렀죠. “합중국”을 만들기 위해 2500만 명 넘는 사람을 없앴습니다. 처음부터 합중국이라고 불렸던 게 아니에요. 북아메리카였죠. 북아메리카를 유럽의 후예인 “합중국”으로 만들기 위해, 선주민 2500만 명의 목숨을 없애버린 거예요.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가 만들어진 것도 같은 과정을 통해서였어요. “라틴” 아메리카라고 하죠. 그런데 이 “라틴성”이 어디서 왔나요? 마야도, 잉카도, 케추아도 라틴이 아닙니다. 자본이 그들을 “라틴 아메리카인”으로 바꾸기 위해, 수백만 명을 없앴어요. 오스트레일리아 역시 지구 상에서 가장 오래된 민족의 터전이었죠. 오스트레일리아가 “오스트레일리아”가 되기 위해, 그들을 없앴습니다. 다시 말해, 줄지은 인종학살 전쟁이야말로 제국주의 서구가 형성된 역사적 과정인 겁니다. 이스라엘은 이 서구의 최신판이자 유기적 확장판인 거죠.
팔레스타인 민중은 역사적으로 이런 인종학살 과정을 견뎠습니다. 가자에서 시작된 게 아니에요. 19세기 말에 시작되었고, 1948년은 그 이정표 중 하나일 뿐입니다. 1948년에 팔레스타인인은 백만 명이 안 됐어요. 지금은 천사백만 명이 넘죠. 역사적 팔레스타인 땅에는 팔레스타인인이 약 732만 명, 이스라엘 정착자가 720만 명 있습니다. 어떻게 보든 이 인종학살은 형편 없이 실패했어요. 이스라엘은 지금 그런 위기에 처해 있는 거예요. 10월 7일이 나타나 이스라엘에 이렇게 말한 겁니다. “너희는 한계에 봉착했다. 이것이 너희의 최종장이다.” 오늘날 우리가 레바논과 가자에서 보는 “깡패짓thuggery”은 이 최종장의 표식입니다. 이스라엘은 더 이상 서구 대중 앞에서 “민주주의의 오아시스”나 “인도주의”의 전초기지를 자처할 수 없어요. 이제 지극한 야만의 상징이 되었죠. 정당성의 원천으로 삼을 그러한 이미지가 없어졌으니, 이스라엘 체제는 실패할 운명입니다. 한동안은 다른 무기를 공수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역사의 방정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주지는 않을 거예요. 민중은 이 행성의 역사를 만듭니다. 원시적인 무기를 든 팔레스타인 민중은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인 병기고보다도 강력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어요. 그들은 아랍 마슈리크 전체를 대신해 인종학살에 저항했습니다. 서구가 만든 정착자 전쟁의 표적은 팔레스타인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대 이스라엘”이라 부르는 지역 전체였죠. 하지만 팔레스타인 민중이라는, 마슈리크의 선봉대는 아이들의 시신을 대가로 치르면서도 싸웠고, 이겼습니다. 대중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당신들은 성공했어요, 우리는 당신들 편입니다.” 그렇게 함께하는 그들에게 팔레스타인인은 [다른 지역의] 선주민일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땅을 좀먹는 파시즘에 맞선 시급한 투쟁의 결정적인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문: 사회경제적 상황이 전례 없이 나쁜데도 투쟁은 엄격하게 평화적이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립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답: 전 지구적 수준에서 우선 말해두어야 할 것은 현재의 상황은 가변적이고 폭발하기 쉽다는 겁니다. 자본과 자본주의 체제의 운동은 회생불가능한 구조적 위기에 처했고, 이는 다양한 부르주아지들이 서로 폭력적으로 대립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한 세기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세 번째로, 우리는 삼차 세계 대전의 문앞에 와 있어요. 자본주의 위기의 직접적인 결과로요. 여기까지는 모두가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요? 대중은 갈수록 파시즘과 부딪히게 될 거예요. 자본주의 체제는 한때 “대의 민주주의”라 불렀던 것을 버리며 변화하는 중이죠. 지금 우리는 파시즘이 아르헨티나와 이탈리아에서 권력을 잡는, 프랑스, 독일, 합중국에서 권좌 바로 앞까지 도착한 모습을 보고 있어요. 이런 과정 전체가 대중의 대대적인 빈곤화로 이어질 거고, 도탄은 깊어지기만 하겠죠.
시급한 문제는 이런 겁니다. 파시즘에 맞서는 데에 필요한 힘을 성공적으로 모으려면 혁명의 선봉을 어떻게 형성해야 할까? 답을 찾으려면 우선, 오늘날 노동계급은 20세기와는 구성이 다르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현재는 소위 “박탈당한dispossessed” 계급이 지구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합니다. 아르헨티나에서 페루, 프랑스에 이르는 파시즘에 맞설 역량이 있는 정치적 프로그램 속에서, 이 대중적인 힘은 어떻게 스스로를 조직화하게 될까요?
우리는 혁명적인 힘들 ― 혁명적 변화에 물적인 관심이 있는 이들 ― 의 사회적 구성은 박탈 당한 이들, 전통적인 노동 계급 등이 혼합체라고 봅니다. 이 “대중 블록bloc”은 일상의 실천을 통해 건설됩니다. 우리 시대의 역사적,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모순들 속에서 형성되는 거죠.
함께하면, 함께해야, 우리가 승리합니다. 함께하면, 함께해야, 우리가 진전합니다. 어디서든, 함께하면, 우리가 이깁니다. 베이루트에서도, 아르헨티나에서도 말입니다. 공통점을 찾고 운동을 강화해 집단적 혁명적 정체성을 건설해야 합니다. 지금 베네수엘라와의 연대는 팔레스타인과의 연대와 같습니다. [뉴칼레도니아로 알려져 있는 프랑스령] 카나키Kanaky 사람들과의 연대도, 카리브해 사람들과의 연대도 마찬가지예요. 바로 이런 연대가, 오로지 야만으로만 이어지는 체제인 전 지구적 자본에 맞서는 대중 블록의 역사적 성격을 형성합니다.
투쟁의 과정을 통해, 주의를 딴데로 돌리려는 부르주아지 세력이 걸러질 겁니다. 대중은 자신의 이익을 알게 될 거고요. 그들이 세계를 바꿀 이들이에요. ‘함께하면, 함께해야, 우리가 승리한다’라는 원칙에 의거해 성공적으로 대중 블록을 결집시키는 것이 혁명 투사의 역할이죠.
함께 승리하려면 함께 투쟁해야, 함께 혁명 의식을 형성해야 합니다. 대중 블록은 의식적인 힘으로서 존재할 때 그 직접적이고 역사적인 이해관계들을 파악할 수, 그로써 역사 자체의 운동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해방이란 이런 겁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찾을 수 있는 거예요. 밖에는 없습니다.
문: 마지막으로, 라틴 아메리카 동지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싶습니다.
답: 라틴 아메리카 동지들에게 할 말은 간단합니다. ‘우리는 같은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제국주의가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은, 반제국주의 투쟁이 추상적인 구호에 그치지 않고 대중이 받아들이는 구체적이고 정당한 현실이 되는 겁니다.
함께하면, 함께해야, 우리는 이겨낼 수 있습니다. 혼자서는 이길 수 없어요. 분열하면 우리 모두 패배합니다. 라틴 아메리카 대중이 팔레스타인기 아래에 모이는 것은 파시즘에 맞선 전 지구적 투쟁의 일원으로서 모이는 겁니다. 이게 팔레스타인 수감자들, 모든 혁명 투사들에 연대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이 원칙은 그저 구호가 아니에요. 필수적인 거죠. 아르헨티나, 팔레스타인, 이집트 대중은 자본의 야만에 맞서 공통의 이해관계를 공유합니다. 아르헨티나의 파시즘에 맞서 결집하는 아르헨티나의 사회적 기층은 팔레스타인 또한 지킵니다. 그곳의 모든 승리는 이곳의 승리이기도 합니다. 세상 어디에서든 제국주의에 맞서 이기면 그건 우리 모두의 승리이기도 합니다. 어디에서든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으면, 전 지구적 혁명의 힘을 키우는 겁니다. 아르헨티나 민중의 투쟁이 전진하면 그 진보는 우리의 것이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팔레스타인의 모든 승리는 아르헨티나, 페루, 다른 모든 곳 민중의 승리이기도 합니다.
혁명을 이끌려면 우리의 투쟁들은 힘을 모아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자본이 전 지구적 규모로 서로 연결되는 것처럼, 우리도 서로 연결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다만 그 내적 모순들을 반복하지 않으면서요. 함께하면, 함께해야, 우리는 이겨낼 겁니다. 오늘도 앞으로도 이것이 우리의 구호가 되어야 합니다. 혁명적 변화에 역사적 관심이 있는 전 지구적 운동을 건설하는 방법은 바로 이거예요. 이 연대를 통해 혁명적 인터내셔널이 만들어져요. 베네수엘라를 지키든, 아레헨티나를 지키든, 다른 어느 피억압 민중을 지키든, 투쟁은 하나예요. 쿠바든, 러시아든, 그 어디든, 한 곳에서의 승리가 모두의 승리입니다. 혁명 지도부는 우선순위를 정할 때 이를 명심해야 해요. 우리의 적은 전 지구적 자본이고, 우리의 동맹은 대중입니다. 운동의 정체성[동질감]은 이런 협력 속에서 태어납니다. 투쟁의 성공은 지도부의 질에 달려 있어요. 개량적, 반동적 지도자가 넘쳐나면 모두가 패배합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에서 혁명적 지도부가 번창하면 아르헨티나도 승리합니다.
이런 상호작용이 우리에게 전 지구적으로 자본주의 체제를, 영원한 위기 속에 있는 체제를 전복할 수 있는 힘을 줍니다. 추상적인 연설을 통해서는 할 수 없는, 매일의 단결된 실천을 통해서만 할 수 있는 일이죠. 팔레스타인에서나 다른 어디에서나, 적에 맞서는 것이 우리의 임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