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렇듯 별 정보 없이 보았다. 장애인문화예술극회 휠의 창단 공연으로 올렸던 20년 전의 각본을 (아마 조금만 고쳐서) 다시 무대에 올린다는 것, 간단한 시놉시스,[1]“휠체어 중증 장애인 민수는 고민을 서로 나누는 유튜브 채널 ‘메아리’ 운영자이고 라이브 방송등 상담을 통해 수입을 올리며 가족과 … 각주로 이동 그리고 개그 콘서트나 ‘대학로 연극’과 비슷한 풍이라는 먼저 본 이의 감상. 오래 전에 겨우 몇 번 보았을 뿐이지만, ‘대학로 연극’이라 불리는 무언가를 보아 두지 않았다면 아마 전혀 이해하지 못했을 ― 알아도 납득할 수 없는 ― 선택으로 가득했다. 많은 이들이 자주 웃었다. ‘웃어야 할 때를 아는’ 관객들이었던 모양이다. 나는 한 번도 웃지 못했다. 바로 옆에 앉은 이가 남들보다는 덜 웃은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생일파티》(윤정환 작, 최문주 연출, 서울: 이음아트홀, 2023.11.10-12.)[2]극장 입구의 배너에는 윤작/윤색을 맡은 이의 이름이 따로 적혀 있었는데 외우지 못했고, 다른 온오프라인 홍보물에는 그의 이름이 적혀 있지 않다.의 배경은 휠체어 이용 장애인인 민수(이승규 분)의 방이다. 원가족에게서 독립해 혼자 살고 있지만 외출이나 사교는 거의 하지 않는다. 이따금 찾아오는 엄마를 빼면, 전화 상담을 중심으로 한 인터넷 방송을 업으로 삼아, 수화기 너머로 대하는 이들이 그가 만나는 사람의 거의 전부다. 비슷한 하루를 보내고 얼핏 잠든 사이 그의 집에 도둑이 들면서 크고 작은 소동이 인다.
도둑은 어린 시절에 부모를 잃으면서 사회와의 단절을 택한 적이 있는, 비록 도둑이지만 사기꾼과는 달리 땀 흘려 일한다는 자부심이 있는, 긴장해 몸이 굳은 민수의 입에 물을 흘려 넣어 주거나 그를 화장실까지 데려다 주는, 너는 몸이 아니라 마음이 문제라며 그렇게 살지 말고 엄마에게 잘 하라는 훈계를 하는, 인물이다. 그와의 대화를 통해 민수는 “도덕적으로 도둑질은 나쁜 짓이지만 장애가 있다고 해서 자신 속으로만 도망다니는 것 역시 자신의 영혼을 스스로 도둑질하는 것”임을,[3]작중의 대사는 아니다. 프로그램북의 작품소개에서 인용. 아마도, 깨닫는다. 그래도, 이런 메시지는 차치해 두기로 한다.
내가 받은 메시지는 하나다. 장애 연극 ― 이 공연이 그런 것을 시도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 도 웃길 수 있다, 남들처럼, 그러니까 개그 콘서트나 대학로 연극에서 하듯이. 민수의 어머니(이호철 분)는 아마도 남성 배우다. 그는 가슴에 무언가를 집어 넣어 여장한 채로 등장한다. ‘교양 있게’ 말하는 대목에서는 늘 손날을 두 가슴 사이에 댄다. 조금 전에는 느끼하고 음흉해 보이는 남성으로도 등장한 참이다. 민수에게 전화를 걸어 몸이 뜨겁다며 야릇한 소리를 내는 변태(이정현 분) 역시 아마도 남성 배우다. 비키니를 입은 여성의 몸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연기한다. 잠시 후에는 경찰로 나오는데, 경찰이 꿈이었다는 민수에게 제복 상의를 벗어준 그의 몸에는 프릴이 달린 내복이 입혀져 있다. 덕자(조아해)는 남자들이 마르고 예쁜 여자만 좋아한다며 부아를 내다가 남자들은 마음이 예쁜 여자를 좋아한다는 말에 반색하며 밑도 끝도 없이 민수에게 추파를 던진다. 도둑(임영란 분)은 화장실에 데려다 주지 않을 거면 바지라도 벗겨 달라는 민수의 말에 당황하며 복면을 벗고 사실 나 여자야, 하고 말한다. 휠체어에 앉혀 주려다 휘청하더니 그의 품에 안겼다가 당황한다. 집을 잘못 찾은 취객은 총채를 휘두르며 얼른 나가라고 하는 도둑에게 여보 당신이 폭력적이긴 해도 이렇게 막 패진 않잖아, 라며 빌고 민수에게는 요새 젋은 것들은 버릇이 없다며 일어서서 말하라고 역정을 낸다. 정체를 숨긴 도둑과 민수가 함께 있는 것을 본 이들은 계속해서 둘을 커플이나 부부로 여긴다. 다 적지 않아도 이미 목록이 길지만, 남들이 웃을 때 그저 팔짱만 끼고 있었지만, 여기까지는 알 수 있다. 어떤 문법에서 나온 선택인지를.
정말로 알 수 없었던 것은 장애였다. 장애가 계속해서 사라지거나 생략된다는 인상을 받으며, 그래서 의아해하며, 보았다. 덕자가 좋아한 남자(이호철 분, 위의 느끼하고 음흉해 보이는 남성)는 미순(정유미 분)을 좋아한다. 미순은 전통휠체어를 사용하는 몸집이 자그마한 여성이다. 아주 잠시만 등장하는 그는 덕자에게서 ‘마르고 예쁜’ 여자로 호명될 뿐이다. 희정 역의 배우(안희정)는 아마도 뇌병변 장애인이다. 흐린 발음으로, 채팅 장면을 연기한다. 왜 답이 느리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영어를 잘 못해서가 전부다. 뒤에 가서 민수에게 장애인 모임에 나가보라고 권하는 장면이, 어쩌면 그 희정 또한 장애인임을 시사할 뿐 어떤 직접적인 언급도, 장애와 관련해 일어나는 사건도 없다. 전화를 잘못 건 탓에 민수에게 서울에서 춘천 가는 길을 묻게 된, 아마도 역시 뇌병변 장애인일 이(호종민 분)는 장애인 콜택시의 문제들 ― 아홉 시가 지난 시간에 배차 받기는 하늘의 별 따기이며 애초에 지역 간 이동이 불가능해 춘천까지는 갈 수 없다 ― 에 화를 내지만 전화로 전해지는 그의 발음 역시, 명시적으로는 그저 취객의 발음일 뿐이다. 민수는 늘 휠체어를 이용해야 하고 긴장하면 굳어버리는 자신의 몸을 이렇게 됐다, 성치 않다는 식의 말로만 묘사한다. 장애인이라는 말은 자신을 제3자처럼 칭할 때만 ― 장애인으로 산다는 게 쉽지 않다, 장애인에게 그러기가 뭣하냐는 식의 말을 할 때만 ― 쓴다. 어둠 속에서 도둑이 일어서라고 할 때조차, 장애가 있어서 설 수 없다고는 하지 않는다.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어요, 애매한 말로 서로를 묻어버린다. 이런 식의 어긋남은 ― 혹은 내가 그랬듯 어떤 관객은 비장애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민수 역의 배우가 실은 시각장애인이라는 사실 같은 것은 ― 어떤 경우에는 모종의 균열을 일으킬 것이고 적어도 배역이나 배우를 장애로 환원하지 않게 만들어 줄 것이다. 이번에는 그런 것은 보지 못했다. 그런 환원을 피해 미끄러져 나가 닿은 곳이 남들처럼 웃기는 공연이었으므로.
민수에게 세상으로 나가라고 말하는 것은 아마도 여성인 이들이다. 엄마, 도둑, 희정. 아마도 남성인 경찰은 장애의 벽을 넘은 민수 부부 ― 민수와 도둑 ― 의 사랑에 감탄하고 상담으로 타인을 구하는 민수를 대단해 한다.[4]이들의 성별이나 장애를 말할 때 반복해서 아마도라는 말을 붙인 것은 특별히 모호해서도 단정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아서도 아니다. 그저 … 각주로 이동
↑1 | “휠체어 중증 장애인 민수는 고민을 서로 나누는 유튜브 채널 ‘메아리’ 운영자이고 라이브 방송등 상담을 통해 수입을 올리며 가족과 떨어져서 독립 생활을 하고 있다. 상담자들의 고민에 대해 대화를 나누다가 잠이 든 어느 날 민수의 집에 도둑이 침입한다!” 온라인 홍보물에서 인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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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극장 입구의 배너에는 윤작/윤색을 맡은 이의 이름이 따로 적혀 있었는데 외우지 못했고, 다른 온오프라인 홍보물에는 그의 이름이 적혀 있지 않다. |
↑3 | 작중의 대사는 아니다. 프로그램북의 작품소개에서 인용. |
↑4 | 이들의 성별이나 장애를 말할 때 반복해서 아마도라는 말을 붙인 것은 특별히 모호해서도 단정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아서도 아니다. 그저 대체로 이해하지 못했고 그래서 대체로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
극단 애인 김지수 전 대표의 사회로 양근애, 임대륜, 임지윤, 하은빈, 홍성훈이 이 공연을 다룬 좌담
https://www.sfac.or.kr/theater/WZ020300/webzine_view.do?wtIdx=133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