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초의 어느 화요일, 오후 두 시 반이었다. 나는 리투아니아 대사관에 솅겐 비자 신청서를 제출하기 위해 에딘버러에 있는 비자 지원 센터를 방문해 오른쪽 끝자리에 앉아 대기하고 있었다.
거의 두 시간 가까이 기다린 참이었다. 주위에는 “유색인”이 여럿 있었다. “백인” ― 혹은 전에 공공연히 쓰였던 말로는 “우월한 인종” ― 으로 분류되지 않는 우리는 종종 그렇게 불리곤 한다.
그렇게 노골적이었던 언어는 시간이 흐르면서 보다 미묘해졌다. 그것들은 우격다짐이라도 하듯 공항이나 대사관 같은 곳들에, 혹은 8월 4일 그날 내가 앉아 있었던 그런 곳에 돌아온다. 그날 내 옆에서는 검은 곱슬머리를 땋아 묶은 두 살이 채 안 된 소녀 하나가 어머니 무릎에 앉아 미소 짓고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오전 열 시부터 기다렸는데도 아직 차례가 오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열두 시 반에 예약이 되어 있었다.
우리 같은 이들에게는 시간이 중요하지 않다는, 우리의 시간에는 아무 가치도 없고 예약은 형식적인 거짓말에 불과하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 같았다.
내 손에는 나라는 “절박한 팔레스타인인”에게 그들의 나라에 망명하거나 정착할 의도가 없음을 증명하는 갖가지 직간접적 서류가 들려 있었다. 한 주 내내 준비한 것이었다. 남편을 포함해 제출한 서류의 진위나 리투아니아를 거쳐 다른 곳으로 가려는 건 아닌지를 둘러싼 근거 없는 의심을 비롯한 이상하고도 터무니 없이 사소한 이유로 반려 당한 친구들에게서 온갖 이야기를 듣고 온 터였다.
사실, 열심히 이유를 찾을 필요도 없다. 내 여권 — 이게 여권이긴 한가? — 에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이름이 적혀 있다. 공항 직원들은 매번 내 여권을 이상하게, 마치 처음 본다는 듯이 쳐다본다. 아마도 가짜인지 진짜인지를 궁금해하는 것이리라. 진짜라면 대체 어느 나라에서 발급된 것인지를.
편을 들어주자면, 팔레스타인이 아니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라니, 솔직히 꽤 아리송하긴 하다.
그들이 우리를 싫어하는 이유
전기도 물도 여권도 없이 지냈던 가자에서는, 스스로에게 내겐 책이 곧 여권이라고 말하곤 했다 — 책을 통해서, 방을 나서지 않고도 세계를 여행할 수 있다고. 우리 네 자매가 함께 쓰는 방에 앉아 줄곧 독서를 하며 아마 평생 볼 일 없을 땅들 위를 날아다니곤 했다.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졌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 오늘 앉아 있는 비자 센터에서 — 돌아보니 오직 슬픔만 느껴진다. 팔레스타인 여권을 들고 세상을 돌아다닌다는 게, 곳곳의 검문소와 국경을 지날 때마다 이스라엘의 표현대로 “인간 동물”로 취급받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를 상상하는 불안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애썼다는 것을 깨닫는다.
몇 년이 지나 여기 다시 앉아, 가자에서 궁금해 했던 것을 다시 궁금해 한다 — 우리는 왜 이렇게까지 멸시 당하는가?
신청이 승인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 남편의 신청서는 이틀 만에 반려되었고, 친구들 여럿도 마찬가지였다. 팔레스타인 여권으로 솅겐 비자를 받는 것은 어렵기로 악명 높다. 영국 여권처럼 “훌륭한respectable” 여권이라면 전혀 다를 것이다.
전액 장학금을 받고 9월 23일부터 영국에서 유학을 하게 되었을 땐 이 봉쇄된 곳을 벗어나 공부를 계속할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도 기뻤다. 가자 바깥의 세계를 보고 무언가를 가지고 돌아오고 싶었다. 지식을, 문화적 경험을, 고향에 있는 다른 학생들에게 영감이 되어줄 기회의 씨앗을.
영국의 일류 대학들에서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 허가를 받고도 떠날 수가 없어 아직 인종학살에 붙잡힌 채 가자에 남아 있는 일흔 명이 넘는 학생들의 얼굴에서 과거의 나를 본다. 그들 역시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 화면을 통해서만 보아 온 사람들을 만나고 “정상적인 삶”이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하는 꿈을 꾼다.
처음 입학 허가를 받았을 땐 말로 다 못할 만큼 신이 났다. 그러니 지금 그 학생들이, 포위와 폭격을 견디고 있을, 그러나 열린 창으로 들어오는 희미한 빛을 보고 있을 그 학생들이 어떨지 생각해 보라. 창은 그들에게 무언가 — 굶주림, 두려움, 천막, 무너진 건물이 없는 삶 — 믿고 기대할 것을 준다. 책이, 수업이, 우정이, 심지어는 미래에 대한 계획까지도 있는 삶을.
하지만 팔레스타인 여권에 의심 어린 시선을 던지는 세계는 이 학생들의 인간됨을 경멸하는 바로 그 세계다. 영국 정부는 아일랜드나 이탈리아와 달리 자기네 장학생들을 대피시키기를 거부했다. 아무리 똑똑해도, 아무리 자격을 다 갖추었어도, 아무리 큰 희망을 품고 있어도, 아무리 성실해도, 그들은 여전히 팔레스타인인이다.
영국은 가자에는 생체 지문을 채취할 비자 센터가 없어서 학생들을 대피시킬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문은 정치적 의지만 있다면 이집트나 요르단에서도 채취할 수 있다. 그런데도 영국은 — 센터가, 지문이, 비자가 — 없다는 것을 핑계로 삼는다. 오만 때문에, 그리고 인종학살 앞에서도 고집을 꺾지 않는 관료주의 때문에, 공부와 대피에 필요한 모든 조건을 갖춘 학생들이 반려 당한다. 마치 이 학생들은 온전한 인간의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는 듯이.
계획을 세울 수 있는 특권
우리는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 소위 민주 국가들은 대체 언제까지 우리 같은 이들, 대사관 입구와 대기실에서 모욕을 받게 만드는 여권을 가진 이들을 짓밟으면서 자기네 자유를 찬미하려는 걸까. 혹여 자비로운 관리들이 우리 서류를 통과시켜주지라도 않으면 영영 끝나지 않는 걸까.
그저 서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이 오늘날 제국의 모습 — 딱 떨어지는 예약 시스템과 반려 이메일로 말쑥하게 차려 입은 관료주의적 제국주의 — 이다.
시계가 네 시를 알린다. 드디어 내 번호가 불린다.
“부인, 이건 접수가 안 됩니다.” 직원이 말한다.
놀라지는 않는다 — 이유는 바뀌지만 결과는 늘 한결 같다.
하지만 얼마간 승강이를 한 후 그들은 접수를 받기로 한다 — “본인이 책임지고 결과에 승복하겠다I’m applying at my own risk”는 조항에 서명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밖으로 나온다. 대기실에는 두 명만 남았다. 예약 시각 두 시간 후로 예매해 둔 기차는 떠난 지 오래다. 별일은 아니다. 나는 팔레스타인인이다. 나중을 계획하는 것은 우리로서는 거의 누릴 수 없는 특권이다. 우리 삶은 모든 것이 임시적이다.
준비한 서류 중 필요 없었던 것들을 휴지통에 버린다. 『탄투라에서 온 여자The Woman from Tantoura』는 남겨 둔다. 나크바와 그 오랜 여파에 관한 소설이다. 궁금하다. 나는 평생을 비참한 이야기를 읽고 비참한 이야기를 쓰고 비참한 의자에 앉아 끝없이 기다리며 보내야만 하는 운명인 걸까.
몇 주가 지나도록 소식이 없었다. 즉각 반려되지 않았다는 것은 아직도 절차가 진행 중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내가 발표하기로 되어 있는 학술대회에 갈 준비를 시작했다. 팔레스타인이지만 비자를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믿기로 했다.
25일만에 답이 왔다. 언제나와 똑같은 답이었다. 반려.
* 사가 함단은 가자 출신의 팔레스타인 작가, 활동가, 연구자이다. 현재는 영국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주된 관심사는 포위와 인종학살 하에서의 생존과 삶, 기억이다.
이스라엘이 ‘기다림’을 강제해 어떻게 팔레스타인을 통제하고 그로부터 이윤을 내는지에 관한 글로 재스비어 K 푸아의 「공간적 쇠약: 팔레스타인에서의 느린 삶과 감금 자본주의」(2021; 아마도독자 역)가 있다.
샤람 코스라비가 편집한 Waiting – A Project in Conversation(Transcript Verlag, 2021; “기다림 ― 대화 프로젝트”)에도 팔레스타인인들이 겪는 지연과 기다림에 관한 글들이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