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Tareq Baconi, “The World Radicalized by the Gaza Genocide,” Al-Shabaka, 2025.12.21.
본 논평은 타렉 바코니가 2025년 10월에 노바라미디어에 출연해 한 말을 토대로 작성되었다. 전체 녹화본은 여기서 볼 수 있다.
서론
2023년 10월 7일은 팔레스타인이 논의되고 상상되는 패러다임에 파열을 일으켰다. 그 전까지 국제 담론은 국가 지위와 평화 절차의 어휘에 갇혀 있었다. 팔레스타인 문제는 무너뜨려야 할 지배 구조가 아니라 중재가 필요한 분쟁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10월 7일은 세계가 팔레스타인인들이 오랫동안 말해 온 현실을 직시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 정착자 식민주의, 이어지는 나크바, 이스라엘의 아파르트헤이트를.
여기서 파열이란 그저 수사적인 표현이 아니다. 전 지구 정치적 이해understanding의 실질적인 변화를 나타내는 말이다. 전에는 두 국가 해법이라는 외교적 언어를 넘어서지 못했던 영역들에 이제 탈식민화, 책임 담론이 퍼지고 있다. 이스라엘의 가자 공격은 간헐적 혹은 방어적으로 무력을 행사할 뿐이라는 이스라엘의 가식을 깨뜨리고 인종학살이 그 정착자-식민 기획의 구조적 특성임을 폭로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이는 해묵은 진실을 재차 확인하는 일이다. 부정의한 체제 내에서의 협상으로는 해방을 얻을 수 없다는, 해방을 위해서는 그들을 내쫓고 삭제하는 구조들을 직시해야 한다는 진실 말이다.
본 논평은 이번 인종학살이 전 세계가 폭넓게 급진화되는 촉매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세계 각국 수도에서 팔레스타인 해방을 요구하며 행진하는 군중들은 그와 동시에 인종화된 자본주의, 추출적 체제, 기후 부정의, 갖가지 현대적 파시즘에 대한 철폐 요구 또한 끌어내고 있다. 교차적 관점에서 팔레스타인은 이런 투쟁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투쟁으로 여겨진다. 권력 구조에 대한 이 같은 급진적 이해 속에서 팔레스타인은 외떨어진 하나의 위기가 아니라 전 지구적 지배의 전반적 구성을 가시화하는 렌즈가 된다.
10월 7일이라는 파열
10월 7일 직전의 몇 달, 현지의 상황은 이미 기존의 패러다임으로는 말이 안 되는 수준이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권리나 정의를 누리지 못하고 구호 물자와 경제적 유인책을 통해 관리되고 있었다. 국제 사회의 구조 전체 ― 평화 절차, 기부자에 의존하는 구조, 외교적 언어 ― 가 이스라엘을 합법화하면서 팔레스타인인들의 열망은 차단 주변화하는 역할을 했다.
10월 7일이 오기 전, 세계는 이스라엘을 나라들의 가족에 속하는 적법한 국가로 대우했다. 반면 팔레스타인인들은 구호를 통해 관리해야 하는 인도주의적 문제나 “테러에 대한 전쟁”이라는 견지에서 차단해야 하는 안보 위협으로 여겨졌다. 1993년을 시작으로, 오슬로 절차는 ― 끝 없는 협상과 회담으로 ― 아파르트헤이트를 공고히 하면서 진보라는 허상을 떠받쳤다. 이런 맥락에서, 외교는 차단책 노릇을 했다. 이른바 “평화 절차”는 식민 폭력을 기술지배주의적technocratic 언어로 번역해 관리했다.
이 “관리” 패러다임에는 역사를 삭제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었다. 나크바는 과거사가 되었고 현재진행형의 식민화는 “안보 이슈”로 재해석되었다. 하지만 2023년 10월 6일에 이 틀은 이미 자가당착에 빠져 있었다. 평화도 안정도 이루지 못한 채 그저 지배와 절망을 심화시켰을 뿐이었다. 하마스의 작전 이전에도 그해는 이미 팔레스타인인들, 특히 어린이들이 수십년래 가장 많이 죽은 해였다. 세계는 줄곧 팔레스타인의 요구를 현재진행형의 정치적 해방 투쟁이 아니라 가라앉혀야 할 부차적인 쟁점으로 대했다. 10월 7일은 수십 년의 “관리”는 질서를 자리잡게 한 것이 아니라 저항을 키워 왔음을 보여주었다.
또한 10월 7일은 시온주의의 핵심적 모순 ― 쫓겨나거나 억압 당하는 선주 인구 문제를 해결하지 않아도 정착과 영토 확장으로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을 위한 영구적인 안전을 확립할 수 있다는 믿음 ― 을 폭로했다. 수십 년 동안 이런 허상이 유지된 것은 서구 열강이 비호해주었기 때문, 유대 민족의 귀환이라는 서사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은 비가시화되었기 때문이다. 10월 7일은 타자를 지우는 것으로는 영구적인 안전을 수립할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실상, 안전을 약속한 이 논리 자체가 영속적인 불안을 낳았다.
오늘날 유대 안전의 문제는 팔레스타인 자유 문제와 떼려야 뗄 수 없음이 분명하다. 지배와 식민주의에 열을 올리며 존속하는 한 시오니즘은 사람들을 끝없는 폭력의 삶에 처하게 만들고, 따라서 그 토대에 대한 저항은 사라질 수 없다. 이 모순을 폭로함으로써 10월 7일은 정의의 하한선을 새로 정의했따. 정착자-식민 질서를 그대로 두는 그 어떤 해법도 정의로울 수 없다. 기실, 공존 가능성은 팔레스타인을 관리하는 데가 아니라 그들을 추방할 수 있게 만든 체제를 무너뜨리는 데에 달려 있다.
서둘러 구질서를 복원하려 드는 이들
인종학살이 이어지는 가운데, 각국 정부, 기관들은 10월 7일 이전의 세계에서 썼던 익숙한 어휘들을 재확립하려 앞을 다투었다. 흔들린 질서를 되살리고자 휴전, 재건 약속, 국가 인정, “두 국가 해법” 지지 선언 같은 말들을 해댔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기존의 정상 자체가 문제였다는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정상으로 되돌리려는 헛된 시도일 뿐이다. 주의를 돌려 전 세계의 분노를 잠재우면서 이스라엘의 합법성을 재확립하려는 시도로써 현실을 부정하고 부정의를 영속화하는 기능을 한다. 아파르트헤이트와 인종학살이라는 현실을 가리는 가면이 찢어진 후로 이스라엘 국가를 다시금 합법화하려는 각고의 노력이 행해지고 있다. 각국 수도의 거리에서 수백만 명이 팔레스타인 해방을 요구하며 행진하는데, 세계 지도자들은 우리에게 인종학살을 못 본 체하라고, 과거의 망상으로 돌아가라고 한다.
휴전은 물론 필요하지만 ― 생명을 구하고 인도주의적 구호를 가능케 하지만 ― 그것을 정의와 착각해서는 안 된다. 여러 팔레스타인 전문가들이 꾸준히 강조해 왔듯, 주권 없는 재건은 의존성을 심화시킬 뿐이다. 제 땅과 국경에 대한 통제권이 없는, 쪼그라든 팔레스타인 “국가”에 대한 인정은 자유가 아니라 분할을 공고히 한다. 이런 것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을 회유하기 위한 공허한 조치에 지나지 않는다. 그 중 어느 것도 인종학살 가해자에게 전쟁 범죄의 책임을 묻는 일을 급선무로,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끝내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 그 증거다. 이런 수순 하나하나는 지니를 다시 램프 속에 집어 넣으려, 세계를 아파르트헤이트가 용인되고 나크바가 등한시되던 10월 6일로 되돌리려 든다. 하지만 그 허상은 되살릴 수 없다. 세계는 잊어버리기에는 너무도 분명히, 폭력의 구조를 보고 말았다.
하마스와 주의 돌리기의 정치학
구질서를 되돌리려는 시도의 중심에, 하마스에 대한 집착이 있다. “하마스를 궤멸시키라”라는 요구는 인종학살의 구실 노릇을 한다. 이스라엘과 그 동맹들이 팔레스타인에 대한 총체전을 테러리즘에 맞서는 일로 포장하고 저항을 범죄로 깎아내릴 수 있게 해준다. 이스라엘의 식민 논리 하에서, 모든 저항 ― 무장 저항, 법적 저항, 문화적 저항, 외교적 저항 ― 은 불법이다. 복속을 거부한다는 이유로.
하마스에의 집착은 미끼다. 이스라엘 체제가 말하는 하마스 제거란 실은 모든 파레스타인인의 절멸이다. 하마스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것을 잃었다 ― 지도부와 대원은 물론 기반시설의 상당 부분이 심각하게 무너졌다. 하지만 하마스는 조직원이 다가 아니다. 하마스는 사상, 저항에 뿌리 내리고 있는 이데올로기다.
하마스에 집중하면 징후를 구조로 착각하게 된다. 하마스가 내일 당장 무너진대도 인종학살과 가자 봉쇄, 아파르트헤이트 체제, 귀환 거부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동시에, 저항을 일으키는 조건 ― 식민 지배 ― 는 그대로이므로, 저항은 새로운 형태로 스스로를 재구성할 것이다. 그러므로 하마스를 없애라고 요구하는 것은 평화를 위한 전략이 아니라 팔레스타인의 정치적 의지에 대한 표명은 모조리 억압하겠다는 선언이다. 이런 의미에서 하마스는 이스라엘이 저항을 낳은 체제에 대한 책임은 회피하면서 자기방어라는 탈을 쓰고 대규모 폭력을 저지를 수 있께 해주는 편리한 빌미다.
지금의 국면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위험과 희망을 모두 가져다 준다. 역사는 피식민 민족이 승리한다는 보장이 없음을 알려준다. 식민 체제들이 선주 인구를 절멸시킨 때도, 선주 인구가 대대로 트라우마를 겪으며 버티고서야 겨우 살아남은 때도 있었다. 실제로, 팔레스타인 해방은 필연이 아니다 ― 하지만 분명 가능하다. 그리고 그것은 팔레스타인인 하기에 달려 있다. 지금 국면은 우리를 결정적인 역사적 기로로 데려간다. 시온주의는 프로파간다 장치의 상당 부분을 잃었으며 이 같은 서사 지배력 약화는 이스라엘 체제의 취약점을 드러낸다. 팔레스타인인들이 전 지구적 연대의 물결 ― 이 각성의 순간 ― 을 발판 삼아 시온주의의 거짓되고 폭력적인 약속들을 더더욱 약화시키고 팔레스타인 해방 투쟁을 밀어 붙일 수 있을까?
서구의 식민적 사고 방식이 드러나다
피식민 민족으로서 팔레스타인인들은 그들을 내쫓고 억압하는 힘들에 맞서 ― 가자에서든 다른 어디에서든 ― 계속해서 저항할 것이다 팔레스타인 해방은 더 이상 팔레스타인이나 아랍 권역만의 대의가 아니다. 새로 움트는 전 지구적 의식의 도덕적, 정치적 중심점이다. 이 같은 변화에는 디아스포라가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여러 대륙에 흩어져 있는 팔레스타인인들이 대학에서, 의회에서, 거리에서 담론을 형성하고 있다. 그들의 투쟁은 전 세계 기후 정의 운동, 인종 평등 운동, 탈식민 운동 전체와 연결된다. 그들의 말을 범죄화하려는 ― 제제, 검열, 중상모략을 통한 ― 시도들은 그들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는 증거다. 해방의 언어를 힘주어 말함으로써, 망명 중인 팔레스타인인은, 그리고 연대 운동에 함께하고 있는 이들은 제국의 담론적 토대 자체를 무너뜨리고 있다.
무엇보다도, 10월 7일은 전 지구적 질서의 근저에 있는 식민적 연속성을 드러냈다. 이스라엘의 가자 공격에 대한 서구 정부들의 대응 ― 군사 원조, 외교적 엄호, 연대 탄압 ― 은 자유주의라는 겉모습 아래에 식민적 사고방식이 여전히 버티고 있음을 폭로했다. 보편적 인권을 보장하고자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만들어진 제도들은 헤게모니를 지키기 위한 기제가 되어버렸다. 선별적으로 적용되는 국제법은 더 이상 법이 아니라 지배의 언어다.
그렇게, 가자에서 벌어지는 인종학살은 세계가 스스로를 보는 거울이 되었다. 팔레스타인인 추방을 더 큰 차원에서의 ― 자원 수탈에서부터 국경 군사화, 이주민 감시에 이르는 ― 추출·통제 체제와 연결시켜주는, 인종화된 전 지구적 권력 구조를 비추는 거울이다. 팔레스타인은 외떨어진 하나의 위기가 아니라 전 지구적 투쟁, 제국과 전 지구적 정의 사이의 투쟁의 전선이다. 팔레스타인의 자유를 요구하는 것은 사방에서 착취를 지속시키고 있는 식민 질서의 종식을 요구하는 것이다. 탈식민은 국경만의 문제가 아니다. 제국의 자본주의와 군사주의를, 그리고 그런 것들을 지속시키는 전 지구적 위계를 무너뜨리는 문제다. 팔레스타인인들은 해방을 전 지구적 공동 의제의 일부로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강에서 바다까지의 자유를 말하는 것은 정의의 보편적 지평을 말하는 일이다. 10월 7일 이후 세계의 반응은 그러한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지만, 이제 그것을 단단하게 만드는 투쟁을 할 차례다.
결론
10월 7일은 새로운 정치학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오래 전부터 있던 정치학의 진실을 드러낸 것이다. 인종학살을 지지하면서 자유주의를 자처하는 세계 질서의 도덕적 파산을 폭로한 것이다. 10월 7일은 쫓아내고 지우는 구조 자체를 직시하지 않고도 평화를 이룰 수 있다는 신화를 깨뜨렸다. “평화 절차”를 되살리려는 시도는 이 분명한 사실을 외교의 언어로 덮어버리려는 수작이다.
궁극적으로, 이번 인종학살은 세계를 급진화했다. 사람들은 자유 민주주의라는 구호의 비호를 받으며 생중계되는 말살을 보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세계는 이스라엘이 더 이상 아파르트헤이트 체제로 존속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이것이 바로, 팔레스타인 해방이 의미하는 바다. 아파르트헤이트를 무너뜨리는 것, 팔레스타인을 되찾는 것, 강에서 바다까지 자유와 정의가 있는 미래를 여는 것.
팔레스타인인들은 물러설 곳이 없다. 패러다임이 바뀌었고, 정의는 이제 그런 추방을 가능케 했던 구조를 무너뜨리기를 요구한다. 전략적으로는 이 파열을 선명한 탈식민 기획으로 구체화하는 것이 과제다. 정의는 점령 하의 국가 지위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팔레스타인의 모든 권리 ― 귀환권, 평등권, 주권 ― 를 모두 담아야 한다. 기부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해방을 토대로 팔레스타인의 정치 제도를 재건해야, 어디에 있든 모든 팔레스타인인들의 집단적 열망을 반영하는 제도를 재건해야 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