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사랑

1시간 30분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괜찮습니다
그녀가 미안하다고하니까요

깡패에게 맞아 다리를 다쳤습니다
그러나 괜찮습니다
그녀를 지켰거든요
하늘을 날 것 같습니다
그녀가 내 다리를 만져 주니까요

그녀가 다른 남자와 손을 잡고 갑니다.
그러나 괜찮습니다
장갑을 꼈으니까요
하늘을 날 것 같습니다
장갑을 벗고 내 손을 잡아 주니까요

그녀가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합니다
그러나 괜찮습니다
나는 죽었거든요
하늘을 날 것 같습니다
그녀를 영원히 내려다 볼 수 있으니까요

  <바보사랑>이라는 시다. 중학교 2학년 때였던가, 국어선생님이 저것을 비롯한 몇 편의 시를 내어주며 개작해보라는 과제를 낸 적이 있었다. 수업시간에 모두가 한 편 씩을 써서 모은 후, 재미있는 것을 골라서 발표하는 방식의 수업이었다. 아마도 조별로 자기 조에서 제일 재미있는 것을 골랐던 것 같다. 우리 조에서는 내 것이 뽑혔다.
  위 시는 1연부터 3연까지가 ‘나’와 ‘그녀’ 사이의 일들을 담고 있는 것이지만 나는 세 연 모두를 상대방(성별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과 제 3의 인물(상대방과는 이성) 사이에 일어나는 일들로 채웠다. 그리고 마지막 연에 나는 상대방과 제 3의 인물이 손을 잡고 모텔에 들어갔음을, 그리고 알고 봤더니 제 3의 인물은 여장 혹은 남장을 한 동성애자였음을 밝혔다.
  ‘나는 죽었거든요’, 라는 문장은 ‘그녀는(그놈은) 죽었습니다’라는 문장으로 바뀌었다. 실제로 죽은 것이 아니라 곧 죽을 것임을 화자가 고소해하는 내용이었는데, 사인死因은 AIDS였다. 당시의 나는 성관계에 대해서도 몰랐고 에이즈의 감염 경로에대해서도 잘 몰랐다. 보균자인 남성 동성애자의 섹스 과정에서 전파되기 쉽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 정도였다.
  그랬던 때가 있었다. 동성애나 에이즈라는 것이 그저 딴 나라의 이야기였고, 심지어 그것을 희화화해도 좋던 때가 내게도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호모포비아가 있었다거나 한 것은 아니었지만, 혐오하지 않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던 때가 있었다. 누군가의 삶이 아니라, 그저 하나의 단어에 지나지 않던 때가 말이다.
  연극 하나를 보았다. 코미디 극이었다. 배우들의 생명력을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 연극은 매우 좋아하지만, 대개 사회적으로 배격받는 이들을 웃음의 소재로 삼는 코미디는 좋아하지 않는다. 다행히 어제 본 연극은 누군가를 비하하는 방식보다는 얽히고설키는 상황과 그 상황에 대처하는 주인공들의 임기응변을 통해 웃음을 주는 편에 속해 재밌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극이 진행되는 내내 그랬던 것은 아니다. 얼키고 설키는 상황 속에서 어떤 인물이 동성연애를 한 것으로 오해받는 장면, 그리고 다른 어떤 인물을 맹인이라고 속이는 장면이 나왔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대목에서 웃었다. 주인공이 다른 ‘멀쩡한’ 사람을 장애인이라고 말하는 장면에서도, ‘멀쩡한’ 주인공이 동성애자로 오해받는 장면에서도 관객들은 웃었다.
  다들 알 것이다. 누군가가 어느 맹인을 두고 정안인이라고 말하거나 어느 동성애자를 두고 이성애자라고 말한다고 해서 그렇게 웃지 않을 것임을 말이다. 애초에 그것을 두고 상황이 ‘꼬였다’는 생각조차 잘 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연극에서 제시된 상황은 그 반대였고, 사람들은 신나게 웃었다.
  그럴 때 나는 웃지도 못하고 화내지도 못한다. 웃기지 않으니 웃을 수가 없고, 똑같은 소재로 중학교 때 남들을 웃겼던 일을 생각하자니 이제와서 당당히 화를 낼 수도 없다. 그래서 연극을 보며, 웃는 관객들을 보며,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랬다.

바보사랑」에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나도 지난주 연극보면서 저런 순간이 있었는데,
    그리고 때로는 내가 이 부분이 왜 거슬리는건지 이성적으로 정리가 안되서
    생각에 빠지기도했고, 난 아직 공부가 아주아주 많이 필요한듯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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