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수지와 논 사이에 있는 작은 공원 ― 이라기보단 공중화장실과 벤치와 약간의 공터가 있는 곳 ― 에 앉아 책을 몇 쪽 읽고 들어왔다. 짧은 글들을 모아놓은 책이었고 나무에 관한 글이나 새에 관한 글을 골라 읽었다. 저수지는 조용했다. 이름 모를 새인지 무언지가 규칙적으로 짧은 울음을 울었다. 물이 흘렀다. 논은 시끌벅적했다. 개구리가 운다. 아직 철이 아닌가, 화장실 앞에 걸린 밝은 불에도 나방은 꼬이지 않았다. 날파리만 여남은 마리 날고 있었다. 책을 읽던 중에는 풍뎅이 한 마리를 주워 들었다. 정확히는 벤치에 놓여 있던, 아마도 누군가 방석 대신 썼을, 골판지를 뜯어 그 위에 얹었다. 날갯짓을 반복하면서도 몇 센티미터 날아오르지 못하고 땅에 곤두박질치던 그이를 앉힌 골판지를 가슴께쯤 들었다. 잠시 후 세찬 소리와 함께 날아올라 ― 아래로 훅 꺼졌다가 다시 솟아 오르는 곡선을 그리며 ―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물 사이에 앉았기도 했고 요즘 종일 습지를 생각하는 친구가 있기도 했고 나무와 새에 관한 글을 읽기도 해서, 나도 잠시 물을 생각했다. 물가에서 자랐다. 마당에는 기껏해야 연못이나 절구통 혹은 대야에 고인 물이 전부였지만 한 골목만 걸어나가면 농수로가 흘렀다. 물줄기를 왼쪽으로 따라가면 산자락을 흐르는 자그마한 계곡이 나왔다. 오른쪽으로 따라가면 다른 자락에서 내려온 물줄기와 만났다. 그 줄기를 조금 따라 오르면 저수지가 나왔다. 한참을 따라 내려가면 낙동강 어느 지류의 말미에 닿았다. 물놀이를 하기에 농수로는 너무 얕았고 저수지와 강은 너무 깊었다. 어느쪽에서든 기껏에서 발목 정도를 담그고 개구리나 송사리, 피라미, 아니면 논고동 같은 것을 잡았을 뿐이다. 산자락의 계곡도 물놀이를 할 만한 웅덩이가 생기는 것은 여름의 며칠 뿐이었다.
물놀이 ― 이유없이 물을 첨벙대는 놀이 ― 를 가장 많이 한 것은 아마도 집에서 초등학교까지 이어지는 1km 남짓의 길에서다. 야트막한 산과 그럭저럭 넓은 논 사이로 난, 콘크리트로 포장된 길이었다. 버스는 하루에 몇 대 다니지 않았고 다른 차도 그다지 많이는 다니지 않았다. 애초에 사람이 많지 않으므로 길이 닳도록 밟히는 곳도 아니었다. 그래도 경운기니 트랙터니가 다녔기 때문인지 그저 오래 되었기 때문인지 길은 성한 데가 없었다. 곳곳이 깨져 움푹 파여 있었다. 비가 오면 빠짐 없이 물이 고였다. 비가 오는 날에는 장화를 신으면 장화를 신었으므로, 운동화를 신으면 이미 젖었으므로, 웅덩이를 만날 때마다 물을 첨벙거렸다. 그것이 내 물놀이의 대부분이었다.
비가 그치고도 물이 스미거나 마르기까지 아마 하루이틀은 걸렸을 것이다. 며칠 걸러 며칠씩 비가 오는 철이면 한참을 고여 있었다. 웅덩이에서는 소금쟁이와 실지렁이가 번성했다. 구태여 잡을 만한 것은 아니었으므로 마른 날에는 물을 첨벙이는 대신 그 구경을 했다. 이따금은 개구리가 몸을 축이기도 했을 것이다. 물이 가시면 콘트리트 틈으로 풀이 자라기도 했다. 마을 안쪽의 저수지나 개울 못지 않게 이것저것이 자라는 훌륭한 터전이었다. 아니, 도무지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는 것들 ― 소금쟁이나 풀은 말할 것도 없고, 실지렁이는 그야말로 신비로이 등장했다고밖에는 할 말이 없다 ― 이 자라는 곳이었으므로 못지 않았다는 말은 부족할 것이다. 죽음의 웅덩이기도 했다. 비가 거푸 오면 모두 쓸려나갔다. 비가 그치고 땅이 마르면 깡그리 사라졌다.
잠깐 몸을 축였을 뿐인, 어쩌면 애초에 웅덩이에는 관심이 없었고 산에서 길을 건너 논을 향했을 뿐인 개구리들이 차에 밟혀 납작해 지는 곳도 바로 그곳이었다. 언젠가는 이런 문장을 썼다. “비오는 날이면 개구리들은 내장을 혀처럼 쏟아 물었다. 그 큰 입으로 다 토했으므로 그네들은 미련 없이 납작해졌다.” 가끔은 뱀이고 새였다. 그 길에선 보지 못했지만 더 큰 동물들, 더 작은 동물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로부터, 그리고 길가에서 썩어가는 호박으로부터[1]또 언젠가는 “길가에서 썩어가는 호박들, 밭둑에서 곰삭는 거름들, 좁은집 툇마루에서 마당을 응시하는 늙은 눈빛들, 안방에 누워 움직이지 … (계속) 죽음을 배웠다. 그것이 나의 물놀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