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투의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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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외로울 때 분열한다, 아마도. 《결투》(지금아카이브 제작, 윤이형 원작, 각색·연출 김진아,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2023.06.30-07.09.)[1]초연은 2019년. 지금아카이브의 첫 공연이기도 하다. 여기서는 배선희와 이지혜가 반대의 배역을 맡았다. 나는 보지 못했다.의 최은효(이지혜 분)는 아마도 그래서 분열했다. 그는 남편과 함께 경기도의 방 네 개짜리 아파트에 살던 젊은 여성. 다만 ― 몸 어딘가에 ‘분리선’이 생기는 ― 약간의 예고가 있을 뿐 원인을 알 수 없는, 한 사람이 본체와 분리체 둘로 나뉘는 사건이 생기곤 하는 세계의 주민이다. 본체와 동일한 외모, 동일한 체격의 분리체를 개개인이 감당할 여력은 없으므로, 정부에서 대책을 마련할 의지도 없으므로, 둘 중 하나가 죽는 것으로 끝나는 ‘결투’라는 제도가 마련된 세계의 주민이다. 최은효는 외로웠으므로, 분리체와 함께 살기로 했다. 방을 두 개로 줄이며 서울로 이사를 가야 하게 되기 전까지는. 외로웠으므로, 라고 말하는 건 과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그런 동거를 선택할 만큼 최은효는 외로웠다.

외롭다는 건 단순히 말 상대가 없다는 뜻이다. 말 상대가 없다는 것은 틀에 박힌 것 너머에 관해 말할 상대가 없다는 뜻이다. 남편과는 소원하다. 아이는 “형편이 되는” 사람들이나 낳는 것이므로 이 집에는 새로운 말 상대가 생길 일도 요원하다. 그러던 차에 나타난 것이 나타난 분리체. 외관은 이미 ― 본체와 같은 ― 성인이지만 아직 말을 하거나 감정을 표현하지는 않는다. 최은효는 두어 해를 기다린다. 그 끝에 알게 된 것은 이 분리체가 자신과 같은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스스로는 생각해 본 적 없는 것들, 적어도 속에 있는 줄 몰랐던 것을 분리체는 말한다. 이를 테면 채식 같은 것들이다. 남을 죽여 남의 살로 나를 살리고 싶지는 않다는 감정. 틀에 박힌 것 너머에 있는 감정. 금지된 감정. 말하면 안 될 것을 말하는 동거인에게 최은효는 당혹감을 느낀다. 어쩌면 살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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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배선희 분)는 정부가 운영하는 결투장에서 일한다. 그곳에서 최은효를, 정확히는 최은효의 분리체를 만난다. 두 최은효가 결투를 하는 날이다. 본체는 총을, 분리체는 곤봉을 고른다. 결투가 시작되기 전 나에게 종이와 펜을 빌린 분리체는 본체의, 그러니까 자신의 연락처를 적어 나에게 건넨다. 최은효의 친구가 되어 주세요, 걔는 친구가 필요해요. 결투는 맥 없이 끝나고 본체는 자신의 삶으로, 방이 두 개, 사람이 하나 줄어든 삶으로 돌아간다. 방이 두 개, 사람도 둘이 남았지만 말 상대는 사라진 삶으로. 또 한 번 분리가 일어난다. 다시 결투장에 온다. 분리체는 ‘나’에게 연락처를 건네며 부탁을 한다. 분리체는 활을, 본체는 칼을 고른다. 결투는 조금 더 길게 이어진다. 본체는 삶으로 돌아간다.

‘나’의 역할은 매번의 결투를 지켜보는 것, 결투가 끝나면 결과를 기록하고 그 흔적을 지우는 것. 모두가 탈 없이 결투를 치를 수 있도록 무기를 점검하는 것. 그에게는 말 상대가 있었을까. 결투장에서 일할 수 있는 것은 그는 분열한 적도 그럴 기색도 없는 덕이다. 함께 술을 마시거나 쇼핑을 하는 동료는 있다. K. 과음을 권하지도, 약속 시각에 늦는다고 닦달하지도 않는 사이다. 적당히 마시고 귀가하는 사이, 상대가 안 오면 안 오는 대로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늦게라도 나타나면 약속된 쇼핑을 즐기는 사이. 그런 일들을 능숙하게 해내는 사람들이다. 그런 ‘나’가 결국 최은효에게 연락을 한다. 최은효에 관해서는 그 날의 대화를 통해 알게 된 것이다. 대체로 최은효가 말하고 나는 듣는다. 둘이 친구가 되지는, 혹은 말 상대가 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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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최은효가 다시 만나게 된 것은 콘서트장에서다. 콘서트장이라고는 해도 결투장과 같은 공간이다. 공연장들이, 정해진 날마다 결투장이 된다. 그새 잊었지만 아마도 나가 좋아하는 밴드의 콘서트에 최은효를 초대했다. 나타난 최은효는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 밝은 성격이다. 모르는 사람의 연락에도 선뜻 나올 만큼, 콘서트에 가기 전에 밴드에 관해 이것저것 알아 올 만큼 호기심이 많은 성격이다. 최은효의 새로운 분리체다. ‘나’가 일하는 곳, 이전의 결투가 있었던 곳과는 다른 곳에서 두 최은효는 결투를 했다. 이번에는 분리체가 이겼다. 질 것이 뻔한 무기를 고르고 ‘나’에게 본체의 나중을 부탁하던 최은효들과 달리, 이번의 최은효는 아마 살의를 품었을 것이다. 살고 싶다는 마음을 품었을 것이다.

둘은 콘서트를 보고 대화를 나눈다. 무대를 이리저리 달리며 함께 춤을 춘다. 이 극에서 유일하게 밝고 신나는 분위기를 풍기는 장면이다. 그리고 이 극에서 유일한, 진짜 결투 장면이다. 결투장에서는 여러 번의 결투가 벌어지지만 무대에서 그것은 한 번도 결투로 재현되지 않는다. 어떤 결투는 안내방송 만으로 지나간다. 최은효의 결투들은 어느 한 쪽의 최은효만을 비춘다. 무기를 들고 있을 뿐 아무런 공격도 부상도 일어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최은효의 총격에, 애초에 싸울 마음이 없었던 최은효가 쓰러지는 장면이 반복될 뿐이다. 그리 하여 이 춤이, 두 사람의 춤이 이 극에서 유일한 결투 장면이 된다. 물론 둘이 서로를 공격하지는 않는다. 쫓거나 쫓긴다. 상대를 살핀다. 상대의 움직임에 자신의 움직임을 맞춘다. 이 극에서 유일하게, 끝을 정하지 않고 행해지는 대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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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나’에게 분리선이 떠오른다. 외로움을 몰랐던, 적어도 외로움을 지울 줄 알았던 그에게도 분리체가 생긴다. 곧 결투를 하고 둘 중 하나만이 살아 남을 것이다. 곧 둘 중 하나만이 살아 남게 될 결투에 처해질 것이다. 진짜 결투는 아닌 결투에. 배선희는 극의 처음부터 목소리를 떨었다. 배선희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지만[2]⟨비행기술: 토미에 해방의식⟩(2022)를 본 것이 전부다. 연출된 것이기보다는 외로움도 분열도 없는 ‘나’ 너머에 있어야 할 배선희의 외로움이나 분열이 비져나온 것이라고 느꼈다. 누구에게나 ― ‘나’에게도, 나에게도 ― 그렇게 스며나오는 것, 혹은 나오지 못한 것이 있겠지.

마침 관객과의 대화가 있는 날 보았다. 극중에서는 자세히 설명되지 않는데, 사람이 어떻게 분리된다고 보셨나요? 어느 관객의 질문에 이런저런 답이 오갔다. 드라마터그 라시내는 연출을 처음 만났던 날 ‘사랑에 실패했을 때’라 답했다고 했다. 연출은 그날 자신이 한 답 중에 ‘사랑하게 될 때’가 있었다고 했다. 어느 관객은 사랑을 하게 되는 것과 사랑에 실패하는 것은 동시적인 사건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동어반복적으로 한 마디를 덧붙일 수 있겠다. 죽이고 싶어 질 때, 죽이고 싶은 상대가 필요할 때, 죽일 수 있는 상대가 필요할 때. 종종 살의는 살고 싶은 마음이고 기꺼이 죽고 싶은 마음이다. 때로 그것이, 사랑이 향하는 길이다.

References
1 초연은 2019년. 지금아카이브의 첫 공연이기도 하다. 여기서는 배선희와 이지혜가 반대의 배역을 맡았다. 나는 보지 못했다.
2 ⟨비행기술: 토미에 해방의식⟩(2022)를 본 것이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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