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개관
정착자 식민주의와 선주민성
선주민성과 국제법
선주민의 미래
개관
2018년 선주민의 날Indigenous Peoples’ Day에 몇몇 팔레스타인 인권 단체에서 국제 사회에 “탈식민의 역사적 화해 및 집단적 해방의 필수불가결한 출발점으로서 원주민의 역사를 중심에 놓을” 것을 요청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최근에 팔레스타인 관련 담론에서 선주민성 개념이[1]원어는 indigeneity. 선주민성, 선주민성 개념 등으로 번역했다. 뜻에 큰 차이를 둔 것은 아니다. indigenous people은 선주 민족, indigenous는 선주민(의)으로 … (계속) 다시 부상해 정치적 결집의 중심적인 측면이 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또한 이 성명은 팔레스타인인 및 지구 곳곳의 선주민 공동체들과 탈식민의 집단적 성격이 갈수록 더 연결되고 있음을, 이것이 세계 각지에서 정착자 식민주의에 맞서 이어지고 있는 투쟁의 중요한 도구임을 강조했다.[2]이 글을 프랑스어로 읽으려면 여기를 클릭하라. 알-샤바카의 글을 번역해 주는 인권 옹호가들의 노고에 감사한다. 다만 의미가 달라진 부분에 대한 … (계속)
그런데 이것이 해방 투쟁에 참여하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실질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그리고 팔레스타인의 권리와 주권을 증진하는 데에 이것이 어떤 쓰임이 있는가?
본 논평은 이스라엘의 정착자 식민주의가 팔레스타인의 선주민성을 만들어 낸 과정에 대한 탐구를 통해 정착자 식민주의와 선주민성이라는 두 개념 및 그 관계를 구체적으로 밝힘으로써 이러한 질문들에 답하고자 한다. 다음으로는 선주민 투쟁에 국제법을 적용할 때의 한계를 논하고, 결론으로 팔레스타인이 선주민성이라는 관점을 자유, 정의, 평등을 향한 팔레스타인의 여정에 더 잘 녹여 낼 방법들을 제시한다.
정착자 식민주의와 선주민성
정착자 식민주의는 사례마다 각기 특수성이 있으면서도 상당 부분 공통된다. 실제로, 팔레스타인의 식민 경험에 고유한 특성들이 있지만, 시온주의 기획은 유럽의 침략·지배 패턴을 따른다는 점에서 특별하지 않다. 다른 정착자 식민 운동과 비슷하게 초기 시온주의자들은 유럽의 우월성을 주장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은 경전의 서사를 근거로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온 선주민 귀환자를 자처했다. 예컨대, 오직 시온주의 정착자들만이 팔레스타인에서 “사막이 꽃피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은 경전 서사를, 따라서 자신들의 이른바 토착적 “선주민성”을 지시하는 동시에 저들의 표면적인 문화적, 지적 우월성과 유럽 자본주의의 특징인 생산성을 지시한다.
그런 점에서 시온주의 운동은 경전을 토대로 한 토착적 선주민성을 활용했다고, 또한 시온주의를 식민 기획으로 인정했다고 할 수 있다. 시온주의 지도자 하임 바이츠만Chaim Weizmann 1947년 담화는 식민적 입장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다른 민족들은 위대한 나라들, 부유한 나라들을 식민지로 만들었다. 그들은 그곳에서 퇴행적인 인구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 퇴행적인 인구들을 위해 그런 일들을 했다. … 다른 민족들의 식민 활동 결과에 비추어 볼 때, 우리가 아랍인들에게 한 일이 다른 이들이 다른 하나에서 한 것보다 특별히 나쁜 결과를 내지는 않았다고 말하고 싶다.
바이츠만과 그 무리는 시온주의의 식민적 성격을 인정했을 뿐 아니라 다른 식민주의자들이 다른 원주민들에게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팔레스타인의 아랍인들”을 업신여겼다.
시온주의 운동은 유럽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에서 토지를 전유하고 정착할 수 있도록 돕고자 여러 가지 기구를 설립했다. 그 중 하나인 팔레스타인유대식민화협회Palestine Jewish Colonization Association는 선주민들을 지배해 정착자들을 위한 공간을 확보하는 역할을 했다. 선주민들은 물론 정착자들 역시 이 정착자 식민 기획의 본질을 잘 알았다. 실제로, 이 시기 동안 많은 팔레스타인인들은 시온주의 운동의 배후에 있는 “대체를 위한 정착” 추진을 우려했으며, 대중 시위, 공식적인 탄원, 정치적 결집, 팔레스타인 언론에의 기고 등을 통해 영국 식민주의와 시온주의 식민주의 모두에 꾸준히 반대했다. 《알-카르밀Al-Karmil》과 《팔라스틴Falastin》, 두 주요 신문에서는 시온주의나 그것이 팔레스타인과 팔레스타인인에게 미치는 영향에 관한 글을 자주 실었다.
그 후로도, 1948년 나크바 이후의 수십 년 간 팔레스타인 학자들, 혁명가들은 정착자 식민주의에 관한 작업을 통해 선주민성 개념과 씨름했다. 1965년에 파예즈 사예그Fayez Sayegh는 「팔레스타인에서의 시온주의 식민주의Zionist Colonialism in Palestine」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스라엘을 “정착자 국가”로 평하고 그 인종주의적 성격은 나중에 덧붙여진 것이 아니라 “시온주의 이데올로기 자체에 내재하는” 것임을 설명하는 글이었다. 이 초기 작업은 이스라엘이 1967년에 서안, 가자지구, 골란 고원을 점령하기 이전 팔레스타인에서 정착자 식민의 현실이 어떠했는지를 논하고 시온주의 기획이 애초부터 갖고 있었던 식민적 성격을 강조함으로써 이스라엘의 1967년 점령이 “문제problem”의 원흉이라는 통념을 반박했다는 점에서 특히 중요하다.
조리 자부어George Jabbour의 『남아프리카와 중동에서의 정착자 식민주의Settler Colonialism in Southern Africa and the Middle East』(1970), 막심 로딘슨Maxime Rodinson의 『이스라엘, 정착자 식민 국가?Israel: A Settler-Colonial State?」(1973) 엘리아 주레이크Elia Zureik의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인: 내적 식민주의 연구The Palestinians in Israel: A Study of Internal Colonialism』(1979) 등의 연구가 사예그의 뒤를 이었다. 이런 후기 작업들은 이스라엘의 정책을 남아프리카의 아파르트헤이트 정책과 연결해, 서구 학계에서 정착자 식민주의를 이스라엘 분석의 중심에 두는 흐름이 생겨나는 데에 기여했다.
학술지 《팔레스타인 연구Journal for Palestine Studies》 창간인인 엘리아스 산바르Elias Sanbar는 1982년에 질 들뢰즈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팔레스타인 유대 정착자들의 아메리카 인디언이기도 합니다. 그들의 눈에 우리의 유일한 역할은 사라지는 거죠. 그렇기에, 이스라엘 건국사가 미합중국을 탄생시킨 과정을 반복한다는 사실은 명백합니다.[3]역주 ― 질 들뢰즈·엘리아스 산바르, 갈피 번역, 〈팔레스타인의 인디언들〉, 《인-무브》, 2025 참고.
이렇게 팔레스타인의 투쟁을 (여러 선주 민족이 북미 대륙을 부르는 말로) 거북섬 선주 민족들의 투쟁과 유비해 보면 정착자 국가들이 공유하는 권력·지배 구조를 잘 알 수 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해방기구Palestine Liberation Organization(PLO) 의장 야세르 아라파트Yasser Arafat는 선주 민족들은 취약하고 원시적이라는 통상적인 관점을 견지하여 이미 80년대에 이런 유비를 일축했다. 패배를 배제하고 팔레스타인 민족의 강고함을 확고히 하고자 했던 것이다. 아마도 2004년에 라말라 본부에 갇혀 지내던 중에 팔레스타인인들은 “붉은 인디언이 아니”라고 말했던 일이 가장 악명 높을 것이다.
1960년대, 1970년대에 PLO에 의제, 목표, 전술을 수립하는 데에 본보기로 삼았던 것은 정착자 식민주의에 맞선 또 하나의 투쟁 ― 프랑스 정착자들에게 승리한 바 있는 알제리 민족해방전선Front de Libération Nationale(FLN)이었다. PLO에서는 침략 구조가 비슷하다고 여긴 알제리의 지도자들에게서 동지애와 식견을 얻고자 했다. 이후에는 아파르트헤이트 ― 남아프리카 정착자 식민 체제가 취한 통치 구조 ― 에 맞선 ANC[아프리카국민회의African National Congress]의 투쟁과 연결 고리를 찾기도 했다.
하지만 학자들, 팔레스타인 지도자들은 수십 년 동안 정착자-식민 패러다임을 팔레스타인에 적용하거나 다른 탈식민 투쟁과의 연계를 멈췄다. 정착자 식민주의 제1시기에는 시온주의의 역사와 이데올로기 및 이스라엘의 탄생을 팔레스타인 해방이라는 정치적 기획과 연결지었던 반면, 제2물결에서는 토지 정책, 박탈, 유대화, 통제 기반구조 등의 측면에서 시온주의 이데올로기 및 정치적 구조들에 집중했다. 특히 1990년대 초에 [와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과] 이스라엘 정착자 식민주의를 두 국가 패러다임으로 평화를 되찾을 수 있을 두 개의 상충하는 민족 운동으로 틀지은 오슬로 협약이 도래하면서 생겨난 일이었다. 동시에, 팔레스타인 시민사회가 성장하고 NGO들이 국제법이라는 틀 속에서, 그리고 권리 기반 옹호를 통해, 자유를 달성하는 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 틀의 한계는 이내 분명해졌다. 해방이나 주권 같은 개념들이 빠졌을 뿐 아니라 팔레스타인과 팔레스타인들에 대한 논의를 1967년 영토로 제한했던 것이다.
지난 십 년 동안에는, 정착자 식민주의 개념이 다시금 이스라엘을 고찰하는 학문적, 분석적 도구로서 등장했다. 학술지 《정착자 식민주의 연구Settler Colonial Studies》 창간, 여러 선집 발간 및 이 주제에 집중한 학술 행사와 학술적 생산물의 증가는 정착자 식민주의를 하나의 학문 분야로 제도화했다. 하지만 정착자 식민주의에 대한 이 같은 갱신된 집중과 해방 실천의 일환이었던 초기 용법 사이에는 큰 차이가 하나 있다. 초기 작업들은 당시 역사적 팔레스타인 전체를 시온주의 정착자 식민주의에서 해방시키고자 했던 PLO의 정치적 기획과 이어져 있었다. 반대로 최근의 연구는 서구 학계에서 비롯된바, 갈수록 신자유주의화되고 있을 뿐 아니라 연구의 “탈정치화”를 선호하는 경향도 있다. 이런 상황에 맞서 지식 위계의 정치화와 해체를 도모하는 작업들은 힘든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스라엘의 시온주의 기획은 확장과 선주 팔레스타인 인구의 제거를 추구하는 기획이다. 이런 분석들을 퇄용하는 학술 작업이 늘고는 있지만 선주민성은 여전히 정착자 식민주의와 같은 수준으로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정착자 식민주의 패러다임에 필수적인 개념인데도 말이다. 정착자 식민주의가 이스라엘 국가가 고수하는 폭력 구조에 주목하고 계속되는 대체의 상황을 설명해준다면, 선주민성은 이 구조가 들어서기 이전의 삶, 이 구조가 작동하는 동안의 저항, 미래의 전망에 주목한다. 바꾸어 말하자면, 선주민성은 팔레스타인인들이 무엇을 지지하고 무엇을 원하는지를 구체화할 수 있게 도와준다.
기실, 선주 민족들은 정착자 식민 침략에 고통 받은, 그로부터 이어지는 말살의 구조에 고통 받고 있는 이들이다. 팔레스타인 시인 마흐무드 다르위시는 1992년작 「‘붉은 인디언’이 그 백인에게 한 끝에서 두 번째 연설The ‘Red Indian’s’ Penultimate Speech to the White Man」에서 정착자 식민주의의 권력·제거 논리를 설명하면서 아라파트와 달리, 아메리카 선주민의 목소리를 빌려 연속적인 전적인 지배 구조를 지시하며, 팔레스타인의 사례를 아메리카의 사례에 견준다.
자유인 콜럼부스는 여기에는 없는
언어를 찾는다
마음씨 좋은 우리 선조들의 해골에서 금을 찾는다
우리 산 자들을 마음껏 들이켜고
우리 죽은 자들을 마음껏 들이킨다
그는 왜 섬멸전에 이리도 열을 올리는가
무덤 속에서까지 끝장을 보려 하는가[4]필자의 번역. [Columbus, the free, looks for a language / he couldn’t find here, / and looks for gold in the skulls of our good-hearted ancestors. / He took his fill from our living / and our … (계속)
선주 민족은 반드시 최초의 침략 이후에도 지속되는 ― 다르위시가 심지어 죽은 후에도 멈추지 않는 “섬멸전war of elimination”이라 칭한 ― 이 같은 구조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선주민성과 국제법
오슬로 협약 이후, 팔레스타인 지도부는 혁명 담론의 상당 부분을 내려 놓고 국제법 틀을 따르는 서사를 채택했다. 팔레스타인의 NGO화와 오슬로에서 비롯된 해외 기부자 의제에의 집중은 팔레스타인 시민 사회의 상당 부분이 국제법에 입각해 권리 요구를 구체화하게 만들었다. 2007년에 유엔에서는 국제법 틀 속에서 세계 선주 민족의 권리를 증진시키려는 시도로 선주민인권선언Declaration on the Rights of Indigenous Peoples(UNDRIP)을 채택했다. 구속력이 없는 문서였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의 찬양을 받기도 했지만, UNDRIP은 심각한 비판과 논쟁을 직면하기도 했다. 특히 선주 민족에 대한 서술에 한계가 있을 뿐 아니라 기존 민족국가들의 영토 온전성을 유지하는 데에 중점을 두었다는 점에서 선주민의 주권을 허락지 않는다고 느낀 선주민 공동체들에서 비판이 나왔다.
국제법의 주요 한계선을 준수한 UNDRIP은 46(1)항에 명시한 대로 국가를 이미 확정된given 법적, 정치적 틀로 받아들인다.
이 선언문은 어떤 국가, 민족, 집단, 혹은 개인에게 국제연합헌장에 반하는 일체의 행위에 대한 권리를 부여하는 것으로 해석되거나 주권적 독립 국가의 영토 온전성 혹은 정치적 통일성을 전적으로든 부분적으로든 훼손 혹은 손상시킬 수 있는 일체의 행위를 승인하거나 장려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없다.
UNDRIP은 자치self-rule를 종종 언급하면서도 여러 선주 민족들이 여전히 열망하는 민족의 독립적 자결과 외적 주권에의 권리를 배제한다. 대신에 이 선언은 문화정 정체성 보존을 위한, 국가 내에서의 선주민 자율성 혹은 자치를 이야기한다. 따라서 해당 공동체들 스스로의 관점에서 이야기되는 선지 민족들의 정치적 열망을 상당 부분 침식한다. 물론 “주권sovereignty”이 의미하는 바는 내적 자치와 문화적 보존 및 온전성에서부터 탈식민화 과정을 통한 외적 자치에 이르기까지 선주 민족에 따라 다양하다. 전자는 기존 국가 구조 내에서의 자율성을 의미하며 후자는 기존 권력 구조의 파괴/해체de(con)struction를 함의한다.
선주민성에 대한 이러한 법률 분석적 접근은 또한 정착자 식민주의를 구조가 아니라 사건으로 여긴다. 정착자 식민주의를 지속적인 과정으로 포착하지 못함으로 인해 ― 따라서 정착자 식민적 틀을 활용하지 못함으로 인해 ― 이 선언문은 수많은 역사적, 현재적 부정의를 간과하고 현대 식민 국가의 존재를 합법화함으로써 “충돌 이후post-conflict”의 상황으로 비약한다. 더욱이, 이 선언은 탈식민화 과정이나 역사적 사법 절차나 송환 등 그러한 과정에 이바지할 수 있을 요소들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결여하고 있다. 본질적으로, 선주민 투쟁의 합법화는 선주인이 탈식민화된 미래를 상상하는 양식과 방법을 제약한다.
UNDRIP은 그저 여러 선주 민족의 정치적 열망을 침식할 뿐 아니라 그들을 특정한 규정으로 제한한다. 그렇기에 국제법 영역에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권리 억압에 관한 활동을 하고 있는 많은 이들이 아파르트헤이트 같은 틀을 선호하는 것이다. 특히 아파르트헤이트는 국제법 상 중범죄로 간주되며 반대 투쟁에 국제적 연대를 모아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제법 밖에서는, 아파르트헤이트와 선주민성이 상호배타적인 개념이 아님에, 그리고 아파르트헤이트가 선주 민족들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기제로 쓰여 왔음에 이견이 없다.
그런데 팔레스타인의 경우 선주민성 개념을 활용하는 것은 보다 복잡한 문제다. 예컨대 나캅 지역 팔레스타인 베두인족Bedouin의 권리를 옹호하는 일각에서는 이 집단의 권리를 확보하는 데에 선주민성 개념을 활용해 왔다. 하지만 여기서 선주민성은 전체 팔레스타인 민족Palestinian people의 일부로서 베두인족의 권리를 지지하고 그들의 집단적, 개인적 권리를 위한 활동으로 이어지기보다는 분열의 기제로서 작동해 왔다. 베두인족의 선주민성을 특권화하고 다른 팔레스타인인들을 선주민으로 여기지 않음으로써, 이 옹호 전략은 베두인족을 소수자 범주로 놓고서 그 아랍, 팔레스타인 맥락에서 탈각시키며, 선주 민족들은 부족적tribal이고 과거에 갇혀 있다는 고정 관념을 강화한다.[5]팔레스타인 베두인족이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생활 방식과 정체성을 지켜 온 긴 역사가 있다는 사실과는 별개다.
팔레스타인 베두인족이 팔레스타인 민족이라는 큰 공동체의 일원이면서도 특유의 문화와 정체성을 갖고 있음을 인정해야 그들의 투쟁을 섬세하게 이해할 수 있다. 팔레스타인 베두인족의 사례는 선주민성과 민족주의nationalism 간의 중요한 교차점들을 알려주며, 둘이 상호 배타적이지 않다는 증거이다. 오히려, 선주민성은 한 국가적national 투쟁의 경험을 집단화할 수 있다.
성장 중인 법적 담론들이나 선주민성 범주들에 관련되는 분 논평의 비판이나 의문이 이런 담론들을 전적으로 거부하자는 말은 아님을 밝혀둘 필요가 있겠다. 오히려 본 분석은 “법적 선주민성”과 국제법 일반의 한계를 강조하고 팔레스타인 민족 서사에 선주민성 및 선주민의 탈식민화 열망에 대한 보다 전일적인 이해를 담을 필요성을 지적하기 위한 것이다.
선주민의 미래
오늘날 팔레스타인인들은 지리적으로 이스라엘, 서안, 가자지구에 나뉘어져 있으며 세계 각지에 망명해 흩어져 있다. 선주민성은 이 파편들을 하나의 경험 ― 계속되는 나크바 혹은 알-나크바 알-무스티미라al-Nakba al-mustimirrah라고 부르기도 하는, 정착자 식민주의의 과정 ― 에 이어준다. 또한 이 파편들을 팔레스타인에, 그들의 무게 중심에 이어준다. 패러다임이자 정체성으로서의 선주민성은 여러 문화, 언어, 인식론에 걸쳐, 선주 민족들을 주목하고 재중심화한다. 선주민의 지식과 이해, 특히 침략 및 말살 시도에 대한 저항을 핵심부에 위치시킨다. 지식과 지식 생산을 ― 특히 어떤 지식과 역사적 원천이 가치 있고 믿을 만하다고 여겨지는지를 물음으로써 ― 새로이 사유할 수 있게 한다.
이 패러다임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할 뿐 아니라 또한 미래에 대한 사유를 확장시킨다. 선주민성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투쟁의 초점을 모든 팔레스타인인을 위한 탈식민화와 해방에 맞추기를 요구한다. 이런 의미에서, “영토”와 “협상이라는 현재의 틀이 자유와 정의를 구현하기에 모자란 것임을 드러낸다. 팔레스타인의 미래는 반드시 그 모든 파편들에서 논의되어야 하며, 이는 오직 시온주의는 팔레스타인 민족을 선주민으로 만든 정착자 식민주의라는 이해를 밑바탕 삼을 때에만 가능하다. 원주민이라는 존재와 그들의 새로운 정치적 현실을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식민적 접촉이다. 따라서 선주민성은 하나의 정치적 현실로, 그 변화가 탈식민화를 가져다 줄 정치적 현실로 여겨져야 한다.
선주민성을 팔레스타인의 권리와 주권을 이룩할 도구로 활용하는 데에는 심각한 어려움들이 따른다. 선주민성과 정착자 식민 분석을 다시 끄집어 내는 일은 여전히 주로 학계나 특정 활동 영역에 머문 채 제한적으로만 정치적 영역으로 번역되고 있다. 이스라엘 내에서 팔레스타인의 정치적 재현은 주로 국가의 틀 속에서 평등한 “권리”의 이룩을 추구해 왔으며, PA는 국제법의 한계선 내에서 (지금은 의문스러워졌지만) 서안과 가자 지구에 국가를 수립하고자 한다. 둘 다 각자의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 실패했음을 물론, 팔레스타인 난민과 그들의 귀환권과 배상권을 적절히 녹여내는 데에도 실패했다.
선주민성 개념과 민족주의 개념은 상충하기도, 중첩되기도 한다. 선주 민족들이 민족주의적 열망을 가질 수 있으며, 실제로 갖기도 한다. 다른 공동체들과 다를 바 없이, 그들은 복수적複數的이며 그들의 정치경제적 구조들, 열망들은 변하기도 한다. 하지만 민족국가nation 구성에의 희망은 물론 그들의 선주민성마저 지워버리려 드는 계속되는 절멸 구조가 그들의 경험과 열망을 규정한다. 그 결과 선주민성은 팔레스타인의 정치적 기획을 어디에 있든 모든 팔레스타인인을 제거 시도에 직면한 선주 민족으로 이해하는 보다 포괄적인 기획으로 재사유할 길을 제시한다.
더욱이, 선주민성은 시온주의 기획이 팔레스타인에 고유한 것이라는 신화를 깨고 그것을 전 지구적 정착자 식민 기획들의 맥락 속에 위치시킨다. 이는 팔레스타인인들이 다른 선주 민족들과 연대의 고리를 그릴 수 있게, 그리고 얽히고 설킨 억압의 실타래를 인식할 수 있게 해준다. 탈식민의 미래를 고민하는 일은 정치적 패러다임 (재)변화의 중요한 일부다. 기실, 현 상태를 유지할 생각밖에는 없는 외세들이 부과하는 유일한 전망이 아니라 팔레스타인의 갖가지 미래 전망들을 다시 중심에 놓을 수 있도록, 자유와 정의를 위한 팔레스타인의 투쟁을 필히 다시 조율해야 한다.
주
| ↑1 | 원어는 indigeneity. 선주민성, 선주민성 개념 등으로 번역했다. 뜻에 큰 차이를 둔 것은 아니다. indigenous people은 선주 민족, indigenous는 선주민(의)으로 옮겼다. |
|---|---|
| ↑2 | 이 글을 프랑스어로 읽으려면 여기를 클릭하라. 알-샤바카의 글을 번역해 주는 인권 옹호가들의 노고에 감사한다. 다만 의미가 달라진 부분에 대한 책임은 번역자에게 있다. |
| ↑3 | 역주 ― 질 들뢰즈·엘리아스 산바르, 갈피 번역, 〈팔레스타인의 인디언들〉, 《인-무브》, 2025 참고. |
| ↑4 | 필자의 번역. [Columbus, the free, looks for a language / he couldn’t find here, / and looks for gold in the skulls of our good-hearted ancestors. / He took his fill from our living / and our dead. / So why is he bent on carrying out his war of elimination / from the grave, until the end?] |
| ↑5 | 팔레스타인 베두인족이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생활 방식과 정체성을 지켜 온 긴 역사가 있다는 사실과는 별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