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을 온전히 인간으로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종종 이슬람혐오 탓으로, 무슬림의 폭력을 자유로운 서방에 대한 위협으로 포스트9/11의 특징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것은 피상적인 관점이다. 서구의 혐오의 뿌리를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서구 사상의 이데올로기적 토대를 ― 오늘날 통용되는 서사를 넘어 ― 더 깊이 들여다 보아야 한다.
가자의 데이르 알-발라에서 평생 사토장이 일을 해 온 사디 바르카Sadi Barka는 묘지에서 그림자처럼 우직인다. “매일 아이들을 묻어요 … 온전한 아이들도 아니고 그냥 부위들이죠. 묘지를 떠나도 잠을 못 자요. 갈기갈기 찢긴 아이들, 여자들의 모습이 눈에 선해서요.” 합장묘지들과 시온주의의 가차 없는 파괴에 짓눌려 숨을 못 쉬는 이 땅에 미제 폭탄 수천 톤의 잔해가 가득 쌓여 있다.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인종학살이 전 세계에 생중계된다.
이런 상황을 두고 합중국 전 대통령 조 바이든 ― “유대인이 아니라도 시온주의자가 될 수 있다”고 자랑스레 선언하는 ― 은 팔레스타인 사망자 수를 의심하는 쪽을 택한다. 망자의 수를 세는 행위 자체가 피식민자들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특권이기라도 한 양, “몇 명이 죽었는지 팔레스타인인들이 진실을 말한다는 생각이 안 든다”고 말한다.
바이든은 15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가자 인종학살을 전폭적으로 지원했고, 그 뒤를 이어 트럼프는 노골적으로 민족 청소를 정착자-식민 정책의 일환으로 받아들였다. 기독교 식민 논리가 낱낱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한때 식민화된 영혼들을 굽어살피는 그리스도의 대리인으로 여겨졌던 교황처럼, 이들은 무엇이 정확한 사실인지, 무엇이 구제 받을 자격이 있는지, 무엇이 소모품에 불과한지를 규정할 권력을 독차지한다 ― 육신이 멸해진대도 영혼은 구원 받으리라.
서구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을 온전히 인간으로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종종 이슬람혐오 탓으로, 무슬림의 폭력을 자유로운 서방에 대한 위협으로 포스트9/11의 특징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것은 피상적인 관점이다. 서구의 혐오의 뿌리를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서구 사상의 이데올로기적 토대를 ― 오늘날 통용되는 서사를 넘어 ― 더 깊이 들여다 보아야 한다.
거기에서는 기독교 시온주의, 즉 아랍 신체의 살해와 제거를 제 전망의 일부로 삼는 신학이 계속해서 현대 자유주의 이데올로기들에, 그것들이 팔레스타인을 대하는 태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시온주의/팔레스타인 적대관계의 뿌리는 수백 년을 이어진, 유럽이 아랍인과 무슬림을 대하는 태도에서 찾을 수 있다. 서구가 “중동”이라는 것을 만들어내고 그에 “개입”하기 한참 전부터의 일이다. 유럽 정체성의 토대인 기독교는 팔레스타인에서 ― 유럽의 지리적, 문화적 경계 바깥에서 ― 기원했다. 이렇게 보면, 이슬람은 유럽인들이 제 것이라 주장하는 대조되는 정체성들의 탄생 조건 중 하나라 할 수 있다.[1]Joseph Massad, Islam in Liberalism, (Chicago University Press, 2016).
이 역설은 엄청난 문화적, 종교적, 지적 교류로 이어진 8세기 아랍의 [유럽 등지] 정복으로 훨씬 더 강력해졌다. 당시의 상호작용은 유럽의 지적, 정치적 발전에 그저 우발적이라고 할 수 없는 근본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아랍인과 유대인 양자를 유럽 정체성 형성의 중심에 놓았다.[2]Norman Daniel, The Arabs and Medieval Europe (London; New York: Longman, 1979); David Levering Lewis, God’s Crucible: Islam and the Making of Europe, 570 to 1215 New York: W.W. Norton, 2008). 기독교 유럽은 무슬림을 공존할 수 없는 적으로, 유대인을 내부의 요주의자로 인종화했다. 십자군 전쟁 무렵에는 교황권이 “단결된 이슬람과 전쟁을 치르는 단결된 기독교 세계라는 이데올로기”를 구축했다.[3]Talal Asad, On Suicide Bombing (Columbia University Press, 2007), 9.
16세기 들어서는 프로테스탄트 개혁으로 이 관계가 더욱 복잡해졌다. 개혁파는 기독교적 삶에 있어 히브리 경전의 역할을 재확립하고자 했으며 유대인에게서 예언의 잠정적인 실현을 보았다. 이에 히브리 경전의 재해석으로서 기독교 시온주의가 등장해 유대인을 그리스도의 구원을 실현하기 위해 성스러운 땅에 “되돌려”져야 하는 별도의 인종이자 정치체로 구축했다.
제국의 힘이 점차 전면에 나오게 되면서, 개혁파는 “유대의 회복”에 관한 신학을 강화했다. 이 같은 재해석은 새로운 신정神政 메시아주의적 전망을 낳았다. 바로 이것이 오늘날의 정치적 삶에 더없이 큰 중요성을 갖고 있다. 19세기 초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팔레스타인 원정 길에서 시온주의에 관한 첫 정치적 발언을 한 시점에는 프로테스탄트 개혁파가 만든 사백년 여동안 만들어온 이데올로기적 틀이 이미 정점에 달한 터였다
16세기 프랑스의 시인이자 개혁가였던 아그리파 도비녜 같은 인물들은 유대의 회복과 아랍의 몰락이라는 주제를 작품에 녹여냈다. 아랍인들을 유대의 구원이라는 성스러운 계획에의 장애물로 묘사하는, 종교적일 뿐 아니라 인종적인 이미지를 들고 나온 것이다.
도비녜는 서사시 『비극Les Tragiques』에서 가톨릭 교회에 맞선 프로테스탄트 투쟁을 이스라엘인들의 출애굽에 빗대면서 영광, 희생, 신의, 사랑, 구원 같은 주제들을 끌고 들어왔다. 예언자적 역할을 자임한 도비녜는 상징적인 “가나안 점령”을 위해 위그노의 투혼에 다시 불을 붙여 성스러운 의지를 일으키고 “이스라엘기를 들”(“relever l’enseigne d’Israël”)게 하고자 했다. 프로테스탄트들이 이스라엘과, 그리고 이스라엘로서 (“O tribus d’Israël”) 단결해 가나안을 되찾으러 행군해야(“marcher de rang”) 한다는 것이었다.[4]“Qui voudra se sauver de l’Egypte infidelle, Conquerir Canaan et habiter en elle,O tribus d’Israel, il faut marcher de rang Dedans le golfe rouge et dans la mer de sang”“누가 신앙 … (계속)
] 프로테스탄트와 히브리인이 홍해를 ― 그리고 피의 바다를 ― 건너는 이 은유 속에서 홍해를 통과한 기적과 이후의 가나안 학살은 하나의 행군, 피를 부르는 행군으로 합쳐진다. 시온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아랍인들을 파멸시켜야만 했다.
팔레스타인에 유대 국가를 세우려면 아랍인들을 보이지 않게 만드는 수밖에 없음을 알았던 당대 유럽의 사상사들, 정치가들도 똑같은 정복과 정화의 언어를 썼다.
프로테스탄트 개혁 이래로 프랑스, 아일랜드,네덜란드, 영국, 독일, 오스트리아 등의 천년왕국 신봉자들, 시인들, 작가들, 화가들, 정치가들은 프로테스탄트 고난 서사와 유대인 박해 서사를 하나로 엮고 ― 역사 속 기독교의 유대혐오를 넘어서기 위해 후일 공통의 “유대-기독교 유산”으로 구축된 ― 신학적·역사적 연속체 속에서 자신들의 운명을 연결 지었다.
이삭 라 페이레르Isaac La Peyrère(1596-1676) 같은 초기 기독교 시온주의자들의 작품 역시 이런 인종화된 논리를 잘 보여준다. 『유대 민족의 귀환Le Rappel des Juifs』(1643)에서 라 페이레르는 유대인과 영토의 타락을 뒤집으려면 반드시 유대인이 프랑스 전제군주 치하의 팔레스타인으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며 십자군 메시아주의를 기독교 시온주의로 확장했다.[5]“Ils sont affligez de toutes sortes de maladies, et subjets à mille infirmitez, qui font que leur conversation est naturellement odieuse à tous les hommes, et que tous les hommes les fuyent, ou … (계속) 아랍인의 존재가 한때 비옥했던 “젖과 꿀이 흐르는 땅”과 그곳에 있는 한때 성스러웠던 성전聖殿을 사악한 이들을 위한 곳이자 “세상 모든 도적 중에서 가장 악명 높은 아랍인들의 피신처”로 만들었다는 것이었다.[6]“La Terre Saincte a esté maudite en leur malediction. La ville de Jerusalem en est devenue le repaire de Dragons et des Esprits immondes. Et le sainct lieu où estoit le sainct Temple, et qui … (계속)
이 같은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의 인종화는 그들을 그 땅의 쇠락의 상징으로 만들었고, 유대 질서과 기독교 질서 모두의 “회복” ― 궁극적으로 그들의 절멸을 요하는 과정 ― 이 필요함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었다.
볼테르나 루소 같은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유대인이 히브리 민족le peuple Hébreu이라는 틀로 유대 정체성을 재정의함으로써 그들을 근대 민족주의라는 신흥 담론들 속에 위치시켰다. 동시에 볼테르는 무슬림 예언자[즉 무함마드]를 광신과 야만의 전형으로 묘사해 유대인은 유럽 민족국가에 동화시키고 이슬람은 폄하하는 이분법을 강화했다.[7]Voltaire, Mahomet ou le Fanatisme, tragédie en cinq actes (1741) 프랑스 혁명의 해방은 유대인을 이스라엘 민족Israélites ― 그들을 별도의 인종이자 민족으로 분류하는 세속적인 용어 ― 로 재정의하면서 이 전통을 이어갔다.
프랑스 혁명기에 유대인을 “재생”시키고자 했던 아베 그레그와Abbé Grégoire는 라 페이레르의 영향을 받았다. 나폴레옹 보나파트르 역시 『유대 민족의 귀환』을 토대로 대 산헤드린Grand Sanhedrin을 소집하고 나중에는 무릎 꿇은 모세에게 십계명을 내리는 자신의 모습을 그린 주화를 발행했다.[8]Richard Popkin, Isaac La Peyrère (New York: E. J. Brill. 1987), 109; see also 94–114.
이런 전반적인 과정은 서구의 경전적, 문학적, 정치적 상상 속에서 팔레스타인이 점진적으로 공존의 땅이 아니라 구원의 전장으로서의 “이스라엘”에 의해 덮어쓰여지고 대체되었음을 뜻한다.
이렇게 볼 때, 팔레스타인은 성스러운 곳이자 제물로 바쳐진 곳 ― 복원된 이스라엘의 종말론적 관점에서 팔레스타인의 수난이 필수적으로 요구되거나 보이지 않게 되는 곳 ― 이 된다.
아랍인에 대한 이 같은 인종화된 오리엔탈리즘적 관점은 에드워드 사이드가 기록한 대로 기독교 시온주의의 이데올로기적 토대를 강화했으며, 이는 아랍 세계에서 유럽 식민주의가 저문 후에도 사라지지 않았다.[9]유대인과 아랍인을 구별되고 대비되는 범주로 인종화해 구축하는 일은 19, 20세기까지 이어졌다. 정치인 프랑수아 샤토브이랑François Chateaubriand 같은 … (계속) 오히려 보다 세속적인 형태로 변해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적 이상과 뒤얽혔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그 근본적인 형태를 정하는 것은 전과 똑같은 신학적이고 인종화된 논리였다.[10]Gil Anidjar, The Jew and the Arab, (Stanford University Press, 2003).
기독교 시온주의는 그저 이스라엘의 문제가 아니다. 이 같은 수백 년 묵은 기획의 확장 ― 예언의 탈을 쓴 기독교 인종 우월주의의 현대판 ― 이다. 폭력을 그저 정당화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신성화한다. 아랍인을 보이지 않게 만들고, 그들의 절멸을 부수적인 일이 아니라 필수적인 일로, 오랜 염원의 성취로 만든다.
2차세계대전 이후 미 제국주의는 이 유산을 인권, 민주주의, 진보라는 자유주의적 수사로 포장했다. 이런 말들은 몇 년이 머다고 아랍 세계를 폭격해 “현대화”하는 끊임 없는 서구의 개입을 정당화하는 무기로 쓰인다. 중립과는 한참 먼 자유주의는 유럽의 식민적 과거에 뿌리 내리고 있으며, 이슬람을 그 반테제로 세움으로써 헤게모니를 이어가고 있다.[11]Joseph Massad, Islam in Liberalism (Chicago University Press, 2014)
셔린 러잭Sherene Razack의 주장대로, 이러한 틀은 서구 문명과 법률에서 무슬림과 아랍인을 내쫓을 수 있게 해준다.[12]Sherene H. R Razack, Nothing Has to Make Sense: Upholding White Supremacy through Anti-Muslim Racism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2022) 조지 W. 부시의 “테러에 대한 전쟁”은 십자군 풍의 언어를 써서 군사 도발을 이슬람의 악을 제거하고 서구 문명을 도입하는 사명으로 고쳐썼다. 이런 틀에서 이스라엘은 타락했다고 여겨지는 지역에 “자유주의적 가치들”이 현현한 것으로 추어올려지며 영구 국가폭력을 합법화하는 오리엔탈리즘적 이분법을 강화한다.
정착자-식민주의나 그것에 박혀 있는 백인 우월주의와 마찬가지로, 이런 인종주의적 이데올로기들은 근대 서구 지식/권력 체제와 그 전 지구적 확장을 뒷받침한다.[13]Rouhana NN, Shalhoub-Kevorkian N, eds. When Politics Are Sacralized: Comparative Perspectives on Religious Claims and Nationalism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21). 그러니 트럼프가 합중국이 “가자 지구를 넘겨 받을” 것이고 팔레스타인인들은 떠나는 수밖에 “대안이 없다”며 가자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을 민족청소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놀랍지도 않다.
이상의 과정은 궁극적으로 유럽 유대인 일부를 서구 기독교 반유대주의, 오리엔탈리즘, 이슬람혐오의 씨앗을 팔레스타인에 가져간 식민 정착자로 만들었다. 유럽 유대인과 아랍인 모두를 아랍 땅에서의 서구 종교, 정치, 식민 역사와 이어지게 한 공모, 정체화, 비인간화가 드러나는 내목이다.
팔레스타인으로 자리를 옮긴 서구 시온주의자들은 오리엔탈리즘적, 이슬람혐오적 담론들을 아랍 팔레스타인 땅에 뻗치는 기독교 시온주의의 주체이자 대리인이 된다. 이런 틀이 말살의 스펙터클, 죽음정치 ― 죽음의 관리를 통한 권력 행사 ― 의 횡행을 가능케 한다.
서구 열강이 신생아집중치료실의 갓난아기들을 쓸어버릴 것을 알면서도 맘 편히 수천 톤의 폭약을 실어 보내는 것을 달리 어찌 설명할 수 있으랴.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을 ― 여성을, 아동을, 온가족을 ― 체계적으로 없애버리는 것을 달리 어떻게 정당화하랴. 수백 년에 걸친 야만적인 서구의 식민 폭력이 개종과 문명화의 수사를 통해 정당화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팔레스타인에서는 가자 인종학살이 저 높은 곳의 종말론적 질서 ― “서구 문명”의 신학적이고 인종화된 토대들에 뿌리 내리고 있는 질서 ― 속에서 신성화된다. 이런 역학을 이해해야, 식민화되고 탄압 당하는 팔레스타인 땅에서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 모두에게 가해지는 식민화와 계속되는 파괴에 유럽과 미국의 기독교 시온주의가 얼마나 큰 힘을 미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주
| ↑1 | Joseph Massad, Islam in Liberalism, (Chicago University Press, 2016). |
|---|---|
| ↑2 | Norman Daniel, The Arabs and Medieval Europe (London; New York: Longman, 1979); David Levering Lewis, God’s Crucible: Islam and the Making of Europe, 570 to 1215 New York: W.W. Norton, 2008). |
| ↑3 | Talal Asad, On Suicide Bombing (Columbia University Press, 2007), 9. |
| ↑4 | “Qui voudra se sauver de l’Egypte infidelle, Conquerir Canaan et habiter en elle, O tribus d’Israel, il faut marcher de rang Dedans le golfe rouge et dans la mer de sang” “누가 신앙 없는 애굽을 떠나 가나안을 정복하고 거기 살고자 하는가, 오 이스라엘 민족이여, 똘똘 뭉쳐 행군하세, 홍해로, 피의 바다로” (D’Aubigné, “Fers,” 521–28, 인용자 번역) |
| ↑5 | “Ils sont affligez de toutes sortes de maladies, et subjets à mille infirmitez, qui font que leur conversation est naturellement odieuse à tous les hommes, et que tous les hommes les fuyent, ou les persecutent avec mespris et aversion.” (ibid., p. 72). |
| ↑6 | “La Terre Saincte a esté maudite en leur malediction. La ville de Jerusalem en est devenue le repaire de Dragons et des Esprits immondes. Et le sainct lieu où estoit le sainct Temple, et qui estoit jadis le concours de tous de gens de Dieu, n’est-ce pas aujourd’huy l’asile des meschans, le refuge des coquins, et une retraitte d’Arabes, les plus infames de tous les voleurs du monde?” La Peyrère, Du Rappel des Juifs, 71. (성지는 그들로 인해 저주 받았다. 성시 예루살렘은 용과 마법 걸린 영혼들의 소굴이 되어 버렸다.). |
| ↑7 | Voltaire, Mahomet ou le Fanatisme, tragédie en cinq actes (1741) |
| ↑8 | Richard Popkin, Isaac La Peyrère (New York: E. J. Brill. 1987), 109; see also 94–114. |
| ↑9 | 유대인과 아랍인을 구별되고 대비되는 범주로 인종화해 구축하는 일은 19, 20세기까지 이어졌다. 정치인 프랑수아 샤토브이랑François Chateaubriand 같은 프랑스 작가들은 1806-1807년에 팔레스타인을 방문한 후 아랍인들은 원시적인 야만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Tout indique chez l’Arabe l’homme civilisé retombé dans l’état sauvage.” [“아랍의 모든 것은 야만으로 퇴보한 문명인을 보여준다.”] 스위스 칼뱅파 선교사로 [이스라엘 건국을 주도한 초기 시온주의자] 테오도르 헤르츨의 친구이자 적십자 설립자였던 앙리 뒤낭Henri Dunant(1828–1910)도 이런 사상에 공명했다. 그리스도가 팔레스타인 땅에 돌아오리라는 경전적 믿음을 갖고 있었던 그는 서구 “문명”의 아랍 정복을 지지했다. 다음을 보라. François-René de Chateaubriand, Itinéraire de Paris à Jérusalem et de Jérusalem à Paris (Paris: Le Normant, 1811), 3 vols., édition critique parEmile Malakis (Baltimore: The Johns Hopkins Press, 1946), 2 vols., (II, 85) |
| ↑10 | Gil Anidjar, The Jew and the Arab, (Stanford University Press, 2003). |
| ↑11 | Joseph Massad, Islam in Liberalism (Chicago University Press, 2014) |
| ↑12 | Sherene H. R Razack, Nothing Has to Make Sense: Upholding White Supremacy through Anti-Muslim Racism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2022) |
| ↑13 | Rouhana NN, Shalhoub-Kevorkian N, eds. When Politics Are Sacralized: Comparative Perspectives on Religious Claims and Nationalism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