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고 변하고 사라지는 몸에 반응한다는 것,

(공연을 보는 것이 아니라) 희곡을 읽을 때 혹은 역사 서술을 읽을 때에는 인간을 몸과 분리된 추상적인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이와 달리 연극 공연은 우리를 물질적인 인간 신체―한숨을 쉬고 분통을 터뜨리고 쓰러지고 다시 떨쳐 일어나고 절망으로 탄식하고 웃는 몸, 그 몸짓과 행동에 현실 세계를 생각하게 되는 몸―이 있는 곳으로 데려 간다. 언제나 우리는 사건들이 펼쳐지는 무대란 곧 어떤 더 너른 사회적 세계의 축소판임을 떠올리게 되는 법이므로, 연극 공연은 또한 3차원적 깊이를 자아낸다고도 할 수 있다. 연극 공연과 역사 서술 사이에는 선명한 존재론적 차이가 있지만, 역사에서 읽는 사람들을 하나의 고유한 사건세계를 가진 인물들로 상상해야 한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1]아토 퀘이슨, 손홍일 역, 『미학적 불안감: 장애와 재현의 위기』, 디오네·한국장애인재단, 2016 (Ato Quayson, Aesthetic Nervousness: Disability and the Crisis of … 각주로 이동

마침 얼마 전에 이런 말을 읽었다. 공감해서 기억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언젠가 책 한 권 읽으면 될 것을 왜 시간과 수고를 들여 극장을 오가야 하느냐는 푸념을 적었던 어느 연극 리뷰―삭제를 요구 받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당연하게도 편집장은 좋아하지 않았다―를 생각했다. 이 말을 읽으며 생각한 것은 트랜스젠더 혐오였다. 말 그대로 놀이가 되어 버린 듯한 트랜스젠더 혐오. 종종 그런 말을 하는 이들이 있었다. 온갖 혐오를 쏟아내는 그들 중 정작 트랜스젠더를 가까이서 만난 이는 없으리라는. 그저 주위에 없다고 생각하니 험한 말을 할 수 있다는 식의 이야기는 아니다.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더 모르게 되는, 몰라도 된다고 생각하게 되는, 끝끝내 평안히 모르고 말 수 있는 경우에 대한 이야기다. 그 다음으로는 《물고기로 죽기》(김비 작, 정은영 구성·연출, 고주영 기획·제작, 서울: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2021.03.04-14.)를 생각했다.

아직 보기 전이었으므로, 정확히 말하자면 저 극―트랜스젠더 작가가 쓴, 포스터에는 운동화를 신은 털이 수북한 다리와 하이힐을 신은 미끈한 다리가 하나씩 달린 물고기가 서 있는―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생각했다. 몇 명의 트랜스젠더가 연이어 세상을 떠난 시점이었다. 지금도 그렇다.[2]고주영은 “초기기획은 연극공연을 위해 만들어진 인물, 사건이 아니라 진짜 이야기로 이루어진 희곡으로 성소수자의 나이듦을 이야기하고 싶다는 … 각주로 이동 극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에 벽에 뜬 (아마도 작품 준비 회의를 찍은) 영상에서 김비는 여기에 자신의 이야기가 너무 많이 들어갔다고 말했던 것 같다. 언제쯤이었을까, 다른 장면에서는 그가 곳곳을 다니며 찍은 버스터미널 사진들이 지나갔다. 대개는 황순미, 양대은 두 배우가 무대를 달리거나 구르며 혹은 어딘가 서서 말을 했다. “물고기로 죽기”를 원하는 누군가의 유서다.

물고기―잘 알려져 있듯 물고기 중에는 성별을 전환하는 류가 있으며 한편으로는 “다리 사이”가 문제되지 않는 동물이기도 하다―혹은 “퀴어魚”. 나이나 성별, 사랑이나 가족 따위가 아닌, 헤엄쳐야 하는 물고기.[3]웹용 포스터에는 “너희들은 나이가 아니야 / 너희들은 성별이 아니야 / 너희들은 사랑이나 가족 따위가 아니야 / 너희들은 물고기야 / 헤엄쳐야 하는 … 각주로 이동 늘 하던 대로 살아 있는 사람이나 그 몸을 책에 적힌 (몸 없는) 활자로―물론 대본은 읽은 적 없지만―되돌려 말하자면, 아주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다. 트랜스젠더 서사는 많지 않고 그 중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은 더더욱 적으므로 아주 쉽게 접할 수 있는 이야기 역시 아니지만 어느 정도 찾아 읽는 이들에게라면 낯설지 않을 이야기다. 감정이든 사건이든 구체적으로 묘사하기보다는 (종종 말장난을 섞은) 비유로 전하므로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를 상상하기 힘든 이야기이기도 하다. 두 배우의 입(과 자막과 수어통역)으로 전달되는 말들은 김비의 것, 적어도 트랜스젠더 소설가의 것이다.[4]작중 화자가 쓴 책으로 김비의 실제 책이 등장한다. 한국에 트랜스젠더로 알려져 있는 작가가 몇이나 되며 트랜스젠더 작가의 이름을 여럿 댈 수 있는 이는 또 몇이나 되랴―한국에 국한하지 않더라도 나로서는 어렵다.

게다가 두 배우가 끊임없이 움직인다. 단순히 관객 앞에서 말하기 위해 무대에 오를 때, 보통의 사람들이 말에 약간의 몸짓을 덧붙일 때라면 필요하지 않을 몸짓을 이어 간다. 대사가 없고 무대도 비는 (관객은 무대 뒤 벽에 뜬 영상을 보는) 시점에도 사라지지 않고 한쪽에 서 있는다. 몸을 가진 누군가의 말임을, 저 음파의 중심에는 내가 속한 이 세계에 나와 마찬가지로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몸이 있음을 잊지 못하게 만든다는 뜻이다. 기껏해야 스무남은 개 쯤 되었던 객석 곳곳에서 여러 사람이 눈물을 닦았다. (활자 너머의 몸을 잊지 않는 이들이라면 공연으로 보지 않았더라도 마찬가지로 눈물을 흘렸겠지만) 몸은 이처럼, 맞닿은 몸을 반응하게 만든다.[5]이 문장을 쓰면서는 역시 며칠 전에 읽은 정희진의 “모든 경청 행위는 ‘반응해야 한다’는 부채감을 동반한다”라는 문장을 생각했다. (정희진, … 각주로 이동 물리적이거나 심리적이거나 시간적이거나 사회적일 여러 차원의 거리에도 불구하고, 두 몸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두 몸을 맞닿게 만든다.

한편 무대 위의 두 몸은 어쩌면 뜬금 없다. 그들은 김비가 아니다. 분열하거나 충돌하거나 그저 다채로운 자아의 조각들이라고 확신하기도 어렵다. 대부분의 장면에서 그들은 소설가, 트랜스젠더, 50대 여성 등 김비에게 붙을 만한 수식어를 환기시키는 연기를 하지 않는다. 배역의 이름은 무엇이었을까, 자막에는 나오지 않은 것 같다. 기호로 두 목소리의 전환을 표시하거나 ‘바닥을 구르는 사람’ 같은 식으로 쓴 것만 보았다. 요컨대 저 모든 말은 익명의 몸을 통해 나온다.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담았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창작물임을, 더욱이 제작 과정에서 연출가와 배우들이 함께 수정했을 것임을 생각하면 저 몸들을 통해서가 아니라 저 몸들로부터 나온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러나 잊거나 무시할 수 없는 몸에서 나오는 이 소리는 아마도 종종 파동을 바꾸며 멀리까지 갈 것이다.

지난해 1월에 쓰다 만 글이 있다. “군대가 지키는 것”이라는 제목을 쓰고 “군인이 지키는 것 말고, 군대가 지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 다음에는 이틀 전 전역 처분을 받고 기자회견을 연 변희수 하사의 이야기를 몇 줄 적었다. 그 혹은 다른 군인들이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바꾸려 하는지와 상관 없이 군대는 질서니 정상성이니 따위를 지키려 한다는 상투적인 말을 쓸 생각이었을 테다. 아마 그래서 멈추었을 것이다. 그가 무엇을 지키고 싶은지는 상관 없는 문제가 아니므로, 그러나 나로서는 군인이 되어 무언가를 지키고 싶은 마음을 이해할 수 없으므로,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본론은 한 줄도 쓰지 않은 채 저장해 둔 것을 한참을 잊었다가 그의 부고를 받고 다시 떠올렸다. 지금은 몸이 있다는 것, 몸이 달라진다는 것, 몸이 사라진다는 것, 존재하고 변하고 사라지는 몸에 반응한다는 것, 따위를 생각하고 있다.

References
1 아토 퀘이슨, 손홍일 역, 『미학적 불안감: 장애와 재현의 위기』, 디오네·한국장애인재단, 2016 (Ato Quayson, Aesthetic Nervousness: Disability and the Crisis of Representation, Columbia University Press, 2007), 328쪽. 책의 대부분을 소설 작품 분석에 할애한 저자가 마지막 장에서 실제 역사의 독해를 시도하며 쓴 말이다. 메모를 토대로 정리한 것으로, 원문이나 손홍일의 번역과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2 고주영은 “초기기획은 연극공연을 위해 만들어진 인물, 사건이 아니라 진짜 이야기로 이루어진 희곡으로 성소수자의 나이듦을 이야기하고 싶다는 것이었다”고 밝힌다. “초기 기획안의 극작가 후보에는 트랜스젠더 당사자 한 명과 여성 동성애자 한 명이 있었는데, 트랜스젠더 혐오가 수면 위로 급작스럽게 드러났기 때문에 성급하게 다뤄서는 안될 것 같다는 주저함이 있었”지만 김비의 칼럼 “‘달려라 오십호’가 담고 있는 관점이 처음 생각했던 ‘성소수자의 나이듦’과 정확히 잘 중첩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공연 리플렛에서 인용.
3 웹용 포스터에는 “너희들은 나이가 아니야 / 너희들은 성별이 아니야 / 너희들은 사랑이나 가족 따위가 아니야 / 너희들은 물고기야 / 헤엄쳐야 하는 물고기야”라는 말이 적혀 있다. 작중에도 (적어도, 거의) 같은 대사가 있었다.
4 작중 화자가 쓴 책으로 김비의 실제 책이 등장한다.
5 이 문장을 쓰면서는 역시 며칠 전에 읽은 정희진의 “모든 경청 행위는 ‘반응해야 한다’는 부채감을 동반한다”라는 문장을 생각했다. (정희진, 〈말하고 듣기의 공중보건〉, 《한겨레》 2021년 3월 1일.)그가 정확히 어떤 마음으로 저렇게 썼는지는 이해하지 못했다. 매개체 없이는 하지 않았을 반응을 끌어내는 것으로서의 (이를 테면 반응 자체와는 구별되는) 부채감보다는, 반응으로 흘러가게 되는 몸가짐 혹은 마음가짐을, 이미 이끌리고 있는 어떤 상태를 생각했다.

존재하고 변하고 사라지는 몸에 반응한다는 것,」에 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내가 객석에 앉았던 3월 6일 공연 후에는 정은영이 사회를 맡고 최현숙, 김비가 패널로 참석한 관객과의 대화가 있었다. 며칠 전 극장 측에서 그 대화를 기록해 공개했다. http://naver.me/5IFlnm9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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