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Nadera Mushtha, “Going back to Gaza’s broken universities,” The Electronic Intifada, 2026.01.09.

2025년 11월 13일. 나와 가족은 여동생 아야의 대입 시험 ― 타우지히tawjihi ― 결과를 숨죽여 기다렸다.
지난 9월에 가자시에서 가자 지구 중부에 있는 데이르 알-발라로 거처를 옮기면서 임대한 아파트에 장식을 조금 했다. 간식도 샀다. 죽음을, 피에 물든 암울한 기억들을 통과하며 견딘 끝에 축하할 일이 생겨 너무도 신이 났다.
더없이 기쁜 순간을, 10월의 “휴전” 이후 처음으로 우리를 찾아온 행복을 기념하며 춤을 추었다.
그날 아야를 비롯해 가자에서 30,000명이 넘는 2007년생 학생들이 타우지히 결과를 받았다. 2006년생 ― 2024년에 결과를 받았어야 했던 ― 학생들은 10월 14일에 받았다.
인종학살 전쟁이 벌어지는 동안 신입생을 단 한 명도 받지 못한 가자의 여러 대학이 함께 공부하고 졸업한 학생들, 특히 2006, 2007년생 학생들의 등록을 받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교정을 휩쓴 엄청난 참화에도 굴하지 않고, 가자 이슬람대학교, 알-아자르대학교, 알-아크사대학교 같은 대학들이 일부 학생을 대상으로 캠퍼스 내 교육을 재개하기로 했다.
이슬람대학교는 의학. 공학, 경제학, 행정학, 보건학, 영문학 전공 1학년 생만 캠퍼스에서 수업을 듣고 나머지는 온라인 학습을 계속한다고 발표했다.
대학에의 향수
11월 20일에는 원서를 내러 가는 아야와 함께 이슬람대학교에 갔다.
오후 무렵에 학교에 도착했다. 인종학살이 벌어진 두 해 내내 한 번도 가보지 않은 터였다.
나도 다시 캠퍼스에서 공부하러 가는 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나는 이미 교육학 학위를 받기 위한 최종 성적을 기다리는 중이다.
같이 길을 걷는데 UN팔레스타인난민기구 가자 본부 건물에 그려진 벽화가 보였다.
택시를 타고 수업을 들으러 가는 길에 보곤 했던 ― 학교랑 가까운 곳에 있는 ― 벽화였다. 나 말고도 수천 명이 등굣길에 그 벽화를 보곤 했다.
문득 궁금해졌다. 언젠가 이 그림을 봤던 이들 중 더 이상 살아 있지 않는 이가 몇이나 될까.
정문을 지나자니 향수가 몰려와 소름이 돋았다.
수업이 끝나면 책이나 노트북, 공학 장비 같은 걸 든 학생들이 한 곳에 모여 버스를 기다리거나 친구와 함께 걸어서 집에 가던 모습이 떠올랐다.
하지만 내가 알던 그곳이 아니었다 ― 사방에 천막이 빼곡했고 담장에는 피란한 이들의 빨랫줄이 걸려 있었다. 상인들이 교정에 가판을 펴고 물건을 팔았다.
집을 잃은 수백 가구가 캠퍼스 여기저기로 ― 건물들에, 무너진 강당에, 잔해로 가득한 복도에 ― 몸을 피했다.
건물들에는 갖가지 상흔이 새겨져 있었다 ― 대부분은 완전히 무너졌고, 몇 동은 일부가 무너졌다. 온전히 쓸만한 것은 없었다.
졸업식이 열리는 대강당이 있는 학술회관이라는 건물에 미용실 간판이 걸려 있는 모습은 너무 말이 안 돼서 보기 힘들 지경이었다.
아야와 계속 걸으면서, 한 걸음 뗄 때마다, 교정을 알아볼 수가 없어 지금 여기가 어딘지 자문했다.
두 해를 다닌 학교인데도 신입생 등록을 받는 건물 ― 손상을 가장 적게 입은 건물 ― 을 찾느라 피란민들의 안내를 받아야 했다.
건물에 들어서자 또 다시 추억이 밀려 왔다. 해마다 무리지어 다니며 전공이나 수업에 대해 묻는 신입생으로 가득한 학교가 얼마나 생기 넘쳤던지가 떠올랐다.
아야는 어린 시절부터 공학도를 꿈꿨다. 그래서 건축학과를 찾아 계획을 확인했다.
“가자에는 공학자가 필요해”, 아야는 그렇게 말했다.
이스라엘이 우리의 도시를 전례 없이 파괴했으므로, 공학도들이 재건에 핵심적인 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
고된 공부가 계속된다
내가 타우지히를 준비할 때 역사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는 2차 대전 종전 후에 얼마 지나지 않아 교육을 재개했는지 말해준 적이 있다.
그때는 합중국의 핵폭탄에 이루 말할 수 없이 파괴 당하고도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인종학살 전쟁의 와중에 삶과 공동체를 재건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교육은 출발점이다.
가자가 증거다. 우리는 주위로 폭탄이 떨어지는 중에도 공부를 멈추지 않았다.
나는 가자 이슬람대학교에서 2024년 8월부터 2025년 12월까지 한 해 만에 네 학기를 이수했다.
학교에서는 모든 학생이 제때 학위를 받을 수 있게 하려고 방학도 없이 한 학기가 끝나면 곧바로 다음 학기를 시작했다.
인종학살 와중의 공부는 고되었다.
나는 여러 번 집을 잃고 피란했고, 책과 공책을 두고 떠났다. 공부를 하려고 해도 쉼없이 윙윙대는 드론이나 쿼드콥터 소리 같은 것들이 방해해서 도무지 집중할 수가 없었다.
전기를 쓰기 어려웠고 여전히 그렇다. 이스라엘군이 인터넷 업체들의 본사를 파괴해서 인터넷 신호도 너무 약하다 ― 아니면 아예 안 잡히거나.
온라인으로 시험을 치는데 인터넷이 끊어질 때도 있었고, 옆집에 폭탄이 떨어지고 연기며 파편이며가 우리 집을 뚫고 가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수천 명도 그랬듯, 나도 졸업할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가자 학생들이 결연히 학업을 계속하는 것은 이곳의 사람들이 배움을 사랑하고 미래를 믿는다는 증거다.
이스라엘이 절멸시키려 들어도 그들은 굴하지 않고 저 앞의 빛을 본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파괴를 딛고 다시 일어나, 이 땅은 제 것이라 단언한다.
하지만 지금 역시도, 학생들의 공부는 고되다.
이슬람대학교 캠퍼스에서 학생들이 공부를 하고 수업을 듣는다. 아야가 자신이나 다른 신입생들이 겪는 갖가지 어려움을 들려준다.
강의실은 만원이라 학생들이 다 들어가지도 못할 정도다.
“2006년생, 2007년생 공대생 전부가 한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는다”고 했다.
건물이 대부분 무너져서 모든 수업을 캠퍼스에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야와 친구들 모두 한 건물에서 공부를 한다.
그래도 꺾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