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이 우습게 된 경우 ― 《걸캅스》의 리얼리즘

“코믹 액션”. 《걸캅스》(정다원 연출, 2018)에 붙은 수식어, 혹은 이것이 속하는 장르의 이름이다. 비슷한 제목의 (비슷한 내용이나 비슷한 구성이 아니라) 《투갑스》(강우석 연출, 1993)에서부터 어떤 면에서는 가까이에 있는 《스파이》(폴 페이그 연출, 2015) 혹은 《나를 차버린 스파이》(수잔나 포겔 연출, 2018)까지 몇 개의 제목을 말해 볼 수는 있지만 본 것이 많은 장르는 아니다. (물론 달리 섭렵한 장르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하지만 아주 새로운 작품은 아니라고 말해도 섣부른 말만은 아닐 것이다. (종종 절대적인) 실력의 우위보다는 우연과 행운에 기대어 승리하고, 긴박한 순간에도 어이없는 행동이나 사건으로 웃음이 터지게 만드는, 말하자면 공식에 충실한 영화다. 그 공식 위에서 ‘민폐 캐릭터’ 대신 주인공 자리에 여성들을 배치하고 공식 이상의 의미가 전혀 없는 장면들 ― 어떤 룸쌀롱 씬 같은 것들 ― 을 제거함으로써 달라지지만, 애초에 새로운 무언가를 노리기에 아주 좋은 장르는 아닐 것이다. 특별히 좋은 구석이 있는 영화보다는 특별히 싫은 구석 없이 즐거운 영화가 될 가능성이 높고, 실제로도 그런 영화가 된 것 같다. 충분은 하다, 는 뜻이다.1

여성들이, 게다가 ― 연기를, 그리고 극중에서의 제 일을 ― 잘 하는 여성들이, 날고 기는 모습을 보는 것이 즐거운 가운데, 기대치 않았던 진실이 떠오른다. 어느 방향으로든 왜곡과 과장을 통해 구성되는 장르 속에서 만들어진 이 영화를 보며 리얼리즘을 생각했다.

악당들의 액션은 과도하게 깔끔하다. 이들의 주먹질과 발길질은 악하고 급해서 망설임이 없고 처음이 아니라서 익숙하다는 것만으로는 구사할 수 없는 몸짓이다. 고도로 훈련받은 정련된 움직임, 맞는 사람 또한 그만큼의 훈련을 받았어야, 그리하여 소위 합을 맞추었어야 가능한 움직임이다. 현실과 얼마나 비슷하고 얼마나 다르건, 관객에게는 사실적으로 다가오는 (액션의 공식에 충실한) 액션이다. 이제는 보고 들은 것이 적지 않으므로 실제의 싸움은 저렇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현실감을 느끼는 그런 종류의 액션 말이다.

반대로 박미영(라미란 분)과 조지혜(이성경 분)의 액션은 무력하거나 우습다. 분노에 차올라 놀라운 힘을 발휘하는 순간, 말 그대로 날아오르는 순간, 그로써 승리하는 순간에도 그렇다. 이길 리 없는 몸짓으로 이긴다. 장르를 생각한다면 이런 대비가 특이한 것은 아니다. 엉겁결의 반격은 성룡이나 주성치, 혹은 짐 캐리 같은 이들이 종종 해 온 일이다. 다만 그만큼 능청스럽지도 않고 (‘전설의 형사’였다는 설정이 있기는 하지만) 충분한 대오각성, 환골탈태도 없으므로 더 수수하다. 허허실실도 괜한 여유도 아닌, 최선을 다한 결과이기에 다만 우습다. 악당들의 투기鬪技가 영화적으로 사실적이라면, 이들의 투기鬪氣는 현실적으로 사실적이다. 계획대로 돌아가는 깔끔한 승리 같은 것은 기대하기 힘들다. 여성이라면, 강력반에서 민원실로 밀려난 이들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무언가 이루어진다면 그건 우연하고 갑작스러운 사건이다. 믿기 힘든, 그러나 기쁜, 하지만 여전히 믿기지 않는. 이기고 나서도, 칭송 받으면서도, 실은 꼴이 우습다.

약물 강간을 비롯한 현실의 (또한 작금의 뜨거운 감자인) 범죄들, 모두가 무시하는 가운데에서도 분연히 움직이는 여성들, 이런 구체적인 지시들이2 아니라 저 우스움에서, 꼴이 우습게 될 수밖에 없는 이들을 미화 없이 여전히 우습게 그린 것에서 ‘리얼’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1. 지난해 가을에 보았으므로 모든 기억이 흐릿하지만, 일단은 이렇게 기억에 남아 있다.
  2. 이런 것도 나오네, 생각하며 무언가 메모했던 것이 문득 기억나 뒤져 보니 경찰서 사무실 벽에 걸린 티브이에 “성 소수자들의 행진·무지개 색으로 물든 도심”이라는 기사를 전하는 뉴스가 나오는 장면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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