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코다입니다』

내가 갖지 못한 것을 가진 이들의 삶이 내 것에 비해 어떻게 얼마나 나을지를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내가 가진 것을 갖지 못한 이들의 삶을 상상하는 것은 이보다는 조금 더 어렵지만 역시 아주 어려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가진 것을 갖지 않기로 한 이들, 내가 가져볼 생각조차 하지 못한 것을 갖고 있는 이들의 삶을 상상하기 것은 많많찬은 일이다. ‘다른 지평’에 관한 이야기다

여러 달 전에, 여기까지 적었다. 책을 읽고 한 생각은 아니다. 농인의 삶, 농사회에서의 삶에 대해 여기저기서 접한 ― 평소엔 ‘주워들은’이라고 말하는 ― 파편적인 정보들을 토대로 갖고 있는 생각 혹은 인상이다. (역시나 얕은 관심으로만 읽어본, 조선조에는 점복업, 최근 몇 십년 동안에는 안마업과 같은 특정한 직업과 그것을 보장 받을 사회적 권리, 그리고 (같은 ‘한국어’라고는 해도 문자가 권위를 갖는 사회 전반과 달리) 구술 전통에 기대어 강력한 집단정체성과 자긍심을 갖는다는[1]주윤정, 「시각장애인의 구술전통과 역사전하기」, 『구술사연구』 제 5권 2호, 한국구술사학회, 2014, 11-35쪽. 이 글에 따르면 “시각장애인들의 … 각주로 이동 시각장애인 혹은 맹인에 대해서도 비슷한 인상을 갖고 있다.)[2]늘 칼 같이 구분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청각장애인이라는 명명이 신체 조건에 초점을 맞춘다면 농인이라는 명명의 초점은 수어 사용, 농사회에의 … 각주로 이동 조금 더, 정확히는 『우리는 코다입니다』(이길보라·이현화·황지성, 교양인, 2019)를, 읽었다.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이 책에 적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저런 말을 쓰는 것이 조금 더 조심스러워질 것이다. 지난해 2월에 (처음) 읽었다. 종종 바빴지만 시간이 전혀 없지는 않았는데, 틈틈이 생각한 걸로 무어라 끄적이기엔 복잡해서 저 뒤를 잇지 못했다. 컴퓨터를 켤 때마다 저 문장들이 뜨게 설정해 두었고, 그간 두어 번 다시 책을 집었지만, 끝까지 다시 읽지는 못했다. 오늘 낮에 컴퓨터를 켰다가 얼마 전에 친구와 돌봄에 관해 이야기한 것이 떠올랐고 ― 나는 내가 받은 돌봄, 내가 상상하기로는 상대에게 책임감과 피로와 사랑과 죄책감을 모두 안겼을 어떤 돌봄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저 목록에 보람, 같은 것을 넣을 수 있는지를 잠시 생각했는데 그와 비슷한 어떤 것이라면 몰라도 보람이라고 적을 수 있는 것은 아니겠다는 데에 닿았다) ― 저녁에는 원래 읽으려 했던 책 대신 이 책을 다시 읽었다. 그렇다고 딱히 줄곧 그 대화를 생각하며 읽지는 않았다.

이번이라고 복잡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두 세계 사이에서”(34)[3]이하에서 괄호 속에 쓴 숫자는 모두 『우리는 코다입니다』의 쪽수. 대부분 멋대로 구절을 끊어 온 것이고, 책에서 쓰인 맥락을 잘 보존한 인용은 … 각주로 이동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 내가 전혀 모르는 두 세계 사이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요연하게 읽기는 쉽지 않았다. 농인 공동체 혹은 농문화라는 세계와 청인의 세계 혹은 청인 중심인 세계 양쪽에 걸쳐 살아가는 코다CODA, Children of Deaf Adults, “농인 부모 아래서 태어난 청인 자녀”(13)[4]”코다는 농부모 아래 태어난 청인 자녀를 일컫는 말이지만 그 단어 하나로 정의될 수 없다. 부모에게서 수어를 배운 코다, 수어를 사용하지 않는 … 각주로 이동의 이야기, 그것도 여러 코다의 이야기다.

멋대로 조립한 인상 정도만을 갖고 있는 내게는 다른 가능성, 자유니 자율이니 하는 것들의 단서인 농문화는 이들에게 태어나자마자 마주한 당연한 세계이자 두 개의 언어를 구사하고 두 개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게 해 준 자원이자 어떤 혼란과 수치심, 때로는 소외감의 원천이다. 고유한 체계와 기준을 가진 어떤 문화는 이를테면 ‘현실적으로’ 보잘것없는 권력만을 가진 경우라도 수이 주류 문화의 기준으로 평가 당하고 있지만은 않는다. 멀리서 즐길 수 있는 내게 이것은 그저 저항과 전복의 희망 같은 것이지만, 뒤집는 쪽과 뒤집히는 쪽 모두에 걸치고 있는 이 코다들 ― 정확히는 주로 어린 시절의 그들, 혹은 코다라는 경계‘지대’를 알기 전의 그들 ― 에게 그것은 “어쩐지 소외되는 기분”(127)을 겪게 만드는 문제기도 하다. 적어도 “‘청인’이라는 단어가 만든 어떤 벽 같은 것이 ‘코다’라는 말 하나로 무너[지는]”(127) 경험이 있기 전까지는 그렇다.

이길보라의 저 장면은 잠깐으로 묘사되지만, 조금 더 길게 그려지는 이현화의 “두 세계의 중간 어디쯤에서 어쩐지 나는 조금 외로웠다”(68)는 말은 조금 더 길게 곱씹었다. 바로 앞에는 “언제든 농인의 세계와 청인의 세계를 오갈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나의 세상이 넓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어디도 안전한 나의 세상이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했다”는 문장이 적혀 있다. 이질적인 두 언어를 사용하고 이질적인 두 문화에 속한 존재로서, 때로는 어느 편에 있기를 요구 당하고 ― “[농인들의 나쁜 특징을 잇지 않도록] 너도 스스로 더 신경 쓰거라”는 편견 어린 말로, 혹은 “너는 부모가 농인인데 이것도 도와주지 않느냐고” 압박하는 말로 ― 때로는 경계 당하거나 배척 당하는 ― “코다 통역사들이 통역을 할 때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내용을 바꾸거나 거짓 내용을 전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혹은 “너는 청인이라 내 마음을 몰라”라는 말에 ― 경험(63-68)에 덧붙인 소회다.[5]조금 더 강렬하게는, 책에 언급되는 어느 미국 코다의 이야기를 들 수도 있겠다. “그의 농인 부모는 농인 아들을 갖기를 원했는데(농인의 지위가 … 각주로 이동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어린 시절(부터)의 기억이 있다. 입말로도 수어로도 충분한 어휘를 갖추지 못한 온갖 영역들, 학교생활이나 음식 주문에서부터 은행이나 관공서 업무에 이르는 여러 일들을 온전한 당사자도 온전한 통역자도 아닌 위치에서 보내야 했던 시간들이다. 때로는 모르는 말을 모르는 말로 옮기고 때로는 나서서 먼저 (혹은 대신) 말하고 때로는 뿌듯해 하고 때로는 힘에 부쳐 하고 때로는 안쓰러워 하고 때로는 원망하고 때로는 녹아들고 때로는 피하려 했을 시간들. 코다라는 이름을 알기 전부터 코다로서의 정체성을 만든 경험들이자 코다로서의 혼란을 겪게 만든 경험들이고 (적어도 돌이켜 생각하면, 하지만 무엇이든 견디고 나면 재산이 된다는 의미에서보다는 수어와 농문화라는 구체적인 습득물로서의) 자원이 된 경험들이다.

자원보다는 피로와 상처에 관심이 있으므로 ― 장애에 대한 낙인, (장애로 인해 배가되는) 가난이라든가 하는 경험들과 함께 ― 피로와 상처를 더한 이런 이야기들을 한참 더듬었다. 이길보라는 영국농인협회에서 들은 “코다에게 절대로 통역을 시키지 마세요. 코다는 코다이지 통역사가 아닙니다”(143)라는 말을 전하며 이렇게 쓴다.

그렇다. 실제로 코다를 가장 곤란하게 만드는 건 어렸을 때부터 무조건 주어지는 통역의 의무다. 나는 ‘통역사’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으로 태어난 것인데 어딜 가나 통역사가 되어야 했다. 어렸을 때는 그게 나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으니. 그러나 그 사이 나의 정체성은 지워졌고, 나는 부모의 통역사이자 보호자가 되어야 하는 의무와 책임감 사이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다. (같은 쪽)

지난 해 초, 처음 읽을 때는 아동 인권을 생각했던 것 같다. 국가가 방기하는 역할을 흔히 가족이 채운다. 아동, 노인, 장애인 등 필요한 최소한의 돌봄이 다른 이들 ― 결국 비장애 성인이 될 테고 그렇다면 어떤 가정에는 존재하지 않는 존재일 수도 있을 것이다 ― 에 비해 큰 경우[6]저 셋에는 속하지 않는, 혹은 셋 중 하나 이상이기도 한 여성도 생각했다. 장애인, 을 쓰면서는 휠체어 대신 좌식 싱크대만이 주어지는, 그리하여 … 각주로 이동라도 그에 동원될 수 있다. 부담이 되거나 때로 불가능한, 그렇지는 않다 하더라도 스스로에게 필요한 돌봄은 오히려 받지 못하는 가운데 수행해야 하는 과업을 짊어지게 될 것이다. 어린 시절의 이 코다들에게 주어졌던 임무들, 부모와 떨어져 살기 전까지는 계속 되었던, 때로는 멀리서 찾아가 계속해야 했던 일들을 실은 국가가 했어야 한다는 당연한 문제에 더해, 그것으로 온전히 해결되지는 않을 남는 구멍들을 누가 어떻게 채울 수 있을지, 끝내 이들이 해야 한다면 무엇으로 그에 답할 ― 보상할, 이라고 적어도 될 말일지도 모르지만 달리 적기로 했다 ― 수 있을지를 생각던 것 같다. (자원이라는 문제를 생각하자면, 이들은 덕분에 수어에 능하고 통역에 두려움이 없었지만, 그것이 실제로 전문 업무로서의 통역으로 바로 전환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수어와 농문화가 코다에게 자원이 되기 위해 농인 부모와의 일상적인 대화와 공동생활 이상이 필요하지는, 혹은 절대적이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자원이 될 다른 무엇이 반드시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번에 읽으면서는 친구와 나눈 이야기를 생각했다. 이길보라가 타지에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해 부모와 따로 살 계획을 전하자 교사는 물었다고 한다. “부모님은 어떻게 할 건데?” 이것은 “이상한 질문이었다. 엄마와 아빠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평생을 홀로 혹은 둘이서 살아왔다. 시장에 가도 엄마는 통역 없이 이것저것 잘도 샀고, 아빠는 가구를 만들고 노점 장사를 하며 돈을 척척 벌었다. […] 엄마와 아빠는 내가 필요하다고 가지 말라고 얘기하지 않았다. 부모님은 그 누구보다 자립적이고 독립적이었다” (158). “어렸을 때부터 무조건 주어지는 통역의 의무”는 어디서 나온 것이었을까, 그 의무를 지운 것은 누구였을까. 적어도 저들끼리도 잘 지내던 이들의 부모가 쓸 데 있는 자식이 생겼다고 냅다 맡긴 것은 아니었다. 농인과 직접 소통할 방법을 찾는 대신 이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던 이들, 청인들이 한 일일 것이다.

어째선지 그 시선에 응답해야 했던 이들에게서, 이들을 양분 삼아, 의무가 자라났을 것이다. (물론 모든 종류의 돌봄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떤 돌봄은 당사자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회의 요구에 의해서 구성된다. 역으로 말하자면, 사회의 요구와 불화할 때 이런 돌봄의 무게는 줄어든다. 혹은 함께 불화하며 그 요구와는 다른 방식으로 서로를 돌보는 관계가 가능할 것이다. 적어도 내가 읽기에, 이 코다들과 그 부모들의 관계는, 상당히 그렇다. 혼자서 얼마만큼 살 수 있는지를 확인하고 믿을 수 있을 때, 혼자서 가능한 삶의 폭을 넓히는 것이 허락될 때, 비로소 가능해지는 돌봄을 ― 책임감이나 죄책감이나 피로와는 거리를 둔 상호적인 돌봄을 ― 상상했다. (내가 받았던 돌봄, 이 이런 것 ― 나 역시 무언가를 주었던 돌봄 ― 이었다거나 단지 사회의 요구 탓에 꼬인 것이었을 뿐 실은 이럴 수 있었던 것이었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친구가 한 이야기들과 직접 닿는 것도 아마 아니다.)

그런 불화가 가능하지 않았거나 그것만으로는 해소할 수 없을 만큼 피로한 때가 있겠다. 쌓이기도 할 것이다. 의무이거나 과중한 것들을 해명하고 이해해야 하는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언어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코다’라는 이름이 이들에게 그랬을 것이다. 그저 (앞에 쓴 이길보라의 순간에서처럼) 청인이 농사회에 입장하기 위한 이름표로서가 아니라, 어떤 선이나 점이 아닌, 두 사회의 사이에 제 삶의 폭을 가진 ‘지대’로서의 이들을 가리키는 자기호명으로서의 언어다. “어느 코다의 인터뷰처럼 코다 월드를 알기 전까지 우리의 정체성은 두 세계의 그 중간 어디쯤에선가 떠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 바로 코다 월드가 있었다. 농인도 청인도 아니라고 생각한 나는 코다였고 그 세계는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웠다” (102). “농사회와 청사회 두 세상의 언어로는 해석해낼 수 없던 감정과 경험이 몸 바깥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만나본 적은 없지만 세상에 더 많은 코다가 있을 터였다. 이상한 안도감이 들었다” (124).

내게도 그런 경험이 있다, 는 것은 잊고 있었다.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답거나 크게 기쁘지는 않았어도 안도감 쯤은 있었음에도 잊고 있었다. 내 정체성의 대부분은 경험이나 내가 처해 있는 조건보다는 이념을 토대로 한다는 생각, 저런 반가움이 어떤 것인지 직접 겪어볼 일은 내겐 아마 없으리라는 (틀린) 생각만을 하며 언어에 관한 생각으로 넘어 갔다. 문어에 익숙한 나의 구어는 종종 주변 사람들의 것과는 다르다. 대개는 신기해 하는 정도지만, 이따금 오해가 일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차이는 사소하다. 한국수어는 문어·구어 한국어와 문법 구조도, 사고 방식도 다르다. (나는 수어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므로 이렇게 단언할 자격은 없다. 다만 이렇게 배웠다.) “[농인과 청인의] 두 문화가 얼마나 다른지 가늠할 수는 없지만 시각에 기반한 사고와 소리에 기반한 사고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청인들은 내리는 눈을 봄 ‘눈이 온다’고 하지만 농인들은 ‘눈이 있다’고 표현하여 어떤 상태나 상황을 존재 여부로 나타내는데 이것은 사건의 시각적 해석을 반영한다” (63).

이현화는 이렇게 이어 쓴다. “비단 언어의 사용만 다른 게 아니다. 크고 작은 사건들을 해석하는 데도 농인과 청인의 관점은 다를 때가 많다. 농인과 청인이 함께 있는 곳에서는 이런 해석의 차이로 인해 갈등이 발생하곤 한다. 양측의 입장이 극명하게 갈릴 때 나는 청인인지 농인인지, 어느 위치에 있는지 시험당하는 기분이 들곤 했다” (같은 쪽). 두 개의 언어, 두 개의 문화가 이처럼 완연히 다르고 갈등할 때, 특히나 둘의 권력이 불균형하고 둘이 서로를 이해할 수단을 갖고 있지 않을 때, 약한 쪽은 곤란에 처한다. 그와 겹쳐 있는 중간지대는 독립적인 영역로서의 힘을 상실한다. 두 개의 언어와 두 개의 세계를 알고 있으며 둘 모두에 속해 있다는 데서 비롯되는 어떤 힘이 있으려면, 둘이 평등하게 이어질 수 있어야 한다. 통역의 힘이 바로 그것일 테다. 하지만 이는 번역이 신뢰받을 수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통역자의 실력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서로 다른 두 언어가 평등할 수 있다는 믿음 혹은 그러하다는 사실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는 뜻, 번역의 가능성을 믿을 수 있는 토대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현화의 고민을 그렇게 이해했다. 그는 한국어-한국수어 사전과 한국수어-한국어 사전 편찬을 준비하고 있다. 그저 두 언어의 대응하는 어휘들을 연결하는 사전이 아니라, 서로 다른 두 개의 체계를 함께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사전이다.[7]“사실 국립국어원에는 이미 많은 분들의 노고로 탄생한 《한국수어사전》(2015)이 있다. 하지만 이 사전은 사전이라기보다 한국어 표제어에 대응하는 … 각주로 이동 “[이현화]와 부모님은 수어로 대화하며 어떤 개념을 고정된 어휘로 표현하기도 했지만 그런 어휘가 없을 때면 우리 앞에 있는 공간 위에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맥락에 따라 의미가 변화하는] 생산적 어휘로 그려냈다. […] 공간을 활용해 더욱 복잡한 의미를 생산해내기도 한다. A라는 개념을 한 위치에 설정해 놓으면 […] 손가락으로 그 공간을 가리키면 그것은 허공이 아니라 A를 지칭하는 것이다” (109). 이런 언어적 특성은 무시 당한 채 수어는 종종 마임 정도로 치부되고 고정적인 어휘가 부족하다는 약점을 지적 받는다 (이는 사실은 무시 이후에야 가능한 지적이다). 농인 역시 한국어를 배우거나 사용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끼지만 서로에 대한 이해 부재가 어느 정도 쌍방향적이라고는 해도 두 언어의 권력은 대칭적이지 않다. “수어가 언어라고 말하는 농인들조차 특정 개념을 나타내는 한국어는 있는데 왜 한국수어는 없는지 묻고 한국어에 맞춰서 한국수어도 어서 단어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107).

여기서 또 한 번 비약해, 황지성의 문장을 읽는다. ‘도가니 사태’로 불리는 인화학교·인화원 재판 장면을 묘사한 대목이다.

농인들은 증언 상황에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 분명 어느 정도는 통역 자체에 내재된 문제 때문이기도 했다. […] 수어 통역은 기계적 통역을 넘어 [어휘나 언어능력 상의] 이런 간극을 효과적으로 보완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 맡아야만 한다. […] 그렇더라도 통역은 어쩌면 부차적 문제일 것이다. 증인들은 ‘사건’ 외에 다른 이야기를 하거나 아예 질문의 초점을 벗어난 이야기를 시도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그들의 말은 당연히 법정에서 제지되었다. 그 과정이 반복되자 증인들은 결국 몹시 흥분했다. 가해자 측 변호사나 판사를 비롯한 심문의 주체들이 요구하는 질문 내용과 틀에 맞게 진수하지 않고 초점을 자주 벗어나는 것은 일면 증언자의 문제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주어진 틀 안에서 ‘사건’만 말하라는 요구가 애초에 달성 불가능한 것이라면, 문제는 증언자가 아니라 심문에 있다. (271)

어떤 언어가 언어로 인정되는가. 어떤 말이 ‘들을’ 만한 말로 받아들여지는가. 이현화는 연구자가 되어 언어를 갖기 전에 겪었던, 청인에게 수어를 설명하는 어려움을 이렇게 설명한다. “사람들에게 이를[적은 고정 어휘로도 오해 없이 소통할 수 있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한국에서 수어를 설명하는 언어는 너무나 빈약했기 때문이다” (107). 빈약한 것은 대개, 빈약한 것으로 치부되는 대상들이기보다는, 이해에 필요한 ― 이해에 실패하는 ― 도구 쪽이다. 오직 힘만을 갖고 있을 뿐 “침묵의 세계를 읽어내는” 도구를 갖지 못한 쪽의 문제. 어떤 문법과 어휘 목록에 언어로서의 자리를 돌려주는 것, 논점에서 배제된 경험들에 화제로서의 자리를 돌려주는 것, 그리하여 언어 대 언어로, 삶 대 삶으로 만날 수 있게 하는 것, 을 생각했다.

앞에서 언급한 종류의 코다의 경험 ― 통역을 떠맡게 되는 일에서부터 농인과 청인 사이에서 정체성 혼란을 겪는 일까지, 그리고 코다로서 농사회와 청사회를 오가거나 둘을 잇는 일까지 ― 이 없는 황지성의 글은 외곽을 돈다. 코다로서의 경험이 중심이 되는 이현화, 이길보라의 글과는 달리 황지성은 선명한 이름이 붙지 않는 경험들과 한국 근현대사라는 양끝을 오간다. 장애여성운동 활동가로서의, 퀴어로서의, 여성학 연구자로서의 삶이 그 사이를 잇는다. 다른 글에 비해 외연이 넓다는 뜻은 아니다. 앞의 둘 역시 자신의 삶 뿐 아니라 농문화를 설명하는 데에, 수어연구자나 농인 단체 활동가나 작가로서의 일을 나누는 데에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셋 모두 코다 코리아에서의 활동을 비중 있게 다룬다. 황지성의 글은 다만 중심 없이 외곽을 돈다는 점에서 다르다.

그의 아버지는 홈사인[8]”주로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서 사용하면서 굳어진 비공식적 기호” (72).만 사용하고 농사회와 접점이 없다. 그의 어머니 역시 지체장애인 공동체와 닿아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들에게나 황지성에게나, 장애를 매개로 한 자긍심을 갖거나 장애를 둘러싸고 조직되는 삶의 조건들을 따지고 이해할 기회가 적었다는 뜻일 것이다. 그런 그가 찾아오자 코다 코리아에서는 그가 과연 코다인지, 코다란 어떤 이인지를 두고 토론을 벌여야 했다(72-79). 그리하여 그의 글은, 거칠게 말하자면, 왜 자신의 아버지는 농사회에도 청사회에도 속하지 못했는지를, 혹은 왜 자신은 코다가 되지 못했는지를[9]조금은 정확히 말하자면, 왜 자신은 농문화 속에서 태어난 코다가 되지 못했는지를. 추적하며 먼 길을 에두른다.

단절된 역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나는 최근에야 내 부모의 삶이 결국 커다란 역사와 함께 형성되었음을 깨달았다. 그 커다란 역사를 도도히 흐르는 ‘정상성’과 권력에 의해 내 부모의 역사는 침묵 속에서 사라졌다는 것을 깨우치고 있다. […] 비록 사회는 내가 알고자 하는 이들의 언어를 빼앗고, 그들을 기억하지 않으려 하지만 바로 그 언어 없음과 망각은 언어적인 것을 넘어 정동적으로 나를 어딘가로 향하게 하고 있다. 그렇게 나는 언어 없이 지워진 이들의 “유물”이자 “흔적”이다. (334)[10]따옴표 친 단어들에 단 황지성의 주: Saidiya Hartman, Lose your mother: A journey along the Atlantic slave route, Farra, Straus and Giroux, 2007.

여기저기를 오가니 어쩌면 가장 복잡한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황지성의 글을 가장 덜 복잡하게 읽었다. 농사회란 애초에 나로서는 저기 멀리 어딘가 있다는 소문으로만 접한 세계인 탓이다. 거기 있는 것들을 공들여 알려주는 것만으로는 이미지가 선명해지기는 해도 그 세계가 가까워지지는 않으므로, 여전히 내겐 거기에 가는 데에 기댈 도구가 모자라므로.[11]밝혀두자면 물론 한편으로는 그가 짚는 역사들이 나 역시 관심을 두는 것들이고 ― 그와 나는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에서 함께 … 각주로 이동

References
1 주윤정, 「시각장애인의 구술전통과 역사전하기」, 『구술사연구』 제 5권 2호, 한국구술사학회, 2014, 11-35쪽. 이 글에 따르면 “시각장애인들의 구술전통은 직업집단 내에서 직업과 교육의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이들은 자신들의 역사를 길게는 신라시대, 짧게는 조선시대로부터 소급하고 있다”(15쪽). “임금이 시각장애인을 지속적으로 돌봐주었다는 논의와, 시각장애인의 권익이 위험에 처하는 상황에서는 시각장애인들은 권리를 유지하기 위해 계속 싸웠다는 두가지 서사가 과거의 기억을 현재화하고 상황을 재해석하는 틀로 작용”(24쪽)해 이 집단의 정체성 형성과 권리 요구를 가능케 한다.
2 늘 칼 같이 구분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청각장애인이라는 명명이 신체 조건에 초점을 맞춘다면 농인이라는 명명의 초점은 수어 사용, 농사회에의 소속감 등 문화적 측면에 놓여 있다. 시각장애인과 맹인이라는 두 명명의 관계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3 이하에서 괄호 속에 쓴 숫자는 모두 『우리는 코다입니다』의 쪽수. 대부분 멋대로 구절을 끊어 온 것이고, 책에서 쓰인 맥락을 잘 보존한 인용은 아니다. 여기서는 「프롤로그: 소리의 세계와 침묵의 세계 사이에 서서」(13-16쪽, 이길보라), 「너의 이야기를 우리가 듣고 있다고」(19-117쪽, 이현화), 「침묵의 세계를 읽어내는」(121-223쪽, 이길보라), 「나는 지워진 이들의 유물이자 흔적입니다」(227-343쪽, 황지성)를 인용한다. 책에는 이 글들의 앞뒤로 정희진의 추천사와 (한국계 미국인 코다인) 수경 이삭슨의 「사이의 세계에서 완전한 ‘나’」(347-388쪽), 「에필로그: 여전히 우리는 코다입니다」(389-392쪽, 이현화)가 실려 있다.
4 ”코다는 농부모 아래 태어난 청인 자녀를 일컫는 말이지만 그 단어 하나로 정의될 수 없다. 부모에게서 수어를 배운 코다, 수어를 사용하지 않는 부모 아래서 나고 자란 코다, 홈사인을 배우고 사용하는 코다, 이 모든 이들이 코다다. ‘코다’가 무엇인지 정의하는 과정 속에서 어떤 이는 상처를 입었고, 누군가는 왜 코다 사이의 다름을 수용하지 않냐며 이견을 제시했다. 그 과정을 거치며 많이 배웠다”(15-16).
5 조금 더 강렬하게는, 책에 언급되는 어느 미국 코다의 이야기를 들 수도 있겠다. “그의 농인 부모는 농인 아들을 갖기를 원했는데(농인의 지위가 낮지 않고 농문화가 발전되고 정착된 국가에서는 농인들이 자녀와 온전히 소통하기 위해 자신과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농인자녀를 선호하는 경우가 있다), 낳고 보니 청인 딸이었다고 한다. 완전히 정반대의 아이가 태어난 것이다. 그는 충분히 사랑받으며 크지 못했고, 자신의 청문화와 코다 문화를 온전히 포용하지 않는 부모와 충돌하며 자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199).
6 저 셋에는 속하지 않는, 혹은 셋 중 하나 이상이기도 한 여성도 생각했다. 장애인, 을 쓰면서는 휠체어 대신 좌식 싱크대만이 주어지는, 그리하여 외출은 못해도 가사노동은 해야 하는, 적잖은 장애여성을 생각했다.
7 “사실 국립국어원에는 이미 많은 분들의 노고로 탄생한 《한국수어사전》(2015)이 있다. 하지만 이 사전은 사전이라기보다 한국어 표제어에 대응하는 어휘집에 가깝다. 더 큰 문제는 농인이 실제 사용하는 수어가 아니라 한국어에 맞춰 만들어진 수어가 다량 등재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수어를 많이 조어하게 된 배경ㅇ도 역시 수어가 음성언어에 비해 단어 수가 부족하다는 인식 탓이었다” (110).
8 ”주로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서 사용하면서 굳어진 비공식적 기호” (72).
9 조금은 정확히 말하자면, 왜 자신은 농문화 속에서 태어난 코다가 되지 못했는지를.
10 따옴표 친 단어들에 단 황지성의 주: Saidiya Hartman, Lose your mother: A journey along the Atlantic slave route, Farra, Straus and Giroux, 2007.
11 밝혀두자면 물론 한편으로는 그가 짚는 역사들이 나 역시 관심을 두는 것들이고 ― 그와 나는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에서 함께 활동하고 있다 ― 조금은 알고 있는 내용인 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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