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극장〉, 〈(오프)스테이지/마스터클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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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6일 토요일, 제롬 벨이 연출하고 극단 호라의 단원들이 출연한 <장애극장>과 정은영이 연출하고 전현직 여성국극 배우들이 출연한 <(오프)스테이지/마스터클래스>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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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극장>에는 열 명의 장애인과 한 명의 진행자가 출연한다. 진행자는 연출가가 출연자들 ― 굳이 역할을 고르자면 무용수들  에게 어떤 요구를 했는지를 말해 주고, 출연자들은 순서대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한다. 그 열 명은 학습장애, 다운증후군, ‘입에 손가락을 집어 넣는 장애’, ‘문장 성분의 순서를 바꾸어 말하는 장애’ 등을 갖고 있다.(그들은 독일어로 말했고, 진행자가 그것을 영어로 번역했고, 또 다른 스태프들이 그것을 한국어로 번역했다. 정확히 어떤 단어들이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위에는 다운증후군이라고 일단 썼지만, 그들 중 누군가는 자신이 몽골리안이라고, 혹은 21번 3염색체형이라고, 그리고 혹은 21번염색체3이라고 말했던 것 같다.) 

연출자는 그들에게 1분간 가만히 서 있을 것, 이름, 나이, 장애 종류, 직업을 말할 것, 노래를 고르고 그에 맞추어 춤을 출 것, 공연에 대한 소감을 말할 것 등을 요구했다.

단원들이 스위스 독일어만을 할 줄 안다는 걸로 보아, 그들은 스위스인들인 것 같다. 나는 스위스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처음 내 관심을 끈 것은 그들의 다양한 나이와 그들이 말하는 자신의 직업이었다. 내가 중간에 졸지 않았다면, 그들 모두는 스스로를 배우라고 소개했다. 나이는 20대에서 40대까지 다양했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한국에서 다양한 나이대의 장애인을 동시에 만날 수 있는 곳은 두 군데이다. 장애인 생활 시설과 장애인운동 단체. 경미한 신체 장애가 아닌 한, 그들은 대개 무직이거나 직업 활동가이다. 그러나 다양한 나이대의 지적 장애인들이, 모두 배우라는 직업을 갖고, 한 자리에 모여 있었다.

춤은 꽤나 그럴싸하게 추는 사람도 있었고 아무렇게나 추는 사람들도 있었다. 웃기기 위한 몸짓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않아 보이는) 몸짓도 있었다. 배우들은 적절한 쇼맨십을 갖고 있었고, 덕분에 관객들은 웃으며 즐거이 관람할 수 있었다.

대체적인 웃음들은 나쁘지 않았으나, 몇몇 대목에서 나는 기분이 나빴다. 예컨대, ‘섹시 댄스’로 분류될 만한 몸짓을 보는 관객들의 웃음 같은 경우가 그랬다. 어떤 웃음은, 기대치와 현실의 차이에서 나온다. 섹시한 (그렇게 평가 받는) 사람의 섹시한 몸짓은 웃기지 않다. 어린 아이든, 못 생긴 사람이든, 섹시하지 않은 사람이 같은 몸짓을 할 때 사람들은 웃는다. 키가 작고 통통한, 장애인의 몸짓에 어떤 이들이 내비친 웃음은 내게 그런 것으로 보였다.

이런 경우, 무용수가 왜 그런 몸짓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나름의 의미를 두고 한 것일 수도 있고, 별 의미 없이 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런 것과는 상관 없이, 그것은 웃긴 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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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스테이지/마스터클래스>는 두 개의 공연으로 구성된다. 여성국극 무대에서 시대를 풍미했던 배우가 무대 뒤에서 하는 이야기와, 전혀 다른 시대에 그와 같은 길을 가려는 이가 그 공연을 배우는 이야기.

<(오프)스테이지>에 오른 원로 배우는 젊은 방자와 같은, 웃긴 남성 역할로 무대에 올랐던 사람이다. 당시의 재기 넘치는 몸짓과 센스는 지금의 무대에서도 재현되지만, 더 이상 ‘남성 역할’은 아니다. 지금의 무대에 그는 방자로서가 아니라 방자를 연기했던 여성 국극 (여성) 배우로서 오른다. 그는 남성 정장을 입고 남성용 구두를 신고 있었다. 그 이상의 분장은 특별히 없었다. 그가 남역 배우임을 드러내기에 그 정도의 소품이면 충분했던 것인지, 더 이상의 분장을 해도 옛날 만큼의 ‘남장'(‘패싱’이라고 쓰는 게 좋을까)은 되지 않게 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여하간, 자신의 ‘여성(성/임/몸)’을 더 이상 적극적으로 숨기고 그 위에 다른 것을 씌우지 않은 그의 모습은 묘했다.

<마스터클래스>에서는 여성국극의 남역 연기를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그리고 여성 역할을 맡으며 이 극에서는 조연을 맡는 사람)이 무대에 올랐다. 배우는 사람은 분장을 하지 않았고, 가르치는 사람은 갓을 쓰고 도포를 입었다. 공연 안내문에는 무대에 오른 이들이 여성 국극 배우라는 사실이 적혀 있었는데, 읽지 않고 관람한 나는 고민했다. 남성의 옷을 입고 남성의 (것이라고 할 만한) 목소리를 내며, 남성 연기를 가르치는 저 사람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말이다. 물론 그가 남성과 여성, 어느 쪽으로 분류되는 사람인지 그 자체가 중요했던 것은 아니다. 남성 배우를 남역 여성 배우로 가장하고 무대에 세운 것은 아닌가, 하는 연출에 대한 궁금증이 계속 비어 나왔다. 남장과 여장은 대개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알아차릴 수 있는 남장/여장은 주로 방송에서 볼 수 있는데, 이때는 대개 그것이 변장임을 오히려 어필한다. 알아차릴 수 없는 변장은 알아 차릴 수 없기에, 이러한 변장이 경험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실은 그렇지 않음을 지적하려는 연출 의도가 있는 건가, 하는 고민을 계속 했다.

여하간 그는 남역 여성 배우였고, 그렇다고는 해도 ‘남성’과 ‘여성’의 경계가 흔히 생각하는 것만큼 명확하며 넘기 어려운 것은 아님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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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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