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10-11.(목-금)

곧 자정이다. 한 시간 조금 못 되게 걷고 들어온 참이다. 샤워를 하고 나와서는 돌연 집을 나섰다. 두 시간 정도 걸을까 했는데 생각 없이 아무데로 꺾었더니 금세 집을 향하는 길에 서 있게 되었다. 낮에는 의림지에 다녀왔다. 한 시간 반 좀 넘게 걸었고 흑백 필름을 넣어둔 카메라로 사진을 일곱 장 찍었다.

필름을 다 쓰고 나면 카메라를 팔 것이다. 원래 쓰던 것이 고장 나서 같은 모델을 중고로 샀는데 같은 고장이 났다, 고 생각했으나 배터리 문제였다. 비싼 것을 쓰니 제대로 작동했다. 원래 쓰던 것은 배터리를 갈아도 이따금 문제가 생기지만 심각하지는 않다. 이것을 팔면 필름을 몇 롤 살 수 있을 것이다.

내일 아침에는 에어프라이어를 팔기로 되어 있다. 원래는 오늘 오후 약속이었는데 상대의 사정으로 밀렸다. 2019년 초에 샀을까, 몇 번 쓰지 않았다. 코팅은 상했지만. 부엌이 좁아서 한 구짜리 전기레인지를 쓰다 국을 끓이는 동안 생선이라도 구우려고 에어프라이어를 샀는데 그렇게 잘 챙겨 먹지 않았다. 여기에 와서는 한 번도 쓰지 않았다. 조금은 더 부지런히 해 먹고 있으므로 전기레인지를 두 구짜리로 바꿀까 했다가 엉성하게 공사해 둔 배선이 못 미더워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샀다. 역시 자주 쓰지는 않는다.

낮의 산책은 예정에 없던 일이었다. 두 시인 줄 알았던 스터디 시작 시각이 실은 다섯 시였음을 두 시를 3분 앞두고 깨달았다. 한동안 밍기적거리다 역시 돌연 나섰다. 다녀와서는 곧 스터디 시작. 두 시간 정도 했으려나. 두 주 전이었던 저번 스터디에서 남긴 분량을 마쳤다. 이렇게 밀린 데에는 당시에 발제문을 제대로 못 쓴 내 탓도 있는데, 책을 덜 읽어서 이해가 안 되는 줄 알았으나 그런 건 아니었다. 결국 엉성한 발제문을 읽었다.

간밤에 발제문 마지막 몇 문장을 다 쓰지 않고 누웠다. 얼른 자고 일찍 일어나 마무리할 생각이었으나 일곱 시쯤에야 겨우 잠들었다. 점심께에 일어나 밥을 안치고 씻고 국을 데우고 배를 채우고 급히 썼다. 그리고는 깨달은 것이었다, 세 시간이 남았음을. 그러고보니 낮잠을 잘 수도 있었을 텐데 무거운 몸으로 산책을 갔네.

스터디를 마치고는 오디오를 만들었다. 이렇게 말하면 거창하지만 카오디오의 선 몇 개를 끊어 전원과 스피커를 연결한 것이 전부다. 진짜 ‘만들기’에 해당하는 부분은 시작하지 않았다. 케이스를 만들 것이다. 카오디오는 어제 근처 동네에 가서 만 원을 주고 사왔다. 지난주였나, 2만 원에 올라왔던 것이 그저께쯤 만 원으로 떨어졌다. 어제는 도서관엘 갔고 마침 판매 위치가 그 근처 ― 편도 도보 20분 ― 라 사기로 했다.

생산 시기는 2008년. 14년이라는 시간적 거리와 자동차라는 공간의 특수성이 반영된, 현란한 디자인. VU 미터 네 개가 달려 있다. 좋아하는 물건이다. 신기하게도 조작부를 통째로 뗄 수 있는데 설명서에 따르면 도난 방지를 위한 기능이다. 시기를 생각하면 한국 시장을 고려한 건 아닐 테지. 일본제이고 웹에서 한국어, 영어, 아랍어 설명서를 찾았다.

지금은 t.A.T.u.를 듣고 있다. 카오디오에는 “2010.4.25. ost… 인기가요 103″이라고 적혀 있는 CD-R이 들어 있었다. 사람 이름이지 싶은 세 글자가 더 적혀 있는데 가수 이름인지 CD 주인 이름인지 모르겠다. 그걸 빼고 책장에서 2003년쯤 구웠을 법한 CD를 가져다 넣었다. t.A.T.u. 1집이 언제 나왔더라, 당시에 산 CD 역시 아직 가지고 있다. 동봉돼 있던 포스터는 없다.

어제 저녁에는 현관문 손잡이도 샀다. 훔쳐 갈 거라곤 책밖에 없는 집이고 이 아파트가 도둑에게 큰 매력이 있을 것 같진 않지만 서울에 가면 며칠씩 집을 비우기도 하니까. 전자 번호키가 설치돼 있고 일반 손잡이의 열쇠는 받지 않았다. 집 근처에 열쇠 두 개를 포함한 중고 물품이 올라왔길래 다녀왔다. 도보 5분 거리. 열쇠는 세 개가 있었다.

밤에는 USB 미니 스탠드를 누군가에게 주었다. 서울 살 때 주워다 이제껏 쓴 물건이다. 외장 어댑터를 쓰도록 만든 물건이지만 어댑터는 없었다. 5V 전원이라 분해해 USB 케이블을 납땜했다. 서울에선 딱히 쓸 일이 없었고, 여기선 머리맡에 두고 이따금 썼다. 얼마 전에 이동식 등을 하나 샀으므로 ― 역시 주운 물건들로 조립한 스탠드에 테이프로 붙여 두었다, 임시변통 ― 처분했다.

그는 전날 새벽 두 시에 사과와 함께 문의를 해왔고 어제 저녁에 오기로 했다. 밤이 되어도 오지 않아 메시지를 보내니 2분 안에 온다고 했다. 길을 못 찾아 늦어졌다며, 7분쯤 후에 도착했다. 새로 사도 오천 원이면 될 텐데 새벽에 황급히 메시지를 보내네, 여유가 없으신가 하고 거래내역을 보니 골프채가 있었다. 그냥 알뜰한 사람인가 했는데 2분 거리를 차를 몰고 왔다. 사람이란 어렵지.

그제 낮엔 몇 년 전에 사서는 쓰지 않고 방치해 유통기한이 2년이나 지나버린 폴리우레탄폼 스프레이를 올렸고 어제 아침에 누군가 가져갔다. 아침에 오겠다길래 일어날 자신이 없어 아파트 현관에 두고 잤으므로 사람은 보지 못했다. 그가 메시지를 보내자 앱에서 ‘다섯 번 이상 나눔을 받은 사람입니다’였나 하는 경고가 떴다. 에어프라이어를 사기로 한 사람의 거래내역에는 볶아먹을 메뚜기를 산다는 게시물이 있었다.

어제는 종종 대선을 생각했다. 그제 밤, 윤석열이 당선될 조짐이 조금씩 보이자 사람들은 서로에게 죽지 말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선거 직전에 본 글 하나를 떠올렸다. (이 글을 인용하며 그 말을 한 사람도 있었고.)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깊은 좌절들을 생각했다. 일부는 누가 당선되느냐에 따라 곧장 달라질 어떤 삶들로 인한, 또 일부는 선거가 어떻게 되든 달라지지 않거나 나빠지기만 할 원칙들 혹은 방향들로 인한 좌절들을.

기본소득당에 대해서는 실제로 잘 모르긴 하지만, 투표소 앞에서 당황한 탓에 잠시 잊었는데, 기본소득당을 뽑지 않는 것은 정해져 있는 일이었다는 걸 뒤늦게 떠올렸다. 잘 모르는 가운데 아는 하나는 기본소득당이 지난 총선 때 민주당의 위성정당을 경유해 의석을 확보했다는 사실이다. 역시나 잘은 모르지만 용혜인 의원은 중요한 일들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후자의 좌절을 한층 더 깊게 만든다는 것은 분명히 알고 있다. 내가 정의당을 마뜩잖아 하는 이유들과 비슷한 방식으로, 그러나 아마도 더 강하게.

선거에 간절할 적이 있었던가, 도 생각했다. 한 번 있었다. 나는 참여할 일이 없었던, 17대 대선 한나라당 경선의 일이다. 이명박과 박근혜가 맞붙었다. 박근혜가 되기를 바랐다. 둘 다 사람들을 괴롭힐 것은 분명했다. 이명박은 4대강 사업을 공약으로 걸었다. 사람의 일이라면 사람이 책임지겠지만 강은? 박근혜가 차악이리라고 여겼다. 이명박이 이겼다.

대선에서도 이명박은 압도적으로 이겼다. 민주당 정동영 26.14%, 무소속 이회창 15.07%, 창조한국당 문국현 5.82%, 민주노동당 권영길 3.01%, 그리고 한나라당 이명박 48.67%. 당시 나는 한국사회당의 당원이었다. 개표 결과가 발표되고 당원 게시판에 글 하나가 올라왔다. 사죄의 글. 이명박을 막고 싶었던 이들 사이에서 정동영과 이명박이 박빙이리라는 예측이 돌았던 모양이다. 그 말에 그만 정동영에게 표를 주었음을 고백하는 글이었다. 누구의 글이었는지, 당시의 내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가물가물하다. 지금으로서는 그의 과한 열정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명박을 막고 싶었던 마음과 당에 진심이었던 마음, 어느쪽이든. 당시 한국사회당 금민의 득표율은 0.07%. 18,223표.

당적은 사회당이 진보신당에 흡수통합된 직후까지 유지했다. 정당정치에 관심이 없으므로 이만하면 되었다 싶기도 했고, 당시 진보신당에서 어떤 사건을 제대로 처리하고 있지 않은 데에 불만이 있기도 했다. 탈당원에는 후자의 이유만 적었을 것이다. 주위에는 대개 전자의 이유를 말했다. 사회당 내에서 흡수통합을 두고 논쟁이 벌어졌을 때에는 당원 게시판에 찬성 의견을 밝혔다. 당 대 당 통합이었다면 달랐을까, 흡수통합을 마다 않는 것은 일종의 희생이라고 여겼다. 가장 낮은 곳을 향하기로 한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식의 문장을 썼다.

흡수통합안이 가결된 날의 당대회에는 불참했다. 늦잠을 잤던 것 같은데. 집이 아니라 농성장에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후자라 해도, 농성장 사정이 급박해서 가지 못한 것은 아마 아니다. 이후의 일은 잘 모른다. 그다지 희생적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활동가’로 분류될 법한 사람들을 기준으로 하면 좌파로서는 국내 최대 정파라고 했다. 그러나 지지세력은 많지 않았고 흡수통합이라는 형식상 진보신당을 장악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는데, 아마도 꽤 그랬던 모양이다. 종종 비난의 말을 들었다. 그들 중 일부가 ― 극소수인지 대다수인지 그 사이 어디인지는 모른다 ― 가 그곳을 나와 기본소득당을 만들었다, 고 했다. 옛 친구들에게 입당 요청을 받았으나 하지 않았다. 앞으론 당적을 두지 않기로 했다, 고 말했다. 사실이다.

이번 선거에서 정의당 심상정은 2.37%, 803,358표를 받았다. 진보당 김재연은 0.11% 37,366표, 기본소득당 오준호는 0.05% 18,105표. 노동당 이백윤은 0.02%. 9,176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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