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만 가능한, 불가능한 축하

모르는 이로부터 파티에 초대 받았다. 초대자의 이름은 최장원. 파티의 ― 혹은 이 초대 행위의 ― 제목은 《HIV 감염 7주년 축하 RSVP》(2021.08.14-30, 서울: 탈영역 우정국). 그의 개인전이다. 그가 내게 직접 초대장을 보내거나 한 것은 아니다. 다만 RSVP라고, 참석 여부 회신 요망(Répondez S’il Vous Plaît)이라고 적힌 초대장을 제한 없이 배포했을 뿐이다. 초대는 그에 그치지 않았다. 축하 메시지를 녹음해 보내 달라고 했다. 게으른 나는 늘 그렇듯 응하지 않았으나, 어느 날 만났던 친구의 말에 못 이겨 함께 녹음했다. 그는 한두 문장 쯤을 말했다. 나는 아마도 마지막의 축하드려요, 정도에 목소리를 얹었던 것 같다.

게을러서만은 아니었다. 고백건대 저어했다. 그는 (다행히) 건강하다. 현대 의학의 힘으로 HIV는 이제 충분히 관리할 수 있는, 일상적으로 잘 관리한다면 ‘함께 살 수 있는’ 바이러스가 되었다는 말이 무리 없이 적용될 수 있는 사람인 듯하다.[1]가늠할 수 없는 잠복기를 지나 AIDS가 발현되면 그야말로 죽음밖에는 기대할 수 없었던 시대와 운이 좋으면 몇 가지 약물 혹은 약물 ‘칵테일’로 … 각주로 이동 그렇다고는 해도 ‘감염’을 축하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감염의 무엇을 축하할 것인가. 감염에도 불구하고 건강하다는 사실을? 건강할 뿐만 아니라 작가로서 활발하게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낙인의 무게에 눌려 숨는 대신 이렇게 거침 없이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는 (혹은 그럴 수 있는 환경을 가졌거나 만들었다는) 사실을?

최장원은 그렇게 수집한 음성 메시지를 전시장에서 재생한다. 나나 친구의 목소리가 나오는지를 구태여 확인하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정말로 수집한 모든 목소리를 재생했는지는 알지 못한다.[2]전부 다 들어봐도 내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면 작가가 취사선택했으리라는 짐작을 해볼 수 있었을 것이다. 나왔다면 여전히 알지 못하는 … 각주로 이동 “감염 7주년 축하합니다”쯤 되는 여러 말들 사이에서 기억에 남은 것은, 누군가의 “만수무강하세요”라는 말이다. 탈 없이 오래도록 사시라는 말. HIV 감염 이외의 탈은 없기를 바라며 한 말일까, 아니면 HIV 감염은 탈이 아니라고 여기며 한 말일까를 잠시 생각했다.

전시가 시작되고 며칠 후인 7월 19일, 그가 “HIV 감염 7주년을 맞이”한 날에는[3]정확히 무엇으로부터 ― 바이러스가 전파된 (것으로 추정되는) 날, 검사한 날, 혹은 검사 결과가 나온 날, 검사 결과를 인지한 날 등 ― 7주년이 되는 … 각주로 이동 문자 그대로의 파티, “기념식”이 열렸다. 이 날엔 가지 못했다. 내가 전시장에 간 것은 아무런 행사가 없는 날, 다른 관객이 두어 명 있다 말다 한 그런 날이었다. 하지만 그런 날에도 파티는 계속된다. 개수를 기준으로 하자면 전시작의 절반쯤은 원탁(〈원1〉부터 〈원8〉까지 여덟 점)과 화환(〈화환 1〉부터 〈화환 4〉까지 네 점)이다. 테이블에 나누어 올려 둔 〈my〉(주로 반짝이는, 종종 섹스를 떠오르게 하는, 소품들)와 〈ider〉(예의 축하 메시지가 여기서 흘러나온다)도 있다.[4]참석 응답 명단인 듯한 〈가능 희망 불가능 미응답 거절〉, 전시장 전면에 영사되는 영상 〈빠르고 사랑스럽게〉와 〈왈츠〉는 무언가 가늠해 볼만한 … 각주로 이동

주인공도 참석자도 없는 공간에 차려진 파티 테이블. 몸 없이 흘러나오는 축하의 말들. 파티장은 금세 귀신들린 폐허 같은 곳이 된다. 살펴보면 더하다. 테이블마다 놓여 있는 케이크는 (마치 누군가 먹었거나 먹고 있다는 듯 크기가 조금씩 다르지만) 먹을 수 없는, 레진으로 만든 것이다. 사방에 놓인 화환은 향기로운 생화이기는커녕 조화조차 아닌, 천에 인쇄한 이미지다. 파티 혹은 축하는, 그렇다면 불가능하다. 먹을 것 없이는 잔치를 못 벌일 것까지야 없지만, 하객으로 가득하지 않고서는 잔치가 무색할 것까지야 없지만, 진심으로 축하나 기념을 목표로 한 ‘세팅’은 아니라고 해야겠다. 불가능한 축하. 저어한 이가 나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동시에, 영원한 축하이기도 하다. 먹혀 사라지지도 썩어 무너지지도 않을 합성수지 케이크. 말하는 이는 물론 듣는 이초자 없어도 ― 가끔 들러 재생장치의 배터리만 갈고 잔고장을 수리해 준다면 ― 언제까지나 반복될 축하의 말들. 결코 시들지 않을 화환들. 축하의 가능성이 영원히 확보된다. 이곳이 비어 있다고는 해도 초대장을 받은 이들, 초대에 응한 이들, 축하의 말을 보낸 이들 모두 현실에 존재하는 사람들이다. 가능했던 축하가 실현되어 이곳에 영원히 보존된다. (물론, 전시가 끝나면 철거되겠지만.)

단적으로 불가능하면서도 영원히 가능한 두 극단을 오가는 축하에는 의미가 없다. 무력하다는 뜻에서가 아니라, 구체적인 의미가 ― 구체적인 지시 대상이 ― 없다는 뜻에서 그렇다. 애초에 불가능했던 축하는 ‘감염’이 7주년을 넘기고 몇 주년에 이르러도, 전시가 끝나도, 혹은 만수무강을 누리거나 그러지 못하거나 주인공의 생이 끝나도, 영원히 가능하다. 무엇을 왜 축하하는지를 말하기 어렵거나 말할 필요가 없게 된다. 축하는 감염도, 감염 이후에 ‘무사히’ 보낸 7년도 아닌 그저 7년 동안 이어졌으며 얼마간 더 이어질 삶 자체를 향하게 될 것이다.[5]김유란에 따르면 “조심스럽게 전시 제목의 이유를 물었을 때 작가는 ‘감염’ 자체보다도 감염 이후에 무사히 보낸 ‘7주년’을 축하하는 의미가 … 각주로 이동 어쩌면 그의 삶이 아닌, 삶 자체를 향하게 될지도 모른다.

최장원은 이렇게 썼다.

내가 감염인인 사실을 말하면 어쩌다가 HIV에 감염되었나요 라는 질문을 자주 듣는다. 무슨 상상을 했는지 대강 알 것 같다. 나는 일부러 놀리듯 콘돔 안 쓰고 항문 섹스 해서요 라고 말한다. 그 말 뒤에 당신이 태어난 이유랑 같아요 라고 덧붙이고 싶다.[6]최장원, 〈억8〉(유리와 레진, 895*895mm), 2021. 둥근 유리판에 글을 쓴 형태의 작품이다. 원문에는 마침표가 없고 자간도 고르지 않다. 벽과 약간의 틈을 … 각주로 이동

뒤는 이렇게 이어진다. “그런 질문들이 들어와서 나 또한 궁금해졌다. 난 콘돔을 쓰지 않은 날짜가 언제인지 찾으려 했고 정말 그 날짜를 찾았다. 그렇게 찾고 보니 그건 아무 의미가 없는 날짜였다.” (불)가능성을 따진다면, 실은 축하보다는 감염인의 삶 혹은 HIV와 함께 하는 삶의 그것이 먼저일 테다. (대개 비난을 위해) 원인 혹은 기원을 심문 받는, 동시에 미래를 질문 받는 그 삶의 (불)가능성. 그 기원이 “아무 의미가 없는 날짜”, 작디작을 뿐 아니라 애처로울만치 귀엽거나 사소한 무언가[7]전시장 벽에서 돌아가는, 바이러스와 알약 등을 묘사한 영상을 염두에 두고 쓴 말이다.라면, 그 이후는 아주 평범해도 좋을 것이다. 묻지 않고 살아도 될 만큼, 담담하게 ― 숫제 형식적으로 ― 축하하며 살아도 될 만큼.

그나 그의 파티 혹은 전시와는 무관한 어느 인물을 떠올렸다.

― 죽고 싶지가 않아서요. 싫다거나 무섭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 좀 억울하다고 해야 할까, 이해를 못 했다고 해야 할까. 내가 왜 죽어야 하는지…. 그렇잖아요. 열아홉 살은 죽을 나이가 아니잖아요. 아니 내가 늙은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어디가 아픈 것도 아닌데 도대체 왜 죽어야 하는지….
― 물어는 봤어요? 그쪽 사인死因요. 그쪽한테 죽는다고 말해 준 사람이 있을 거 아냐. 그 점쟁이한테든 스님한테든 왜 죽는지 물어봤냐고요.
… 물어보지 않았다. 수정의 얼굴이 재차 붉어졌다. 다시 가서 물어보고 올 수도 없고.[8]현호정, 『단명소녀 투쟁기』, 사계절, 2021, 29-30쪽. “내가 늙은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어디가 아픈 것도 아닌데”라는 말은 곤란하겠지만, 늙었거나 … 각주로 이동

점쟁이에게 죽음의 예언을 받은, 비구름보다 빨리 움직이면 비를 피할 수 있듯 죽음의 기운보다 빨리 움직이면 죽음을 미룰 수 있다는 ― 비구름은 흩어지지만 죽음의 기운은 그렇지 않으므로 다만 미룰 수 있을 뿐 끝내 피할 수는 없지만 ― 처방을 받은 수정은 길을 떠났다. 죽음의 이유조차 묻지 않은 채. 그 사실이 왠지 부끄럽거나 당황스럽지만, 이제라도 물으려면 못 물을 것도 없음에도 구태여 묻지는 않는다. 다만 죽음을 피할 뿐이다. 그러나 죽음을 피하는 것에만 골몰하는 여정은 아니다. 그런 가운데 펼쳐지는 삶이 있다. 그에 얽히는 기쁨과 슬픔도. 젊거나 어린 여성의 허무한 죽음을 생각하는 소설로 읽었다. 그럼에도 죽음의 이유를 대지 않는 것은, 죽게 되는 이유나 살아야 할 이유를 물음으로써 죽어도 되는 이유나 살 가치가 없을 이유를 암시하기보다는 삶 ― 살아가거나 살아내는 일 ― 을 말하는 편이 나았기 때문이리라 짐작했다.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스스로 운을 뗀 축하를 불가능한 것으로, 혹은 영원히만, 추상적으로만, 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태도란. 앞에 인용한 말은 저 삶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사회적인 요소들과 “감염되는 것이 별일이 아니게 되”기 위한 조건들 ― PrEP의 보급이나 차별금지법 제정 같은 ― 에 관한 몇 개의 문장을 지나 이렇게 끝난다.

이 전시에는 끝이 있다. 그리고 나는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지낸다.

References
1 가늠할 수 없는 잠복기를 지나 AIDS가 발현되면 그야말로 죽음밖에는 기대할 수 없었던 시대와 운이 좋으면 몇 가지 약물 혹은 약물 ‘칵테일’로 한동안은 건강을 지킬 수 있었던 시대를 지나 이제 HIV 감염은 약물로 관리할 수 있는 만성 질환처럼 여길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고들 한다. 대체로 사실이지만 약효가 모두에게 동일한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겐 여전히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운다는 뜻이다. 뿐만 아니라 꾸준히 약을 챙겨야 한다는 과업, 제도가 미비할 경우 그에 수반되는 (특히 경제적인) 부담, 여전한 낙인 같은 것들을 생각하면 ‘함께 살기’는 여전히 사실이기보다는 당위다.
2 전부 다 들어봐도 내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면 작가가 취사선택했으리라는 짐작을 해볼 수 있었을 것이다. 나왔다면 여전히 알지 못하는 채로 끝났겠지만.
3 정확히 무엇으로부터 ― 바이러스가 전파된 (것으로 추정되는) 날, 검사한 날, 혹은 검사 결과가 나온 날, 검사 결과를 인지한 날 등 ― 7주년이 되는 날인지는 모른다.
4 참석 응답 명단인 듯한 〈가능 희망 불가능 미응답 거절〉, 전시장 전면에 영사되는 영상 〈빠르고 사랑스럽게〉와 〈왈츠〉는 무언가 가늠해 볼만한 제목이지만 대개는 그렇지 않다. 〈ider〉나 〈my〉 뿐 아니라 전시 해설 텍스트가 실려 있는 〈tax〉 역시 뜻을 짐작하기 어렵다. 방명록을 두기 좋은 위치에는 〈명록 3〉이 놓여 있다. 기념식을 촬영한 영상의 제목은 〈기〉다. 기념식의 첫 글자이려니 싶다가도, 바이러스나 정액 같은 것들을 떠오르게 하는 ― 혹은 나로서는 그런 것들을 떠올리고 마는 ― (역시 여덟 점으로 구성된) 〈억〉 시리즈와 이어야 하는 말일까 생각하게 된다.
5 김유란에 따르면 “조심스럽게 전시 제목의 이유를 물었을 때 작가는 ‘감염’ 자체보다도 감염 이후에 무사히 보낸 ‘7주년’을 축하하는 의미가 담겼다고 했다.” 그러나 HIV/AIDS가 “바이러스 자체보다도 사회적으로 가해지는 시선, 압박, 차별, 괴롭힘 등이 환자들을 특히 더 힘들게 하는 병”이라는 점에서 이 “무사히”란 말은 제한적으로만 옳을 것이다. 그렇기에 “병에 대한 편견을 무기삼아 함부로 화내거나 동정하는 사람들에게 태연히 병의 감염을 축하하고 기념하는 태도로 응수함으로써 그들의 무지와 폭력성을 돌아보게” 하는 이곳은 “그저 마냥 즐거운 파티 현장이 아니게 된다.”(김유란, 「감염과 축하」, 전시 리플렛.) 그럼에도 이것이 여전히 “HIV 감염 7주년 축하”라면, 축하의 대상이 정확히 무엇인지를 한 번 더 물을 수 있을 것이다.
6 최장원, 〈억8〉(유리와 레진, 895*895mm), 2021. 둥근 유리판에 글을 쓴 형태의 작품이다. 원문에는 마침표가 없고 자간도 고르지 않다. 벽과 약간의 틈을 두고 걸려 있어 유리판의 글씨와 벽에 비친 그 그림자가 겹치는 탓에 읽기 한층 더 불편하게 되어 있다.
7 전시장 벽에서 돌아가는, 바이러스와 알약 등을 묘사한 영상을 염두에 두고 쓴 말이다.
8 현호정, 『단명소녀 투쟁기』, 사계절, 2021, 29-30쪽. “내가 늙은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어디가 아픈 것도 아닌데”라는 말은 곤란하겠지만, 늙었거나 아팠다면 다른 말을 썼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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