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Jasbir Puar, “Speaking of Palestine: Solidarity and Its Censors,” Jadaliyya, 2016.03.16.
2015년 10월 이후로[1]역주 ― 뎡야핑, 〈강요된 선택, 팔레스타인 청년들의 몸이 무기가 되기까지〉,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2015.11.14. 참고. 서안과 동예루살렘에서 충돌, 시위, 총격이 격화되고 있다. 이스라엘 점령 15주년이 다가오면서, 많은 이들이 지금 물결치고 있는 팔레스타인의 저항을 3차 인티파타라 부른다. 팔레스타인인의 이동을 금지하는 이스라엘 영토 통제가 얼마나 복잡다단한지, 가족들, 마을들이 수십 년의 식민 지배 하에서 겪어온 상실이나 일상을 짓누르는 소진과 두려움이 얼마나 큰지를 설명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서안에서는 기본적인 일상 생활 자체가 진빠지는 일이 된다. 한숨 돌릴 틈조차 없기 때문이다. “존재가 저항이다”는 온몸으로 겪는 고되고 가혹한 진실이다.
2016년 2월 3일에 바사대학에서 강연이 있었다. 열정적인 청중의 환대를 받았다. 최근에 서안에 가서[2]2016년 1월에 연구자, 통역가, 그리고 어느 영화의 제작진과 함께 서안에서 두 주를 보냈다. 《도래하는 인티파다The Coming Intifada》라는 가제를 붙인 … (계속) 진행한 민족지 연구의 일부를 가자 아동들에 대한 불구화와 성장 저해가 세대를 넘어 미치는 영향에 관한 기존 논문과 엮어 강의했다. 이번 방문을 상세히 소개하면서 특히 아이의 시신을 몇 달이 지나서야 겨우 돌려 받는 가족들의 정서적 고충과 고통을 전하는 데에 방점을 두었다. 그러면서 간단한 민족지적 논평을 덧붙였다. “과학 연구를 위해 시신에서 장기를 적출했다고 짐작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이 삶을 가득 채우는 일상적인 공포를, 신체 통합성을 위협 당하는 그 공포가 어떻게 이스라엘 국가와의 상호작용 하나하나를 빚어내는지를 강조하기 위한 예시였다.
질의 응답 시간에 팔레스타인인들이 가족의 시신에서 장기를 적출 당할까봐 두려워하는 이유를 더 자세히 혹은 분명히 말해 달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정말이지 청중과 팔레스타인인들 스스로가 기록한 점령의 경험에 관해 활발히 논의하고 싶었다. 팔레스타인인들의 목소리를 강조하고 합중국 대중의 의식, 나아가 대중매체에서 늘상 검열 당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널리 알리는 것이 내가 그날 그곳에 간 이유였다. 하지만 이번 강연은 내 연구가 반유대주의적이며 내가 “피의 비방blood libel”을[3]역주 ― 유대인을 겨냥한 중상모략을 뜻하는 표현이다. 고중세 유럽에서 유대인이 종교 의식에 기독교인, 특히 어린 아이의 피를 쓴다는 혐의를 … (계속) 퍼뜨린다는 중상모략의 빌미가 되고 말았다.
1990년대에 팔레스타인인의 시신에서도 IDF 병사의 시신에서도 장기를 적출했던 어두운 역사는 잘 기록되어 있다. 2차 인티파다 당시 팔레스타인인들의 시신은 아무런 설명도 없이 아부카비르법의학연구소에 한참동안 억류 당했다. 심지어는 《하아레츠Ha’aretz》 같은 이스라엘 주류 언론에서까지도 아부카비르에서 장기를 불법적으로 획득, 수집한다고 보도했다. 도널드 보스트롬과 UC버클리 법의인류학자이자 장기감시Organs Watch 대표인 낸시 셰퍼-휴즈가 최근에 발표한 민족지 연구는 보건부의 주장과 달리 이런 관행이 2012년까지 이어졌다는 증거를 제시한다.[4]Nancy Sheper-Hughes and Donald Bostrom, “The Body of the Enemy,” Brown Journal of World Affairs 19/2 (Spring/Summer 2013). 이스라엘의 인류학자이자 예루살렘히브리대학교 명예교수인 메이라 바이스는 히브리어로 “처음에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서, 나중에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서 장기를” 채취한 것을 비롯해 아부카비르에서의 일을 상술하는 책을 쓰기도 했다.[5]개별 소통, 3016.03.10.
이 역사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으므로 슬픔에 빠진 팔레스타인인들이 사랑하는 가족의 시신이 어떤 운명에 놓여 있는지 궁금해 하거나 두려워하는 것은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들이 ― 다른 누구라도 ― 점령 당한 인구의 삶을 구석구석 파고 드는 식민 통제가 죽으면 끝날 거라고 생각할 이유가 어딨겠는가. 공포의 정동 경제를 유지하는 것은 정착자 식민 체제의 핵심적인 통치 양식이다.
강연에서는 현재의 장기 적출에 대한 실증적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분명히 밝혔다. 그저 2015년 10월에 봉기가 시작된 후 서안에서 산다는 것의 순전한 공포, 그 조금을 전달했을 뿐이다. 내게 제기된 반유대주의, 피의 비방 혐의는 점령이 팔레스타인의 일상에 가하는 악영향에 관한 학술연구들을 깎아내리려는 의도이리라 짐작할 따름이다. 나를 모략하려 드는 이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이 비탄, 분노, 역사적 트라우마 같은 합당하고 매우 인간적인 감정을 가질 권리도 없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게다가 내 강연을 둘러싸고 인위적으로 벌어진 논란은 팔레스타인정의를위한학생모임Students for Justice in Palestine과 평화를위한유대인의목소리Jewish Voice for Peace에서 이끌고 있는 바사 BDS 결의안의 동력을 갉아먹으려는 의도가 틀림 없다. 이 억지 소란이 벌어진 후, 바사대학 본부는 학생회에 BDS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지면 학생회비를 주지 않겠다고 협박했다 ― 그들은 협박에 굴하지 않고 결의안을 채택했다.
팔레스타인에서의 삶과 죽음에 관한 나의 설명이 이스라엘 국가가 그들이 식민화한 몸들을 어떻게 위협하고 있는지에 대한 우려가 아니라 중상모략으로 이어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오히려, 다른 역사들을 억압하고 침묵시키기 위해 어떤 역사들이 계속해서 재활용되고 재유통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일이다. 서안 팔레스타인인들의 일상적인 현실들의 역사는, 점령 하에서의 삶과 죽음의 정동적 층위를 이해하려는 학자들의 노력과 함께, 즉각 시온주의자들로부터 반유대주의적이라는 비난을 받는다. 이처럼 반점령 표현과 반유대주의 표현을 그럴듯하게 뒤섞는 것은 점령 자체와 관련 학술 연구에 대한 단속policing 모두가 강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반식민투쟁은 반유대주의라는 낙인이 찍힐 뿐 아니라, 아무래도 점령 당한 기분이 든다. 이 고리를 배가하기 위해 문지기들은 이스라엘 국가를 비판하는 동기는 인권이나 식민화된 인구, 무국적자들에 대한 우려가 아니라 오직 반유대주의라고 우겨댄다.
캠퍼스 정치와 언론 자유
나는 끝까지 내 연구를 지킬 것이다. 이제 9년째 팔레스타인 연대 활동에 참여하면서, 혐오 메일을 받을 만큼 받았고 ― 그것도 내 일이다 ― 강연을 하면서 그저 자기랑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내 작업을 비난하는 이들과 맹렬한 논쟁도 많이 벌였다. 기꺼이 정도가 아니라 전심전념으로, 심지어는 기쁘게, 대화할 것이며 지금까지도 여러 곳에서 줄곧 그래 왔다. 하지만 바사 강연을 둘러싼 이번 일에는 평소와는 다른 점이 있었다. 나나 주최측의 허가 없이 녹음한 강연 녹취록이 우익 매체에 퍼져 혐오에 찬 반응들을 불러 일으켰다. 내 연구의 핵심에 대한 논의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강연을 녹음한 사람 혹은 사람들은 질의응답 시간에 질문도 논평도 하지 않았다. 그들의 의도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압박을 가하며 중상모략을 펼치는 것이었다.
이렇게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에 관한 정보나 연구는 죄다 선험적으로 반유대주의로 여겨지는 상황이다보니, 언론 자유, 학술적 자유가 극도로 제약 당하게 되었다. 이 같은 사전차단은 팔레스타인리걸Palestine Legal에서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광범위한 학내 검열을 기록해 발간한 『팔레스타인은 예외인 언론 자유: 합중국에서 팔레스타인 운동이 받는 공격Palestine Exception to Free Speech: A Movement under Attack in the US』에 상술되어 있다. 전국적으로, 대학 본부, 동문 단체, 여타 학생 기구 등이 BDS 결의안을 비롯한 여러 가지 팔레스타인 연대 조직화를 탄압하기 위해 팔레스타인정의를위한학생모임 지부들을 표적으로 삼고 있다. 강고하고 용감한 학생 활동가들은 논쟁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 싸우고 있다. 그래서, 소리를 높이는 이들은 갈수록 악랄하게, 대화와 논쟁의 원칙이라고는 전혀 없이, 표적이 되고 있다.
이처럼 입을 막고 겁박한다는 것은 그들이 궁지에 몰렸다는 뜻이다. 열른 논쟁을 경시하고 무시한다는 것은 시온주의자들의 패배에의 공포를 드러낸다. 그들은 BDS를 중심으로 커져가는, 상당수가 유대계 미국인인, 학생 대중 운동을 필사적으로 억누르려 한다. 현재 시온주의의 전략은 그저 미국 여러 대학에서의 학생 운동을 사전에 막고 억압하는 것,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인권 범죄를 연구하고 공적으로 발언하는 이들을 깎아내리는 것이 다다. 가족이 이스라엘에 바치는 충성심에 의문을 제기하며 시온주의식 가정 교육을 따르지 않는 유대계 미국인 학생들이 갈수록 늘고 있기에 이는 어느 정도 세대 간의 싸움이기도 하다.
언론 자유를 지키는 것은 BDS 활동가 뿐 아니라 대학 공동체 전체의 문제기도 하다. 친팔레스타인, 중립, 친이스라엘까지 다양한 관점의 학자, 노조 간부로 구성된 전미대학교수협회(AAUP) 러트거스 지회 집행위원회에서는 지적 의견 차이에 대한 무례한 반응들을 비난하고 학술 자유와 언론 자유의 원칙을 재천명하는 꽤 힘을 준 성명을 냈다.[6]역주 ― 원문 아카이브: https://web.archive.org/web/20160229043914/https://rutgersaaup.org/news/executive-council/defense-professor-jasbir-puars-academic-freedom/ [이번 일에 앞서] 스티븐 살라이타Steven Salaita가 공격 당하고 디파 쿠마르Deepa Kumar 교수가 지독한 백래시 ― 그는 지난 여름에 ISIS와 합중국의 “대테러 전쟁”에 관해 올린 트윗이 《폭스뉴스》에 실리면서 엄청난 양의 혐오 메일을 받았다 ― 를 겪었기에 나온 조치였다. AAUP 러트거스 지회의 〈재스비어 푸아 교수의 학문의 자유를 지지하는 성명Statement in Defense of Professor Jasbir Puar’s Academic Freedom〉은 근년에 “여기 러트거스는 물론 전국 여러 대학의 교원”을 표적으로 한 학문 자유에의 공격이 늘었다고 지적한다. 나머지 부분도 길게 인용해 둘 만하다. 학문 자유의 실천에 심각한 후과가 일 때 필요한 강력한 옹호를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러트거스 대학본부는 학문의 자유는 인종, 민족, 정치적 입장, 지적 의견 차이에 기반한 인신 공격이나 일체의 위협을 보장하는 것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그런 폭력은 학문 자유의 핵심인 사상의 자유로운 교환과는 정 반대의 위치에 있다. 푸아 박사에게 가해진 이러한 위협들에 대응해, AAUP-AFT[7]역주 ― 전미교사연맹American Federation of Teachers. 러트거스 지회 집행위원회는 학문의 자유는 정부나 비국가 행위자의 행위와 도덕성에 대한 비판을 비롯해 모든 학술 연구과 소통을 보장하는 것임을 다시 한 번 천명한다. 본 조합에서는 러트거스 안팎에서 비슷한 공격을 받는 모든 교원에게 자문, 교육, 법적 지원을 제공할 것이다.
인도 자와할랄네루대학, 남아프리카, 튀르키예 등에서 언론 자유와 학생 조직화를 억압한다는 비난이 커져 가고 있는 지금, 합중국에서 ― 팔레스타인과 관련된 것만이 아니라 ― 불화의 범죄화는 긴 역사가 있을 뿐 아니라 지금 심화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현재 6개 주 입법부에서 이스라엘 국가에 대한 비판을 금지하거나 처벌하는 여러 형태의 법안을 논의하고 있다. 글렌 그린월드Glenn Greenwald와 Andrew Fisher앤드류 피셔가 쓴 「서구에서 언론의 자유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은 반점령 활동의 범죄화를 통해 가해지고 있다」라는 글이 있다. 그들의 분석은 서구 국가들이 비서구 지역에서 벌어지는 언론 자유 억압을 위선적으로 비난하면서 은밀히 언론 자유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음을 밝힌다.
혐오 메일이 하는 일
이스라엘 국가 정책 비판에 달라 붙는 반유대주의 혐의 제기에는 종종 이슬람혐오적, 반무슬림적 언어가 사용된다. 반유대주의라고 비난하는, 혐오로 가득하거나 무책임한 말을 해대는 이들은 놀라울 정도로 저속하고 인종주의적이며 여성혐오적, 동성애혐오적, 이슬람혐오적인 장광설을 거리낌 없이 메일로 보낸다. 이런 이메일들은 대개, 나의 절대적인 불결함이나 추함, 내 성기, 심지어는 내 어머니의 성기에 이르는 다양한 방식으로 여성 신체를 언급한다. 어떤 이들은 러트거스에서 내 종신교수직을 박탈해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내게 젊은이들을 가르칠 자격이 있음을 증명하라고 요구하거나 나를 해고하라는 대규모 캠페인을 벌일 거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나에 대한 혐오 발언을 한 많은 이들이 나를 아랍인이자/이거나 무슬림이라고 단정하고는 ― 나는 둘 다 아니다 ― 인종주의적인 방식으로 나를 어디에나 있는 갈색 테러리스트 신체에 투사했다. 언론에서는 나를 “엄청난 미치광이raving crackpot”과 “겁쟁이 폭탄투척범Scaredy Cat Bomb Thrower”으로 칭했다. 이슬람혐오적 비난이 늘어나고 표준이 되는 것은 “대테러 전쟁”을 구성하는 기제, 승인된 기제이다. 대학 캠퍼스 안에서나 밖에서나 이슬람혐오 표현이 문제시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도널드 트럼프가 아랍인, 무슬림, 멕시코인에 대해 끝도 없는 인종주의적 장광설을 늘어놓을 공공장소와 언론의 자유는 넘쳐나지만, 이스라엘 점령의 공포에 대한 합당한 분석은 악랄한 입막음과 중상모략으로 이어진다.
나를 향한 중상모략 중 가장 널리 읽힌 것은 〈바사에서 반유대주의 전공하기Majoring in Anti-Semitism at Vassar〉라는 제목의 《월 스트리트 저널》 논설이었다. 전 캘리포니아대학교 총장 마크 유도프와 켄 월처, 두 필자는 줄곧 나를 푸아 박사나 푸아 교수가 아니라 푸아 씨Ms.로 칭했다. 나의 전문성을 그렇게 극단적으로 지워버리는 것은 그들의 아집과 편견을 폭로할 뿐이다. 누구라도 어떤 백인 남성 교수가 그런 무례의 표적이 되거나 그런 외설적이고 폭력적인 메시지를 받거나 지적 역량과 정신 상태를 그렇게 폄하 당하는 일이 있을까 의아할 것이다. 나는 운 좋게도 종신재직권적과 전적으로 지지해 주는 훌륭한 노조와 동료들이 있다. 하지만 이런 보호막이 없는 이들, 특히 팔레스타인에 관한 연구를 하고 적극적으로 연대활동에 참여하는 아랍인이자/이거나 무슬림인 이들에게 이 같은 시온주의의 겁박 전술은 목소리를 내는 데에 직업적, 경제적, 심리적으로 너무 많은 것을 걸어야 하게 만든다.
이메일의 맹공이 쏟아졌고 그 중 몇몇은 심히 충격적이었기에 러트거스대학 경찰에서 여성·젠더학과를 찾아오게 되었다. 첫 번째 방문은 브리트니 쿠퍼Brittney Cooper 교수가 미국의 반흑인 인종주의 문제에 관한 글을 발표했다가 위협을 당한 후에 이루어졌다. 전화와 이메일을 통한 괴롭힘은 무엇보다도 우리 소통의 최전선에서 전화를 받고 이메일을 전달하고 전화 및 메일 기록을 당국에 제출하는 교직원들을 힘들게 했다. 비겁한 익명 위협은 이런 공격들의 명시적인 표적들에게뿐 아니라 사무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이들, 그러니까 교직원, (근무 시간이 끝난 후 사무실에 있는 경우가 가장 많은) 청소 노동자들, 근로 학생, 학부생 및 대학원생 등에게는 더 심각하게, 공포와 우려를 자아냈다. 내게 가해진 일들에 대응해 여성·젠더학과 직원들은 학교 교원 명단에서 내 이름을 지웠다 (나는 현재 대학원 주임교수를 맡고 있다). 이것을 시작으로, 자세히 밝힐 수 없는 여러 가지, 권고 뿐 아니라 지시 또한 받은, 보안 조치를 취했다. 경찰police에게 우리의 발언을 단속policing하는 이들의 조사를 맡기는 아이러니를 모르는 이는 없었다.
이런 폭력은 우리의 신뢰도를 깎아내리기 위해 쉬운 표적으로 여겨지는 유색인 여성을 희생양으로 삼는 전통과 공명한다. 여성·젠더학과 성원 대다수는 젠더 불순응자, 유색인이며 지칠 줄 모르고 세태를 거스르는 선구적인 학제 연구를 생산하고 있다. 우리 학과에는 사회정의 운동에 헌신하고 종종 공적 지식장에서 논쟁적인 정치적 이슈에 대해 발언하는 많은 학자-활동가가 있다. 그렇기에 본 학과의 지적 사명은 그런 정치학 ― 지배적인 지식 생산의 현상태를 의문에 붙이는 ― 에 맞추어져 있다.
어느 한 사람에게 혐오 메일을 보내고 폭력 협박을 할 때, 사실 그 표적은 한 공동체 전체, 아마도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해 여러 가지 다양한 관점이 있을 공동체 전체다. 혐오 메일은 그저 하나의 목소리가 아니라 다양한 사상가, 학생, 교원, 활동가, 정치적 공간을 막으려는 시도다. 더욱이, 이런 폭력적인 공격은 교직원, 학새으 방문객, 다른 학과 교원 등 수많은 의도치 않은 표적들을 취약하게 만든다. 바사대학과 같은 대학 본부들이 강경한 자세로 교원을 지키지 않고 동문이나 기부자들의 압박에 굴복하는 것은 언론 자유를 억압하는 일은 물론 학술 공동체들 모두를 공포에 질리게 하는 일을 허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자유로이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 특히 점령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경험을 나누고 정의를 위한 국제 연대 운동에 기여하고자 하는 환경을 제공하고 강화하는 것은 공동체의 문제, 대학이 반드시 함양해야 하는 공동체의 문제다.
[편집자 주: 푸아 교수는 언론의 문의에 일절 답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녀가 출간한 글 전체 목록은 www.Jasbirpuar.com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성·젠더학과 임직원은 이 문제에 관한 연락에 일절 응하지 않을 것입니다. https://womens-studies.rutgers.edu/에서 학문의 자유에 관한 학과 성명을 참고하십시오.]
주
| ↑1 | 역주 ― 뎡야핑, 〈강요된 선택, 팔레스타인 청년들의 몸이 무기가 되기까지〉,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2015.11.14. 참고. |
|---|---|
| ↑2 | 2016년 1월에 연구자, 통역가, 그리고 어느 영화의 제작진과 함께 서안에서 두 주를 보냈다. 《도래하는 인티파다The Coming Intifada》라는 가제를 붙인 영화로, 감독은 팔레스타인계 미국인 활동가이자 예술가인 아민 후세인Amin Husain과 니타샤 S.Nitasha S.다. 뉴욕대학교 앤드류 로스Andrew Ross 교수, 런던경제학교 데이비드 그레이버 교수David Graeber도 참여한다. 방문 기간 동안 네 곳의 난민촌 ― 데이샤, 칼란디야, 알-아루브, 아이다 ― 에서 수많은 가족들을 만나 팔레스타인의 현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검문소를 통과하는 노동자들을 인터뷰하거나 의료인, 재활 병원, 장애 센터, 개별 장애인 등을 만나기도 했다. 이번 방문의 일부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과 영구적 장애로 이어지는 전쟁 부상의 관계를 탐구하는 데에 할애했다. 러트거스대학 연구위원회의 지원으로 현재 작업 중인 단행본의 주제다. 방문 마지막 날에는 네 청년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모두 헤브론 북쪽의 같은 마을 출신으로, 한날 저녁에 서로 다른 두 현장에서 이스라엘점령군의 총에 맞았다. 넷 중 셋은 사촌지간이었다. [역주 ― 언급된 “작업 중인 단행본”은 『불구로 만들 권리The Right to Maim』으로 미국에서 2017년에 출간되었다. 니타샤 S.는 니타샤 딜런Dhillon의 오기로 추정된다. 영화 소개는 여기에 일부 남아 있다.] |
| ↑3 | 역주 ― 유대인을 겨냥한 중상모략을 뜻하는 표현이다. 고중세 유럽에서 유대인이 종교 의식에 기독교인, 특히 어린 아이의 피를 쓴다는 혐의를 받았던 데에서 비롯되었다. |
| ↑4 | Nancy Sheper-Hughes and Donald Bostrom, “The Body of the Enemy,” Brown Journal of World Affairs 19/2 (Spring/Summer 2013). |
| ↑5 | 개별 소통, 3016.03.10. |
| ↑6 | 역주 ― 원문 아카이브: https://web.archive.org/web/20160229043914/https://rutgersaaup.org/news/executive-council/defense-professor-jasbir-puars-academic-freedom/ |
| ↑7 | 역주 ― 전미교사연맹American Federation of Teacher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