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 조던이 60년대 학생 운동 때부터 함께 싸운 자매 오드리 로드Audre Lorde에게 바친 글
서문
죽은 이들에게 편지를 쓰곤 한다 ― 너무 늦었다는 기분을 떨칠 수 없다. 만나 볼 길 없는 가족들, 학살 당한 시인들과 작가들, 제 삶에 대한 글보다 훨씬 짧은 삶을 살게 될 아이들을 생각하며 매일 아침 그런 기분에 잠긴 채 쓴다. 여기저기서 인종학살이 이어지는 와중에 쓴다는 것은 그런 일이다. 우리는 너무 늦었다. 하지만 죽는다고 사랑이 끝나는 것은 아니므로, 등을 돌릴 수도 없다. 아직도 흑인 레즈비언 페미니스트 시인 오드리 로드가 「생존을 위한 기도」에서 “물가” 혹은 “한결 같은 벼랑 끝”이라고 불렀던 곳에서 아슬아슬하게 살아가고 있는 이들과의 미래를 그려보지 않을 도리가 없다.
흑인 바이섹슈얼 작가 준 조던이 오드리 로드에게 바친 헌사 역시 너무 늦었다. 조던은 로드가 세상을 떠난 후 처음으로 돌아오는 생일에 맞추어 1993년에 이 글을 썼다. 두 시인이 ― 내가 아카이브 자료 조사와 인터뷰를 통해 확인한 바로는 ― 몇 년이나 서로 말을 하지 않았다.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당시 팔레스타인, 레바논 사람들과 어떻게 연대할지를 두고 페미니즘 운동이 분열하면서, 뉴욕시에서 민권 운동, 흑인 권력 운동을 하면서 다져진 두 사람의 깊은 자매애가 깨진 터였다.[1]마리나 맥로어, 리시올 출판사 옮김, 〈삶을 향해 움직이며〉(2024), 2025 참고. (조던은 시온주의자로 정체화하는 페미니스트를 날을 세워 비판한 반면 로드는 비판은 하지만 이스라엘 국가와 완전히 절연하지는 않는 유대인 페미니스트들과 관계를 유지하려는 편이었다.) 10년 후에 이 헌사를 쓰면서 조던은 함께 투쟁했던 때로 시간 여행을 한다. 로드를 처음 만난 것은 1960년대 말, 학생들이 교육 접근성 보장을 요구하며 점거한 뉴욕시립대학교(CUNY) 한 건물 앞의 바리케이드에서였다. 둘은 봉기의 중심에 있는 흑인, 갈색인 학생들의 요구를 지지하는 것이 세대를 넘는 자신들의 의무임을 직감했다. 조던은 1977년에 이렇게 썼다. “대부분의 선생들과 달리 그녀는 그곳에 와서 흑인 SEEK 학생들과의 신의를 지켰다. … 내 자매 오드리 로드의 고결함은 평생 잊지 못할 인상을 남겼다.”
SEEK(학업·향상·지식 추구Search for Education Elevation and Knowledgedml 줄임말이다)는 기량이 떨어지는 고등학교 출신 학생들을 위한 보충 수업 격으로 기획된 CUNY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초기 강사진 ― 조던과 로드 외에도 토니 케이드 밤바라Toni Cade Bambara, 에이드리언 리치Adrienne Rich 등 혁명적인 작가들이 있었다 ― 은 학생들에게 그들을 내친 체제의 규범에 동화되는 법을 가르치는 데 만족하지 않았다. 학생들이 무엇을 찾고 있는지에 주의를 기울이는 고유의 교육법을 ― 안으로는 그들이 사랑하는 공동체들을, 전 지구적으로는 식민주의에 맞서 투쟁하고 있는 이들을 존중하는 학습법을 ― 펼쳤다. 조던과 로드, 그리고 그들의 SEEK 동료들은 학생들에게 교육의 의미 자체를 심문하고 변화시키는 법을 가르쳤다.
세계 각국이 유럽의 식민 지배에 맞서 독립 투쟁을 벌이던 1969년, 상당수가 SEEK 프로그램 소속 학생을 포함한 CUNY의 흑인, 갈색인 학생들은 교정에서 합중국 깃발을 내리고 범아프리카해방기, 푸에르토리코국기를 걸었다. 전 지구적 반식민 운동에 대한 연대 행동이자 이른바 “할렘 대학Harlem University” ― 인종주의적 구조를 반복하지 않고 커리큘럼과 인사 구성의 변화를 통한 급진적 포용inclusion과 뉴욕시 모든 주민이 고등교육에 공적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입학 개방을 수행하는 학교 ― 을 향한 학생 투쟁의 지역 거점이었다. 로드와 조던은 밤바라, 리치 등 여러 동료와 함께 학내 건물들의 바닥이며 테이블이며에서 자고 있던 학생들에게 담요와 먹을 것을 가져다 주고 워크숍과 토론회를 열었다. 대학이 평소처럼 굴러가지 못하도록 몸으로 막은 이들을 그렇게 지지했다. 로드와 조던은 그곳에서 동료 이상의 관계가 되었다. 둘은 서로를 함께 투쟁하는 자매로 여겼다. 그리고, 아래에서 다시 보게 되겠지만, 준 조던의 말대로 “우리가 이겼다. 학생들이 이겼다.” 여기 쓰인 시작법을 보라. 승리는 하나다. 학생들의 승리가 모두를 위한 승리로 번역된다.
지금, 또 한 번, 세계 도처에서 수없이 그러했듯, 학생들이 위험을 감수하며 사랑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고 있다. 학위를 걸고, 장학금을, 기숙사를, 안녕을, 건강보험을, 건강을 걸고, 수만 명을 학살하고 지구를 어떤 종도 살지 못할 곳으로 만드는 상황을 가속하는 폭력적인 체제들에 투자하는 학교를 꾸짖고 있다. 그들은 팔레스타인과 콩고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 사람들을 뿌리 뽑고 내쫓으려 하는 전쟁 기계를 멈추는 데에 다름 아닌 미래 자체가 걸려 있다고 단언한다 ― 또한 다른 이들이 저와 함께 담대한 행동에 나설 수 있도록 용기를 준다. 어바인 캘리포니아 대학교 교수 티파니 윌러비-헤러드Tiffany Willoughby-Herard가 교내 농성장에서 학생들을 지키다가 진압경찰에게 끌려나갔을 때 직위 유지는 되는 거냐고 캐묻는 기자들에게 되물은 대로, “학생들에게 미래가 없다면 내게 무슨 직업이 있다는 말인가?”
준 조던이 오드리 로드에게 보낸 내밀하고 담대한 말들을 다시 읽는 동안 회한이 밀려 왔다가 사랑에 씻겨 나가기를 반복했다. 보내는 이와 받는 이, 둘의 시재詩才와 고결한 인품만이 아니라 그들의 정치적 관대함을, 학생들의 전망에 스스로를 내어주는 모습을 또한 보았다. 지금 같은 때에도 그 두 시인이라면 즉각적이고 영구적인 정전, 우리 살아 생전의 팔레스타인 해방, 모든 형태의 아파르트헤이트 및 인종학살 종식을 요구하는 학생 지도자들을 좇아 가진 모든 것을 ― 영적인 자원, 힘 들여 얻은 통찰, 그들로서는 용기라고 말하지조차 않은 용기까지를 ― 주었으리라. 인종학살적 폭력으로 인한 헤아릴 수도 없는 상실을 돌이킬 수는 없지만, 학생들은 우리에게 너무 늦지 않았음을 가르쳐 주고 있다. 바로 지금이, 살 만한 미래를 위해 함께 더 담대해 져야 할 때다. 바로 지금이, 준 조던이 아래 편지에서 “죽음은 쓰지도 지우지도 못하는 말”이라 부른 것을 위한 때다. 우리의 사랑 말이다.
― 알렉시스 폴린 검스
오드리에게[2]역주 ― 아래에서 [, ]로 표시한 부분은 모두 편집자가 원문을 교정하며 삽입한 것이다. 오탈자에 달린 것은 옮겨 쓰지 않았다.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을 언제까지나 기억할 것입니다. 60년대, 우리 둘 다 시립 대학 입학 개방 투쟁과 I.S. 201이라는 이상하게 창문도 없는 할렘의 새 학교에서 자유대학 강의를 하느라 두 탕씩 뛸 때였죠.
우리는 혁명적인 동지들, 혁명적인 학생들에 둘러싸여 있었고 우리가 이 나라의 공교육을 바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바꿔 냈어요. 우리가 이겼습니다. 학생들이 이겼습니다. 고등 교육 입학 개방의 원칙이 우리 흑인, 갈색인 아이들이 들어오면 필연적으로 수준이 떨어질 거라는 뻔한 주장을 무찔렀습니다.
우리는 잘 알고 있었죠. 우리도 한때 흑인 아이였으니까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여기 미국에서 흑인 아이를 낳았었으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우리네 금지 당한 검은 몸들이 담고 있는 귀중한, 상상도 못할 만큼 깊은 음악을, 귀중하고 상상도 못할 만큼 복잡한 수학을 알고 있었어요.
당신과 나는 공통점이 참 많았어요. 서인도 제도 사람 ― 투지가 넘치고 말도 안 되게 당당하다는, 끝도 없이 책을 읽어댄다는 말이죠 ― 이었어요. 둘 다 시인으로 자랐죠. 자라서 빈곤과 인종주의적 폭력과 싸우는 흑인 싱글맘이 되었어요. 자신의 아름다움을 믿는 게 아니라 완고하게도 우리 어머니 얼굴의 미스터리를 열어젖혔던 크고 검은 눈 속에서 우리 힘의 근원을, 우리 우아함의 원천을 찾으리라 다짐하는 성년이 되었고요.
그 시간들이 우리 삶에 밀려 들어오는 동안, 우리는 그녀의 눈을 찾았고 그녀가 한 번도 소리내어 말한 적 없는 그 모든 것에 목소리를 주려 노력했어요.
자유를 위해 싸우던 중에, 할 수만 있다면 우리를 죽이려 드는 증오 ― 흑인으로서의 우리와 여성으로서의 우리, 양쪽 모두에 대한 증오 ― 에 맞서 싸우고 있는 스스로를 보았죠. 자유를 위해 싸우던 중에, 감히 인종적, 성적으로 강력히 금기시되는 선을 넘어 사랑을 쟁취하려 드는 스스로를 보았죠. 자유를 위해 싸우던 중에, 두려움도 포기도 모르고 자유로워진 스스로를 보았죠.
당신은 자유롭고 겁 없는 올곧은 삶을 살면서 정말이지 아름답고 위대한 시를, 수많은 강력하고 새로운 문장을 써서 많은 이들에게 우리의 꿈과 욕망에 진실되게 사는 법을 알려주었어요.
당신의 시 가운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 중 하나에서, 당신은 이렇게 적었어요.
“나
는 대지의 속에서부터 발화되는
완전한 검음 […]
사랑이란 말은 또 하나의 열림.
다이아몬드가 불꽃의 매듭 속으로 들어갈 때
나는 검지, 대지의 속에서 나왔으니
이제 내 말을 당신의 열린 빛 속에서 보석 같이 받으시라.” [원문 그대로임][3]역주 ― 오드리 로드는 여기에서는 I am(나는) 대신 I is를, 아래에서는 difference(다른 점) 대신 different를 쓰는 등 표준 문법에 맞지 않는, 흑인의 특색이 … (계속)
다른 시에서는 이렇게 적었죠,
“시가 미사여구와 다른 점은
언제든
당신 스스로를
죽일 수 있다는 것
당신의 아이들이 아니라.” [원문 그대로임]
당신은 그렇게 다르게 살았고, 당신이 보여준 용기와 강렬하게 빼어난 삶은 미국 곳곳의 젊은 시인들, 젊은이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오늘도 영감을 주고 있어요.
우리가 택한 투쟁의 길이 그랬듯이, 우리 삶은 여러 지점에서 갈라졌죠[.] 하지만 우리는 결코 증오에 맞선 합동 전투를, 모든 편견을 없애기 위한 싸움을 완전히 내려 놓지는 않았어요[.] 그러다 유방암이 고통으로, 두려움으로, 끝내는 죽음으로, 당신의 삶을 거두어 갔고요[.] 이렇게 우리의 삶이 다시 만났네요, 이제는 내가 그 두렵고 곤란한 불청객과 싸울 차례예요.[4]역주 ― 준 조던 역시 이 시기에 유방암 진단을 받았고, 2002년에 세상을 떠났다.
여기, 재스민처럼 피어나는 제 꽃을 바칩니다.
이것은 내 신의의 불꽃
이것은 죽음은 쓸 수도
지울 수도 없는 말
여기 내 사랑을 맡깁니다
당신의 재주 많은
손에
마침내 우리가
다시 마주볼
그날까지
준 조던
1993.02.18.
캘리포니아주 버클리에서
주
| ↑1 | 마리나 맥로어, 리시올 출판사 옮김, 〈삶을 향해 움직이며〉(2024), 2025 참고. |
|---|---|
| ↑2 | 역주 ― 아래에서 [, ]로 표시한 부분은 모두 편집자가 원문을 교정하며 삽입한 것이다. 오탈자에 달린 것은 옮겨 쓰지 않았다. |
| ↑3 | 역주 ― 오드리 로드는 여기에서는 I am(나는) 대신 I is를, 아래에서는 difference(다른 점) 대신 different를 쓰는 등 표준 문법에 맞지 않는, 흑인의 특색이 드러나는 영어를 썼다. |
| ↑4 | 역주 ― 준 조던 역시 이 시기에 유방암 진단을 받았고, 2002년에 세상을 떠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