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나는 시선

시선을 빼앗기고 돌아왔다. 매혹적인 공연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는 것은 아니다. 조금 더 축자적인 의미에서 그랬다. 내가 어디를 보는지를 나보다는 남들이 더 잘 알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랬고 내가 본 것들을 두고 나와야 했다는 점에서 그랬다. 주로 의미를 짚기 어려운 것들을 보았고 대부분 잊었다. 유일하게 선명히 기억나는 것은, 다른 관객들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지를 ―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는 모를 때조차도 ―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는 점이다.

《미세행성micro-planet》(김현진 안무, 서울: LDK, 2024.10.25-26.)은 폐가 탐험 같은 분위기로 시작한다. 차고에 모인 관객들은 짐을 맡기고 야간투시경, 정확히는 야간투시 카메라를 받는다. 이윽고 누군가가 허름하고 눅눅한 계단과 뒷문을 거쳐 어디론가 안내한다. 지하실 계단에 비하면 멀끔한 공간이지만 어둡고 안개가 자욱하다. 보이는 것은 없고 여기저기서 무언가 부딪거나 쓸고 지나가는 소음이 들린다. 이제 관객은 야간투시경에 의지해 이 두 층짜리 건물을 탐험해야 한다. 당도해야 할 목적지는 없다. 안개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목격하고 기록하는 것, 그것이 이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자 해야 하는 유일한 일이다.

소음을 좇아 조심스레 벽을 훑으면 나오는 것은 기계들이다. 창틀에, 천장 모서리에, 복도 구석에 기판이 드러난 작은 기계들이 설치되어 있다. 솔 같은 것이 달린 모터를 단속적으로 돌리거나 쇠구슬이 담긴 그릇이 이리저리 기울이거나 하는 따위의 것들이 제각기 소리를 내고 있다. 잠시 지켜보아도 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조금 익숙해져 기척 없는 곳에도 발을 디딘다. 방 한 켠이나 문간에 묘한 사람들이 있다. 무용수들이다. 우아하거나 리드미컬하지는 않은, 영화 속 귀신 들린 사람을 떠오르게 하는 꿈틀대거나 삐걱대는 움직임을 반복하는 사람들이다.

어둠을 밝힐 수는 있어도 안개를 가르지는 못하는 야간투시경으로 그들을 보려면 꽤 가까이 다가서야 한다. 그러고 나면 야간투시경의 망원렌즈는 기껏해야 그들의 발에서 무릎까지 혹은 머리 끝에서 쇄골쯤까지 정도를 비춘다. 짐작할 수 없는 움직임을 파악하기 위해서 관객은 원튼 원치 않든 발에서 머리까지를 훑는 전형적인 관음증적 시선을 반복해 던져야 한다. 그러고도 그 움직임의 뜻이나 원리를 파악하기는 힘들어서, 여기에 남는 것은 어쩌면 ― 어떻게든 ― 보려는 욕망 뿐이다.

하릴 없는 응시에 지칠 때쯤 혹은 예상치 못한 움직임에 무용수를 놓친 참에 다른 이를 찾아가도 사정은 비슷하다. 그렇게 헤매다 문득 보게 되는 것이 있다. 다른 관객이 든 야간투시경에서 나오는 적외선.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그들의 모니터에 비치는 대상에 곧바로 가닿고 있을 그 빛이 내 모니터에 선명히 표시된다. 잠시 고개를 들면 안개 속에서 빛나는 모니터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관객들의 위치를 표시하고 있다. 몸은 보이지 않지만 누군가는 서 있고 누군가는 앉아 있고 누군가는 아예 바닥에 엎드려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다시 모니터를 보며 조금 다가간다. 누군가는 무용수의 발을, 누군가는 무용수의 허리를, 또 누군가는 무용수의 얼굴을 보고 있다. 모니터를 랜턴 삼아 주변을 살피느라 적외선으로 제 얼굴을 환히 밝히고 있는 이도 있다.

다시. 이들이 보고자/보아야 하는 대상이 계속해서 어둠 속에 숨으며 자리를 옮기는 사이, 이들이 보게 되는 것은 보려는 욕망/운동 자체다. 이어 이들을 엄습하는 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로 그렇게 드러나고 있으리라는 의문의 여지 없는 예감이다. 보이기를 주저하지 않는 자만이 볼 수 있다. 훤히 드러나는 이 시선들의 거미줄에서 빠져 나와 스스로를 숨기고 싶다면 보기 또한 포기해야 한다. 하지만 어느 구석에 숨는대도, 열심히 사방을 더듬는 이들 중 누군가의 시선은 ― 적외선은 ― 내게 닿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이들은 또 그 시선을 선명히 볼 것이다.

이번에도 제목만 알고서, 그 의미를 가늠하기 어려워 하면서, 보았다. 극장을 나와서 본 공연 소개에는 이런 문장들이 있었다. “<미세 행성 micro-planet>은 공생적 유기체가 거주하는 곳이며, 이세계(異世界)이다. 실재하지만 가늠하기 어려운 일을 상상하기 위한 탐구이며, 되돌아갈 수 없는 환경에 도피하는 대신 그것과 맞부딪히기 위한 시도이다. 상상은 현실에 기반하기에, 발바닥이 우주로 떠오르다 다시 땅바닥에 붙잡힌다. // 미세 행성 탐사는 ’야간투시경(Night-Vision Device, NVD)‘을 통해 이루어지며, 관객은 ’미세 행성‘이라는 물리적 공간에 침투한다. 지구에서 벌어진 일들을 마주하기 위해 상상력은 필수적이다. // 이세계(異世界)는 결국 이 세계다.” 이세계 탐구는 아마도 실패했다. 강제되고 드러나고 역전되는 시선들, 이 세계에서도 이미 선명한 그 사실을 보는 데에 주로 시간을 썼다.

야간투시경의 녹화 버튼을 누른 것 역시 그 시선들을 향해서였다. 자신에게 향하거나 자신을 드러내고 있을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고 무용수와 기계의 움직임을 용감하고 충실하게 바라보고 기록한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이들은 무엇을 기억하고 있을까. 우리는 모두 자신이 기록한 것을 카메라와 함께 반납하고 극장을 나섰다. 그 기록이 어디에 쓰이는지, 어딘가 쓰이기는 할 것인지는 알지 못한다. 내가 기록한 것을 알아볼 수 있을지도 알지 못한다.

댓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항목은 *(으)로 표시합니다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