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Malak Hijazi, “Palestine is shrinking every day,” The Electronic Intifada, 202507.26.
)
가자에 사는 팔레스타인인으로서 나는 희망찬 미래를 상상할 수가 없다. 조만간 휴전이 발표된다 해도. 앞으로 벌어질 일들은 우리가 지금껏 견뎌온 것들보다도 무시무시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저 너무도 많은 것이 파괴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에 대한 인종학살이 “평화 회담peace talks”의 배경 소음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인 59,000명이 살해당한 살육 21개월차, 아랍 정부들은 여전히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정상화하려는 듯하다. 우리 삶을 황폐화한 이스라엘이 책임을 추궁 받는 것이 아니라 보상을 얻고 있다는 것이 수이 믿기지 않는다.
배신감이 든다.
베냐민 네타냐후와 도널드 트럼프가 이른바 아브라함 조약Abraham Accords을 역사적인 협상이라며 추켜세우는 것을 듣고 있자니 소외감과 모멸감이 든다. 나와 우리 민족은 살 가치가 없는가.
이 시점에 그저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정상화한다는 것은 아파르트헤이트, 점령, 국가 테러를 무시한다는 뜻이다. 매일 벌어지는 팔레스타인인 살해가, 우리네 아이들과 노인들의 굶주림이, 병원 폭격이, 수감자 고문이, 토지 강탈이, 이어지는 종족 청소가 모두 정당화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는 일이다.
정상화는 우리가 흘리는 피에 대한 무관심을 정당화한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이 무관심을 승리로 여긴다. 얼마 전에 크네세트 — 이스라엘 국회 — 의원 즈비 수코트Zvi Sukkot가 말하지 않았던가, “오늘밤에 우리는 가자에서 100명 가까이를 죽였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제거
팔레스타인은 매일 쪼그라들고 있다. 정착촌은 확장되고 이스라엘의 점령은 더욱 공고해지는 가운데, 우리는 강제로 쫓겨나는 삶을 산다.
아이러니하게도, 팔레스타인은 제 땅에서 이물질이 되어 간다.
이 제거를 지금껏 이런 식으로 느껴 본 적은 없었다. 가자시 서부에 살고 있는데. 이곳은 정어리 통조림 같은 느낌이다.
밖을 나서면 온통 천막만 보인다. 북부나 동부에서 피신 온 가족들이 이 쪼그라드는 공간의 구석구석을 채우고 있다.
점령이 확장되면서 우리가 살아도 되는 지역은 갈수록 사라져 간다. 유럽·지중해연안인권감시단Euro-Med Human Rights Monitor에 따르면 가자에 있는 사람들은 인구 기준으로 관타나모만 수용자보다도 좁은 공간에 욱여넣어져 있다.
이스라엘군이 철수한다 해도 아무 의미 없을 것이다. 그들이 남겨 두고 떠난 땅은 더 이상 살 수 있는 곳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집도, 병원도, 학교도, 기반시설도 남지 않았다.
오로지 약간은 덜 파괴되었다는 이유로, 어쩔 수 없이 가자 서부에 남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이 요구하고 있는 완충 지대는 우리 땅을 더 집어삼키리라는 사실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
이것이 바로 정착자 식민주의가 뜻하는 바다 — 원주민을 제거하고 그들을 정착자로 대체하고 그들의 부재를 정상화하고 마치 그들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양 서사를 새로 쓰는 것.
한 나라 한 나라씩 이스라엘을 인정할 때마다 이 지역에 대한 이스라엘의 장악력이 강해진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의 모든 것을 망가뜨리고 파괴하기를 멈추지 않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가자에서 전투기와 탱크를 부리든 서안에서 정착자들이 공격을 일삼든 예루살렘을 불법적으로 목 조르든 목적은 하나다. 팔레스타인이 사라지게, 그리고 세계가 이 사라짐을 점차 정상적인 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것.
우리의 피를 걸고 하는 흥정
지금의 인종학살 이전에 첫 서명이 행해진 아브라함 협정은 아랍에미리트연합국에서부터 바레인, 모로코, 수단까지에 뿌리를 내렸다. 트럼프가 다시금 정상화를 추진하는 2025년, 훨씬 많은 나라들이 이스라엘과의 이 열애에 빠져 드는 중이다.
5월에 리야드를 방문한 합중국 대통령은 사우디 아라비아가 아브라함 협정에 함께하는 것이 자신의 “꿈”이라고 밝혔다.
사우디 아라비아는 가자 인종학살이 시작되자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를 위한 논의를 중지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우디는 휴전을 논의 재개 조건으로 걸었다.
그리고 합중국은 휴전이 발효되면 지체 없이 정상화에 나서기를 기대한다는 뜻을 내비쳤다.
팔레스타인의 피가 흥정용 패로 쓰이고 있나?
시리아 지도부도 정상화에 열려 있음을 시사했다.
레바논은 이스라엘과 정상화하라는 합중국의 압박을 받고 있다. 튀니지의 태도는 오락가락하는 듯하고 알제리 대통령은 팔레스타인 국가가 수립되면 이스라엘을 인정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독립적인 팔레스타인 국가는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재삼 선언한다. 두 국가라는 상징적인 환상조차 더는 필요하지 않다면, 무엇이 남아 있는가?
인종학살 다음에 오는 것은?
정상화는 새로운 일이 아니다. 1978년 이집트의 캠프 데이비드 협약으로 시작되었고 요르단이 1994년에 이스라엘과 평화 조약을 맺어 그 뒤를 이었다.
그럴 때마다 이스라엘은 국제적 정당성과 물리적 보상을 얻은 반면 우리 — 팔레스타인 사람들 — 에게는 결코 현실화되지 않는 상징적인 약속만이 주어졌다.
1990년대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가 맺은 오슬로 협정이 전환점이 될 줄 알았지만, 3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우리에게는 팔레스타인 국가가 없다.
대신 불법 정착촌이 늘었고 합중국의 대이스라엘 군사 원조가 늘었으며 내분이 깊어졌다.
오슬로 협정은 점령 종식의 틀이 아니라 점령을 가능케 하고 심지어는 보호하는 틀이 되어버렸다.
그리고는 이제, 이스라엘이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숨기거나 평화를 추구하는 척을 할 필요도 없는 아브라함 협정이다.
그 결과는? 바로 인종학살이다.
그 모든 유혈 사태와 파괴에도 불구하고 이런 협약들이 계속해서 전개되고 사람들은 그간 우리가 겪은 모든 일에 무관심하다는 것이 너무도 절망적이다.
그래서, 인종학살 다음에는 무엇이 오는가?
가자에서 사람들은 텔레그램 대화로 뉴스에 대한 의견을 나눈다.
정상화에 분노하는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놀라지도 않는다.
“일단 인종학살을 끝내고 그 다음엔 맘대로 하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
우리는 지칠 대로 지쳤다. 기대치 같은 건 무너진 지 오래다.
생존이 우리에게 허락된 유일한 꿈이다.
정상화는 이스라엘에 우리에 대한 범죄를 맘껏 저질러도 좋다는 청신호를 주고 우리의 저항을 범죄로 만든다. 더 나은 미래를 향한 희망의 불씨가 어디 불이라도 붙이기 전에 얼른 꺼버린다.
몇 달째 이어진 폭격과 굶주림과 추방, 그 다음 일이 두렵다. 나는 더 이상 해방된 팔레스타인을 꿈꾸지 않는다.
우리 고국 땅의 마지막 남은 조각들, 우리 존재를 부정하는 유대 국가 속에 외떨어진 섬들처럼 흩어져 있는 그 조각들마저 곧 잃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희망을 품지 않는다. 나는 겁에 질려 있다.
가자에 충분히 오래 살았으므로, 수정구슬 따위 없어도 알 수 있다. 이스라엘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 말라크 히자지는 가자에서 활동하는 작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