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평택 공장을, 공장 굴뚝 위에서 홀로 남아 92일차 농성을 하고 있는 이창근을 방문하는 집회가 있었다. 집회를 몇 시간 앞두고 평택역 광장에서는 행동 독서회라는 행사가 열렸다. 작은 무대에는 "함께 살자"라고 적힌 천이 걸려 있었고, 그 옆으로 『이창근의 해고일기』를 파는 부스가 있었다. 거기서 그 책을 산 사람들, 혹은 다른 곳에서 이미 산 사람들이 모여 광장 여기저기서 책을 읽었다. 이윽고 그들은 문장을 골라 작은 천에 옮겨 쓰고, 돌아가며 자기가 고른 문장을 낭독했다. 목숨을 끊은 동료 해고자에게 그가 쓴 편지의 한 구절을 읽은 사람, 그가 제 괴로움을 읊은 부분을 읽은 사람, 그가 이 사회의 문제를 지적하는 부분을 읽은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늦게 도착했다. 책은 읽지 못했다. 혹시 사회자가 근처에 있던 내게도 마이크를 들이 댈까 두려워 아무데나 몇 군데를 펼쳐 문장을 찾아 보았다. 대여섯 군데를 훑어 봤지만 크게 들어 오는 문장은 없었다. 그러다 마지막 페이지를 펼쳤다. 2014년 12월 20일, 한겨레신문에 실은 글이었다. 굴뚝 농성 6일차를 맞은 그가 쓴 글이었다.
굴뚝에 오른지 6일째를 맞고 있다. 차가운 날씨는 견디면 되고, 내리는 비는 부는 바람에 맡겨 말리면 되고, 쏟아지는 눈은 눈사람을 만들어 벗 삼으면 된다.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직 우리가 바라는 건 공장 안 동료들의 따뜻한 시선이며 악수다. 이젠 이 지긋지긋한 쌍용차 문제를 풀자고 공장 안 동료들이 나서줬으면 좋겠다. 정리해고로 인해 공장 안팎이 무간지옥의 6년이었다. 이제 새 길을 쌍용차 구성원이 함께 만들자는 말을 이제 우리 스스로가 했으면 좋겠다. 마음이 동한다면, 결코 어려운 일 아니다. 이 바람이 꼭 실현되길 바란다. 굴뚝은 우리들의 고향이다. 기대고 싶고 응석 부리고 싶고 하소연하고 싶다. 공장 안 동료들에게 손을 내민다. 쌍용차 문제의 매듭을 함께 풀어보자고.
「하늘 아래선 마주 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이창근, 『이창근의 해고일기』, 오월의봄, 2015, 417-426쪽.
하필 이 글이 마음에 걸린 것은 다름 아닌 "고향"이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지난 십 년간, 공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외치는 수많은 이들을 보았다. 늘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생계 때문에, 혹은 자존심 때문에 — 거기까지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전부였으나, 그들에게는 그 이상의 이유가 있어 보였다. 한 곳에서 오래 일한 이들, 공장의 역사와 제 삶의 역사가 겹치다시피 하는 이들은 더했다. 인생을 부정당해서 — 그 이상의 이유가 그들에게는 있어 보였다. 이창근은 잘 모르는 이이지만, 적어도 그가 쓰는 글들에서 그는 제 회사를 사랑하고 있었다. 늘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를 버린, 그가 찾아간, 그가 싸우고 있는 그 공장을 그는 제 고향으로 여긴다고 했다.
고향, 도시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요즘 세상에서 그곳은 '돌아갈 곳'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그곳이 돌아갈 곳이라는 것은 그곳을 떠나온 이들이 있음을 뜻한다. 고향, 그것은 떠날 수 있는 곳 — 떠난 곳이든 떠날 곳이든 — 에만 쓸 수 있는 말이다. 제 삶이 시작된 곳, 그것만으로 어떤 곳이 고향이 되지는 않는다. 떠날 수 없다면 그곳은 그저 감옥일 뿐이다.
굴뚝을 이창근이 어떤 마음으로 고향이라고 칭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바랄 뿐이다. 그곳이 그에게 고향이 될 수 있기를. 버림 받고 쫓겨 나는 것이 아니라, 안에 갇히거나 밖에서 막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스스로 떠날 수 있는 곳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정년을 채우고라도 좋고 어느날 지쳐서라도 좋다, 어떤 이유로든 떠날 수 있는 곳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다행히 사회자는 나를 지목하지 않았고, 나는 아무 말도 않았다.
2018년 9월 14일,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쌍용자동차 기업노조, 쌍용자동차 사측,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등 소위 ‘노노사정’은 쌍용차 해고노동자 전원복직에 합의했다. 2018년 내에 60%, 2019년 상반기까지 남은 40%가 회사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리고 2018년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오늘 아침, 저 ‘60%’에 해당하는 71명이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으로 출근했다. 근 10년 만의 일이다. 오늘 출근한 이들 중에는 이미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대신해 쌍용자동차 노동자가 된 이 한 사람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아직 돌아가지 못한 48명이 남았고 ‘사법농단’이나 이명박 정부의 개입 등 밝혀야 할 의혹들이 남았으며 국가가 제기한 손배소 문제가 남아 있다.
공장 시설물로서의 굴뚝이든 농성장으로서의 굴뚝이든, 드디어 돌아간 이들과 곧 돌아갈 이들에게 그 굴뚝이 진짜 온전한 고향이 될 수 있기를.
“‘85만1543원’
지난달 31일 9년 만에 공장으로 돌아간 쌍용자동차 노동자 김정욱씨가 복직 뒤 받은 첫 월급이다. 경찰이 2009년 쌍용차 옥쇄파업 당시 장비 등 피해를 입었다고 노동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으로 가압류한 돈이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8042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