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 해링

팝아트엔 크게 흥미가 없어서, 키스 해링도 그냥 이름만 아는 작가 중의 한 명이었는데 일기를 읽어보니 꽤 괜찮은 사람이더라. 아래는 프로메테우스 리뷰에 실은, <키스 해링 저널>의 다이제스트랄까.

나는 그림이 멋있게 보일까를 걱정하지 않고 충동적으로 자연스레 그릴 수도 있다. (중략) 구속받지 않고 자연스러우며 사실적인 그림, 자유롭고 정의를 뛰어넘은 그림이다. 일시적이지만 영속성은 중요하지 않다. 내 그림의 존재는 이미 확인됐다. 카메마를 이용하면 그 그림은 영구적인 것이 될 수 있다. 따라서 구태여 영구적인 그림을 그릴 이유가 없다(78쪽). 

소재로서 캔버스는 나무랄 데가 없다. 튼튼하고, 어느 정도 영구성도 지녔다. 또 그림을 그리면 팔릴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캔버스에 선뜻 다가서기 어렵다. 76×102센티미터 크기의 캔버스를 구입하려면 8달러가 필요하고, 게다가 유화용 물감까지 있어야 한다. (중략) 하지만 어디서든 찾아낼 수 있고 싼값에 구할 수 있는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물에 희석시킨 잉크를 사용하면, 122×275센티미터의 그림을 거의 공짜로 그릴 수 있다. 나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한다. 게다가 그 과정까지 보여줄 수 있다(75쪽).

예술은 개성이다. 내 생각에는 이 말이 현대 예술에 담긴 메시지다. 이 메시지는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교훈이며, 현대 예술이 탄생한 이후로 우리에게 끊임 없이 외쳤던 절규다.(68쪽) 나는 개인적인 연구를 통해 얻은 이미지를 그린다. 그 이미지를 해독하고, 거기에 담긴 상징성과 함의를 이해하는 건 전적으로 관람자의 몫으로 남겨둔다. (중략) 내 그림에서 의미나 생각을 끌어내는 책임은 내 정보(내 그림)를 받은 관람자나 해석자의 몫이다.(103쪽)

그 길을 찾아내기 위해 수많은 방법을 시도한다 하더라도 나는 기본적으로 화가다. 굳이 말하자면 조각이란 걸 시도해 보긴 했지만 회화적인 방법과 관점에서 해본 것이었다. 비디오와 음악과 움직임을 연구하는 이유도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강박적 필요성, 혹은 과거에는 회화에 속했던 쟁점들을 연구해야 한다는 감박적 필요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었다.(100쪽)

나는 공공장소에서 뭔가를 만들어내고, 상업적 행위를 하더라도 ‘상품 홍보’ 식의 예술 시장이란 생각에 반발함으로써 예술 작품의 판매에 대한 다른 입장, 즉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이런 노력마저 일부 사람들에게는 내 작품을 팔기 위한 홍보 수단으로만 여겨졌다. 이런 덫에서 빠져 나올 방법이 없어 두렵다. 한 작품이라도 팔리기 시작하면 이런 추잡한 게임에 끼어들었다는 죄의식이 밀려온다. 그렇다고 한 작품도 팔지 않겠다고 고집부린다면 존재하지 않는 예술가가 되어버릴 것이다. 나는 문화와 교감하면서 문화, 결국에는 역사에 공헌하겠다는 욕심에서, 뉴욕에 올라가 ‘공공’ 미술가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자위행위라도 하듯이 내 그림에 나 혼자 즐거워하지 않고 사람들의 눈에 띄는 화가가 되겠다고 결정한 후에는 나도 이런 게임에 뛰어들게 되었다(279쪽).

내가 공인으로서 ‘책임감’을 지녀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는 나를 지켜 보는 사람…… 나를 일종의 본보기로 우러러보는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이 어딘가에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훌륭한 교사이고 싶다. (중략) 내 삶과 예술에서 내가 알고 있는 어떤 화가도 똑같이 해낼 수 없는 면들이 있다고 한다면, 나는 바로 이런 부분도 포함된다고 생각한다(188, 189쪽).

내가 일기를 쓰는 주된 이유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살아 있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결국에는 깨달았다(186쪽). 나는 일을 하기 위해 살아 있다(239쪽). 나는 이제 기껏해야 십년을 진지하게 작업했을 뿐이다. 그런데 오십 년이라고 상상해보라. 발전적 변화와 진화가 확연히 눈에 띄지 않겠는가. 내가 쉰 살까지만 살 수 있다면 좋으련만……. 불가능하겠지만(236쪽).

나는 알파 인터페론을 매일 맞는다. 처음에 무척 겁났지만 어느새 적응돼 버렸다. 이 약이 효과 있기를 바랄 뿐이다. 병과 관련된 모든 흔적을 물감으로 지워내고 싶은 심정이다. 거울 앞에 설 때마다 다른 생각을 하기 힘들 지경이다(437쪽).

지금까지 나는 어떤 인위적인 수단도 동원하지 않고 내 힘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매우 힘든 싸움이었다. 예술 시장에서 나와 같은 골칫덩이가 사라지기를 바라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사람보다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앤디가 그랬듯이, 그들이 좋아하든 싫어하든 나도 이 조그만 세계를 끝까지 괴롭힐 작정이다(320쪽).

대부분의 그림이 학교와 병원, 수영장과 공원 등 공공장소에 놓였고, 부정적인 반응을 일으킨 경우는 거의 없다. 대중은 내 작품을 받아들이고 고만게 생각하지만, 부르주아와 ‘비판적 예술계’는 내 작품을 시큰둥하게 생각하며 그들의 작품을 훨씬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이다(315쪽). 미술가보다 화상이 더 많았다. ‘돈의 예술’이 분명했다. 고급스럽고 비싸 보이기는 했다. 결국 내 예술이 문제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내 그림들은 비싸 보이지 않으니까(257쪽).

이런 상황에서 내가 무엇을 이룰 수 있을까?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의 전망도 그다지 좋지 않다. 우리는 지배당하고 있다. 그 지배의 뿌리는 너무 깊어 완전히 감추어져 있고, 촉수를 뻗지 않은 곳이 없다. 언어와 문화, 지리와 종교, 경제와 기술과학, 역사와 교육, 모든 것, 모든 것에 지배관계가 존재한다(359쪽).

예술계는 우리 세상을 짓누르는 커다란 지배관계의 축소판이며 은유다. 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유지하기 위한 사소한 짓을 할 수 있을 뿐이다. 나는 이런 상황을 폭로하고, 세상을 조금이라도 견디기 쉬운 곳으로 만들어 나가려 노력할 것이다. 히로시마에 가고, 공립학교 97에 간다. 십대를 위한 에이즈 책의 표지를 만든다. 소련에도 가보려 하고, 뭇사람들이 보고 느끼는 걸 그려볼 것이다(361쪽).

나는 내가 다르다는 게 기쁘다. 내가 동성애자라는 게 자랑스럽다. 온갖 피부색의 인간을 친구로 삼고 사랑한다는 게 자랑스럽다(2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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