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물러서기, 내다보기. 트랜스젠더 운동과 트랜스젠더 연구의 위치 ― 크리스 하야시, 매트 리처드슨, 수전 스트라이커가 보는 운동 (이메일 라운드테이블, 2008)

원문: Paisley Currah, “Stepping Back, Looking Outward: Situating Transgender Activism and Transgender Studies—Kris Hayashi, Matt Richardson, and Susan Stryker Frame the Movement,” Sexuality Research & Social Policy Vol. 5. No. 1, 2008, pp. 93-105.

『섹슈얼리티 연구 & 사회 정책Sexuality Research & Social Policy』의 두 권짜리 특집호 《우리가 처한 국가: 트랜스 정책에서 강압과 저항의 위치들The State We’re In: Locations of Coercion and Resistance in Trans Policy》의 목표는 트랜스젠더 권리 옹호와 정책 개혁에 즉각적이고 실천적인 가치를 갖는 연구를 조명하는 것이다. 특집호 객원 편집자를 맡은 딘 스페이드Dean Spade와 나는 여기 실은 글들이 이 목표를 매우 훌륭히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전체로서 이 글들은 성별 규범을 강화하려는 국가의 노력을 드러내는 법, 규정, 관행은 물론 그 노력의 효과와 옹호가들이 그에 저항하기 위해 취한 특정 전략들을 광범위하게 검토한다. 대개가 성별 정체성이나 성별 표현에 관습에 맞지 않는 많은 이들이 가혹한 결과을 마주하게 되곤 하는 현 시점의 급무에 주목한 글들이다.

하지만 이번 라운드테이블에서는, 국가가 강압적으로 시행하는 성별 이분법은 물론 그것을 가능케 하는 권력 자체에 도전해 온 운동 ― LGBT 공동체들에서는 대개, 그리고 갈수록 대중 언론에서도, 트랜스 젠더 권리 운동이라 불리는 ― 을 조금 물러서서 살펴 본다. 공동편집자와 나의 주안점은 이 운동을 관계적으로 살펴보는 대화를 끌어내는 것이었다. 이 운동은 반인종주의 활동 같은 다른 사회 정의 운동과 어떻게 맞물리는가? 그저 트랜스젠더라는 서구적 개념을 수출하는 데 그치지 않고도 합중국 바깥 여러 곳의 성별 자기결정 투쟁와 유비적으로 파악될 수 있는가? 성별 또한 인종화되어 있다는, 인종 범주 또한 성별 규범을 통해 강화된다는 관념은 이 운동의 정책 목표에 영향을 미치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이 운동의 과거, 현재, 미래 사이의 관계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마지막으로, 이번 기회에, 트랜스젠더 연구라는 신생 학술 분야와 그 중심 연구 대상 ― 전통적인 성별 규범성들에 대한 젠더비순응인의 도전 ― 의 관계를 고찰해 보고 싶었다. 이번 『섹슈얼리티 연구 & 사회 정책』 두 권은 트랜스젠더 연구의 발전에 있어 의미심장한 순간이라 할 수 있기에 이 문제를 고민하는 것이 특히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지난 10년은 학술대회, 학술지 특별호, 『트랜스젠더 연구 읽기The Transgender Studies Reader』(Stryker & Whittle, 2006)나 『트랜스젠더 권리Transgender Rights』(Currah, Juang, & Minter, 2006)의 출간 등을 통해 이 학제적 분야가 자리 잡는 과정을 목도한 시간이었다. 이러한 진출에도 불구하고 트랜스젠더 연구의 자리, 특히 트랜스 주체를 병리적으로 구축하지 않는 인문학 외의 작업은 학계에서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다.

사실, 경험에 기반한 트랜스젠더 연구의 아주 중대한 측면 한 가지는, 이번 특집호 필자들의 자전적 서술에서도 분명히 드러나듯, 그것이 생산되는 위치다. 이번 두 권에 실린 글 중 대학 정년 트랙에 있는 학자가 쓴 글은 한 편도 없다. 외려 우리가 실은 연구 중 몇은 주 40 시간 이상 일을 한 후에야 글을 쓸 시간을 낼 수 있는 와중에 활동가, 옹호가가 쓴 것이다. 기금으로 운영되는 싱크탱크에 임시로 적을 두고 있는 연구자, 박사 후 과정 연구원, 자신이 연구하는 공동체에 매우 중요한 학위 논문을 쓰기로 했지만 소속 연구 기관에서 아주 약간의 지원을 받을 뿐인 대학원생이 쓴 글도 있다. 트랜스젠더로 정체화하는 연구자의 상황은 특히나 곤란하다. 최근에 수전 스트라이커Susan Stryker(2007)가 어느 글에서 설명한 바 대로, 그녀가 학계를 지배하는 인식론적 체제epistemological regime라 칭하는 것 하에서는,

신체적으로 위치지어지는 앎the bodily situatedness of knowing은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객관적 지식과는 분리된다. 반규범적인 신체적 차이가 그 자신의 지식 생산, 수용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경험적 지식은 결국 그저 주관적인 것으로 깎아내려진다. (p. 154)

그 결과, 어떤 종류의 트랜스젠더 전문성들 ― 학생들이 교수진에게 반영된 것을 보는 일이 특히 중요할 것들을 포함해 ― 은 학계 지식 생산에서 기반을 갖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이 분야는 성장할 것이 틀림 없다. 우리는 그 성장이 보다 지속적인 제도적 지원을 제공하는 곳들에서 이루어지기를, 그러나 그런 지원이 없다 하더라도 트랜스젠더 연구 실천가들이 계속해서 자신들이 트랜스젠더 공동체들을 연구하고 그에 대해 쓸 수 있는 공간들을 만들어 나가기를 바란다. 그래서, 트랜스젠더 연구와 트랜스젠더 관련 활동의 관계의 구성을 중심으로 삼았다. 이 학술 연구 분야는 활동가들의 투쟁 한가운데에 있는 이들에게 얼마나 즉각적으로 반응해야 하는가? 연구 질문의 틀은 누가 잡아야 하는가? 전반적으로 사회 운동에서 비롯된 ― 민족지 연구나 장애 연구 같은 ― 다른 분야들 사이의 관계에서 배워야 할 점은 무엇인가?

우리는 활동가이자 지식생산자로서 이런 문제들에 대한 견해를 나누어 온 역사가 있는 세 명의 도발적인 활동가-사상가를 택했다. 소개해 보기로 하자.

크리스 하야시Kris Hayashi는 공동체행동을위한청년연합Youth United for Community Action (YUCA)에 7년간 몸담았다. 캘리포니아에서 정의를 위한 조직화를 하는 유색인 청년 주도 조직이다. YUCA 운영위원장executive director으로서 크리스는 사무실 두 곳과 50만 달러가 넘는 예산을 관리했다. 크리스는 10년이 넘게 다양한 사회 정의 조직화 운동에서 활발히 활동했으며 4년째 오드리로드프로젝트Audre Lorde Project (ALP) 운영위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크리스는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LGBT)를 위한 조직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몇 안 되는 유색인 트랜스, 젠더 비순응인 중 하나다. ALP는 유색인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투스피릿two spirit, 트랜스젠더를 위한 공동체 조직의 뉴욕시 일대 구심점이다. ALP는 동원, 교육, 역량 구축을 통해 진보적인 사회경제적 정의는 물론 공동체의 안녕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차이를 가로지르는 투쟁에 헌신하면서 우리네 다양한 공동체들을 반영하고 대변하고 그에 봉사하고자 하는 곳이다.

매트 리처드슨Matt Richardson은 오스틴 텍사스대학교 영어과 조교수이며, 아프리카인·아프리카계미국인연구소, 젠더·여성연구소에도 관여하고 있다. 매트의 연구 주제는 아프리카계 미국 문화 연구, 영국 흑인 문화 연구, 퀴어 이론, 페미니즘 연구, 영화 연구 등이다. 매트는 버클리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아프리카 디아스포라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주 세부 전공은 젠더·여성 연구다. 근작으로 「비밀은 그만, 거짓말도 그만: 강제적 이성해야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역사No More Secrets, No More Lies: Compulsory Heterosexuality and African American History」(2003)가 있으며, 선집 『역겨워! 동화에 저항하는 퀴어 전략들That’s Revolting! Queer Strategies for Resisting Assimilation』(Sycamore, 2004)에도 공저로 대학 캠퍼스 트랜스, 젠더퀴어 화장실 조직화에 관한 「화장실 혁명가 모두 모여라!Calling All Restroom Revolutionaries!」와 흑인성과 동성 결혼을 논하는 「동성 결혼은 인종주의적인가? Is Gay Marriage Racist?」 등 두 편을 실었다.

수전 스트라이커는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버나비에 있는 사이먼프레저대학교의 2007-2008년 여성연구 루스 윈 우드워드 석좌 교수다. 그녀는 트랜스젠더와 섹슈얼리티를 주제로 학계와 대중을 위해 폭넓은 저술활동을 해 왔다. 최근에는 『트랜스젠더 연구 읽기』(Struker & White, 2006)를 공저했으며 에미상 수상 영화 《비명 지르는 여왕들: 컴튼스카페테리아 폭동Screaming Queens: The Riot at Compton’s Cafeteria》(Silverman & Stryker, 2005).를 공동연출했다. 과거 『GLQ: 레즈비언·게이연구지GLQ: A Journal of Lesbian and Gay Studies』 트랜스젠더 연구 특집호(1998) 객원편집자를 맡은 바 있으며 람다 문학상 후보에 오른 『샌프란시스코 만안 지역의 퀴어문화사Gay by the Bay: A History of Queer Culture in the San Francisco Bay Area』(Stryker & Van Buskirk, 1996), 『퀴어 펄프: 페이퍼백 황금 시대의 도착적 열정들Queer Pulp: Perverted Passions From the Golden Age of the Paperback』(Stryker, 2001)을 썼다. 그녀는 1992년에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미국사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이후 캘리포니아 팔로 알토에 있는 스탠포드대학교에서 섹슈얼리티연구 박사 후 과정 연구원을 지냈고, 1999년부터 2003년까지는 샌프란시크고 GLBT역사학협회 운영위원장으로 일했다. 2006-2007년 뉴욕시립대학교 대학원과정 레즈비언·게이연구센터 마틴 더버맨 석좌 연구원을 지냈다. 유명 성전환자transsexual 크리스틴 조르겐슨Christine Jorgensen에 관한 영화와 샌프란시시코 트랜스젠더 역사에 관한 책, 두 신작을 동시에 준비하고 있다.

크리스 하야시, 매트 리처드슨, 수전 스트라이커와 나눈 이번 라운드테이블은 2007년 1월부터 3월까지, 구조화된 전자서신 교환을 통해 이루어졌다. 답변은 작성 순서대로 실었다. 크리스 하야시는 세 번째 질문에는 답하지 못했다.

새로이 등장하고 있는 트랜스 권리 운동 ―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면 ― 은 어떤 모습을 띠고 있으며 국내외 광범위한 사회 정의 투쟁과 어떻게 맞물리는가? 트랜스 활동가들과 우리 연대자들이 아직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핵심적인 연합의 가능성으로는 어떤 것이 있는가?

수전 스트라이커: 역사가로서 나는 스스로를 현재에 위치 시키는 한 가지 방법으로서 과거를 들여다 보곤 한다. 20세기를 알기 위해 후시경을 슬쩍 보면, 지금 우리에게 트랜스 운동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 매일 같이 관여하다 보면 매우 다성적polyvocal, 다방향적, 모순적이어 보기이는 하겠지만 말이다.

트랜스 권리 운동의 시작점이 어디인가 하는 것은 난해한 문제, 아마도 주로 역사가가 관심을 가질 문제다. 젠더화된 자아감을 섹스화된 체현과 연관시키는 현재의 관습적이고 지배적인 패턴에 맞지 않는 이들은 어떤 역사적 시점, 어떤 문화권에건 많다. 선대이자 동족의 혼을 가진 이로서 우리가 그들과 연결되고 싶어하는 욕망은 물론 그런 이들이 우리에게 보인다는 사실이 드러내는 것은 본질적이고 초역사적이며 초문화적인 트랜스젠더 정체성이라기보다는 유럽중심적 근대성이 무엇을 주목할 만하다고 여기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가 트랜스젠더적transgendered이라 부르고 싶어지는 사회적 위치들에 있는 이들 전부가 자신의 관습적 문화와 대립적인 관계를 맺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연구자들은 그런 젠더이형인들gender-variant people이 그들로 하여금 사회적 삶의 혜택과 책임에 온전하고 자유롭게 참여하지 못하도록 주변화하는 문화적 젠더 규범들에 맞서, 때로는 고무적일 정도로 성공하며, 반발한 수많은 역사적 사례들을 발굴했다. 그런데 이런 일화적 저항이 어디까지 운동으로 이해될 수 있는가? 언제, 어떤 조건 하에서 우리는 트랜스인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는가?

트랜스성, 횡단crossing, 전도inversion, 역전reversal이라는 관념들에 뿌리 내리고 있는 개인적 정체성은 19세기 중엽 쯤 하위문화 담론과 법의학 담론에서 나타나기 시작하며, 종종 동성애 및 인터섹슈얼리티 범주와 중첩되는 관계에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트랜스 범주를 통해 자신과 세상에 대한 경험을 조직화하기 시작한 것이 정확히 언제인지, 그들이 언제부터 스스로를 공동체로 모이는 데에 관심이 있는 특수하고 특이한 사람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는지, 혹은 그들이 언제부터 정체성에 기반한 사회적 집단을 정치적 행동의 기반으로 생각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이런 질문에 답하려면 행위acts에서 정체성으로의 전환을 더 연구해야 하지만, 트랜스라는 심각하게 권리를 박탈 당하는 소수자의 민권을 옹호하는 정치적 운동을 가능케 한 사회적 조건들은 19세기 말, 20세기 초 경에는 자리잡기 시작했다는 것은 꽤 확실하다.

몇 가지 사례가 이 기나긴 역사적 전개를 대신 알려줄 것이다. 하나는 독일 성과학자 마그누스 히르쉬펠트Magnus Hirschfeld가 1910년에 선구적으로 트랜스젠더를 다룬 의학서 『복장도착자: 성애적인 크로스드레싱 욕망에 대한 연구Die Transvestiten: Eine Untersuchung über den erotischen Verkleidungstrieb』에 나오는 한 사례자는 때로는 남성으로, 때로는 여성으로 살았지만 요한나나 예니라는 이름을 선호했던 mtf다. 그/녀는 사회주의 노동자 정치에 적극적이었고 독일의 동성애자, 트랜스젠더를 위한 히르쉬펠트의 정치적 활동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히르쉬펠트가 『성적 중간자 연보Jahrbuch für sexuelle Zwischensstufen』(1914) 같은 책을 통해 여성적인 남성들과 남성적인 여성들이 서로를 찾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 젠더가 전도된 커플로 로맨틱한 짝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 그에게 연락했다. 수십 년 후, 1952년, 1953년에, 크리스틴 조르겐슨은 덴마크에서 성기 변형 수술을 받아 전 세계 헤드라인을 장식하며 최초의 국제적 성전환 유명인이 되었고, 그녀에게서 자신과 같은 무언가를 보면 수천 명이 그녀에게 편지를 썼다. 그런 많은 서신, 조르겐슨은 갑자기 얻은 명성을 이용해 공개적으로 트랜스들을 ― 특히 자신의 몸에서 성별을 나타내는 외관을 바꾸는 수술적 처치를 바라는 이들을 ― 대표해 말하는 데 힘이 되었다. 동시에, 남캘리포니아에서 일군의 mtf 크로스드레서들이 『트랜스베스티아: 복장평등협회지Transvestia: The Journal of the Society for Equality in Dress』를 발행했다. 벽장 깊숙이 숨은 비밀 독자들에게 두 호가 배포된, 오래가지 못한 이 등사판 잡지는 합중국에서 트랜스젠더 정치 운동이 최초로 잠정적으로 표출된 사례라 할 수 있다.

1960년대 들어서는, 신생 트랜스젠더 운동이 다양화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 초에는 앞서의 『트랜스베스티아』 발송망이 다시 활성화되었고 곧 전국에 흩어져 있는 남성 크로스드레서 비밀 모임 여럿과 연결되었다. 1960년대 중반에는 샌프란시스코의 사회적으로 주변화된 트랜스젠더 여성들이 함께 뭉쳐 억압에 맞서 싸울 만큼 정치화되었다. 텐더로인 인근 ― 그들 중 다수가 이곳에서 매춘 일을 했다 ― 에서 밤에 모여 놀 때면 주기적으로 경찰의 차별과 괴롭임을 겪던 이들이었다. 이 봉기, 1966년 8월 컴튼스카페테리아 폭동은 1959년 로스앤젤레스 쿠퍼스 도넛 스탠드Cooper’s Donut Stand 밖에서 벌어진 시가전, 1965년 필라델피아 듀이스런치카운터Dewey’s Lunch Counter에서의 연좌 농성과 더불어 갈수록 전투적이어져 갔던 거리 트랜스젠더 저항 물결의 일환이었다.
그중에서도 컴튼스 폭동이 두드러지는 것은, 이 저항은 정치 단체의 형성으로 촉발된 것이기 때문이다. 퀴어 부랑아들, 매춘부들, 퀸들로 구성된 뱅가드Vanguard라는 단체였다. 또한 최초의 성전환자 옹호·지지 단체들이 형성되는 데로 이어졌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전환이목표다Conversion Our Goal(COG), 캘리포니아성전환자전진California Advancement for Transsexuals(CATS), 전국성·성별정체화위원회National Sexual-Gender Identification Council, 전국성전환자상담단National Transsexual Counseling Unit, 성전환상담서비스Transexual Counseling Service ― 이들 전부가 1973년 전에 형성되었다. 이런 샌프란시스코 단체들은 동료 지지를 제공하는 활동 뿐 아니라 경찰, 관행, 여론을 바꾸는 활동을 했으며, 곧 거리복장도착자행동혁명가들Street Transvestite Action Revolutionaries(STAR), 성전자활동가협회Treanssexual Activist Organization(TAO) 등 뉴욕의 비슷한 단체들도 가세했다. 1970년대 중반까지 가면, FTM들이 사회변화 활동에 보다 많이 참여하게 되면서 FTM 위주였던 뉴욕의 라비린스재단Labyrinth Foundation, 토론토의 메타모포시스MEtamorphosis, 캘리포니아의 르네상스그룹Renaissance group 등 새로운 일군의 조직과 출판물이 등장했다. 1970년대 말에는, 트랜스젠더 단체들과 게이, 레즈비언, 페미니즘 운동 사이의 거리가 갈수록 멀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트랜스젠더 운동의 토대가 잡혔다. 하지만 1980년대 에이즈 유행의 엄청난 타격으로 인해, 그리고 진보 정치 운동 내의 트랜스혐오로 인해, 1960년대, 1970년대에 놓인 기반 위에 보다 큰 운동이 자리 잡게 되기까지는 10년이 더 걸렸다.

1990년대 초 이래로 트랜스 운동은 역사적이라 할 만한 수준의 급성장을 거쳤다. 신분 증명서 상의 젠더 변경이나 성별 변경과 관련되는 의료, 심리 서비스에의 접근성 획득 같은 트랜스젠더 특정적인 요구들에 초점을 맞추었던, 보다 단일 쟁점 지향적이던 정치가 다면적인 운동으로 확대되었으며, 이 운동은 갈수록 더 구조적인 사회적 불평등을 다루고 트랜스젠더 쟁점들을 다른 집단들의 쟁점과 연결 짓는 강력하고도 창의적인 방식들을 찾고 있다. 트랜스젠더 쟁점들이 과거에 전형적으로 그랬던 것과 비교해 현재는 어떻게 구체화되는지를 잘 보여주는 예로 신분 서류와 괸련된 것을 들 수 있다 ― 적절한 신분 증명이 불가능한, 출생 시 지정된 젠더와 다른 젠더로 사는 이들은 국경을 넘기 더욱 어렵고 보다 높은 수준의 감시를 받게 되며 국가가 촉발한 개인적 폭력에 더 많이 위협받는, 미등록 노동자가 된다. 합중국에서 젠더의 경계를 넘는 이들은 어디서 태어났고 무엇으로 생계를 유지하는지를 막론하고 증명서 없이 일하는 다른 종류의 이주민들과 같은 처지에 놓인다. 요주의자들profiled, 이동에 제한되는 이들, 젠더 이외의 이유로 국경 통제의 표적이 되는 이들과 같은 처지에 놓인다. 우리에게 저항할 동기를 제공하는 것은 국가가 우리에게 휘두르는 바로 그 권력, 우리가 생계 수단에 접근치 못하게 하는 그 권력이다.

지금의 트랜스젠더 활동들은 전 지구적 자본과 협력하는 동성애규범적, 신자유주의적 전략들에 저항하기 위한 전 지구적 수준의 새로운 기회들을 제시하기도 한다. 수십 년 전, 특히 자의식적으로 퀴어로 정체화하던 시기의 트랜스젠더 활동은 대개 게이·레즈비언의 정치적 대의와 연대하고자 했다 ― 게이·레즈비언 조직들이 상호연관 속에서 사회문화적으로 형성된 긴 역사가 있고 자원이나 정치적 영향력도 훨씬 컸음을 생각하면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게이 해방이 (가차 없어 보일 지경으로) 소비주의적 침묵으로 나아가면서 일탈로 분류된다는 이유로 수많은 이들이 거리에서 굶주려야 하는 이유를 묻지 않고 자본주의적 풍요의 테이블에 있는 게이의 자리를 받아들이고 있는 지금, 트랜스젠더 운동은 스스로가 그런 동성애 의제와 얼마나 가까이 연관되고 싶은지를 세심하게 재고해야 한다. 2007년에 젠더 정체성이나 젠더 표현까지 포함하지 않고 성적 지향만을 담도록 개정된 연방 고용차별금지법Employment Non-Discrimination Act(2007) 안에서 트랜스젠더가 배제된 일은 이런 잠재적 균열을 드러내는 역할을 했다. 게이·레즈비언 정치가 반드시 진보 정치를 뜻하지는 않는다. 기저의 어떤 규범, 태도, 몸가짐 양식, 성향이, 표면적으로 퀴어한 표현 중 어떤 종류의 것들은 존중할 만하고 수용할 만해 보이게 하고 다른 형식들은 비체로 남겨놓는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선 사회경제적 계급, 신체적 능력ability, 피부 색, 트랜스젠더 지위 같은 말들이 떠오른다.

트랜스젠더 활동은 이 같은 새로운 동성애규범성에 대한 긴요한 비판으로 기능할 수 있다. 적어도, 1950년대 이후 합중국 게이·레즈비언 운동에 존재하는 초기적 규범 한 가지를 ― 다시 말해, 이런 게이·레즈비언 사회 구성체가 즉 동성애 하위문화가 유럽중심적 근대의 이성애규범적 사회와 공유하곤 하는 남성여성이라는 젠더규범적 관념들을 어느 정도로까지 자신의 소수자 성적 지향 정체성의 토대로 삼았는지를 ― 알아볼 수 있게 한다. 이 젠더규범적, 동화주의적 유형의 동성애가 1세계에서 기원했다는 특권과 함께 국제적으로 유통되면 너무도 쉽게, 세계 곳곳 다양한 장소들에서 비유럽중심적 전통에서 전개된 비이성애규범적 섹스-젠더-섹슈얼리티 구성체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이들이 인권을 확보하거나 생계 자원에 접근하는 데 주요한 틀이 되어버린다 ― 다시 말해, 게이가 식민화할 권력을 갖게 된다. 트랜스젠더도 비슷한 위험을 갖고 있지만, 트랜스젠더 활동이 동성애규범적 신자유주의와 얼마나 거리를 두는지에 따라서는 레즈비언, 게이, 혹은 동성애자 범주를 통해 유통되어 온 것과는 다른, 전 지구적 자본의 동질화하는 힘에 저항할 새로운 틈들을 열 수도 있다.

크리스 하야시: 수잔이 우리 공동체의 활동, 조직화의 역사로 논의를 시작해 주어 고맙다. 나도 트랜스, 젠더비순응자trans and gender-nonconforming (TGNC)로서의 우리 공동체들이 ― 개인적으로도 집단적으로도, 트랜스 운동의 일부로서도 합중국 안팎 다른 여러 운동의 일부로서도 ― 역사 내내 부정의에 맞서 싸우고 조직화해 온 것을 인식하고 기억하고 기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우리가 누구와 무엇을 이 역사의 일부로 여기는지에 유럽중심주의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TGNC 유색인 공동체에서는 우리 출신 국가의 역사와 문화, 보통 식민화 이전에 다중적이고 복잡한 젠더 이해를 갖고 있었던 이들의 역사와 문화를 찾아 자기 것으로 삼는 것이 중요한 경우가 종종 있어 왔다.

오늘날 합중국의 트랜스 운동은 대부분의 운동과 마찬가지로 다양하고 다면적이며 계속해서 바뀌고 변화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TGNC 공동체의 욕구에 부응하기 위해 활동하고 TGNC 공동체를 위한 정의를 위해 싸우는 이들을 큰 그림으로 살펴 보자면, 광범위하다. 유색인 TGNC 조직화 기획인 트랜스정의TransJustice; 레즈비언·게이연구소Center for Lesbian and Gay
Studies, 피어스!FIERCE, 큐팀Q-TEAM 등 강력한 TGNC 리더십이 반영된 활동을 하는 LGBT조직들 (뒤의 둘은 모두 유색인 청년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투스피릿, 트랜스젠더, 퀴어를 위한 조직화 기획이다); 전국 대회를 조직하는 켄터키 아프리카계 미국인 트랜스젠더 단체인 트랜스시스타즈·트랜스브로타즈Transsistahs and Transbrothas 같은 다양한 풀뿌리 단체들; 하우스볼House Ball 씬에 속하는 공동체들; 실비아리베라법률프로젝트Sylvia Rivera Law Project, 트랜스젠더·젠더이형·인터섹스정의프로젝트Transgender, Gender Variant, and Intersex Justice Project 같은 지역 비영리 단체들; 전국트랜스젠더평등센터National Center for Transgender Equality 같은 몇몇 전국구 비영리단체를 비롯해 폭넓은 구조, 조직을 포괄한다. 이에 더해, 이 그림에는 기관이나 공동체와의 일상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부정의와 차별에 맞서 싸우는 무수한 TGNC 개인도, 다양한 웹 기반 포럼이나 전자메일 그룹도 있다. 이런 조직들, 단체들, 개인들은 직접 서비스, 공동체 건설, 옹호, 교육, 학술, 리더십 개발, 문화 작업, 법률 서비스, 조직화를 비롯해 다양한 전략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TGNC 공동체들의 욕구는 현존하는 자원에 비해 훨씬 크다. TGNC 활동을 위한 자금은 제한적인데, 기금 제공에 TGNC 공동체를 포함하는 기금처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LGBT 조직들은 TGNC 공동체들의 욕구를 우선순위에 두지 않고 있으며 다른 사회 정의 조직들 사이에서 TGNC 공동체들의 욕구는 종종 눈에 띄지 않는다.

더욱이, 우리 공동체들은 여전히 리더들, 조직가들이 아니라 서비스가 필요한 이들로 여겨지고 병리화되는 실정이다. 따라서 조직화와 리더십 개발에 초점을 맞춘 프로그램이 확연히 부족하다. 또한, 유색인 공동체, 저소득 공동체, 이민자, 청년, 노년, 시골 공동체, 장애인 등 자원이 가장 부족한 TGNC들의 주도에 우선 순위를 두는 시도는 겨우 한 줌이다.

트랜스 운동이 보다 넓은 차원의 국내외 사회 정의 운동과 어떻게 맞물리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은 인종주의, 가부장제, 경제 부정의, 연령주의, 정상신체중심주의, 지리학이 우리의 우선 순위를 어떻게 정하는지에 달려 있다. TGNC 공동체에는 유색인 공동체, 이주민, 청년, 노년, 시골 공동체, 장애 공동체 등이 포함된다. 그러므로 트랜스 운동이 보다 넓은 차원의 투쟁과 어떻게 맞물리는지는 분명하다. 예를 들어 유색인 TGNC 공동체로서 우리는 우리의 투쟁들을 국내 사회 정의 투쟁들 전반과 하나이자 같은 것으로, 그리고 전 지구적 사회 정의 투쟁들과 ― 같지는 않더라도 ― 직결된 것으로 생각한다. ALP 산하조직으로 유색인 TGNC가 주도하고 운영하는 공동체 조직화 단체인 트랜스정의 구성원들은 2006년 뉴욕시 트랜스행동의날을 위해 쓴 문서인 〈단결 호소문Points of Unity〉에 이렇게 적었다.

유색인 트랜스, 젠더비순응인으로서 우리는 오늘날 우리의 투쟁이 여기 합중국과 세계 곳곳의 여러 투쟁과 직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2006년 6월 23일, 제2회사회경제적정의를위한트랜스행동의날Annual Trans Day of Action for Social and Economic Justice이 억압과 불평등에 맞서 싸운 모든 이들, 모든 운동들과 연대하는 날이다. 우리에게 이 행동은 실비아 리베스, 마샤 P. 존슨Marsha P. Johnson을 비롯해 모든 트랜스와 젠더비순응인의 권리를 위해 결연히 싸웠을 뿐 아니라 모든 억압 받는 자들의 해방을 위한 최전선에 있었던 유색인 트랜스Trans People of Color 전사들의 유산을 따르는 일이다. (TransJustice, 2006)

예를 들어, 트랜스정의가 2005년 〈단결 호소문〉에 적은 대로 유색인 TGNC 공동체들은 억압 받는 공동체들이 겪은 것과 유사한 부정의를 겪는다.

유색인 TGNC가 겪는 구체적인 문제들은 경찰의 잔혹행위와 괴롭힘, 인종주의적이고 이주민혐오적인xenophobic 이민 정책, 생활 임금을 받을 수 있는 일자리·충분한 적정 가격 주거·질 좋은 교육·기본적인 보건의료 등에의 접근성 부재, 합중국 제국주의와 국내외에 있는 이들을 상대로 벌어지고 있는 합중국의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이 가하는 타격 등, 뉴욕시 유색인 공동체 전반이 겪는 문제를 반영한다. 유색인 TGNC에게는 이런 문제들에다 사회에 동성애혐오와 트랜스혐오가 만연하다는 사실이 더해진다. 그 결과 우리 공동체는 홈리스 쉼터, 임시 돌봄 기관, 구치소, 감옥 등에 전체 인구에 비해 과도하게 많이 들어가 있다. (TransJustice, 2005)

정의프로젝트(TGIJP)는 주로 유색인 TGNC가 이끌고 운영하며 TGI 수감자, 전 수감자의 리더십을 우선 순위에 두는 법률 서비스, 공동체 조직화 기획이다. 강령에 따르면 TGIJP는

캘리포니아 감옥 안팎에서 트랜스젠더, 젠더이형/젠더퀴어, 인터섹스(TGI)에게 가해지는 인권 침해를 비판하고 종식[시키고자 한다]. TGI에 대한 깊고도 만연한 차별과 주변화에서 비롯된 빈곤이 TGI들이 감옥에 가게 되는 주된 기저 원인임을 인식하며, TGIJP는 체제의 변화를 가져오는 여러 전략을 통해 TGI 수감자에 대한 인권 침해에 맞선다. … 감옥산업복합체는 장애인, 빈곤 공동체, 유색인 공동체, TGI 공동체에 깊고도 복합적인 타격을 가해 왔기에, TGIJP는 특히 인종, 젠더, 섹스, 계급, 성적 지향, 인터섹슈얼리티, 장애의 교차점에서 활동한다. (TGIJP, 2007)

합중국 제국주의와 기업 권력이 계속해서 전 지구적 수준에서 공동체들, 삶들을 파괴하는 시대에, 합중국의 TGNC로서 우리는 전 지구적 투쟁들에 연대하고 사회경제적 부정의에 맞선 폭넓은 국내 투쟁들에 연대 혹은 참여해 행동할 책임이 있다.

매트 리처드슨: 나도 역사를 들여다 본다는 점에서, 내 관점도 수전과 비슷한 곳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나의 역사적 렌즈는 다른 여건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한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고 미래의 정치적 작업을 상상하는 데에 인종이 근본적이라는 점에 크리스와 동의한다. 두 분이 초기와 지금의 트랜스 운동 건설, 조직적 발전을 훌륭히 개관해 주신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합중국의 인종적 맥락에 있는 사회 정의 투쟁에 관한 질문들을 논해 보려 한다. 연합의 기회들에 대한 논의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나는 특히 흑인의 신체가 어떻게 성적 탈선과 일탈의 표지로서 서구의 사상과 물적 현실에 들어오는지에 큰 관심이 있다. 여기서 성적sexual이라는 것은 물리적 신체와 성 행위 모두를 뜻한다. 흑인에 대한 (사회) 과학적 연구에서 생물학과 행동이 만나곤 한다. 흑인의 젠더가 대니얼 패트릭 모이니언Daniel Patrick Moynihan의 용어(1967)를 쓰자면 병리적인 것으로 구축되는 것은 과학적 대상으로서의 흑인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이며, 이러한 구축의 효과가 전 지구적으로 퍼지는 것은 그것이 수전이 말한 대로 유럽중식적 근대성에 있어 무엇이 정상으로 간주되는지에 관한 표준을 수립하는 데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트랜스 담론들이 비인간화를 둘러싼 (젠더 규범성에 매달리는 경우도 포함해) 투쟁들에 어떻게 녹아 있는지를 생각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비교 해부학이 생물학적 성의 인종적 구축을 위한 무대를 만든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분명히 해두어야 하겠다. 노예제는 아프리카계 사람들을 거대한 존재의 사슬에서 준인간quasihuman으로 위치시켰다. 체계적인 조사를 통해 인종의 위계를 확립하려는 여러 시도가, 생물학적 성에서 관찰되는 신체적 차이에 근거한 많은 주장이 있었고 이는 상상 속 비정상 성적 퇴보 행동을 설명하는 데 이용되었다 ― 물론 전부 다 그저 반흑인anti-Black 폭력을 위한 것이었다. 요한 블루멘바흐Johann Blumenbach나 조르주 퀴비에Georges Cuvier 같은 18, 19세기 과학자, 혹은 Thomas Jefferson 같은 철학자나 정치가에게 이 인간 이하라는 분류는 흑인 성기의 차이(예를 들어 호텐토트의 앞치마라고 불리며 널리 알려졌던, 남아프리카 여성의 늘어진 소음순)를 둘러싼 미결 문제들을 남겨두었고, 동물적 욕구bestiality와 과도한 음욕lascivious desires에 대한 서구의 상상력에 불을 댕겼다 (예로 토머스 제퍼슨이 1878년작 『버지니아주에 대한 단상Notes on the State of Virginia』에서 오랑우탄과 성교하는 아프리카 여성들에 관해 상술한 것을 보라). 이 때문에, 헤블록 엘리스Havelock Ellis(1897/2007)가 “저급 인종lower human races”(p. 17)이라 불렀던 이들의 젠더화된 표현형들은 인류학자, 사회학자, 성과학자, 심리학자, 해부학자 등 온갖 학자들을 매료시켰다. 흑인 여성 성기의 차이를 정량화하려는 욕망은 연구 대상 흑인 여성의 성기는 ― 1867년 『해부학·심리학지Journal of Anatomy
and Physiology』 창간호의 표현을 가져다 쓰자면 ― “인간종의 다른 어떤 평범한 이형태와도 단번에 구분할 수 있을만큼 특징적”이라는 확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Flowers & Murie, p. 208). 생리학적으로 과잉되다는 주장은 흑인을 소위 문명화된 남성이나 진정한 여성에 대해 용인될 만한 수준을 한참 넘어서는 과도한 노동과 고문에 이상적인 존재로 만들었다. 해부학적 조사와 민족지적 관찰을 통해 인종주의적인 차이의 분류학을 확립하려 한 이 초기의 시도들은 흑인의 몸을 언제나 이미 변종인 것으로, 흑인을 젠더 탈선의 정수로 만들었으며, 흑인을 대척점 삼음으로써 규범을 규정했다.

이 맥락은, 공공연히 젠더 규범을 위반했던 초기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을 트랜스젠더 역사에 집어 넣을 때의 쟁점, 오늘날의 흑인이 트랜스 정체성을 주장할 때의 쟁점을 고민하는 데 특히 유용하다. 19세기 후반 옛 서부의 악명높은 일탈적 집배원이었으며 1868년부터 1870년까지 남성 버팔로군으로 복무한 (윌리엄 케이시William Cathy나 스테이지 코치 메어리Stage Coach Mary라는 이름도 썼던) 케이시 윌리엄스Cathy Williams 같은 인물들은 19세기의 다른 젠더 이형 사례들과 연관지어질 수도 있었음에도 아프리카계 미국인 역사 담론에서 예외적인 강한 여성으로 취급되어 왔다. 그 이유 중 하나로, 앞에서 설명한 문제들로 인해 흑인의 젠더 규범 위반에 주목을 청하는 일은 주류 흑인 공동체들에서 위험할 정도로 인종주의 담론과의 공모에 가까이 있는 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이 있다. 이런 상황은 과거에나 현재에나 다르게 젠더화되는 흑인에게 딜레마를 가한다.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서 문화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트랜스섹슈얼이나 트랜스젠더 같은 용어를 끌어안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그것은 어떻게 그런 사람은 흑인이 아니라는 표식mark이 되는가?

트랜스 권리 운동이 흑인들로부터 등장하거나 흑인을 폭력과 착취에 맞선 투쟁의 파트너로 통합하는 데 성공하려면 노예제와 식민주의라는 역사적 조건들이 젠더가 지정되고 살아지는 방식들에 어떤 무대를 만들어 놓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예를 들자먄 오늘날 합둥국에서 흑인 인구는 아프리카 이다스포라를 아우르는 여러 인구 집단으로 구성됨을 인식하는 것이 유용할 것이다. 이외에도 많지만, 특히 중남미, 카리브해, 아프리카 출신 이민자들이 복잡하고 다면적인 여러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그렇다면 다양한 젠더를 가진 이들이 합중국으로 보내지기transported 혹은 오시 전에는 어떻게 불리는지, 도착하고 나면 젠더에 무슨 일이 생기를지를 고려해 봄직하다. 이런 중요한 질문들이 있다. 노예제와 식민주의가 도착 전후로 젠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그 영향은 피부색, 계급, 연령, 장애 여부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가? 이런 논의에서 섹슈얼리티와 관련해서는, 재키 알렉산더Jacqui Alexander(1997, 2002)와 글로리아 웨커Gloria Wekker(2006)가 카리브해 지역과 수리남에서의 연구를 통해 크게 기여한 바 있다. 나는 이것이 아직 연구가 시작조차 되지 않은 풍성한 주제라고 생각한다.

트랜스 권리가 점점 가시화되고 법제화된 지난 10, 20년간 그것을 보는 틀은 어떻게 변화했나? 무엇이 이 운동의 정치적, 정책적 목표가 되어야 하나? 우리가 어떻게 해야 반인종주의적인 트랜스 정의 운동을 건설할 수 있나?

크리스 하야시: ALP에서는 다쟁점 조직화를 믿고, 단일쟁점 운동을 경계한다. 우리는 단일쟁점 운동은 가장 취약한 공동체들을 버리고 갈 위험이 있다고 생각한다. 경제정의를위한퀴어모임Queers for Economic Justice에서 발의한 지금의 동성 결혼 운동에 대한 비판인 〈결혼 너머 성명Beyond Marriage Statement〉의 말대로,

한편, LGBT 운동은 최근에 독립적인stand-alone 쟁점으로서의 결혼 평등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 이 전략은, 일부 LGBT 가족을 위한 권리와 혜택을 확보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우리를 고립되고 맹렬한 반동에 취약한 채로 남겨 두었다. … 혼인권 투쟁은 다양한 가구, 가족의 안정성과 안전성을 강화하려는 보다 큰 틀에서의 노력의 일환이 되어야 한다. … 동성 결혼이든 아니든 결혼에 대한 최근의 논쟁은 가구 다양성이 인구학적 규범인 나라에 있는 수많은 이들의 욕구와 욕망을 무시한다. 우리는 이 논쟁의 틀을 새로 짜고자 한다 (BeyondMarriage.org, 2006).

그러므로, 트랜스 운동이 얼마나 발전하고 진보하든, 계속해서 모든 억압에 맞서 모든 억압 받는 공동체들을 위한 정의를 위해 싸우는 방식들을 취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ALP에서는 또, 모든 억압 받는 공동체들을 위한 정의를 위한 성공적인 운동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우리 공동체들에서 가장 취약한, 자원 접근성이 가장 부족한, 그리고 생존에 가장 큰 장벽을 마주하고 있는 이들의 욕구, 관점, 리더심을 최전선에 놓는 것이 지극히 중요하다고 믿는다. 우리는 우리 운동이 대응할 핵심 쟁점과 문제를 이런 공동체들이 결정해야 한다고 믿는다. 합중국 사회가, 따라서 합중국에 있는 우리 운동들이 기반하고 있는 체제의 억압으로 인해, 정 반대의 일이 일어나곤 한다. 생존에의 가장 거대한 장벽 몇 가지를 겪고 있는 TGNC들이 이끄는 조직이나 운동을 보면, 이런 공동체들이 우선시하는 쟁점들은 가시성이나 자원을 그다지 얻지 못한다 ― 그래서 종종, 트랜스 쟁점과 관련한 우리 운동이나 다른 운동의 생각 속에는 [그런 쟁점들이] 없을 때가 있다. TGNC 수감자들을 위한 정의에서부터 경찰의 잔혹행위와 폭력, 젠트리피케이션, 합중국이 국내외에서 주도하는 테러에 대한 전쟁, 이주민 권리, 복지, 실업, 교육 접근성 등이 그렇다. 예컨대, 트랜스젠더·젠더이형·인터섹스정의프로젝트뿐 아니라 다른 조직돌도 가장 힘 없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을 최전선에 놓는다. 뉴욕시의 경우, 웨스트빌리지 지역의 GNC 유색인 청년과 저소득 청년들은 주로 백인이고 중상류층인 주민은 물론 경찰이 가하는 계속되는 폭력과 괴롭힘을 겪고 있다. 그 결과, 주로 TGNC 저소득, 홈리스 유색인 청년들이 이끌고 준영하는 조직인 피어스!에서는 젠트리피케이션뿐만 아니라 경찰의 잔혹행위와 폭력 문제를 우선순위에 둔다. ALP 산하 프로젝트로 TGNC 유색인이 이끌고 운영하는 트랜스정의는 TGNC 유색인의 높은 실업율에 따라 실업과 교육접근성 문제를 우선시해 왔다. 뉴욕에서도, 트랜스정의, 복지전사들Welfare Warriors, LGBT커뮤니티센터LGBT Community Center 산하 젠더정체성프로젝트Gender Identity Project 등의 조직, 단체가 모인 연합체에서, 공적 지원을 얻고자 하는 TGNC들이 마주하는 잦은 괴롭힘과 차별을 끝장내기 위한 노력들을 우선순위에 놓고 있다. 마지막으로, 주로 유색인, 저소득 공동체들이 이끄는 여러 TGNC 단체들 또한 합중국이 국내외에서 벌이는 테러에 대한 전쟁의 종식을 우선시해 왔다. 트랜스 운동이 진보하는 가운데, 우리가 어떤 쟁점들이 우선순위에 놓이고 충분한 자원을 얻으며 어떤 쟁점들은 그렇지 않는지, 그리고 그런 선택들이 형성되는 데에 억압 체제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비판적으로 살펴보는 일이 중요하다.

트랜스 정의를 위한 성공적인 반인종주의 운동을 건설하는 데 있어서는, 트랜스 활동과 조직화의 현 상태를 몇 가지 핵심 질문과 연관해 성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조직들, 단체들은 유색인의 리더십과 참여를 지지하는 구조를 갖고 있는가? 우리 조직들, 운동들의 지도층이 주로 백인인가? 사람들, 조직들, 일반 대중과 운동에게 크게 가시화되는 이들이 주로 백인인가?

성공적인 반인종주의 운동의 건설을 위해서는 백인 연대자들이 트랜스 운동 내에서 ― 일상의 차원에서든 단체나 기관을 만들 때에든 ― 인종주의가 영속화되는 데에 맞서야 한다. 백인 연자들은 또한 유색인을 위한 공간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유색인 트랜스, 젠더비순응인에 의한, 이들을 위한 리더십과 조직화를 지지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백인 연대자들이 트랜스 공동체들 내에서 반인종주의 활동의 본보기가 될 백인 반인종주의자 리더, 조직가를 지향하는 것이 중요하다.

매트가 말한 대로, 식민화가 벌어지기 전에 많은 유색인 공동체에 여러 가지 젠더가 있었음을 알고 식민주의와 제국주의가 합중국의 젠더관을 어떻게 빚어내는지를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반인종주의 운동을 건설하려는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 우리는 반계급주의, 반가부장제, 반연령주의, 반정상신체중심주의, 반동성애혐오적이기도 한 운동, 즉 여러 가지 젠더 정체성과 섹슈얼리티의 다양성을 반영하고 합중국 안팎에서 합중국 제국주의와 지구화에 맞서 투쟁하는 이들과 연대하고자 하는 운동을 건설하려 노력해야 한다.

매트 리처드슨: 반인종주의 트랜스 조직화에 다쟁점 관점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크리스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작금에 퀴어가 결혼에 집중하고 있는 것은 여러 층위에서 문제적이지만, 크리스의 말대로 일부의 권리와 혜택을 확보하고 나머지를 말도 안 되게 취약하게 내버려둔다는 점에서 특히 문제적이다. 말론 베일리Marlon Bailey, 프리야 칸다스와미Priya Kandaswamy와 공저한 「동성 결혼은 인종주의적인가Is Gay Marriage Racist?」(2004)라는 글에서 우리도 동성 결혼은 모든 퀴어가 권리를 이용할 수 있는 동등한 기회를 갖고 있다고 전제한다는 점에서 효과적인 민권 전략으로서는 한계가 있음을 논의한 바 있다.

합중국에서 반인종주의 트랜스 운동을 건설하려면 모든 트랜스가 같지 않음을, 특히 국가 권력과의 관계에 있어서 같지 않음을 인식해야 한다. 모든 젠더비순응인이 법 앞에서 동등하다는 오해가 트랜스 차별을 경감하는 데 도움이 되는 법적 수단들을 강조하는 데 기름을 붓고 있다. 법의 변화가 반드시 모두에게 똑같은 혜택을 주는 것은 아니다. 입법적 개선에 집중한다는 것은 평등한 보호라는 금언에 기대는 것인데, 이는 여권에 뭐라고 적혀 있건, 합중국에서 태어났건 아니건 우리를 국가에게 온전한 시민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의 경험을 간과하는 것이다.

이번에도 역사가 특히 유용하다. 트랜스들의 상대적인 지위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를 어느 정도 알려주기 때문이다. 시민권의 한도를 규정하는 데 기여한 토대적인 대법원 판결 중 하나로 드레드 스콧 대 샌드퍼드Dred Scott v. Sandford 판례(1857)가 있다. 여전히 노예인 채였지만 스콧과 변호인들은 주인이 노예주에서 자유영도로 이사하면 그도 자유인이 된다고 주장했다. 아프리카 후손에게 적용되는 합중국 시민권의 정의 자체에 도전한 재판이었다. 법원은 스콧의 패소로 판결했고, 대법원장 로저 B 테이니Roger B. Taney는 이렇게 적었다.

우리 앞에 놓인 문제는 실효 탄원에 기재된 계급이 국민의 일원이며 이 주권국가의 성원인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지 않다고, 헌법 상의 “시민”이라는 말에 포함되지 않으며 헌법에 그런 의도가 없다고, 따라서 헌법이 합중국 시민에게 제공하고 보장하는 어떤 권리나 특권도 주장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그들은 당시에 지배 인종에 복속된 종속적이고 열등한 계급으로 간주되었고 해방되었건 아니건 주인의 권리 하에 남으며, 그러한 권리와 특권은 정부가 누구에게 부여할지를 선택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이에게만 주어진다. (Dred Scott v. Sandford, 1857)

스콧 판결은 1868년, 1870년의 수정헌법 14조, 15조 비준으로 뒤집어졌다고 할 수 있지만, 시민권이 보장하는 보호는 부여되지 않았다. 공식적인 노예제가 헌법에서 폐기될 것을 예견한 남부 주들은 [노예제가 폐지된] 1865년에는 새로이 자유민이 된 이들을 규제하고 예속시키는, 흑인법Black Codes이라 불리는 일련의 법령을 발효해 그들에게 공공 장소에서의 회합이나 백인에게의 말대꾸 등의 죄목으로 국가가 허용하고 강제한 감금과 폭력을 가했다. 물론, 생명과 자유에의 권리나 투표권 같은, 수정 헌법의 법적 약속들은 반흑인 감정의 탐욕스런 힘에 눌려 버렸다. 아직도 오지 않은 제약 없는 투표권을 위해 흑인이 백 년을 더 싸워야 했을 뿐 아니라, 전후 남부는 살인의 광풍에 휩싸여, 거리낌 없는 린치라는 유산을 남겼다.

오늘날 합중국 흑인 트랜스의 살아진 경험은 국가 보호라는 약속과 규제, 감시, 잔혹행위라는 관행 사이의 불일치를 보여준다. 1999년,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에서 열린 변화를만드는대회Creating Change Conference 기간에 어느 아프리카계 미국인 트랜스 여성 단체가 오클랜드 시내에서 공격을 당했다. 현장에 도착한 경찰 역시 피해자들을 공격했다. 한 경관은 “서류 작업에 진절머리가 나. 당신들 14번가 끄트머리랑 브로드웨이에 오지 말라고 했을 텐데. 당신들 뒤치닥거리에 진절머리가 난다고”라고 했다고 한다 (GenderPAC, 1999). 그날밤 오클랜드 경찰청에서는 대회 참여자들이 집회를 열었다. 여기 있는 다른 분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그 집회에 있었다. 처음의 공격과 이어진 경찰의 언어 폭력은 더 큰 틀에서 계속되는 보호와 복무에의 거부의 일환이며, 트,특히 트랜스를 겨냥한 경찰 잔혹행위에 관해, 그리고 국가가 위임한 인종주의 폭력의 역사에 관해 함의하는 바가 있다. 그날 밤 들은 연설 대부분에서는, 그 사건을 그 공동체의 수많은 구성원들에게 일어나는 일상적인 인종주의 폭력과 연결 짓지 않았다.

변화를만드는대회 때의 그 사건이 있고 겨우 몇 년 후인 2004년에, 그때와 똑같이 14번가와 브로드웨이가 만나는 위치에서, 진압복을 입은 경찰이 대부분이 흑인 음악 축제 참가자였던 어느 평화로운 모임을 급습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마침 그 싸움 잦은 모퉁이에 살고 있었다. 어느 날은 집에 가는데 통근 열차가 갑자기 멈췄다. 승객에게는 지상에서 폭동이 벌어지고 있다고, 승객의 안전을 위해 이 지역으로 가는 모든 열차가 즉시 운행을 중단했다고 안내했다. 근처에 사는 이들은 내릴 수 있었지만, 다른 열차는 인근 두 개의 역에 정차가 허가되지 않았다. 버스도 우회했다. 거리로 올라가자 대중 교통을 탈 수 없어 발이 묶인, 대부분 흑인 청년인 조용한 군중과 확성기를 들고 그들에게 당장 그곳을 떠나라고 말하고 있는 경찰 대열이 보였다. 그 음악 축제에 갔던 것도 아니었고 그저 군중 속 또 하나의 검은 얼굴이었을 뿐이었지만, 어느덧 거리에 투척된 최루가스 캔을 피해 얼굴을 가리며 경찰의 곤봉을 피해 도망치고 있었다. 이후 경찰은 군중이 통제 불능 상태에 있었으며 적절한 조치를 취한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트랜스 운동이든 다른 운동이든, 반인종주의 운동이라면 갖가지 형태의 인종주의에 취약한 이들의 일상과 다투어야만 한다. 1999년에 트랜스젠더 여성들을 공격한 후, 경찰은 트랜스 문제에 대한 감수성 훈련을 하라는 권고를 받았다. 좋은 제안이지만, 그날의 폭력이나 경찰의 그런 반응을 촉발한 훨씬 큰 구조적 조건들은 건드리지 않는 방식이다. 트랜스 조직의 리더십에 대한 크리스의 질문들에서 드러나듯, 트랜스 조직을 인종주의와 계급 억압에 영향 받는 이들이 이끌수록, 이미 관련 쟁점들과 씨름하고 있는 다른 조직과의 협력을 포함해 더 많은 다층적 전략이 가동될 것이다.

수전 스트라이커: 1980년대 말에 개인 수준에서 트랜스 공동체에 참여하기 시작한 후로, 트랜스젠더 쟁점들이 틀지어지는 방식이 크게 변하는 것을 보아 왔다. 거의 20년이 지났다는 걸 믿기 힘들 지경이다. 당시에는 정치적인 관점에서 사고하는 다른 트랜스를 찾기가 매우 힘들었다. 내가 만난 사람 대부분은 생존에 초점을 두고 있었다. 트랜스 지지 모임은 상당히들 우울했고 종류를 막론하고 자원은 없다시피 했다. 당시에 존재했던 활동은 거의 전적으로, 수술, 호르몬, 상담 접근성 개선을 위해 의료 서비스 제공자, 심리치료 서비스 제공자를 교육하는 데 집중했다. 의료적으로 식민화된 이들로서의 우리에 관한 이야기, 필요한 호르몬과 수술에 관한 이야기, 1970년대 게이, 레즈비언, 진보 운동에서의 성전환자 마녀 사냥에 관한 이야기, 성매매와 에이즈 문제에 관한 이야기가 많았다 ― 하지만 내가 찾을 수 있었던 정치 담론은 그게 다였다. 에이즈 문제에 적극적인 이들을 빼면, 정치적 활동은 거의 찾을 수 없었다.

만연한 비정치적 태도에 대해, 나는 꽤 오만했다. 1980년대 거의 내내 버클리에서 대학원을 다녔고, 모종의 살아진 실천과 연결지으려 필사적으로 애쓰고 있었던 푸코로 머리가 가득 차 있었다. 샌프란시스코의 언더그라운드 가죽/SM계에 가게 되었는데, 내게는 어떻게 하면 젠더, 섹스, 섹슈얼리티, 정체성, 체현, 욕망을 새로운 급진적인 방식으로 묶을 수 있을지를 알아볼, 또한 왜 그런 색다른 문화가 지배 문화에는 그토록 위협적이어 보이는지를 생각해 볼, 놀라운 실험실이자 작업장이었다. 모든 것이 짜릿하리만치 정치적이었다. 좀 기운빠지는 트랜스 공동체가 아니라 그 공동체들을 내 본거지로 삼게 되었다.

몇 년이 지난 1980년대 후반에야, 트랜스들이 꼭 자기가 원해서 비정치적인 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야, 진짜로, 내가 트랜스젠더라고 해서 그게 내가 정신병자라거나 페미니스트 의식 고양 모임에 나가야 한다거나 내 몸을 훼손하고 싶게 만든 억압적인 성별 고정관념에서 자유로워져서 내 본모습인 게이 남성으로 커밍아웃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야 ― 실은 당시엔 다른 이들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 말고는 달리 무언가를 할 기회가 별로 없었던 것이었다. 트랜스젠더 문제는 그것을 무효화하는 문화적 경향들에 사실상 가로막혀 있었고 정치적 활동을 할 기회는 별로 없었다. 트랜스로서 하루하루를 사는 데만도 엄청난 힘과 결기가 필요했다.

밀실공포증을 일으킬 지경이었던 그 가로막혀 있다는 느낌이 나로 하여금 1990년 초의 퀴어 운동에 사로잡히게 했던 것이다. 내 삶에서, 마침내 책에서 배우는 것을 거리의 정치와 이을 수 있게 해 주는 곳을 만난 것이다. 나와 비슷한 방식으로 생각하는 트랜스들, 트랜스 쟁점을 투쟁적인 문화 정치로 연결하고 싶어하는 이들, 어떤 내분비과 의사가 자신을 인간으로 대우해줄지나 누구는 처방전 발급을 깜빡할 것 같은지 같은 일상적인 문제뿐 아니라 거대한 구조적 문제도 다루고 싶어하는 이들을 마침내 찾은 것이 너무도 기뻤다. 우리는 의료 보험에 트랜스 배제에 관한 워킹 그룹을 만들고 보편적 보건의료에 대한 선언문을 쓰고 성 동일성 장애gernder identity disorder에 대한 항의로 미국정신과협회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와 해리벤저민국제성별위화감협회Harry Benjamin International Gender Dysphoria Association를 기습하고 병리화에 기대지 않고도 트랜스 보건의료 접근성을 얻어낼 새로운 근거를 마련했다. 우리가 온 세상을 바꾸는 것만 같았던, 기세등등한 시대였다.

새로운 트랜스젠더 대화가 모양을 갖추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는 환희는 말로는 다 전하기 어렵다. 일단 우리도 모자랄 것 없는viable 인간이라고 교육할 필요 없이 드디어 비트랜스들과도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건 정말이지 기쁜 일이었다. 애초에 무언가를 말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닌 것과 무엇을 말하는 게 가장 좋을지를 두고 트랜스들 사이에서 이견이 있는 것 사이의 크나큰 차이에 대한 의식이, 내가 트랜스 운동이 해야 하는 일들에 대해 장기적 관점을 가질 수 있게 해 준다. 우리가 뭐든 하고 있다는 것,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그렇게나 많은 일을 했다는 것에 아직도 조금 얼떨떨하다. 지금은 우리에게 여러 개의 틀을 만들 기회가 있다는 것이, 틀이 가장 크게 달라진 지점이다.

그 가능성을 생각하면, 어떤 정책과 강령이 운동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말하기가 망설여진다. 대체로는 뭐든 중심이라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 언제든 가능할 때 (적어도 은유적으로라도) 왕의 목을 베고 주권 권력을 타도하자. 앞에서도 이야기가 나온 대로, 우리 중 뭐든 특권을 가진 이들이 그저 우리가 누리는 바로 그 특권으로 인해 주변화되는 사람들, 공동체들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는 것뿐 아니라 그들을 경청하고 그들과 협력해 보다 정의로운 상황을, 차이가 그저 차이일 뿐 위계가 아닌 상황을 만들어 내는 일의 중요성도 다시 말해 두고 싶다. 여러가지 주변성, 특히 인종과 계급이 구축하는 주변성들에 주의를 기울이는 일은 하나의, 통일된 트랜스 운동으로 이어지지 않겠지만, 그것은 축하해야 할 일이다. 그 어떤 운동도 하나가 모두의 욕구에 부응하지는 않을 것이다.

학술적으로 틀 지어진 트랜스젠더 연구는 트랜스 활동가들의 욕구, 의제에 얼마나 부합하는가? 어떤 학술 작업이 가장 필요한가? 가장 도움이 안 되는 것은 어떤 것인가?

매트 리처드슨: 트랜스 활동가들이 학계에 무엇을 바라며 그들의 활동과 관련해 학계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데에는 저번에 크리스가 이야기를 꺼낸 리더십에 관한 문제들이 특히 중요하다. 우선, 남은 문제가 있다 ― 어떤 활동가 말인가? 유색인 트랜스가 이끌고 유색인 트랜스에 관한 활동을 하는 조직들에는 주로 백인인 조직과는 다른 의제가 있을 것이며 서로 다른 유색인들끼리도 다양한 목표를 갖고 있을 것이다. 학자로서나 활동가로서나 우리가 트랜스들의 삶에 대한 책임을 다하려면 이런 차이점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미래의 트랜스 연구가 가장 취약한 트랜스 인구들에게서 자신의 방향을 찾는 쪽으로 갔으면 한다. 예를 들어, 크리스는 샌프란시스코 만안 지역에서 활동하는 TGIJP를 언급했다. TGIJP가 바라보는 이들 ― 대량감금 당하는, 그 대부분이 유색인이기도 한 이들 ― 에게 가장 필요할 만한 것은 본인이 활동가이기도 한 학자다. 실천에 가치를 두는 학자는 자기 연구의 근간을 이루는 투쟁의 현장에 직접 참여하곤 한다. 앤젤라 데이비스Angela Davis가 좋은 예다. 그녀가 투쟁에 헌신한 40년이 넘는 시간은 근작 『감옥이 옛일인가?Are Prisons Obsolete?』(Davis, 2003)를 비롯한 관련 학술 저술과 마찬가지로 잘 기록되어 있다. 다른 예로는, 로스앤젤레스의 남가주대학교에서 미국학·민족지 과정을 맡고 있으며 합중국에서 가장 중요한 전국 단위 반감옥 조직 중 하나인 비판적저항Critical Resistance의 창립 멤버이기도 한 루스 윌슨 길모어Ruth Wilson Gilmore 같은 이들을 들 수 있다. 길모어는 감옥운영정지프로젝트Prison Moratorium Project와 캘리포니아감옥감시California Prison Focus에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으며 얼마 전에 『황금 수용소: 지구화하는 캘리포니아의 감옥, 잉여, 위기, 반대Golden Gulag: Prisons, Surplus, Crisis and Opposition in Globalizing California』(Gilmore, 2007)를 펴내기도 했다. 나도 그렇고, 앤젤라 데이비스나 루스 윌슨 길모어 같이 현기증 나는 이력을 살아 낼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하지만 그들은, 적어도 한 사람으로서 자신이 글로 쓰는 물적 조건들을 바꾸기 위해 헌신하는 그 정신에 있어서, 우리 모두가 포부를 품을 수 있을 만한 본보기를 제공한다.

이런 면에서, 민족 연구 분야에서 작동하는 학제적 관점은 비판적 젠더 연구를 발전시킬 수 있을 비옥한 토양이다. 젠더의 인종적 구축은 아마도 트랜스 연구에 있어 가장 생산적인 미래일 텐데, 학계에는 그에 대한 학제적 연구가 너무도 부족하다. 과거, 현재, 미래의 계급, 인종, 장애여부, 연령의 물질성에 기반한 연구는 ― 비록 고도로 이론적이라 할지라도 ― 궁극적으로, 생존을 위한 투쟁에 참여하는 현장 활동가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수전 스트라이커: 나는 트랜스젠더 연구를 한편에는 활동 전략들, 다른 한편에는 학술적 고려들이 있는 요구에 따라 구조화되는 분야로 틀 짓기는 정말이지 주저된다. 학자는 활동가가 아니라는, 혹은 활동가는 학자가 아니라는 말이자 학계 트랜스 연구의 진짜 역할은 비학계 트랜스 활동가들에게 현실 세계에서 활용할 내용과 도구를 제공하는 것이라는 말이 되지 않나. 어떤 학술 작업이 가장 필요하냐는 질문에 답하려면 단서를 달아줄 다른 질문이 하나 더 필요하다. 누구에게 필요한가, 하는 질문 말이다. 가장 도움이 안 되는 것에 관한 질문도 마찬가지다. 누구에게 도움이 안 되는가? 지식과 그 유용성은 굉장히 상황 특정적이다.

활동가 대 학자의 충돌은 지식, 권력, 사회 구조에 대한 소수자적 비판에 뿌리를 두고 있는 학제적 연구 분야의 내적 정치학을 틀 짓는 익숙한 방식이지만 나는 그것이 그다지 생산적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같은 식의 논쟁이 페미니즘 이론은 여성의 투쟁에는 아무 가치가 없다고, 비판적 인종 이론은 흑인의 투쟁과 아무 상관이 없다고, 퀴어 이론은 게이 권리와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한다.

나는 우리가 이 충돌에서 두 가지 서로 다른 것을 듣고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우리는 고등교육이나 학계 일자리에 접근할 수 있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종류의 혜택에서 배제되는 이들 ― 자신들의 대의를 명분으로 행해졌다지만 그들의 삶에 뚜렷한 의미는 없는 작업을 마주할 때 마땅한 분노와 소외감을 느끼는 이들 ― 의 고통과 좌절을 듣는다. 둘째, 자신의 학적 특권을 불편하게 여기지만 자신이 하는 지적, 비판적 작업의 중요성을 믿는 이들, 종종 비학계 사회 정의 활동가들과 (때로 잘난 체 하는 방식으로) 함께 작업하고 자기 작업의 정치적 의미를 주장해 자신의 학술 작업을 정당화함으로써 자신의 계급적 죄책감을 덜려 하는 이들의 방어적 태도를 듣는다.

트랜스 지식 생산에 있어 학계의 역할에 관해, 그리고 트랜스젠더 사회 정의 운동에 대한 이 지식의 관계에 관해 생각할 때 우리가 보다 섬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학도 결국은 또 하나의 일터일 뿐이며 대학에는 대학 특유의 직장 문제가 있다. 학계 일터 정치에 ― 학생, 직원, 교원 모두를 위해 ― 트랜스 정치를 들이는 것은 학계의 재정적 자원과 상징 자본이 사회 정의를 위한 트랜스 투쟁으로 흘러들어 가게 하는 중요한 방법 중 하나다. 트랜스 문제를 학계의 언어로 쓰는 것은 이런 작업의 일환이다. 이는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적인, 때로는 용어로 가득한 언어를 요하는 전문화된 작업이다. 트랜스젠더 연구를 학계에 제도화하는 것은 쟁점들을 논의 테이블에 올려두면서 학계 제도의 엄청난 자원을 활용하는 한 가지 전략이다. 이것은 대학 입학 허가를 받아 자신을 위해 안전하고 힘이 되는 교육 경험을 만들 수 있을 만큼 운이 좋았던 다음 세대 트랜스 청년들을 교육하는 일의 일환이, 트랜스 교직원을 위한 안전한 노동 조건을 만드는 일의 일환이, 분과 학문의 지식을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올 방식으로 변화시키는 일의 일환이 된다. 이런 종류의 ― 학계 일터 특유의 ― 트랜스젠더 지적 작업이, 매우 난해하다고 할지라도, 더 넓은 트랜스 사회 정의 운동에 본질적으로 무용하다고 여겨져서는 안 된다. 이런 종류의 학술 작업은 사회적 권력에 대한 트랜스 쟁점들의 관계를 재구성하는 퀴어한 노동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못 해도 트랜스 문제를 비가시화하고 주변화하는 수단들을 가시화하는 데 기여한다. 잘만 된다면 트랜스의 체현과 경험에서 나오는 류의 지식을 학술 산업의 핵심부에 위치시킨다.

푸코의 예속된 지식subjugated knowledge 논의(2003)가 트랜스젠더 연구의 정치학을 논의하는 데에 놀라우리만치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Stryker, 2006). 예속된 지식을 말하면서 푸코는 구분되는 두 가지를 염두에 두었다. 첫째, 그는 사회 체제들, 제도들 속에 갇혀 있는, 체제와 제도의 작동을 통해 그 존재 자체가 가려지는 일련의 지식을 생각했다. 이런 종류의 지식은 오직 그 복원과 구출에 필요한 전문 훈련을 받은 이들에 의해서만 탈예속화될 수 있다. 학문의 온갖 도구를 활용하는 비판적 작업 ― “트랜스젠더이면서 걸어다니는 것walking while transgendered”이 누군가를 성매매 혐의로 형사 기소할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할 수 있는 변호사의 작업, 혹은 성전환 판타지는 정신병원에 가두어야 할 정신병이 아니라고 정신의학의 용어로 정신의학과 다툴 수 있는 정신분석 이론가의 작업이다. 다른 유형의 예속된 지식은 푸코가 학식의 위계에서 부족하게 여겨지는 지식이라고 부른 것 ― 민간 지식, 실용적[현장의]practical 지식, 몸의 지식, 여타 과학의 지위를 주장하지 못하는 여러 가지 지식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권력의 작용을 경험함으로써 구성되는 저항적 지식이다. 푸코(2003)는 이 두 가지 상보적 인식 방식을 계보학적으로 연결하는 ― 투쟁의 꼼꼼한 복원을 싸움의 날것 그대로의 기억과 결합하는 ― 데서 시작되는 “예속된 지식들의 봉기”를 요청했다 (p. 7).

내게 이 모든 것은 결국은 학계의 트랜스젠더 연구와 트랜스젠더 사회 운동이 어떻게 협력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매우 추상적인 종류의 학술 지식 역시도 상아탑 너머의 활동들에 영감을 줄 수 있다. 음악이 어떻게 마음을 움직이는지를 말로 설명할 수는 없어도 음악이 영감을 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가장 엄격한 종류의 지적 분석이라도, 그 분석이 파악하고자 하는 보다 넓은 차원의 물적 조건들과 생생하게 마주하지 않는다면 죽은 형식주의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 우리의 차이들을 가로질러, 각자가 하는 다양한 작업에 보다 인내심을, 호기심을 갖고서 보다 연결되어 보자 ― 그리고 다른 이들이 다른 자리에서 하는 작업에서 보다 창의적으로 영감을 얻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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