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우연한 기회로 Loneliness and its Opposite: Sex, Disability and the Ethics of Engagement의 일부를 읽었다. 덴마크와 스웨덴의 사례를 중심으로 장애인의 성적 권리를 다룬 책이다. 아래는 스웨덴의 한 학생이 쓴, 이 책을 읽고 쓴 글이다.
원문: Ebba Olsson, “Harmful Silence: The Missing Discussion of Sex and Disability,” Uttryck Magazine, 2020. https://www.uttryckmagazine.com/harmful-silence-the-missing-discussion-of-sex-and-disability/
해로운 침묵: 사라진 성·장애 논의
에바 올슨
장애인의 접근권은 대개 공적 영역이나 공공장소에의 접근과 관련해 이야기된다. 섹슈얼리티와 관계라는 사적 영역에의 접근은 어떠한가? 얼마 전, 한동안 염두에 두고 있던 『외로움과 그 반대항: 섹스, 장애, 만남의 윤리학』(Don Kulick & Jens Rydström, Loneliness and its Opposite: Sex, Disability and the Ethics of Engagement, Duke UP, 2015.)이라는 책을 읽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의 ― 어쩌면 전혀 ― 생각해 보지 않는 것이 확실한, 성과 장애를 다루는 책이다.
『외로움과 그 반대항』의 저자들은 스웨덴과 덴마크에서 장애인의 섹슈얼리티가 어떻게 영위되는지를 비교연구했다. 중증 뇌성마비를 비롯한 상당한 지체 장애가 있는 이들과 중증 다운증후군을 비롯한 상당한 지적장애가 있는 이들을 모두 포괄하는 연구다. 이들은 “스웨덴에서 장애인의 섹슈얼리티는 부정되고 억압되고 좌절되는 반면 덴마크에서는 장애인의 섹슈얼리티가 인정되고 논의되고 조력받는다”는 결론에 이른다. 사람들 대부분의 삶에 있어 성sex이란 중요하므로, 스웨덴의 상황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UN은 「장애인의 기회균등을 위한 표준규칙Standard Rules on the Equalization of Opportunities for Persons with Disabilities」에서 섹슈얼리티를 언급한다. “장애인은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경험하고 성적인 관계를 맺고 부모가 될 기회를 부정당해서는 안 된다.” 이 문구에서 섹슈얼리티는 평등의 문제로 간주된다. 인간으로서 우리는 타인에 대한 친밀한 유대와 성적 만족의 경험에 가치를 둔다. 정의로운 사회는, 모두에게 성적 파트너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평등한 토대 위에서 섹슈얼리티와 관계에 접근할 수 있게 한다. 다른 불평등에 맞서 여러 서비스를 제공하듯, 오로지 장애를 이유로 친밀성에의 접근을 부정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한 평등을 이루기 위해서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가? 우리 스웨덴에는 구체적인 지침이 없다. 현장에서 장애인의 섹슈얼리티가 무시되고 있다는 뜻이다. 나는 그룹홈에서 시간제로 일하며 장애형제가 있기에 어느 정도 스웨덴의 제도를 경험한 바 있다. 이런 환경에 있음에도 나는 오직 성폭력 논의에서는 성이라는 화두를 마주칠 수 있었다. 성폭력 논의는 중요하다. 하지만 섹슈얼리티의 긍정적인 측면을 전혀 말하기 않는 것이 과연 효과적인 방법일까? 게다가, 중증장애인이 섹슈얼리티에 접근할 수 있기에는 포괄적인 성교육 역시 부족하다. 그들에게는 조력facilitation이 필요하다. 샤워 같은 활동을 조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 활동지원sexual assisstance을 제공해야 한다. 스웨덴에서는 바로 여기서 논의가 돌연 중단된다. 섹스는 하지 않으면서 성 활동지원을 제공할 방법이 있을까? 덴마크는 해답을 찾았다. 덴마크 모델의 토대는 「장애에 구애되지 않는 섹슈얼리티 가이드라인Guidelines about Sexuality – Regardless of Handicap」으로, 이 문서는 활동지원인helper이 해도 되는 일과 하면 안 되는 일, 그리고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을 분명히 명시한다. 활동지원인이 움직임에 제약이 있는 사람이 자위를 하거나 파트너와 성관계를 맺을 수 도록 돕는 것은 허용되지만 활동지원을 받는 사람과 섹스를 하는 것은 금지된다. 활동지원인은 요청인이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할 의무가 있다. 반드시 직접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원치 않는다면 다른 사람에게 이관해야 한다. 덴마크는 또한 이 지침에 따라 성인들을 지원하는 성 자문가sexual advisor를 양성한다. 예를 들어, 자위를 하는 데에 활동지원이 필요한 사람이 있을 경우 성 자문가는 당사자와 함께 활동계획을 짠 후 자위기구와 함께 침대에서 편안한 자세를 취할 수 있도록 돕는 등 실질적인 지원을 제공한다. 이런 방식으로는 성생활에 사적인 영역이 없게 되지만, 어차피 중증장애인의 삶에 사적인 영역은 얼마 없다. 성적인 만족을 평생 박탈당하면서 사생활을 지킬 것인가? 다른 누구도 아닌, 당사자가 판단할 일이다.
덴마크 모델 최대의 논쟁거리는 성노동자와의 만남을 지원하는 일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성 활동지원에 있어 성노동은 일부분일 뿐이다. 또한 성구매가 불법인 스웨덴과는 무관한 문제다. 그런데도 성 활동지원 논의는 성노동 논의로 끝나곤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덴마크 모델은 다른 ― 나은 ― 가능성을 여럿 보여준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섹슈얼리티를 이불 밑에 치워두지 않고 공개적으로 논의할 수 있다는 증거가 되어준다는 점이다. 성 활동지원이란 성노동이거나 성폭력 둘 중 하나라고 지레짐작하는 대신, 우리는 스웨덴에서 장애인의 성을 조력할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애석하게도 우리는 수십 년간 장애인이 강제 단종을 당하게 만들었으며 이 끔찍한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고 여전히 중증장애인이 섹슈얼리티에 대한 권리를 가진 성인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고 있다. 어린이를 대할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여전히 성에 대한 관심에는 눈을 감는다. 아무런 지침을 만들지 못해 여전히 사람들을 성폭력의 위험에 노출시키고 있으면서도 “성은 사적인 문제”라는 식의 핑계를 댄다. 우리가 이 문제를 피하기만 하는 것은 곧 사람들에게서 친밀성과 성적 만족의 권리를 박탈하는 일이다. 우리는 왜 이다지도 그들의 섹슈얼리티를 두려워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