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역의 어느 시

고백성사

                                                          김종철

못을 뽑습니다
휘어진 못을 뽑는 것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못이 뽑혀져 나온 자리는
여간 흉하지 않습니다
오늘도 성당에서
아내와 함께 고백성사를 하였습니다
못자국이 유난히 많은 남편의 가슴을
아내는 못 본 체하였습니다
나는 더욱 부끄러웠습니다
아직도 뽑아내지 않은 못 하나가
정말 어쩔 수 없이 숨겨 둔 못대가리 하나가
쏘옥 고개를 내밀었기 때문입니다

   서울의 지하철 역에는 싫은 시가 참 많이 붙어 있지만, 이 시는 특히 싫은 편에 속한다. 구태여 찍어 싫어하는 것은, 이 시를 좋아할 사람이 많을 것 같아서다. 싫어하는 것은, 제 가슴에 못자국이 많다고 자랑하는 화자가 맘에 들지 않아서다. 제 가슴에 하나 남은 못대가리만 보고, 남의 가슴에 있을 못에 대해서는 생각도 않는 이 화자가 맘에 들지 않아서다.
   오늘, 약간은 좋게 다시 읽기로 했다. 그에게 박힌 못들을 뽑은 것은 ‘아내’다. 그런 아내가 생색 내지 않자, 그는 부끄러워진다. 제 못을 남에게 맡긴 못난 사람임은 틀림 없지만, 최소한 자신이 누구를 고생시키고 있는지는 아는 사람일 수는 있을지도 모르니, 약간은 덜 싫어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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