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어딘가의 지하철 역에, 이런 시가 붙어 있다.
지하도 계단을 내려가는 햇볕
이승하
지하도 계단에 설치된 기계가 고장났다
가파른 삶
지나가던 사람이 그를 업었다
덜렁거리는 두 발
다른 두 행인이 빈 휠체어를 들었다
휠체어에 앉았던 그의 어머니
네 사람의 뒤를 따라가고 있다
햇볕이 지하도 깊숙한 데까지 따라 내려갔다.
그리고 이 시는, 매일 내가 지하철을 타는 역에, 매일 오르내리는 계단과 가까운 곳에 있다. 그렇게 매일, 이 시를 보며 나는 화를 삭인다. 시를 쓴 사람에게 화가 나는 것은 딱히 아니다. 그래도 그는 덜렁거리는 두 다리를 보며 그 삶의 흔들림에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공감을 했으리라 믿는다. 그렇게 믿으려 애쓴다. 그래도 지하도 깊숙한 데까지 따라 내려간 볕에서 그가 따스함이 아니라 쓸쓸함을, 깊은 곳까지 지는 그늘을 보았으리라 믿으려 애쓴다.
화가 나는 것은 이 시가 지하철 역에, 그 역을 운영하는 누군가에 의해 붙었다는 점이다. 누군가의 삶을 가파르고 흔들리게 만든 바로 그 장본인이 ― 서울시나 서울지하철공사의 누군가가 ― 자랑스레 이 시를 역에 붙여 놓았다는 사실에 나는 매일 화를 삭여야만 한다. 티비에나 나오고 어디 사연란에나 실릴 이야기로만 읽지 않는 한, 자신들이 접할 일 없고 자신들과 관계 없는 일로 여기지 않는 한, 저 시를 지하철 역에 걸 생각을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사과문과 함께, 어떤 다짐과 함께가 아니고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