اننا نخذل فلسطين عندما لا ندرك مغبة العزلة التي تفرضها علينا الرأسمالية المالية الصهيونية العالمية القبلية بمغبة التماهي مع لغتـ[ها] دون ان نجود لنا فنبدع لغة تخصنا نحارب بها ونواجه بها خصومنا العالميين والداخليين
부족적 시온주의 금융 자본주의가 전 지구적으로 우리에게 강제하는 고립의 귀결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팔레스타인을 저버리게 되고 말 것이다. 저 금융 자본주의 자체가, 지구적, 지역적 적들에 맞설 우리의 언어를 개발하지 않고 [그것의] 언어에 동화한 결과다.
― 카디자 사프와트Khadija Safwat(수단 작가·연구자), 2016.
2023년 10월 이후 몇 달 동안, 팔레스타인 민중의 고통에 대한 의식이 전 지구적으로 상당히 높아졌다. 이런 변화를 이끈 것은 주로 ― 주류 기성 언론을 통해서는, 특히 전 지구적 북부에서는, 접할 수 없었던 정보를 제공한 ― 소셜 미디어였다. 그 결과, 세계 각지에서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가 벌어졌고 온오프라인에서 논쟁이 이어지며 팔레스타인 대의에 전례 없는 지지의 목소리가 더해지고 있다.
하지만 역사가 알려주는바, 의식이 중요한 출발점이기는 해도 그것만으로는 팔레스타인 해방 기획을 진척시킬 수 없다. 팔레스타인 투쟁에 대한 의식이 ― 최근에 성장한 게 아니라 ― 꾸준했던 곳들의 경험을 살펴보면 팔레스타인 대의 뿐만 아니라 지구 상의 다른 여러 혁명적 기획들을 진척시키는 데에도 도움이 될 중요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팔레스타인 가까이 자리한 나라들에는 오래 전부터 시온주의 점령의 현실에 대한 상당한 의식이 있었다. 물리적으로 가깝고 같은 언어를 쓰며 1950년대, 1960년대에 범아랍주의, 반식민주의 운동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런 정치적 운동들은 사그라들었대도, 이웃 국가 대부분이 같은 언어를 쓰고 팔레스타인이 종교적으로 갖는 의의가 있는 덕에 팔레스타인 지지 정서는 여전히 살아 있다. 그 영향력은 아랍어권 국가들의 대중 의식에서 팔레스타인의 위상을 1950년대, 1960년대에 대중적인 지지를 받았으나 현재는 연대의 서사가 잊혀져버린 아프리카, 아시아 비아랍어권 국가들의 투쟁과 비교해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정치적 논쟁의 공간이 전반적으로 줄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랍어권 국가들의 대중적 의식에서 팔레스타인의 존재감은 여전하다. 팔레스타인과는 상관 없는 국내 문제에 관한 시위에도,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에도, 운동 경기 응원가나 일상적인 토론에도 팔레스타인이 등장한다.
수단도 예외가 아니다. 인접한 여러 아랍어권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수단 사람들의 민족 자긍심 서사에는 종종 팔레스타인 지지 입장이 포함되곤 했다. 예컨대 하르툼Khartoum은 오랜 시간 자랑스레 ‘세 가지 거부Three No’s’의 수도를 자처했다. 하르툼에서 열린 1967년 아랍연맹 정상회의에서 참가국들이 이스라엘과 화평하지 않고 이스라엘을 인정하지 않으며 이스라엘과 협상하지 않기로 결의한 데서 비롯된 표현이다. 이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최근까지도, 수단의 여러 기관이나 정부에서 내는 팔레스타인 대의 관련 정치적 성명에 종종 언급되었다. 동시에, 다른 여러 아랍어권 국가에서도 그렇듯 수단에서는 부당한 지배 체제를 시온주의 체제에 빗대는 표현을 써서 정치적 분노를 표출했다. 실제로 아랍어권 소셜 미디어에서는 정치인을 욕할 때 ‘저것들 진짜 시온주의자야’라는 표현이 자주 쓰인다. 팔레스타인 투쟁의 지정학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와는 상관 없이, 이런 표현을 통해 시온주의를 부정의와 동일시하고 반시온주의와 팔레스타인 지지를 표명하는 셈이다.
수단에서 벌어지는 논의에서 (시리아, 이집트 등 역내 다른 나라들도 그렇듯) ‘저것들 진짜 시온주의자야’라는 표현은 온라인,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계속 쓰이지만, 그간 팔레스타인 대의에의 지지 자체는 정치적 변화나 언론의 서사 변화에 따라 그 강경도나 주목도가 오르락 내리락 했다. 주요 사례로 2018년 혁명으로 오메르 알-바시르의 30년 독재가 무너진 후 2019년부터 2021년까지 수단 과도 정부transitional government of Sudan (TGS)에서 통치한 시기를 들 수 있다. 이 시기 동안 TGS에서 팔레스타인 점령 체제와의 관계 정상화를 추진하면서, 역사에 남을 만한 대중적인 팔레스타인 지지의 조짐이 보이기도, 그러한 지지가 가라앉기도 했다.
2020년 2월 3일에 TGS 공식 대변인은 [압델 파타 알-부르한] 주권위원장 겸 수단군Sudanese Armed Forces (SAF) 수장이 대표로 참석해 우간다에서 정부 군부 측과 이스라엘 총리가 회담을 연 것을 민간 측에서는 사전에 알지 못했다는 성명을[1]Statement by the office of the Minister of Culture and Information and the official spokesperson of the TGS on 3 February 2020. 냈다. 그러면서도 연립 여당의 민간 측 ― 바트주의자Baathists, 나세르주의자Nasserists, 움마Ummah, 공산주의자 등 공식적으로 이스라엘과의 정상화에 반대하는 쪽들이 포함되어 있는 ― 에서는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규탄하는지 지지하는지 분명히 밝히는 대신 군부에 대외 관계를 좌우할 권한이 있는지에 관한 관료주의적 분쟁에 집중했다. 이들은 어떤 입장을 채택하는지에 있어 실질적인 공개 검토를 받지 않아도 되었기에, 이런 태도를 취하는 이유를 분명히 하라는 요구도 받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그들의 전반적인 태도는 이것이 ― 대부분이 협력 관계였던 ― 과도 정부에 대한 반대 여론을 최소화하고 축출된 이슬람주의자들과 거리를 두려는 패턴에서 나온 것이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점령과의 정상화를 전적으로 거부한 것은 실각한 구체제의 이슬람주의국민의회당Islamist National Congress Party (NCP) 뿐이었다.
군 정보부와 이스라엘 간의 넉 달에 걸친 비밀 협상에서부터[2]Alashkar, O. (2020) ‘Sudanese–Israeli normalization, and its impact on the Palestinian cause’. Beirut: Alzaytouna Center. 합중국 재무부 장관의 방문, 이 나라가 국제 공동체와 새로운 관계를 수립한 데 대한 공식 축전들을 연막 삼고 융자 지원 합의 서명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된 2021년 1월 정상화 협약 서명에 이르기까지, 이 ‘정상화 과정’은 한 단계 한 단계가 전부 비밀과 혼란에 싸여 있었다. TGS에서 반팔레스타인 외교 정책에 대한 여론의 반발이 두려워 이 과정에 대한 대중적 참여를, 아예 그에 대해 아는 것 자체를, 최소하하려 했음이 분명하다. 이는 수단 내 친팔레스타인 여론의 무게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정상화와 관련해 TGS의 정당화와 프로파간다가 어느 정도 성공한 것은 이 여론의 기반이 점점 더 흔들리고 있음을 알려준다.
TGS에서는 수단을 합중국의 테러지원국 목록에서 빼고 국제 융자를 받기 쉽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구도로 대 이스라엘 관계 정상화 결정을 옹호했다.[3]Dachtler, P. (2022) ‘From New to Normal: Two Years after the Abraham Accords’. https://www.ssoar.info: https://www.ssoar.info/ssoar/handle/document/81598 정부는 ‘수단 우선’ 접근법을 취했는데, 빈곤을 심화시키는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을 비롯해 다른 정치적 범죄를 정당화할 때도 종종 이런 전술을 썼다.
팔레스타인 권리를 지지하는 대중 전선을 구축하고자 한다면 때로 대중적 지지가 강력한 연대를 창출해내지 못하는 이유를 검토하고 효과적인 정치적 행동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탐색해야 한다. 이 글은 팔레스타인과 관계되는 수단 정치학과 양국 투쟁의 교차점들을 형성하는 세 가지 핵심 역학을 살펴 본다. 그 세 가지는 다음과 같다. 1) 팔레스타인을 순전히 종교적인 렌즈를 통해 봄으로써 팔레스타인 투쟁을 형이상학적 영토로 넘기는 과정 (‘형이상학화’) 2) 흑인 연대 대 아랍인 연대라는 이항대립 및 그것의 정체성 정치와의 얽힘 3) 동시에 벌어지고 있는 수단 내전과 대 가자 시온주의 인종학살전에 비추어 본 대중적·국제적 주목 경쟁. 이런 역학들은 수단에서만이 아니라 전 지구적으로 나타나며,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세계 각지의 조직가들에게 과제를 제시한다. 그렇기에 때로 대중적 지지가 강력한 연대를 창출해내지 못하는 이유를 이해하고 효과적인 정치적 행동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탐색하기 위해서, 그리고 지속가능한 초국가적 해방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연구가 필수적이다.
팔레스타인 투쟁의 형이상학화
수단의 1989년 쿠데타는 30년간 재임한 오메르 알-바시르 체제로 이어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체제의 특징, 구호, 동맹 관계, 핵심 인물은 바뀌었지만 서방과의 관계에 관한 서사는 (심지어 그 관계 자체는 달라졌음에도) 변하지 않았다. 쿠데다 지도부는 자신들의 정치적 기획을 이슬람의 확장을 막는 기독교 서구에 맞서 싸우는 혁명적 이슬람 기획으로 이야기했다.[4]Sharfi, M. H. (2020) Islamist Foreign Policy in Sudan: Between Radicalism and the Search for Survival. New York: Routledge. 체제는 이 서사를 활용해 대중의 지지를 모으고 체제의 결정과 과제를 정당화했다. 이 서사에 따르면 ― 무장했든 아니든 ― 시위나 민간의 소요는 불평등하고 부정의한 발전과 경제적 고통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서방의 지원을 받는 운동적이 만들어낸, 이슬람 기획에의 반대였다.
이런 관점은 수단이나 인근 국가에 특유한 것이 아니다. 실은 식민 이후 민족주의 시기, 자치나 공정한 자원 분배 같은 민중 중심적 목표보다 민족 자긍심이나 국가 주권 같은 추상적인 개념들을 우선시했던 시기에 뿌리 내리고 있다. 범아랍 기획들이 약화되면서 종교 기반 정치 기획을 채택하고 같은 관점을 내세운 식민 이후 정부들은 이런 개념들을 이용해 다수의 삶을 개선하지 못한 정부의 실패를 감추곤 했다.
팔레스타인과 관련한 수단 체제의 입장 역시 이런 전반적인 관점의 일환이었다. 알-바시르 정부는 일찌감치 시온주의 점령과의 정상화 일체에 반대한다고 선언했으며, 오슬로 협정을 혹독히 비판하고 [팔레스타인해방기구 의장이자 팔레스타인자치정부 수장이었던] 아라파트가 팔레스타인해방기구Palestine Liberation Organisation (PLO)의 원칙을 저버렸다고 비난했다.[5]Abadi, J. (1999) ‘Israel and Sudan: The saga of an enigmatic relationship’. Middle Eastern Studies, 35(3): 19–41. https://www.jstor.org/stable/4284022 동시에, 수단 정부는 계속해서 PLO를 팔레스타인 민족의 공식 대표체로 인정했다. 주 수단 팔레스타인 대사관을 유지하고 몇몇 팔레스타인 조직 및 저항 분파의 사무실도 받아들였다. 약간의 변동은 있었지만 이런 관계가 이후 수십 년간 지속되었다. 이 시기에 이스라엘은 공식 성명에서 수단이 팔레스타인 저항 세력에 무기를 제공할 뿐 아니라 사무실 자리를 내어준다는 점을 들어 ‘테러리스트 국가’로 지목했다. 이런 혐의는 이스라엘에서 2009년과 2011년에 하마스로 무기를 운송한다는 트럭 수송대를 공습하거나 2012년에 SAF 소유 알 야르무크 무기 공장을 폭격하는 등 수단 영토 내를 수차례 폭격한 일을 정당화하는 빌미가 되었다. 후자의 폭격에 응수해 수단 유엔 대사는 ‘이스라엘이 다르푸르 분쟁 배후의 주 요인’이라고 비난했다.[6]Africa Research Bulletin (2012) ‘Sudan– Israel: Bombing of weapons facility’. Africa Research Bulletin: Political, Social and Cultural Series 49(11). … (계속)
알-바시르 정부는 시온주의자들을, 넓게는 서방을 수단 내 모든 문제의 배후로 지목하는 전술을 자주 썼으며, 종종 서방과 이스라엘의 지원을 받는다는 혐의를 제기해 반대파들을 깎아내리곤 했다. 다른 한편, 정부에 대한 지지를 모으는 방법으로 대통령 연설로 끝나는 팔레스타인 지지 행진을 활용하기도 했다. 연설에서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수단 지배 체제에 대한 반감을 이슬람에 대한 반감으로 몰았다. 그런 연설에서 전개된 서사는 이슬람 국가 건설 기획이나 그것이 서방의 기획들과 ― 그리고 수단 내의 반대되는 기획들과 ― 어떻게 다른지를 진지하게 다루지 않았다는 점을 특기해 둘만하다. 그랬다가는 시민들이 이 대립되는 관점들의 상대적인 장단점을 평가하고 그들 사이의 반감이 구체적으로 무엇에 기반한 것인지를 추론하게 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체제는 팔레스타인 투쟁에 대한 논의를 형이상학적/종교적인 것의 ― 기껏해야 정체성 정치의 ― 영역으로 이동시켰다.
지난 서른 해 동안 수단 정치 현장에 이슬람주의자들의 서사와 다른 방식으로 팔레스타인 투쟁을 지지하는 뚜렷한 대안 서사는 없었다. 좌파는 대체로 이 주제를 도외시했다. 수단공산당Sudanese Communist Party의 경우에는 당시 군사 정부가 1971년에 가한 가혹한 조치로 인해 이론적, 실질적으로 전반적으로 쇠퇴했던 탓에 그랬다. 2020년에 TGS에서 정상화를 시도할 때 이 과정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히기 위해 쇠퇴하기 전이었던 1960년대의 문헌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했을 정도였다. 전체적으로, 좌파 및 다른 그룹들이 팔레스타인 대의를 도외시했다는 것은 2020년에 제한적으로나마 반 정상화 항의 운동을 조직할 역량이 있었던 것은 최근에야 실각한 이슬람주의자들 뿐이었다는 뜻이다. 그 덕에 TGS에서는 자신들의 외교 정책에 대한 반대를 모두 ― 앞에서 개관한 구체제의 전술이 떠오르게 하는 방식으로 ― 교조적이라고 매도하고 이 교조적 관점과 대비되는 신생 TGS 정부의 ‘민주적 제도를 구축하고 이웃들과의 관계를 개선하면서 테러리즘에 맞서 싸우는 용기와 헌신’을 내세울 수 있었다.[7]US Government (2020) ‘Joint statement of the United States, the Republic of Sudan, and the State of Israel’, October. https://il.usembassy.gov/joint-statement-of-the-united-states-the-repub… 이슬람주의자들의 주장과 TGS의 주장이 서로를 키웠던 셈이다.
팔레스타인 투쟁의 형이상학화, 즉 팔레스타인 문제를 형이상학적/종교적인 것의 영역으로 넘기는 과정은 사람들이 해방과 자유에 대해 실질적인 논의를 하지 못하게 만들고자 하는 여러 체제들, 정부들이 쓰는 수단이다. 이는 무슬림이 다수인 나라들의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의 역량을 제한해 진정으로 해방적인 노력을 하지 못하게 만든다. 팔레스타인 대의를 한 인구집단이 그 땅과 자원에 대해 갖는 권리의 문제로 논의할 수 있을 노력, 다른 피억압 인구들의 투쟁에 대한 강고한 연대와 실질적인 연결을 가능케 할 노력을 말이다.
이 지점에서 형이상학화는 시온주의 기획이 외부의 지지는 물론 종교에 기반한 내부의 헌신을 끌어내는 데에 유용한 도구이기도 함을 지적해 두어야 할 것이다. 팔레스타인 투쟁의 현실을 왜곡하는 이런 도구가 시온주의자들에게 크나 큰 득이 될 수 있음은 자명하다. 중요한 사실들을 숨기기 때문이다. 연대와 동맹이 피억압자들의 고통과 투쟁, 그 물적 현실과 동떨어지게 만들기에, 피억압자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 역시 자명하다.
2023년 10월 이후 생겨난 대중적인 팔레스타인 지지 운동은 전반적으로 말해 인간으로서의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가해지는, 생중계 되는 범죄들에 대한 거부에 기반하고 있다. 이런 기반을 토대로 자연히, 팔레스타인과 콩고나 수단 등지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부정의와 투쟁의 연관성을 탐색하는 서사들이 대중화되고 널리 퍼졌다. 이는 전 지구적 북부의 많은 이들이 현존하는 제국주의적 정치·경제 구조를 거부하고 자국 정부의 식민적·신식민적 정책들을 논의하게 만들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슬림이 다수인 나라들 같이 역사적으로 팔레스타인을 강력히 지지해 온 지역들에서는 그만한 빈도나 일관성을 가진 비슷한 서사나 연결관계가 형성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수단을 비롯해 이런 곳들에서 팔레스타인에의 연대는 대개 그와 반대로 무슬림과 불신자의 갈등에 관한 기존의 형이상학적 수사와 긴밀히 얽혀 있다. 여기에 힘을 싣는 것은 바로 전 지구적 북부의 시온주의 언론사, 정치인, 지식인들이 펼치는 전 지구적 남부-팔레스타인 동맹에 맞선 전 지구적 북구-이스라엘 동맹을 강조하는 서사들, 이를 민주주의 대 테러리즘의 충돌이라는 구도로 제시하는 서사들이다. 20세기 중반까지 이어진 직접적 식민화 시기에 확립된, 문명 국가 대 비문명 국가라는 이분법을 되풀이하는 틀이다. 이 틀은 팔레스타인 투쟁에 대한 문화주의적 이해를 고착시킨다 ― 이슬람혐오 정서와 섞여 있으며, 투쟁을 정치경제적 이해관계의 현실과 유리시킨다. 이 같은 형이상학화의 연장선 상에서, 무슬림 다수 국가들의 여론은 문화에 따른 국가 분류에 맞지 않는 문제들을 뒤로 미룬다. 무슬림 세계 바깥의 전 지구적 남부 정부들의 공식적인 팔레스타인 지지는 물론 팔레스타인에 대한 무슬림 다수국 정부들의 실질적 지원 부족, 전 지구적 북부에 속하는 나라들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 같은 것들 말이다.
이는 예컨대 무슬림 다수국 정부 등의 정치경제적 이해관계나 그것이 자국 인구의 이해관계와 어떻게 연관되거나 상충하는지를 비판적으로 탐색할 대안적이고 일관적인 틀이 부재하는 탓으로 설명할 수 있다. 공적 담론에 그런 틀이 없다는 것은 문화적으로 다른 집단으로 분류되는 피억압 인구들과의 공통의 이해관계를 식별하지 못하는 데로 이어진다.[8]수단 및 역내 아랍어 사용 인구들과 관련해, 널리 받아들여지는 반혁명 세계관에 대한 진지한 문제 제기로 작용할 수 있을 쟁점 하나는 [모로코에서 … (계속)
팔레스타인 투쟁에 대한 진보적, 해방적 분석을 제시해 이 결핍을 채우는 것이 수단 좌파의 중대한 과업이다. 안타깝게도 이 중요한 과업은 지금껏 수단에서 대체로 도외시되어 왔다. 아마도 대중이 이미 이 문제에 관해 올바른 편에 있다고 여긴 탓일 것이다. 하지만 최근의 역사는 더없이 올바른 위치라도 단단한 물적 분석을 토대로 하지 않는 한 기회주의적이고 제 잇속만 차리는 프로파간다의 조작에 취약함을 알려준다. 수단의 최근 역사가 그랬다. ‘자유, 평화, 정의’라는 구호를 건 2018년 혁명이 이슬람주의 프로파간다에 크게 의지한 수십 년의 독재를 타도했지만 갖가지 반혁명 세력은 제 이득을 위해 팔레스타인 연대의 문제를 (앞에서 살펴본 대로) 무기로 삼았다. 구체제 세력은 팔레스타인 대의를 (형이상학화해) 이슬람의 투쟁으로 이야기하고 시온주의 점령과의 정상화 정책을 들어 새 정부는 반이슬람 체제라는 틀을 짰다. 무슬림 대 불신자라는 단순화된 틀에서, 이는 ‘이슬람 통치’의 회복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었다. 동시에, 새 과도 정부 내의 반혁명 세력들은 혁명의 정서와 정책 논쟁을 통제하고 제한하려 했고, 이에 팔레스타인 연대를 구체제의 교조적 잔재로 매도했다. 이처럼 두 반혁명 서사가 서로를 키우는 동안 진보적이고 혁명적인 연대 담론은 보이지 않았다. 과도 정부의 반혁명 동맹에 속해 있거나 팔레스타인 문제를 이슬람주의자들에게 맡겨버렸던 등의 여러 이유로, 좌파 성향 기성 정당들은 혁명적 입장을 제시하거나 옹호하지 못했다. 저항 위원회들이든 일반 대중 중에서든 신생 혁명 세력들의 경우에는 스스로를 혁명과 동일시한 TGS의 프로파간다에 큰 영향을 받아 정상화를 포함해 TGS의 정책을 비판하기 어려워진 탓이었다. 그래서, 혁명 세력들 사이에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약간의 수사적 움직임이나 작은 기획들은 있었지만, 이 문제에 관해 실질적이고 일관적인 혁명적 서사를 취하지는 못했다.
팔레스타인 투쟁에 대한 형이상학적 틀은 팔레스타인 편이든 그 반대든 반혁명 세력들에 득이 되었다. 이는 혁명적, 물적 분석의 부재가 어떻게 하여 개개인이나 공동체들이 상호 연결된 억압 체제들을 ― 극복하고 대체할 능력은 말할 것도 없이 ― 더 깊고 섬세하게 이해할 기회를 앗아가는지를 분명히 보여주는 사례다.
흑인 연대 대 아랍인 연대
2023년 10월 이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인종학살이 이어지는 동안, 콩고민주공화국Democratic Republic of the Congo (DRC)에서도 분쟁이 격화되어 아프리카 및 아프리카 디아스포라 공동체의 활동가들이 DRC 민중 투쟁에의 관심을 호소하고 있다.[9]US Government (2020) ‘Joint statement of the United States, the Republic of Sudan, and the State of Israel’, October. https://il.usembassy.gov/joint-statement-of-the-united-states-the-repub… 이들은 콩고인들이 처한 곤경은 팔레스타인인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국제 공동체의 즉각적인 주목과 연대를 요한다고 역설한다. 대부분의 활동가들은 공통의 억압 경험을 ― 심지어는 DRC에도 시온주의 체제가 연루되어 있음을[10]Jay, K. (2023) ‘Diamonds drenched in blood: Unmasking Israel’s role in the Congo crisis, 22 November. https://orinocotribune.com/diamonds-drenched-in-blood-unmasking-israels… ― 강조하면서 두 투쟁의 유사성을 보여주려 하지만, 팔레스타인 대의는 제쳐두고 흑인 투쟁들에 집중하기를 호소하는 목소리도 일부 있다. 수단 정치 현장에서도 몇 년 전부터 비슷한 주장이 나오고 있다.
수단 안팎의 다양한 정치 행위자들은 2000년대 초부터 다르푸르 분쟁을 단순화하는 데에 아랍인-흑인 이분법을 이용해 왔다. 이 이분법은 알-바시르 체제를 비롯한 이전 수단 정부들에서 전개한 무슬림-불신자 이분법이 남수단 전쟁 시기에 확장된 서사다. 인구 대부분이 무슬림인 다르푸르에서는 종교를 써먹을 수 없었던 알-바시르 체제는 종교 대신 민족 정체성을 강조하는 쪽으로 선회했다. 이 서사는 스스로를 아프리카로 이주한 아랍인의 후예로 여기는 특권적 중심 인구들의 기원 설화를 기반으로 삼는다.
수단은 역사적으로 매우 중앙집권적이었고, 독립 이후 이어진 엘리트주의적 정부들은 수도 하르툼 및 인접 지역은 비교적 높은 수준으로 개발하면서 국토 대부분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개발과 폭리적인 지대地代를 추구했다. 이 전략은 억압적 구조를 유지하는 데에 열중하는 소수 특권층을 만들어 내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식민 국가 건설의 당연한 귀결이라 할 수 있는 이런 구조 속에서, 특권적 중심부에서 받아들인 기원 설화는 아랍 우월주의적 서사로 진화했다. 다르푸르 인구에 대한 ‘타자화’를 강화하는 사례들에 관한 프로파간다에 초점을 맞추는 등, 체제는 이런 서사를 활용해 다르푸르의 피해자들을 비인간화하고 중심부의 여론을 형성했다.
국제 기구들에서 전쟁 범죄 혐의를 제기하면 체제는 정체성주의에 기댔다. 예컨대 다르푸르구호동맹Save Darfur Coalition의 혐의 제기에 응수해 보건부 장관은 2007년의 한 인터뷰에서 ‘다르푸르 논쟁은 24개 유대인 조직에서 부추기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11]Refugee Review Tribunal (2008) ‘Sudan relations with Israel – RRT research response’. Australia: Refugee Review Tribunal. 연맹의 190개 회원 단체 중 미국 유대인 조직들을 가리켜 한 말이었다. 연맹은 흑인 대 아랍인 서사를 쓰는 등 다르푸르 분쟁을 단순화해 활동가들, 학자들로부터 널리 비판 받았는데,[12]Lanz, D. (2009) ‘Save Darfur: A movement and its discontents’, African Affairs: 669–677. 자원 및 토지 수탈과 같은 요소에 주목하는 그런 비판들은 체제로서는 불편했다.
그런가 하면, 지지층 결집을 위해서든 정치적 결정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든 다르푸르 쪽에서 똑같은 (흑인 대 아랍인) 서사를 이용할 때도 있었다. 예를 들어 2008년에 다르푸르 반군 수단해방운동Sudan Liberation Movement은 이스라엘에 사무실을 열었다. 이는 다르푸르 난민들이 유럽으로 가는 길에 점령 당한 팔레스타인을 거치곤 한다는 사실과 연관되어 있었다. 논쟁이 많았고 큰 인기를 얻지는 못했지만, 지지자들은 팔레스타인은 아랍 투쟁이며 다르푸르 분쟁은 아랍인 대 흑인 분쟁이라는 구도로 이를 정당화했다. 이는 흑인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아랍인에 대한 반감을 정당화하는 논변으로 이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식의 정당화들은 1960년대, 1970년대 아프리카의 해방 운동과 독립 정부들이 시온주의 체제를 남아프리카의 아파르트헤이트와 동일하게 여기며 그에 강력히 반대했던 역사는 무시했다.[13]Diallo, K. (2024) ‘African attitudes to, and solidarity with, Palestine: From the 1940s to Israel’s genocide in Gaza’. TNI. … (계속)
흑인 대 아랍인 서사는 수단 체제를 비롯한 여러 반동 세력의 프로파간다에 비옥한 토양을 제공한다. 예컨대 알-바시르 체제는 이 서사를 통해 다르푸르 분쟁이 대체로 유구한 민족ethnic 간 분열과 관련된 것이며 따라서 각 민족이 상대를 지배하려 하는 것도 당연하다는 발상에 대중적 지지를 모을 수 있었다. 다르푸르 인구에 대한 공격의 결과이자 원인인 이익·자원 분배에 대한 물적, 계급적 분석은 전혀 다른 정치적 기획을 낳을 것이다. 학계는 물론 일부 정당의 공식 기구에서도 그런 분석이 있기는 했다.[14]Hamid, M. S. (2006). السودان: حروب الموارد والهوية [_Sudan: Wars of Resources and Identity_]. Khartoum: Azza Publishing House. 예를 들어 수단공산당은 종종 자원 분배 문제나 토지 이용의 정치학과 관련된 쟁점들을 다르푸르 전쟁 배후의 중요한 요소로 지목했다. 하지만 주요 대항 동맹들에서는 이런 분석을 우선 순위에 놓지 않았다. 동맹들에는 농업 및 무역 자본가들을 대표하는 이들부터 공산당까지가 속해 있었으며, 후자는 이를 “민족national 자본가”를 포함하는 “민족 전선”에의 헌신으로 정당화했다. 그런 동맹에 참여한다는 것은 공산당이 경제 정의 기획들을 밀어붙이고 대중의 상상력과 지지를 끌어낼 수 있는 분석을 제시할 능력을 제약하는 요소가 되었다. 혁명적인 유물론적 분석이 부재했기에, 대다수 여론은 흑인 대 아랍인 서사를 따랐다 ― 적어도 전술적으로 수용했다. 정치참여적인 이들이 다르푸르 투쟁에 대해 갖는 입장에 있어서는 물론 수단이 정의와 평화를 향해 나아갈 능력에 있어서도, 그 결과는 참담했다.
민족적ethnic 서사들은 또한 후일 TGS에서 채택한 대의 정치 방식에도 강력한 기반을 제공했다. 예컨대 다르푸르를 비롯해 주변화되는 지역들에 영향을 미치는 부정의의 근본 원인을 논하지 않기 위해 내각과 주권위원회의 인종 정체성 구성을 강조하는 식이었다. 이런 서사들은 현재 진쟁 중인 전쟁에서 SAF와 신속지원군Rapid Support Forces (RSF) 양쪽의 군사 동원 및 프로파간다 속에서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이와 달리 수단의 혁명가들은 줄곧 정체성주의 프로파간다에 맞서 왔다. 알-바시르 체제가 제 잇속을 위해 민족 간 긴장을 이용하려 2018년 시위의 배후에 ‘다르푸르 점조직들’이 있다는 혐의를 제기하자 시위대에서는 ‘온 나라가 다르푸르다’라는 구호로 응수했다. 혁명 전선이 성장하면서 그 같은 감정적 구호는 구체적이고 문서화된 정치적 기획들, 헌장들로 번역되었다. 8,000개 이상의 지역 저항 위원회에서 발표한 2023년 2월에 발행한 민중권력수립을위한혁명헌장Revolutionary Charter for Establishing People’s Powers은 국내 여러 분쟁이 엘리트가 추방으로 이윤을 내고 자원을 장악하는 수단으로 쓰이고 있으며 전쟁 산업 자체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헌장은 엘리트들이 민족 간 긴장을 이용해 정체성 차이를 키우고 자원 전쟁을 정당화한다고 설명하며, 국가가 전쟁으로 전쟁으로 이윤을 내는 일을 수단 군사 세력들이 마찬가지로 이윤을 위해 예멘과 리비아의 지역 분쟁에 개입하는 일을 직접적으로 연관 짓는다. 이런 서사를 통해, 수단 혁명가들은 부정의를 영속화하는 구태의 반혁명적 구도에 맞선다.
하지만 최근의 분쟁과 정체성주의적 프로파간다의 부흥은 이런 혁명적 노력들을 무너뜨렸다. 일부 수단, 디아스포라 활동가들은 현재의 전쟁과 세계의 무관심에 대응해 정체성주의적 서사들을 되살리고 있다. 그들은 이 무관심이 수단의 흑인성에 따른 것이라 여기는데, 이는 합중국에서 나온 아프로-비관주의의 정서를 떠오르게 한다. 지난 세기 내내 아프리카의 고통을 정상적인 일로 여겨왔던 탓에 지금까지 수단의 분쟁들, 빈곤, 기근은 물론 지금의 전쟁에도 주목하지 않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중동의 분쟁도 마찬가지였고, 2023년 10월 7일 전까지 시온주의 점령 하 팔레스타인의 상황에 냉담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수단과 팔레스타인 모두, 전 지구적 주목도의 배후에 있는 주 요인은 ― 혹은 고통의 근본 원인은 ― 이것이 아니다. 전 지구적 남부의 여러 투쟁에 주류 언론과 대중이 얼마나 주목하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오히려 대개는 지정학적 요소들이다. 수단의 경우 알-바시르 체제에서 빈곤을 심화시키는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을 추진해 시위가 벌어졌을 때에는 주류 언론에서 각광했지만, 똑같은 언론사들이 (전 지구적 북부의 꼭두각시) TGS에서 추진한 마찬가지 정책에 대한 반대 시위는 무시했다. 주류 언론이 서사와 정보 접근성을 상당 부분 통제하기에, 이는 활동가들이나 수단과 동맹 관계에 있는 이들의 주목도에도 영향을 미쳤다.
잔혹행위를 정상화하는 서사들은 그 잔혹행위가 이득이자 이윤이 되는 이들이 전 지구적 혁명적 연대의 잠재력을 최소화하기 위해 쓰는 반혁명 도구이다. 이 같은 반혁명 도구를 혁명적 분석틀로 착각하면 혁명의 목적을 실현하고 민중의 고통을 없애는 데에 해를 끼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수단의 최근 역사는 민족적 서사에의 의지는 ― 투쟁이 정치적 경계를 넘어 뻗어나가게 하기는 고사하고 ― 현지에 해방적 관점과 원칙을 길러주는 게 아니라 정치 운동과 대중이 억압적 정부의 반동적 분석에 취약하게 만듦을 알려준다.
방송 시간을 두고 다투는 부정의들
2023년 4월, 공동으로 수단 과도 정부의 군사 부문을 구성했었던 오랜 파트너 SAF와 RSF 사이에 전쟁이 터졌다. 이후 몇 달 동안 이 분쟁은 수도를 시작으로 수단의 여러 도시를 황폐화했고 수단인 수천 명이 죽고 수백만 명이 피란하는 데로 이어졌다. 이어진 몇 달 동안 아랍어권 뉴스 채널들에서는 이 싸움을 폭넓게 보도하며 시청자들에게 수단을 전례 없는 깊이로 소개했다. 역내 뉴스 앵커들은 수단의 여러 지명을 반복해서 틀리게 발음해 이 나라가 익숙하지 않다는 티가 났다.
수단은 주요 뉴스거리가 되었다. 황금 시간대에 새 소식이 더 자주 반복적으로 보도되고 주요 채널에 인포그래픽과 도시 지도가 나왔다는 뜻이다. 시청률 높은 프로그램에 수단 정치인들의 인터뷰에서 따온 말이 수차례 삽입되었다.[15]전쟁 첫 주(2023년 4월 15-22일) 동안 상위 두 개의 아랍어 뉴스 채널(알-자지라와 알-아라비야)에서는 각자 SAF와 RSF의 수장 인터뷰, RSF 대변인단 및 … (계속) 수단의 대중은 실제로 유용한 정보를 담은 내용보다 전파도와 반응을 우선시하는 정보 체계, 조직의 기질과 방법론을 반영하는 뉴스 상품의 홍수에 몇 달이나 짓눌렸다.
하지만 SAF-RSF 전쟁 발발 여섯 달이 채 되지 않아, 시온주의 체제에서 팔레스타인 레지스탕스의 알-아크사 홍수 작전에 따른 대대적 징벌 조치로 가자에 잔혹한 공격을 시작했다. 금세 가자가 역내 뉴스 채널들의 주요 뉴스거리가 되었고, 가장 큰 곳 ― 알-자지라 ― 에서는 메인 아랍어 채널에서 24시간 내내 보도했다. 전파도를 극대화 하기 위한 보도 모델에서는, 새 소식과 인포그래픽, 전직 군인의 분석을 반복해서 계속 내보내며 종일 보도하는 것이 가자에서 벌어지는 대량 살해 작전의 중요성과 무게를 번역할 유일한 방법이었다.
이렇게 계속된 보도가 서방 매체에서 시온주의 프로파간다를 내보내고 점령의 범죄를 부정하는 데에 균형추 역할을 하기는 했지만, 이 같은 전파도 극대화를 위한 보도 모델에는 그냥 넘겨서는 안 될 위험한 결함이 있다. 주류 채널들이 대중적 혁명 정치 기획에 필요한 형태의 저널리즘을 제공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혁명적 저널리즘’이랄 만한 것을 상상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이 주류 모델의 한계를 분석해야 한다. 전파도 극대화를 노리는 주류 보도 모델은 점령 하 삶의 현실 같이 긴급 속보라는 틀에 맞지 않는 부정의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지도, 시온주의 점령이 2023년 10월 전이나 후나 팔레스타인 점령지 여러 구역 사이의 검문소를 어떻게 무기로 삼아왔는지를 제대로 다루지도 못한다. 게다가 이 현실의 세부를 밝히는 일은 팔레스타인인들의 고통을 묵과하고 조장하는 역내 체제들의 공모를 폭로하는 일이기도 하다. 나아가 전파도 극대화를 위한 보도 모델은 국제적인 수준에서 시온주의 점령에 책임을 물을 방법에 대한, 혹은 (아랍어권 대중 보이콧 운동에 큰 도움이 될) 어느 나라나 기업에서 이스라엘과 중요 재화를 거래하는지에 대한 유익한 분석이나 조사에는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다. 또한 이 모델은 창의적인 모금, 통신기술의 혁신적 사용, 가자 봉쇄 혁파를 위한 대중 활동 등 점령 하에 있는 고통을 덜기 위한 팔레스타인인들과 그 동맹들의 조직적인 대중적 노력을 기록하고 조명하는 데에는 흥미가 없다. 마찬가지로, 이런 종류의 효과적인 대중적 노력을 보여주면 민중 권력에 대한 시청자들의 감각을 함양하고 자신들이 어떻게 팔레스타인 투쟁을 지원할 수 있을지에 관한 아이디어들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시청자들이 수백 명의 기자를 거느린 크고 재정도 여유로운 뉴스 채널이 아니라 개인 소셜 미디어 계정에 의지해 그런 정보를 얻어야 하는 실정이다. 실상, 전파도 극대화를 위한 긴급 속보 모델은 정보가 풍부하고 조직적이며 효과적인 팔레스타인 지지 대중 운동을 길러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절망감과 슬픔을 이용해 먹는다.
2023년 10월 이후 역내 가자 보도는 규모가 훨씬 크긴 해도 앞선 몇 달 간 이어졌던 수단 보도와 별로 다르지 않다. 이런 주류 보도 모델은 다수가 주목해야 할 만한 동시다발적인 사건들을 적절한 무게로 자세하고 섬세하게 보도하기에는 능력도 흥미도 없기에, 세계의 다양한 투쟁들을 한데 몰아넣고 방송 시간과 보도국의 관심을 두고 경쟁하게 만든다. 수단 대중이 자신들의 고국에 대한 보도가 하룻밤새 ― 수단 뉴스만 다루는 많지도 않은 프로그램이 잊혀진 전쟁에 대한 보도로 광고될 정도로 ―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급락하는 모습을 보게 된 것도 바로 그래서다. 이 같은 방송 시간과 질의 하락은 SAF와 RSF 양자의 프로파간다가 성행하게 만들기도 한다. 도시 장악이나 대량 살해부터 협상이나 수뇌부 회담에 이르기까지, 이제 모든 사건과 전개에 (적어도) 두 개의 서사가 제시된다. 어느 쪽이 어느 지역을 통제하고 있는지 같이 최소한의 진지한 취재만 해도 쉽게 조사하고 보도할 수 있는 것도 논쟁거리로 남겨진다.
혁명적 기획의 유의미한 진전을 위한 논의와 행동에는 전문적, 혁명적, 사람 중심 언론이라는 토대가 반드시 필요하다. 팔레스타인 해방에도, 정의에 기반한 수단의 평화에도 마찬가지다. 그런 언론은 사람들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실들을 전달하고 우선 순위에 놓을 것이며 대중에게 그런 영향들을 충분히 설명할 것이다. 혁명적 언론은 그저 개별 일화들이나 ‘실시간 트렌드’가 되어 많은 반응을 끌어내도록 설계된 반복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깊이 있고 유의미한 통찰을 제시하고 삶을 지탱하는 풀뿌리 활동들 ― 예컨대 수단에서는 공동 관리 부엌, 보건 시설, 대피소, 교육 프로그램 등을 통한 상호부조의 발달 ― 을 조명할 것이다. 개인의 영웅적 행동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중요한 조직화 경험에 방점을 찍을 것이다. 혁명적인 사람 중심 언론은 혁명적 조직화 노력에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그것을 기록하는 데에 필수적이다. 현실을 진실되게 재현하고 엘리트 매체들이 퍼뜨리는 혼란이 아니라 대중의 우선 순위에 집중할 것이다. 또한 이런 언론은 세계 각지의 혁명적 노력들이 긴밀하고 필수적인 국제 혁명 전선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교훈과 분석을 주고받을 수 있게 도울 것이다. 그저 대중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전 지구의 혁명 운동들을 관통하는 연대, 민중 권력, 공동에 목표에 대한 감각을 길러 줄 것이다.
혁명적 언론을 찾기 힘든 현 상황에서, 안타깝게도 실시간 트렌드를 이용하는 방식이 세계의 옹호 및 연대 활동에도 번지도 있다. 수단의 경우, 이는 수단 디아스포라들의 활동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제 민족의 투쟁에 대한 관심이 절실하고 그 고통이 끝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이들은 수단을 ‘트렌드에 올리는 것’이 이 목표를 이루는 최단 노선이라고 생각한다. 수단을 (아랍에미리트에서 시온주의 점령과 비슷한 방식으로 지원하는) RSF에 점령 당한 것으로 묘사함으로써 수단 투쟁을 팔레스타인 투쟁의 틀에 맞추려는 시도도 이에 포함된다. 이런 접근법은 침략과 무력을 통해 권력을 장악, 유지하려 드는 모든 쪽을 몰아내기보다는, SAF의 범죄는 넘어가고 RSF의 범죄를 강조하면서 RSF 지원 중단을 촉구하는 데로 이어진다.
이렇게 RSF의 범죄를 강조하는 것은 수단 여론에서 이런 서사가 성공하고 널리 퍼지는 기반을 제공한 오랜 틀들과 이어져 있다. 앞에서 논한, 수단 서부 지역 시민들을 주변화하고 타자화한 역사도 이에 속한다. RSF 병력은 주축을 비롯해 대부분이 서부 출신이기에 범죄자나 폭도로만이 아니라 (시온주의자와 다를 바 없는) 침략자이자 점령자로 매도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좋게 말해도 이것은 부정확한 정의다. 그런 서사들의 성공에 핵심적인 다른 틀 하나는 (양대 범죄적 전쟁 당사자 및 다른 반혁명 세력들에 맞선) 국민 수호가 아닌 국가 수호인데, 이는 (RSF와 교전 중인) 공식 국군 수호와 동일시된다. 이 틀은 국가를 통제하는 지배 계급에 대한 지지를 끌어내기 위한 국가 프로파간다와 애국 구호 무기화의 긴 역사에 기반한다. (수단이 특이한 것은 아니다. 현대 국가 대부분에 그런 틀이 존재한다.)
수단에 이목을 끄는 이 지름길은 장기적으로나 단기적으로나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길이다. 아무리 잘 풀린대도, RSF에 대한 모든 지원을 끊는 데에 성공함으로써 권위주의적 군부가 국가의 이름으로 저지른 폭력에 대한 책임은 대부분 면한 채 수단을 지배할 길을 터주게 된다.
그렇기에, UAE 정부가 역내에서 하고 있는 약탈자 노릇을 연구하는 것도 중요하기는 하지만, 수단의 맥락에서 UAE를 시온주의 기획과 유사한 점령군의 지원자로 제시하는 경향은 혁명 기획에 치명적인 실책으로 이어진다. 예컨대 RSF나 다른 군사 조직이 생겨나게 된 중요한 내적 요소들 ― 군사 조직들이 모병을 할 수 있는 것은 수단 내의 주변화되는 공동체들을 희생양 삼는 토지 수탈과 자원 장악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 을 간과하게 된다.
수단에 이목을 끄는 이 트렌드 지름길은 수단에서 혁명적 조직화를 해낼 잠재력에 장기적이고 엄청난 해를 끼친다. 국내외 여러 공동체들이 마주하는 모든 부정의에 대한 정확한 재현이라는 강력한 토대가 없으면 혁명적 조직화는 불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수단 투쟁 혹은 팔레스타인 투쟁에 관한 정보를 긴급 속보 형태로 축소하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성공할지라도, 실은 섬세하고 증거에 기반한 연대 방식들을 전개하는 데에 해가 된다. 동조하는 청중과 강직한 동맹들 사이에서마저도 말이다. 그런 혁명적 연대에 힘이 되는 것은 혁명적 언론 뿐이다.
혁명적 연대
연구자이자 작가인 수단의 사회주의자 카디자 사프와트는 팔레스타인 연대에 대한 혁명적 관점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부족적 시온주의 금융 자본주의가 전 지구적으로 우리에게 강제하는 고립의 귀결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팔레스타인을 저버리게 되고 말 것이다. 저 금융 자본주의 자체가, 지구적, 지역적 적들에 맞설 우리의 언어를 개발하지 않고 [그것의] 언어에 동화한 결과다.’[16]afwat, K. (2016) حصار الرأسمالية المالية الصهيونية للتجربة الاشتراكية. [‘The siege of the socialist experiment by the Zionist financial capitalism’] … (계속) 수단의 최근 경험에는 단기적으로는 유용할 수 있다 하더라도 반혁명적 언어와 도구를 받아들이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증거가 가득하다. 정체성 정치의 언어에서부터 트렌드를 이용하는 도구들까지, 혁명적인 물적 분석을 결여한 실용주의적 방식들은 내적으로 수단의 저항 기획을 좀먹어 왔다. 마찬가지로 팔레스타인 투쟁을 지지할 능력 또한 좀먹고 있다.
혁명적인 연대의 언어와 도구를 확실히 하는 것은 시급하고도 필수적인, 빠른 성과를 위해 내쳐서는 안 될 과업이다. 부정의를 분석하고 저항 전략을 수립하는 매 순간 비판적 렌즈를 들이대야 하는, 계속되는 과업이다. 정의를 위한 수단의 투쟁과 해방을 위한 팔레스타인의 투쟁, 이 둘의 교차점들에서 그런 렌즈를 쓰면 TGS의 대 시온주의 점령 관계 정상화를 둘러싼 논의는 정체성 정치나 정의도 불분명한 현대화나 진보를 넘어설 수, 이집트의 마르크스주의자 사미르 아민Samir Amin이 제국 기획의 두 다리(경제적 다리와 정치적 다리)라 부르는 것에[17]Amin, S. (2015) ‘Contemporary imperialism’, 1 July. https://monthlyreview.org/2015/07/01/contemporary-imperialism/ 관한 논의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수단의 대 시온주의 단체 관계 정상화는 만인이 보는 앞에서 이 두 다리가 발 맞추어 움직인 사례다. 국제 통화 도구들(경제적 다리)의 활용을 식민적 팔레스타인 개입이라는 정치적 다리를 뻗는 데에 연결 짓는 그 거래적 성격의 천박함을 보여주는 캐리커처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수단과 팔레스타인의 공동의 투쟁들, 2023년에 양쪽에서 동시에 고통을 심화시킨 사건들을 정의 내릴 때, 비판적 혁명적 렌즈와 언어는 국제 사회에서 범죄 세력들(팔레스타인의 이스라엘 식민국가와 수단의 군사 지배)을 합법화한 후과, 그것이 대중적 저항 행동을 약화시키는 테에 기여한 바와 같은 쟁점들 또한 비추어 줄 것이다. 이런 접근법은 일관성 있을 뿐만 아니라 국제 외교와 관련된 책무성을 중심으로 세계 각지의 여러 피억압 집단들이 단결하는 데에, 또한 그 구조의 급진적 변화에 도움이 된다.
2021년에 수단에서 군사 위원회가 쿠데타를 벌인 후에, 그런 접근법의 작지만 중요한 실례가 하나 있었다. 당시 유엔수단임무단UN mission in Sudan에서는 군사위원회와 TGS 민간 부분이 참여하는 새로운 통지 구조 수립을 위한 협상을 중재해 쿠데다 지도부에 다시 정당성을 부여하려 했다. 쿠데타를 비롯해 모든 군사 지배에 반대하는 시위가 날마다 벌어지던 했다. 유엔임무단에서는 저항 위원회들을 설득해 협상 회의에 나오게 하려 했다. 대규모의 조직적 시위를 주도하고 있었던 만큼, 대중적으로 정당성이 확고했기 때문이다. 수 차례 요청을 거부한 끝에, 저항 위원회들에서는 마침내 ― 페이스북으로 생중계한다는 조건으로 ― 회의에 참석하기로 했다. 비밀은 부패를 키우고 대중 참여를 축소시킨다는 점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에 투명성을 확보하고자 했던 것이다. 유엔임무단은 저항위원회의 제안을 거부하고 회의를 취소했다. 그들의 입장은 투명하거나 일반 대중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음을, 정치적 현실을 숨기고 싶음을 시인한 셈이다. 저항 위원회들에서 이렇게 제안한 것, 그리고 그로써 유엔임무단과 그쪽에서 원했던 절차의 본질이 성공적으로 폭로된 것은 그들이 원칙에 입각해 정보와 정치 참여에 대한 대중의 권리를 최우선시한 귀결이었다. 대중적 참여가 엘리트에 맞선 권력 균형에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이해가 기반이 된 일이자 기술적 자원의 창의적 사용을 보여주는 일이다.
팔레스타인 투쟁의 역사에도 투명성과 정보 접근성이 어떻게 혁명 기획을 뒷받침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팔레스타인에서 식민 기획이 생겨나는 데에 서구 식민 열강의 연루되었음이 알려진 것은 1917년 혁명 후에 러시아 혁명가들이 [러시아 제국의 동의 하에, 대영제국과 프랑스가 오스만 제국의 영토를 나누어 갖기로 한] 사이크스-피코 협정 문건을 공개한 덕이었다는 사실은 종종 잊혀지곤 한다. 이 중요한 문서의 공개는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전 지구적 북부의 식민 행보에 맞서는 혁명적 주장들을 지지하는 강력한 증거를 제공한다.
두 사례 모두 투명성과 책무성이 전 지구적 외교의 장에서 (대개 국가 안보와 국가 기밀 보호라는 모호한 구호로 정당화하며) 비밀을 무기로 삼는 반혁명에 맞서는 타당하고도 효과적인 무기임을 보여준다. 또한 투명성과 책무성을 어떤 실천으로 옮길 수 있을지는 그 시점에 무엇이 가능한지에 달려 있으며 투명성과 책무성을 위한 노력은 맥락에 따라 다양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나라에 따라 세부적인 재정 운용과 외교적 소통 내용을 공개하라고 압박할 수도, 간과되는 공적 정보를 조명하는 데에 집중할 수도 있다. 이런 한계를 이해하는 데에는 원칙에 입각한 분석과 전 지구적 혁명적 연대를 토대로 한, 정보에 기반한 적극적인 논쟁이 필요하다. 이런 노력들은 조직과 연결되지 않은 개인에 의해서보다는 혁명적 정치 조직 속에서 행해질 때 성공 가능성이 더 큼을 잊지 말아야 한다.
수단에는 정치적 국경 안팎의 쟁점들에 대한 물적 분석에 열과 성을 다하는 혁명적 기획이 반드시 필요하다. 일각에서는 당장의 전쟁 종식이라는 단기적 우선 순위가 혁명적 기획에 앞선다고 주장하지만, 이 나라에서 정의에 입각한 지속가능한 평화를 추구하고 건설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혁명적 기획 뿐이다. 그런 기획에는, 예를 들면, 현재 수단 인구의 전쟁 생존을 돕고 있는 상호 부조 노력을 자원 공동으로 자원을 관리하고 의사를 결정하는 새로운 지속 가능한 체제로 발전시키는 과정이 포함될 것이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삶을 개선하고, 장기적으로는 엘리트 무장 세력의 자리와 전쟁의 근본 원인을 없애 아래로부터의 민중 권력과 공정한 자원 분배가 확대될 수 있는 조건을 형성한다. 해외의 진보적 동맹들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각자의 방법론과 분석을 혁명하고 각자 가능한 정치적 행동의 공간을 활용해 고통 받는 공동체들의 혁명적 진보를 촉진해야 한다. 혁명적 언론 정신의 고취, 국제 외교에서의 투명성과 책무성에 관해 앞에서 제안한 바들은 수단과 팔레스타인 ― 은 물론 세계 각지의 ― 저항 운동에 힘을 보탤 수 있는 여러 가지 연대 행동의 예시일 뿐이다.
혁명가는 억압자들이 부과하는 도구와 언어가 아니라, 혁명의 원칙에 맞는 도구와 언어를 이용해 수단과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피억압 인구들의 투쟁에 임해야 한다. 혁명적 틀은 투쟁 간의 위계도 전 지구적 주목 경쟁도 거부하며, 자유와 존엄은 보편적 권리임을, 억압적 체제는 단 하나만 존재하더라도 모든 혁명 운동의 성공에 위협이 됨을 강조한다. 모든 억압 체제는 대중 저항을 상대로 비슷한 수단을 쓴다. 한 곳에서 축적한 권력을 활용해 세계 도처에서 저들에게 득이 되는 억압 체제를 고착시킨다. 하지만 이것이 억압적 체제들이 언제나 서로 따라 한다거나 직접 연결되어 있다는 뜻은 아니다 ― 그러므로 우리의 혁명적 이해가 투쟁들 간의 위계나 음모론적 연결고리를 찾는 데에 그쳐서는 안 된다. 오히려, 혁명적인 물적 분석은 혁명적 원칙에, 그리고 모든 투쟁에 대한 맥락적 이해에 기반해야 하며, 미래의 새로운 체제를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 동시에 현재의 피억압 공동체들의 물적 현실을 개선하기에 적합한 도구들의 개발을 추구해야 한다.
따라서 혁명적 연대는 빠른 성과를 삼가야, 단기적 변화의 효과와 혁명적 기획의 장기적 성공의 무게를 비교할 줄 알아야 한다. 연대란 변증법적으로 양쪽 모두에 기여하는 행동들에 헌신하는 것이다. 혁명적 연대는, 둘 중 하나를 놓치면 전 지구적으로 해방과 혁명의 잠재력을 약화시킬 뿐 아니라 결국 둘 모두를 놓치게 됨을 잊지 않는다.
주
| ↑1 | Statement by the office of the Minister of Culture and Information and the official spokesperson of the TGS on 3 February 2020. |
|---|---|
| ↑2 | Alashkar, O. (2020) ‘Sudanese–Israeli normalization, and its impact on the Palestinian cause’. Beirut: Alzaytouna Center. |
| ↑3 | Dachtler, P. (2022) ‘From New to Normal: Two Years after the Abraham Accords’. https://www.ssoar.info: https://www.ssoar.info/ssoar/handle/document/81598 |
| ↑4 | Sharfi, M. H. (2020) Islamist Foreign Policy in Sudan: Between Radicalism and the Search for Survival. New York: Routledge. |
| ↑5 | Abadi, J. (1999) ‘Israel and Sudan: The saga of an enigmatic relationship’. Middle Eastern Studies, 35(3): 19–41. https://www.jstor.org/stable/4284022 |
| ↑6 | Africa Research Bulletin (2012) ‘Sudan– Israel: Bombing of weapons facility’. Africa Research Bulletin: Political, Social and Cultural Series 49(11). https://doi.org/10.1111/j.1467-825x.2012.04824.x |
| ↑7 | US Government (2020) ‘Joint statement of the United States, the Republic of Sudan, and the State of Israel’, October. https://il.usembassy.gov/joint-statement-of-the-united-states-the-repub… |
| ↑8 | 수단 및 역내 아랍어 사용 인구들과 관련해, 널리 받아들여지는 반혁명 세계관에 대한 진지한 문제 제기로 작용할 수 있을 쟁점 하나는 [모로코에서 점유하고 있는] 서사하라 해방 문제일 것이다. 서사하라는 아프리카인 및 무슬림 인구의 정체성 정치와 부딪히는 해방의 문제를 제기한다. 사하라인과 모로코인은 무슬림이자 아프리카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사하라 투쟁은 민중 해방과 자기 결정이라는 원칙에 입각해서 뿐만 아니라 전략적으로도, 역내 대중의 혁명적 비판적 사고를 조성하고자 하는 혁명 운동들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
| ↑9 | US Government (2020) ‘Joint statement of the United States, the Republic of Sudan, and the State of Israel’, October. https://il.usembassy.gov/joint-statement-of-the-united-states-the-repub… |
| ↑10 | Jay, K. (2023) ‘Diamonds drenched in blood: Unmasking Israel’s role in the Congo crisis, 22 November. https://orinocotribune.com/diamonds-drenched-in-blood-unmasking-israels… |
| ↑11 | Refugee Review Tribunal (2008) ‘Sudan relations with Israel – RRT research response’. Australia: Refugee Review Tribunal. |
| ↑12 | Lanz, D. (2009) ‘Save Darfur: A movement and its discontents’, African Affairs: 669–677. |
| ↑13 | Diallo, K. (2024) ‘African attitudes to, and solidarity with, Palestine: From the 1940s to Israel’s genocide in Gaza’. TNI. https://www.tni.org/en/article/african-attitudes-to-and-solidarity-with… |
| ↑14 | Hamid, M. S. (2006). السودان: حروب الموارد والهوية [_Sudan: Wars of Resources and Identity_]. Khartoum: Azza Publishing House. |
| ↑15 | 전쟁 첫 주(2023년 4월 15-22일) 동안 상위 두 개의 아랍어 뉴스 채널(알-자지라와 알-아라비야)에서는 각자 SAF와 RSF의 수장 인터뷰, RSF 대변인단 및 고문단과의 인터뷰 여러 건, SAF 고위 관계자 및 주원위원회 위원 인터뷰를 방송했고 TGS 참여 정당들의 지도부, 대변인도 인터뷰했다. 이후 몇 달 간 같은 수준, 양의 인터뷰가 계속되었다. |
| ↑16 | afwat, K. (2016) حصار الرأسمالية المالية الصهيونية للتجربة الاشتراكية. [‘The siege of the socialist experiment by the Zionist financial capitalism’] Alkalimah. http://www.alkalimah.net/Articles/Read/8361 |
| ↑17 | Amin, S. (2015) ‘Contemporary imperialism’, 1 July. https://monthlyreview.org/2015/07/01/contemporary-imperialism/ |
현재까지 파악한 것.
– 2018년 혁명으로 알-바시르 체제가 무너진 후 민정 부문과 군정 부문이 공동으로 과도 정부를 구성했으며, 군정 부문은 구체제 군부의 후신.
– 2021년에 군정 부문의 쿠데타로 과도 정부 해체.
– 2023년에 신속지원군이 반정부 활동에 돌입, 정부군인 수단군과 내전 시작.
– 신속지원군의 뿌리는 다르푸르에서 비아랍계 주민을 학살했던 잔자위드 민병대.
– 잔자위드 민병대는 당시 알-바시르 체제 정부의 지원과 지휘를 받았으며, 신속지원군은 2018년 혁명 때 정부군과 함께 시위 진압에 투입.
– 여기서 흑인/아랍인은 물리적인 인종/민족 구분은 아님.
– 중심부 특권층은 “스스로를 아프리카로 이주한 아랍인의 후예로 여기”고 아랍 혈통과 관련된 서사가 있지만 실은 ― 아랍어, 이슬람교 등을 중심으로 한 ― 문화적 정체성에 가까움.
– 잔자위드 민병대/신속지원군은 아랍계 유목민족 위주, 정부군을 비롯한 중심부 권력층은 아랍계 정주민족/상인 계열 위주인데 양쪽 다 (서로 다른) 아프리카 선주민 혈통 우세.
– 이들에게 흑인/아프리카인으로 불리는 다르푸르 비아랍계 주민들은 무슬림이지만 언어, 재산 제도 등 여러 면에서 이슬람교에 동화되지 않음.
– 알-바시르 정부군과 잔자위드 민병대는 아랍인으로서 다르푸르 비아랍계 주민들을 탄압.
– 현재 SAF와 RSF의 전쟁은 아랍계끼리의 전쟁이지만 중심부 대 주변부의 전쟁인 한편, 토지와 자원을 둘러싼 이해관계, 이슬람주의 대 민주주의라는 명분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음.
이상이 얼마나 사실에 부합하는지는 아직 모름.
“2021년 10월 군부 쿠데타 이후, 2023년 4월 전면 내전으로 확산된 수단의 전쟁은 지금도 끝나지 않은 채 이어지고 있습니다. 1,000일에 가까워지는 이 내전으로 인해
🔻전체 인구의 3분의 2에 달하는 3,400만 명이 인도적 지원을 필요로 하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 1,200만 명 이상이 집을 떠나 피난길에 올랐으며, 이는 세계 최대 규모의 강제 이주 사태입니다.
🔻 1,900만 명이 심각한 식량 불안정 상태에 놓여 있고, 그중 63만 5천 명은 기근으로 생명을 잃을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 병원의 70% 이상이 파괴되거나 기능을 상실했고, 콜레라를 비롯한 감염병이 통제되지 못한 채 확산되고 있습니다.
🔻 다르푸르 지역에서는 2004년의 인종청소와 같은 상황이, 다시금 특정 민족을 겨냥한 폭력과 포위, 학살의 위험이 커지고 있습니다.
🔻 수많은 아이들이 가족과 헤어진 채 피난길에 올랐고,폭력·착취·강제징집의 위협 속에서 깊은 트라우마를 안고 있습니다.” (피스모모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