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이크를 산책하며

* 이 글은 비무장사람들 연천 레지던시 “그리고 쉼표“(비무장사람들, 오늘과내일 주관)의 지원으로 작성하였다.

전쟁과도 군대와도 거리가 먼 곳에서 자랐다. ‘피란수도’ 부산과 가까운 어느 시골 마을이었다. 언젠가 학교 숙제로 부산에 살았던 할아버지에게 한국전쟁 때의 경험을 물었더니 그저 피란 온 이들에게 죽이라도 끓여 나누어 준 정도가 전부라고 했다. (죽을 끓인 것도, 죽에 넣을 곡식과 채소를 기른 것도 할머니였을 텐데 어째선지 할머니에게 더 물어보지는 않았다.) 우리집을 포함해 서너 집을 빼면 모두 대대로 그곳에서 지내 온 한 집안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집성촌이었고 전쟁으로 고향을 떠나 정착한 사람 같은 건 만나볼 수 없었다. 젊은 사람이 흔치 않아 마을의 누군가가 입대하는 모습을 볼 일도 없었다. 산을 하나 넘어 조금 더 가면 군부대가 나온다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산을 하나 넘으면 보도연맹 학살 사건이 벌어진 곳이 있다는 것은 그보다도 한참 뒤에야 겨우 알았다.

고향을 떠나 서울에 살게 되면서부터는 조금은 더 자주 군대를 보거나 생각했다. 자취방 근처에는 전투경찰 훈련장이 있었다. 용산 미군 기지 근처를 지나는 날도 있었고 휴가를 나와 군복 차림으로 기차를 타는 이들을 마주치는 날도 있었다. 평택 미군 기지나 노근리 민간인 학살 사건 현장, 혹은 광주 같은 데를 가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일상의 일은 아니었고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군대는 멀었다. 한국전쟁의 연장선상에서 벌어지는 ― 연천에서의 무력 충돌을 포함한 ― 사건들을, 혹은 미국이 곳곳에서 벌이(고 한국군이 파병되)는 현재진행형의 전쟁들을 접했지만 언제나 뉴스를, 그러니까 다른 누군가의 말이나 글을 통해서였고 자주 잊었다.

미국에서 만든 어느 드라마를 보면서는 한국 도심의 한 건물에서 총성에 놀라 자세를 낮추는 사람들의 모습에 콧방귀를 뀌었다. 한국 사람이 저만한 단발의 폭음에 총을 떠올릴 리가 없지. 서구에서 한반도가 일촉즉발 상황이라는 기사가 나도 정작 한국인들은 신경도 쓰지 않는데. 그러나 파주 쯤 사는 친구들은 폭죽 소리만 들어도 반사적으로 전쟁을 떠올린다고 했다. 이곳의[1]도신리에 한 달을 머물렀고, 대광리, 와초리, 상리 ― 신망리 ― 등을 되는 대로 돌아다니며 구경꾼 노릇을 했다. 그렇게 우연히 보게 된 것들 외에 … 각주로 이동 사람들은 정확히, 총성을 듣고 총을 떠올릴 것이다. 전쟁을 떠올릴 것이다. 전투를 떠올리고 겁을 먹는 데엔 오히려 다른 곳의 사람들보다 시간이 좀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 가까운 사격장에서 총성이 나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므로, 군대도 총도 모두 일상의 영역에 들어와 있으므로. 군복을 입은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지 않고 군용 지프나 트럭이 한 대도 지나가지 않는 것이야말로 비일상적인 풍경일 수 있는 곳을 처음으로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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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그만큼만 아는 채로, 누구에게도 묻지 않고, 다만 바라보거나 상상했다. 통일 같은 말이나 군부대 이름이 들어가 있는 간판들을, 인가도 없이 논밭만이 이어지는 길가에도 어김없이 끼어 있는 부대나 군사 시설들을, 연필이나 공책과 같은 가게에서 판매되는 군장들을, 전쟁이 끝나면서 터를 잡은 이곳에서 때로는 군인들을 좇고 때로는 군인들을 피하며 삶을 꾸렸을 집 잃은 노인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내 어린시절이 이런 곳에서 지났더라면, 총소리를 들으며 딱총을 갖고 놀았을까. 수천수만 년을 구르며 닳았을 예쁜 돌멩이나 조선 말기쯤 땅에 묻힌 사금파리가 아니라 부대에서 흘러나온 탄피를 찾아 섶을 뒤졌을까. 이름 모를 꽃을 보고 도감을 뒤적인 날과 “수하에 불응 시 발포함”이라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보고 사전을 뒤적인 날 중 어떤 날이 먼저였을까. 그런 상상들을 했다.

좋아하는 무덤이 있다. 강원도 영월 어느 산 속 길가에 앉은 무덤이다. 누구의 것인지는 모른다. 바로 옆에는, 역시 누구의 것인지 모르는 집이 한 채 있다. 집과 무덤의 관계도 모른다. 매일 같이 마당에서 가족의 무덤을 돌보든, 혹은 뜻하지 않게 이웃하게 된 무덤을 그저 보아넘기든, 그 집에 사는 이는 아침마다 무덤을 보며 죽음을 떠올릴 것이라 짐작할 뿐이다. 좋아하는 무덤이 있다. 경북 경주의 도심에 있는 무덤이다. 아주 커다라므로 왕족의 것일 텐데 발굴한 적이 없어 지금으로서는 주인을 모르는 무덤이다. 봉분에는 굵은 나무가 몇 그루나 자라고 있다. 언젠가 잊혀진다면 그대로 자그마한 구릉이 되어버릴 것이다. 이따금 그곳에 가면 바로 앞에 있는 초등학교에 시선을 둔다. 내 어린 시절이 그런 곳에서 지났더라면 나는, 무엇을 찾고 무엇을 상상하며 자랐을까.

죽음을 딛고 사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물론 누구나 그렇다. 어느 땅에든, 잊혀진 먼 과거부터 바로 얼마 전까지의 죽음이 두루 묻혀 있는 법이니까. 하지만 모두 같은 죽음은 아니고 모든 곳에 고루 묻히는 것도 아니다. 무작위적이면서도 가까운 죽음을 딛고 사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대대로 땅을 일구어 온 조상들의 무덤이 아니라 전쟁으로 혹은 전쟁을 빌미로 죽은 무명의 군인이나 이웃의 무덤, 먹고 살 길을 찾아 부대에서 나온 폐기물을 뒤지다 뒤늦게 터진 불발탄에 목숨을 잃은 이의 무덤, 고향 땅에 묻히고 싶다는 소망을 끝내 이루지 못하고 살던 데 묻힌 이의 무덤을 품고 사는 사람들을 물색없이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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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기차가 다니지 않는 신망리역에 들렀다. 벽에는 역사를 개축하면서 지붕에서 꺼낸 널빤지가 걸려 있다. 오래된 나무판에 영어로 무어라 적혀 있다. 건축자재가 아니라 탄약상자였던 흔적이다. 전쟁이 끝나고 상리에는 미군의 원조한 자재로 주민들이 직접 100호의 구호주택을 지었다고 했다. 새로운 희망을 품으며 마을에 신망리라는 새 이름을 붙였다고 했다. 새로운 것들이 대개 그렇듯 그 희망도 썩 새롭지만은 않아서 수십 년이 지나도록 전쟁과 결별하지 못하고 군대와 함께 오르락내리락거린다. 부대에서 흘러 나온 것들로 근근이 끼니를 떼운 사람들, 군인들이 찾는 다방이며 식당이며로 돈을 벌어 그럴싸한 집을 지은 사람들, 부대가 축소되면서 덩달아 가게를 닫은 사람들의 희망이. 객지로 떠밀려와 자리 잡은, 군대가 유일하게 기댈 곳이었지만(어쩌면 그랬으므로) 종종 들이닥치는 국군의 총부리에 떨어야 했던 사람들, 모를 심고 벼를 베러 가는 길에도 민통선 검문소를 지나야 했던 사람들, 산책길에도 지뢰를 조심해야 했던 사람들의 희망이.

한쪽에서는 수십 년 안보 희생으로 지역이 죽어가고 있다는 말이, 또 한쪽에서는 군대와 연천은 뗄 수 없는 동반자이자 협력자라는 말이 들렸다. 어느 쪽이든 경제에 관한 이야기인 데다 전쟁이 끝나고 군대가 사라지는 일은 없으리라는 확신 혹은 절망감을 안은 말이다. 전쟁이 여전하고 군대가 건재해도, 비록 언제나 군대와 함께 오르내린다 해도, 그 속에서 이어지고 달라지는 삶의 이야기는 대개 아직은 깊이 파묻혀 있다. 희망도 절망도 낡고 닳았을 그 이야기들과 거리를 두고 한적한 길을 걷다가 돌연, 지뢰와 불발탄이 널려 있는 지역이니 출입을 금한다는 플래카드를 마주친다. 낯선 길을 걷다 먼발치서 풍경에 어울리지 않는 건물을 발견해도 지도에도 위성사진에도 나오지 않는다. 애초에 이 근처의 위성사진은 모두 모자이크로 가득하다. 철망을 따라가다보면 부대 정문과 검문 초소가 나온다. 연 없는 행인이 알 수 있는 것은 거기까지다.

여정이 끝날 즈음에는 신망리 안쪽 논밭 사이에 있는 기황후릉터를 들렀다. 정확히는 전기황후릉터傳奇皇后陵址, 전해지기로 그렇다고 하고 몇 가지 유물도 발견되었지만 그 이상은 확인되지 않은 곳. 지금은 평범한 사람들의 무덤 몇 기가 있는 곳. 죽음 위에 죽음이 누워 있는 곳. 이런 식이 아니라도 모든 무덤 밑에는, 애초에 모든 땅 밑에는 오래된 죽음이 묻혀 있다. 모두가 언제나 죽음을 딛고 산다. 하지만 대개 이런 식은 아니다. 내가 그렇듯, 많은 이들이 잊어도 되는 죽음을 멀리서만 딛고 있다. 그곳에 가는 길에도 담장 너머로 전차를 보았다. 하루 전 서울에서는 국군의날 시가행진이 열렸다. 10년만의 시가행진과 함께한 이번 국군의날 슬로건은 “강한 국군, 튼튼한 안보, 힘에 의한 평화”. 힘에 의한 평화와 죽음에 의한 평화, 그 고요를 뚫고 들어오는 총성과 비집고 새어나오는 희망을 생각하며 걸었다.

References
1 도신리에 한 달을 머물렀고, 대광리, 와초리, 상리 ― 신망리 ― 등을 되는 대로 돌아다니며 구경꾼 노릇을 했다. 그렇게 우연히 보게 된 것들 외에 이곳에 관해 쓴 대부분의 것은 비무장 사람들, 『타운, 호프, 뉴 ― 새로운 희망의 마을』, 추르추르프레스, 2023에서 읽었고 일부는 신문 기사 등을 통해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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