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에 《앗-사피르As-Safir》 신문에 실린 시리아 극작가 사달라 완누스의 이 글은 캠프 데이비드 협정에 대한 비탄이 담겨 있다. 1967년 나크사의 후속 조치로 이집트 대통령 안와르 사다트와 이스라엘 총리 메나헴 베긴이 비밀리에 서명한 일련의 정상화 협약이었다. 완누스는 이 잇따른 패배에 그저 체념하는 대신, 팔레스타인 강탈에 자신이 공모했다고 선언한다. 식자층 ― 다마스커스부터 바그다드까지의 좌파 극작가, 언론인, 사상가들 ― 이 부지 중에 제 말로 “모래성”을 쌓았다는 것이다. 그는 식자층이 “권위주의적 음모들과 거짓 정보의 유포”에 보다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아마도 자신들의 완패를 예측할 수 있었으리라고, 그런 일을 막기 위해 무언가 할 수 있었으리라고 썼다. 하지만 자기 과오를 밝히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완누스는 말을 행동으로 바꾸는 것, 패배의 침묵 속에서 언어를 찾는 것, 궁극적으로 해방 투쟁을 되살리는 것이 아랍 지식인의 임무라고 믿었다.
망인이 누운 관이 나아가고, 풀 죽은 우리는 그 뒤에서 힘 없이 걷는다. 우리는 망인이자 조객이다. 나의 절반은 관 속에 있고 나머지 절반은 그 뒤를 따라 걷고 있다. 다리 사이에 꼬리를 말아 넣고서.
장례행렬은 시간의 ― 역사의 ― 박자로 움직인다. 하루하루가 부드럽고 순조롭게 미끄러져 우리 발자국처럼 모래 속으로, 슬픔 속으로 빠져든다.
우리는 통곡하지 않는다. 관 뒤를 걷는 일은 이미 몸에 배었다. 관 뒤를 걷고 있음을 잊는 것이 몸에 배었다. 모래가 우리를 삼켜 우리를 지울 때까지, 흘러가는 하루하루와 함께 스르르 나아간다.
라디오 방송국이 굉음을 멈추기만 해도, 노래하는 용병들의 목구성에서 성대가 떨어져 나가기만 해도, 아랍 지배자들이 연단에서 포효를 삼가기만 해도, 그 침묵의 애통함이 우리의 장송에 일말의 존엄을 허락해 줄 텐데.
아 라디오 방송국이여, 아 지배자들이며, 부디 조금만 조용히 해다오. 저 관 속에 누운 것은 고국이요 대의이며 필생의 소망이니.
장례행렬이 나아간다 …
내 한쪽은 관 속에 있고, 다른 한쪽은 그 뒤를 힘 없이 따라 걷는다,
풀 죽은 채로.
제2차 캠프 데이비드 협정문에 쓰여 있기로, “[평화 협약에 서명하고 일시 철수가 완료됨에 따라, 이집트와 이스라엘은] 완전한 인정, 외교·경제·문화적 교류, 경제 제제 및 여객·물류의 자유로운 이동에 대한 차별적 장벽 해소를 포함하며 적법 절차에 따른 양국 시민의 상호 향유를 보장하는 정상적 관계의 수립에 합의한다.”
그리고 카터는 이렇게 말했다. “이집트와 자유 유대 민족이 평화롭게 지낸 것은 이천 년도 더 전의 일이다. 지금 우리가 기대하는 바가 실현된다면, 올해에는 다시금 그런 평화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카터는 이렇게 말했다. “팔레스타인해방기구는 테러리스트 범죄집단에 지나지 않는다. 나치나 KKK와 다를 바 없다.”
그리고 사다트가 의회에서 연설을 하기 전에 카터 대통령에게 인사를 건네자 좌중은 장장 삼 분에 걸친 기립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그리고 레바논은 피를 흘리고 있다. 레바논 땅은 내분과 외세와 이스라엘로 인해 갈기갈기 찢겼다.
[레바논 대통령] 카밀 샤문은 우파 분파들이 레바논 내에 저들만의 국가를 세울 수 있게 도와달라며 이스라엘에 군사 개입을 요청했다.
그리고 시리아군은 레바논의 미궁에 빠진 골란 고원의 바위들을 내팽겨쳤다.
그리고 오만은 이란의 도움을 받아 북예멘과 남예멘 사이에 시한 폭탄을 놓았다.
아랍 마그레브 전역에서 소총이 장전되고 손가락은 언제라도 방아쇠를 당길 준비를 하고 빵집 줄은 갈수록 길어지고 석유는 미국과 유럽의 주머니로 흘러간다.
텔레비전, 라디오, 신문, 연설, 모두가 시민들을 세뇌할 음모에 열을 올린다.
… 그리고 우리는 통곡하지 않는다 …
장례행렬이 나아간다 …
내 한쪽은 관 속에 있고, 다른 한쪽은 그 뒤를 힘 없이 따라 걷는다,
풀 죽은 채로.
삶은 시들어가고, 나는 “아니요”라고 말하는 꿈을 꾼다. 감옥이 되어버린 고국 땅에, 고문과 길들이기의 현대화에, 공식 연설에, 아랍 여행 비자에, 분열과 분할에, 99.99% 국민 투표에, 보여주기식 개발 계획에, 끝도 없이 풍선을 띄우는 축하에, 경찰의 통치에 힘을 싣는 전쟁에, 석유 왕자들에게 아랍 지도자의 왕관을 씌워주는 승리에, 장사꾼의 배를 불리고 캠프 데이비드 협정으로 이어지는 이런 일들에 “예” [하는] 시민들에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고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기만에, 무지에, 물러터짐에, 굶주림에, 도륙에, 학살에, 아니라고.
“예”에 아니라고. [대서]양에서 [오만]만까지의 아랍 시민을 권위주의적으로 정의하면 그게 바로 예다.
나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고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혀를 찾아 더듬어 보지만 피거품과 공포 뿐.
내 잘려 나간 혀에서 패배가 시작되었다. 장례행렬이 출발했다.
아랍 세계 전역에서 억눌린 나의 “아니요”에서 적들이 쳐들어 왔다. 빈곤이, 기아가, 감옥이, 고문이 쳐들어 왔다. 그렇게 현대의 아랍이 무너졌다.
나의 “아니요”가 압수 당하고 재갈 물리지 않았더라면 [수단 수도] 하르툼의 “아니요”들이 산산이 부서져 시나이 사구들 아래 묻히는 일은 없었으리라. 사다트 같은 치가 아랍 세계의 운명에 그만한 해를 범하지 못했으리라. 나의 “아니요”가 압수 당하고 재갈 물리지 않았더면, 이리저리 진동하는 나를 베틀의 북 삼아 [미국 국무장관] 키신저가 내 수의를 짜는 일도 없었으리라. 내가 베이루트에서 네 해 동안 총탄과 파괴로 갈가리 찢기는 일도, 내 발 밑의 땅이 요동 치고 적대와 분쟁과 나오지 않는 비자로 속박 당하는 일도 없었으리라.
… 요컨대 나의 “아니요”가 압수 당하고 재갈 물리지 않았더라면, 나의 절반이 관 속에 눕는 일도 나머지 절반이 힘 없이 그 뒤를 따라 걷는 일도 없었으리라.
“아니요”를 압수 당하고 나는 그저 피해자이자 방관자가, 혹은 망인이자 조객이 아니라 공모자가 되었다. 혹독한 비통과 수치심을 안고, 이제 실감한다. 나나 내 곁의 수백만 명이 분리를 공고히 했음을, 팔레스타인과 그 저항을 헛되이 날려버렸음을, 억압 기계에 힘을 실어 주었음을, 적을 앞에 두고 난데 없이 철수하는 데에 가담했음을, 데베르수아르 의혹에[1][역주] Deversoir conspiracy. 데베르수아르는 수에즈 운하에 위치한 전략적 요충지로, 1973년 10월 전쟁에서 이스라엘군이 이집트군을 격퇴함으로써 … (계속) 눈을 감았음을, 아무 대가도 없이 수천 명을 순교케 했음을, 이스라엘을 방문하는 사다트와 함께 비행기를 탔음을, 굶주린 내 몫을 떼어 주인들, 기생충들, 석유 왕자들의 연회에 보탰음을.
내 “아니요”가 압수 당했기에, 나는 내 상한 양심 속에 작은 사다트가 살고 있음을, 나는 피해자이자 구경꾼이, 장례식이자 조객이, 무엇보다도 공모자가 되는 벌을 받았음을 알고 겁에 질렸다.
장례행렬은 시간 ― 역사 — 이다. 나의 개인사요 민족사다. 그리고 말하건대, 그 어떤 초현실적인 양자 회담이나 다자 회담, 협의, 회의도 내게 내 장례식이 보이지 않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리고 말하건대, 이 고국 땅 한귀퉁이에서 드문드문 아직도 공식적인 “아니요”들이 나부끼고 있기에 내 심장은 뛰지 않는다.
슬픔이 나를 성숙케 했고 나는 어른이 되었다.
수두룩한 정상회담에서 내가 거둔 것이라고는 현기증과 선언의 신기루 뿐.
내가 나의 “아니요”를 되찾지 않으면 저 모든 공식적인 “아니요”들은 텅 빈 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말하건대, “내가 되찾지 않으면” 말이다. 내가 내 권리를 간청하고 있다고 혹은 애원하고 있다고 착각지 말라. 아랍 권좌들에서 위협 요소들의 목록을 면밀하게 작성해 두었음을, 그리고 그 목록에 “아니요”라고 말하는 시민 ― 이스라엘보다도 더 큰 위험, 제국주의보다도 더 교활한 음모 ― 이 올라가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요구도 애원도 무용하다. 내가 꿈꾸는 것, 내가 원하는 것은 탈환이다.
… 내가 재갈 물린 “아니요”를 되찾기 않는 한, 망인이 누운 관이 나아가고 우리는 그 뒤를 힘없이 걸으리라, 풀죽은 채로.
주
| ↑1 | [역주] Deversoir conspiracy. 데베르수아르는 수에즈 운하에 위치한 전략적 요충지로, 1973년 10월 전쟁에서 이스라엘군이 이집트군을 격퇴함으로써 이집트를 수세에 몰아넣은 계기가 된 곳이다. 패배의 원인이 둘의 내통 혹은 이집트 측의 내홍이라는 의혹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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