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이 글은 알-샤바카Al-Shabaka의 정치 분석가들이 경계를 넘는 협업을 통해 팔레스타인에 단일한 정통적 서사가 있어야 하는가, 그렇다면 그 서사는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따져보는 서사·담론정치서클을 여는 글이다. 알-샤바카 정치서클은 분석가 그룹이 팔레스타인 민중에게 핵심적인 중요성을 갖는 문제에 대한 장기 연구 및 성찰을 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이다.
한때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의 현신이었던 팔레스타인해방기구Palestine Liberation Organization(PLO)는 서안 피점령지에 흩어져 있는 감옥 군도群島의 간수장 노릇을 하는 주권 없는 기관entity —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lestinian Authority (PA) — 으로 변모해버렸다. 이러한 변화에서 비롯된 파열은 세계 도처의 팔레스타인 사회에서 팔레스타인 역사 서사가 극심하게 균열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8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립 25주년 기념일을 맞아, 이 논평은 팔레스타인해방기구가 오슬로에서 항복했음에도 계속되고 있는 해방 투쟁의 가장 중요한 틀 중 하나, 즉 해방에 대한 권리 기반 접근법을 검토하고 그에 대한 찬반양론을 평가한다.[1]이 글을 프랑스어로 읽으려면 여기를 클릭하라. 알-샤바카는 우리 글을 번역하는 인권 활동가들의 노고에 사의를 표한다. 다만 의미가 달라진 부분에 … (계속)
인민의 집단성collectivities of people이라는 맥락에서 “서사”란 “우리” —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데,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 에 대한 유의미한 이야기를 뜻한다. 외세의 지배가 개입할 때면 예외 없이 반식민 민족주의적anti-colonial nationalist 흐름이 전면에 나와서는 종종 식민 이전의 목가적인 (그리고 시대착오적이게도 민족적인national) 과거를 상상하는 서사를 낳곤 한다. 그런 서사에 따르면 이 과거는 식민자들의 잔인성에 의해 단절되었으며 오직 해방을 가져오는 영웅적인 반식민 투쟁으로써만 [그런 현실을] 타개할 수 있다. 여기서 해방은 종종 독립적, 주권적, 그리고 예외 없이 민족적인 국가라는 형태로 상상되곤 한다.
“정치적인” 것이란 권력이 사회적인 몸에 현현하는 것이다. 이 권력은 얼마나 흩어져 퍼져있건 특정한, 상호작용적 축들을 중심으로 응결되어 복잡하고 중앙집중적인 특권/주변성의 위계를 형성하며 이로써 그룹들, 개인들이 자기 고유의 역사를 어느 정도까지 만들 수 있는지를 조건 짓는다.[2]이러한 축들 ― 계급, 젠더, 인종, 장애 여부, 섹슈얼리티 등 ― 은 자연본성으로 존재하는 정체성이 아니라 그 소유자에게 특정 지위를 부여하는 … (계속)
실상 정치적인 것이란 끊임 없이 변화하는 투쟁의 장소다. 식민의 맥락에서 권력의 민족적-인종적 축들은 식민자 사회와 원주민 사회 모두가 납작해 보이게 되는 식민자, 피식민자 양자의 서사들에서 가장 주요한 지위를 획득한다. 양 사회 모두에서의 남성 우월성 같은 내적인 종속 구조들은 민족 서사에서 제거되어 유토피아적인 미래의 어느 날, “독립의 날”의 일로 연기된다 — “가장 주요한” (식민의, 라는 뜻이다) 종속의 축이 사라지는 그날로 말이다.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각지 대부분의 경우, 식민 이후의postcolinal 과도기에 해방 지도부는 새로운 폭군으로 변했다.[3]프란츠 파농이 예측을 담은 글이 여전히 이에 대한 가장 심도 있는 분석 중 하나로 남아 있다. Frantz Fanon, “The Pitfalls of National Consciousness,” The Wretched … (계속) 이런 지도자들은 투쟁이라는 허울을 쓰고는 신식민 맥락에 — 그리고 1980년대 이해로는 또한 신자유주의적 맥락에 — 있는 주권국으로서 권위주의라는 부패를 행했다. 팔레스타인의 경우 이 같은 새로운 구조적 지배, 궁핍화 형식들은 오슬로 평화 절차에 따라 PA 구조가 이스라엘의 제1방어선으로서 추가되면서 그저 심해지기만 한 계속되는 정착자-식민적 확장의 잔인성을 심화하는 데 복무했다.
권리 기반 접근법: 정치적인 것을 PA에 양도하다
오슬로 협정과 그러한 역사적인 항복이라는 행태로 이어진 군사력, 외교력의 심각한 불균형을 돌파할 길을 찾는 과정에서, 신흥 NGO 부문에 전략적으로 자리를 잡은 일부 팔레스타인인들은 국제법 체제를 통한 해방의 가능성을 엿보았다. 2차 세계대전의 참상에 연원한 이 체제는 개인들, 집단들이 전횡적인 잔혹 행위와 지배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를 강조한다. 오슬로의 교착에 대항할 방안으로 팔레스타인이 “권리 기반” 전략을 택한 것은 PA가 국제적으로 팔레스타인의 대표성을 독점한 상황을 우회하기 위해서였다.
이 접근법은 정치적, 제도적 스펙트럼 상의 다양한 그룹들, 개인들을 스스로를 팔레스타인 “시민civil 사회”로 이르게 된 혼합체로 한데 모았다. 이 흐름은 팔레스타인인들을 정치적으로 대표한다고 주장하는 대신 “시민적”, 도덕적-법적 대표성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렇게 PA와 “시민 사회”의 미묘한 답케dabkeh가 시작되었다. 권리 기반 옹호활동은 분할과 영구 평화 과정에 대한 실용주의적 반원칙들에 두 발을 단단히 고정해, PA가 팔레스타인 민족national 사안의 관리자라는 자기 서사에 맞는 활동들을 택할 수 있도록 정치의 발가락을 밟지 않기로 한 것이다.
권리 기반 시민 사회 전략은 아주 성공적이었다. PLO와 PA 양측 지도부의 정당성 위기가 지난 몇십 년의 팔레스타인 정치를 망쳐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보이콧·투자철회·제제(BDS) 운동은 성장세를 유지한 데서 잘 알 수 있다. 내가 “불구하고”라는 말을 강조하는 것은 PA 지도부가 주기적으로 BDS 운동을 약화시키기 위한 조치를 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권리 기반의 성공들에는 대가가 따랐다. 법을 중시하는 틀로 방점을 옮김으로써 팔레스타인 투쟁은, 적어도 국제적 규모에서는, 그 근본적인 정치적 성격을 보지 못하게 만드는 위험을 떠안았다.
“우리는 귀환할 권리를 요구한다”라는 문구가 그 예다. 이것은 쫓겨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미 귀환활 권리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놓치는 말이다. 정치적 요구는 쫓겨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실제 귀환, 그와 더불어 인종 우월주의적 인구 공학적 목적에서 이 귀환을 부정하는 식민 기획의 철저한 정치적 말로여야 한다. 누군가 당신을 유괴한다면, 당신의 자유권right to liberty이 침해당한 것이 아니라 당신이 더 이상 자유롭지free 않다는 것이 진짜 문제다.
국제 영역에서 “정치적인 것”을 PA에 양도한 것의 함의는 예컨대 귀환을 요구하는가, 귀환할 권리를 요구하는가 같이 팔레스타인 해방의 목표를 어떻게 개념화하고 표현할 것인지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PLO-PA 서사에서 민족주의가 가장 주요한 상황(“우리는 팔레스타인 민족이다, 우리는 팔레스타인 국가를 가질 권리가 있다entitled”)에서, 우리가 전 지구 팔레스타인 사회 내에서의 계급, 젠더, 성적 해방을 논의할 자리는 어디인가? 우리는 어떻게 사회-정치적 정의를 위한 역내 투쟁들, 전 지구적 투쟁들과 관계 맺을 것인가, 그리고 그들이 우리와 어떻게 관계 맺기를 원하는가 — 이는 대부분의 팔레스타인인이 현재진행형인 나크바에 따른 추방을 겪은 바 있으며 이스라엘 식민 치하 영토의 경계 너머에서 계속해서 해방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중요한 질문이다.
우선, 오로지 법 형식주의에 집중하는 것은 그런 문제들을 충분히 숙고할 언어와 공간을 앗아간다. 다른 층위에서 보자면 법을 중시하는 그런 틀은 우리가 어떤 정치적 운동들, 단체들과 동맹하는지를, 또한 치명적이게도 우리가 어떻게 그리고 무엇을 기반으로 그런 동맹과 연대를 형성하는지를 결정하는 상당한 영향력을 미친다. 탄탄히 자리 잡고 있는 미국시민자유연맹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ACLU)는 예컨대 BDS 조직가들이 합중국에서 마주하고 있는 헌법 상의 권리를 침해하는 흐름을 막는 데에 강력하고 더없이 환영할 만한 동맹이 될 수있다. 하지만 ACLU 같이 법률주의적 임무를 수행하는 전문화된 기관은 넘을 수 없는 선명한 선이 — 팔레스타인 해방 같이 “논쟁적인 사안”에 공개적으로 힘을 싣기에는 한참 못 미치는 선이 있다.
반면에 꿈수호자Dream Defenders 같은 조직화된 대중 운동에는 그런 제약이 없다. 이들은 팔레스타인 해방을 팔레스타인 시민 사회가 서로 조금씩 다른 여러 가지 국제법 주석들을 쏟아냄으로써 얻어지는 것으로 대하지 않는다. 꿈수호자에서는 팔레스타인 투쟁을 자신들의 투쟁에서 상대하고 있는 인종주의적 정착자-식민 국가와 닮았으며 그와의 “특별한 관계”를 누리는 인종주의적 정착자-식민 부정의에 맞선 정치적 투쟁으로 분석한다. 투쟁에 있어 제도권 단체의institutional 지지와 연대는 한끗 차이라고 할 수 없다 — 이미 자리를 잡은 이들의 세세하게 계산된 기여와 사슬밖에는 잃을 것 없는 이들의 몸을 건 연대는 다르다.
법과 법률 기관들의, 권리에 기반한 신사적인 정치학이 팔레스타인 “시민 사회”에 열어 준 오슬로 교착을 에두를 길은 그 지도자부 — 그리고 우리의 유일한 합법적 대표체의 지도부 — 가 상류 사회에 들어설 수 있게 해주었다.[4]중요한 PLO 반대 인사인 샤피크 알-후트Shafiq al-Hout의 자서전에는 PLO 지도부가 VIP 라운지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는지를 비판했다가 농담조로 … (계속) 그 대가는 기준을 낮추는 것, 즉 국제법 체제가 우리의 정치적 요구의 상한선은 물론 아니라 우리가 해방의 의미를 사유하고 상상하는 데 쓸 언어까지도 결정하는 상황에 처하는 것이었다. 이 낮은 기준, 바꾸어 말하자면 팔레스타인 정치의 법률문서화, 탈정치화는, 우리가 권리 기반 “옹호활동”에 나설 때 재원이 충분하고 고도로 전문화된 — ACLU처럼 접근성, 재정 지원, 평판 등에 있어 잃을 것이 너무도 많은 — 기관들을 파트너로서 선호하고 우리 자신의 정치적 조직화에 모델로 삼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PA에서 권리 기반 캠페인들을 이스라엘의 정착자-식민주의에 있어 제1 방어선으로서의 자기 역할에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여기는 또 다른 이유기도 하다. 해당 캠페인들은 PLO가 PA로 탈바꿈하면서 채택했던 신사적인 타협과 동일한 논리, 언어, 제한 속에서 작동한다. 팔레스타인의 큰 승리는 전부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 영토 안팎에서 팔레스타인 사회를 이루며 살아가는 누더기만 걸친 한달라Hanthala들의 희생이 아니었다면 이룰 수 없었음을 명심해야 한다. 한달라 목걸이 ― 그 아동 난민의 가족이 몇 달은 먹고 살 값은 되는 ― 를 하고 다니는 이들도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팔레스타인의 큰 항복은 전부 상류 사회의 신사적 타협이 낳은 일이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예컨대, 1936년 총파업과 1939년까지 이어진 무장 봉기의 중심에 노동자, 농민이 있었음을, 이 두 번의 대중 운동이 끝나는 데에 팔레스타인 대지주 집안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생각해 보라. 1960년대 말 레바논에서 레바논 정보기관(공포의 제2국deuxième bureau)을 난민촌에서 내보내기 위한 팔레스타인 난민 운동이 일었던 것과 현재 레바논 주재 PLO “대사관”이 레바논 내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정보 수집과 동향 감시를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비교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글에 있어서는 1970년대에 시작되어 1987년 인티파다로 정점에 이른 “그린 라인” 양쪽 팔레스타인인들의 대중운동과 돈 많은 팔레스타인 엘리트들이 밀어붙인 “용기 있는 이들의 평화“를 대조해 보는 것이 가장 적실하다.
그렇다면 BDS 캠페인의 위치는 어디인가? BDS에는 더 많은 참여와 지지, 특히 그 정치적 가능성과 법적 틀의 한계를 인식하는 이들의 참여와 지지가 필요하다. 해방 정치의 전략과 “해법”을 결정하는 일은 물론 팔레스타인 공동체들의 사회-정치학을 다루는 것은 BDS 캠페인의 임무를 한참 넘어선 영역이다. BDS 조직들은 대표성 있는 조직들 혹은 의회들을 자임하지 않으며 실상 그럴 수도 없다. 또한 이들은 거의 전적으로 이스라엘 국가도 그에 부역하는 팔레스타인 체제도 아닌 제3자들 ― 기업, 투자 자본, 문화 기관, 국가 간 협의 ― 를 겨냥하기에 전체 해방 운동의 실패는 이들의 책임질 일이 아니다.
국제적 층위에서 이스라엘이 도덕적, 법적 책임을 지게 하려는 것은 해방 전략은커녕 그 자체로 정치조차 아님을 인식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그런 것은 기껏해야 팔레스타인에 배제주의적, 가부장주의적 종족국가를 수립한 시오니즘 정착자-식민 기획을 종식하기 위한 정치적 투쟁의 운동장을 평평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되는 보조 전술일 뿐이다. 내가 여기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의 전술 ― 국제법의 논의장과 제도를 활용해 해방의 목표들을 뒷받침하는 ― 을 해방 전략의 위상으로 끌어 올리는 일의 패착이다. “무장 투쟁” 전술도 그와 비슷하게, 팔레스타인을 해방시킬 은탄환 같은 전략이라는 높은 지위를 누렸다는 것을 적시해 둘 만하다.
해방을 이룩하기 위한 정치적 동원의 서사를 찾아
앞서 언급했듯 해방 운동이 제도화된 국제연대를 해방 전략들, 서사들의 토대로 삼으면 그 제도들의 언어와 논리를 따라야만 하게 된다. 역사적으로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다름 아닌 PLO 스스로의 경험이다. 1967년 전쟁 후, 팔레스타인 분할안은 UN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242호의 해석을 통해 “국제적 합의”의 지위를 획득했다. 몇몇 아랍 국가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을 대신해 이 합의를 수용함으로써 PLO를 우회해 끼어 들어 팔레스타인인의 대변자 위치를 차리하려고 열을 올렸다. 분할은 사실상 PLO가 국제적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의 유일한 정당한 대표체로 인정받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설정되었으며 PLO 지도부는 이 정당성이 해방의 전제조건이라 여겼다. 바꾸어 말하자면, 1974년 10월 라바트Rabat 정상회담에서 아랍연맹이 PLO가 팔레스타인 정치를 독점하는 데에 동의하지 않았다면 한 달 후에 열린 UN 총회에서 야세르 아라파트가 “총과 올리브 가지” 연설을 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또한 PLO가 1974년 10개조 강령에서 팔레스타인 분할에 공식적으로 동의하지 않았다면 그런 인정은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나중에 드러난 것까지 다 따지더라도, 국제적 권력 불균형과 팔레스타인인들이 숱한 희생 끝에 얻어낸 자기 표상self-representation을 다른 더 강한 이들에게 빼앗길 위험 속에서 PLO의 약점을 인정한 것을 두고 전적으로 아라파트를 탓할 수는 없다. 그와 비슷하게, 2000년대 팔레스타인 정치 조직가들도 1974년 강령이 팔레스타인 정치 지도부가 팔레스타인에 대한 정치적 대표성을 계속 독점하면서도 정착자-식민 권력의 끄나풀이 되게 만든 힘든 현실을 우회할 길을 찾아야만 했다. 마찬가지로, 전 지구적 시민 사회 영역에서 활동하려면 소통과 의사결정의 기반으로서 국제법과 국제적 합의의 언어가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스라엘이 자신의 폭력에 책임을 지게 하기 위해 국제적 합의를 이용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는 것을 두고 권리 기반 캠페인의 선봉에 있는 이들을 탓할 수는 없는 일이다.
비난할 대상을 찾기보다는, 국가 수준의 합의 혹은 국제적 합의의 속박 너머에서 정치적 문제가 주목 받을 수 있도록 더 나아간 논의장과 행동을 시급히 마련해야 함을 말하고 싶다. 국제법을 완전히 버려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나중에 “팔레스타인 시민 사회”가 된 지도자들이 BDS와 오슬로의 정치적 교착을 피해 가기 위해 국제법 제체를 이용할 길 양쪽의 기초를 동시에 닦았던 2000년 인티파다의 원래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뜻이다. 2004년에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이스라엘의 분리 장벽이 일으킨 사태에 대한 판결을 내릴 즈음, 이제는 유명해진 소설가 차이나 미에빌China Miéville은 저서 『동등한 권리들 사이에서』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팔레스타인 정치 조직들이 그 역사적인 판결에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섭렵한 미에빌은 출간을 앞둔 원고에 아래와 같은 내용을 추가했다.
… 국제법의 성립과 전개를 뒷받침하는 정치적 현실을 잘 알고 있는 팔레스타인인들은 자신들이 국제법의 법정에서 얻은 승리의 “국제법적 성격”을 스스로 유보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대신 그것을 이용해 법 너머의 여론을 움직이고자 할 것이다. 팔레스타인의 대의명분에 최선의 희망을 주는 것은 국제법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대중적인 압력이며 국제법의 영역을 벗어나야 가장 “진보적인” 국제법적 판결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에빌이 택한 “여론public opinion”이라는 말은 근년에 “인티파다의 지구화”라 불리는 유형의 정치적 동원 ― 팔레스타인 VIP들이 정착자-식민적 방해 없이 매우 하찮은 사람들very unimportant people을 착취할 수 있는 국가를 얻기 위한 투쟁을 한참 넘어선 동원을 뜻한다. 인티파다의 지구화는 2011년 난민 귀환 시위들의 정치학이었으며, 또한 지난 몇 달간 가자지구에서 그와 비슷하지만 훨씬 길게 이어지고 있는 귀환 대행진Return Marches의 정치학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동원은 이스라엘과 관련해서는 제 도덕적-법적 기준을 강제하려는 모습을 보인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국제 질서의 이모저모를 통해 국가 지위를 획득한다는 허황된 서사를 쓰레기통에 처박는다. 다시 한 번 말하건대, 전선에 몸을 던진 것은 누더기만 걸친 한달라들이었다 ― 그러는 동안 신사들은 너덜너덜해진 그들의 시신을 그러모아 VIP 라운지 서비스 개선에 투자했다.
전 지구적 인티파타의 기저에 있는 정치학을 중심에 놓고 국제법을 투쟁의 여러 도구 중 하나로 활용해야 할 때다. 그 반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인간 해방을 지향하는 정치적 동원을 위해 명확히 보고 행동할 수 있게 도와주는 서사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 팔레스타인 엘리트들이 우리 세계를 소진시키는 기괴한 착취 잔치를 즐기기 좋은 자리를 확보할 수 있길 바라며 상류 사회 신사들 앞에서 우리 민족의 “권리에 기반한” 피해자성을 전시하는 서사가 아니라 말이다.
주
↑1 | 이 글을 프랑스어로 읽으려면 여기를 클릭하라. 알-샤바카는 우리 글을 번역하는 인권 활동가들의 노고에 사의를 표한다. 다만 의미가 달라진 부분에 대한 책임은 번역자에게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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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이러한 축들 ― 계급, 젠더, 인종, 장애 여부, 섹슈얼리티 등 ― 은 자연본성으로 존재하는 정체성이 아니라 그 소유자에게 특정 지위를 부여하는 사회적 구축물로서의 정체성으로서 중요성을 띤다. 달리 말하자면, 이러한 축들이 중요한 것은 불평등의 체제들이 그것을 그저 정체성의 개별적 표지가 아니라 정치적 범주로서 유의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
↑3 | 프란츠 파농이 예측을 담은 글이 여전히 이에 대한 가장 심도 있는 분석 중 하나로 남아 있다. Frantz Fanon, “The Pitfalls of National Consciousness,” The Wretched of the Earth (Grove Press, 1961). |
↑4 | 중요한 PLO 반대 인사인 샤피크 알-후트Shafiq al-Hout의 자서전에는 PLO 지도부가 VIP 라운지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는지를 비판했다가 농담조로 야단을 들은 일을 술회하는 (영어 번역본에는 실리지 않은) 인상적인 대목이 있다. 그를 야단친 이는 PLO가 VIP 라운지를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이 팔레스타인 순교자들이 이룬, 유일한 정도는 아니라도, 주된 긍정적 성과라고 비꼬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