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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드업 코미디언 아스트리드는 축복 속에 임신하여 대중에게 그 사실을 공개한다. 그러나 곧 태아에게서 다운증후군이 발견되고, 그는 고민에 빠진다. 고심 끝에 낳기로 결정할 즈음, 이번엔 태아의 심막에서 구멍이 발견된다. 의사는 다운증후군보다 더 무거운 일이 될 것이라 경고한다. 출산과 낙태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하는 아스트리드, 그리고 그 곁의 사람들을 카메라는 조용히 좇는다, 몇 달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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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에 따르면, 독일에서는 다운증후군이 있는 태아의 낙태가 합법이다. (아마도 독일에서 낙태는 원칙적으로 불법, 사유가 있으면 합법이며 인정되는 사유의 폭은 넓은 편인 것 같다.) 낙태 전반이 불법인 한국의 상황에 비추어 볼 때 더 나은 법적 원칙을 가지고 있는 독일의 법적 현실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서구에 대한 감상적 동경을 불러 오는 것 이외에는 이렇다 할 역할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법적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서 끝은 아니다. 여전히 죄책감이 남고, 사회적 관계가 남기 때문이다. 자신의 선택대로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그럴 수 있기에, 아스트리드는 쉼 없이 고민한다. 그의 애인은 헌신적이고 좋은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스트리드를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 한 채 자기 욕심을 내세우곤 한다. 한국에서 공적으로 해 보지 못한 고민을, 영화는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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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서는 장애아를 낳는 것에 대한 반대 의견들도 있다. 장애아는 낙태해도 좋은가? 한국의 모자보건법은 대통령령에서 정하는 일부 질환에 대한 낙태를 허용하고 있고, 법적으로는 허용되지 않지만 장애아 일반의 낙태는 암묵적으로 인정되는 분위기이기도 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장애아에 대한 제한적 낙태 허용 의견을 밝혔다가 문제가 된 적도 있다.) 그러나 한국보다 장애인의 삶의 질이 훨씬 나은 독일에서조차도 낳는다고 능사가 아님을, 장애 당사자와 그 가족의 행복을 누구도 보장할 수 없음을 영화는 낱낱이 보여준다. (장애가 없다 하더라도 사람의 행복을 누가 보장하랴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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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물을 종종 사용한다. (정확한 연출 의도는 알 수 없지만) 샤워 신이 몇 번인가 나오고, 양수 속에서 자라는 태아의 모습, 풀장에서 운동하는 산모들의 모습이 반복적으로 노출된다. 물의 이미지는 이중적이다. 가장 편안한 공간이자 숨조차 마음대로 쉴 수 없는 가장 두려운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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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나온 포스터에는 이렇다 할 대사나 설명이 적혀 있지 않지만, 한국어판 포스터는 다르다. “영원히 기억할게”, “너를 만나고 사랑한 시간”과 같은 알량한 문구들이 적혀 있다. 티케팅 부스에서 나눠주길래 생각 없이 받아 든 홍보 스티커에는 “네가 그리워”라고 적혀 있었다. 한국의 홍보물들을 보고 있자면 이 영화는 영락 없는 낙태 반대 캠페인 영화가 된다.
그러나, 낙태와 출산, 둘 중 어느 것도 영화는 적극적으로 옹호하지 않는다. 수술 도구를 다루는 소리가 귀를 따갑게 하는 낙태 수술 장면은 낙태 반대 캠페인 영화의 한 장면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싸늘하지만, 동시에 아스트리드가 남자친구를 향해 “선택은 내가 하는 거야!”라고 외치는 장면은 낙태권 캠페인 영화에 전형적으로 나올 법한 모습이기도 하다.
결국 임신 7개월 차에 낙태를 결심한 아스트리드는 유산이라고 거짓말하는 대신 낙태를 선택했음을 공개적으로 알린다. 그가 밝히는 이유는 공인으로서의 자신과 사인으로서의 자신을 분리시키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지만, 어찌 됐건 그 결정은 낙태를 하나의 가능한 선택지로 공적으로 자리매김 시키며, 낙태를 둘러싼 여러 가지를 논할 수 있는 대화의 장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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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장면을 비추는, 독일의 현재를 비추는 이 영화는 한국에 상영되면서 하나의 미래를 보여준다. 70년대 낙태 합법화 투쟁의 역사가 아니라, 낙태가 (사실상) 합법화된 지금에서야 비로소 가능한 고민들을 이 영화는 보여준다. 스토리는 복잡할 것이 없지만, 그래서 쉽지 않은 영화다. 해 본적 없고 해보기 어려울 고민들을 좇아가게 하는 영화, 한국의 현실과는 다른 모습들 ― 하다못해 거리낌 없는 샤워신 마저도 ― 을 보며 어느 지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고민하게 하는 영화다. Es ist meine. 그 한 마디가 계속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