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이라는 꿈, 〈꿈의 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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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에요, 거짓말을 배운 것은 당신이 아니라 당신에게 말을 건 사람들이에요. 자신에게 보이는 것만을 믿으며, 사실이 아닌 것을 말한 것은 그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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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한 대 피우고 돌아와 이 글을 쓴다. 제인이 몇 번이고 피웠던 바로 그 담배다. 소현은 피우지 않았던, 그 담배다. 〈꿈의 제인〉은 소외당한 사람들의, 그러나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죽어 버린 사람들의, 그러나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꿈의 제인, 그는 여러 겹의 의미에서 꿈 속 인물이다. 이제는 아마도 세상에 없는, 꿈 속에서나 만날 수 있을 사람이자 가출팸을 전전하는 소현에 꿈꾸는 어떤 가족을 꾸렸던 기대어볼 곳, 그리고 그 자신 스스로 세상에 맞서며 꿈 속을 살아가는 이. 제목에 어울리게, 영화는 현실적인 노선을 따르지 않는다. 꿈과 기억과 현실과 소망이 엇갈리며, 같은 얼굴을 한 사람들이 다른 인물로 등장하며, 영화는 관객들을 환상 속으로 이끈다.
소현, 제인, (그리고 어쩌면 지수까지) 영화가 주인공으로 삼고자 한 이들은 사회적 약자들이다. 가출 청소년이나 트랜스젠더, 서로에게 기대지 않으면 기댈 곳을 찾을 수 없는 인물들이다. 영원히 사랑 받지 못할 것이라고, 끝내 혼자일 것이라고 믿으면서도 가출팸을 떠나지 않는 소현, 인생은 불행한 것이라고, 이따금 한 줌이 채 안 되는 모래알 만큼의 행복한 있어도 족한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남의 행복까지를 보듬은 제인. 그런 이들이 주인공이다.
그런 삶들이므로, 죽음은 도처에 있다. 버림 받아서, 더 이상 견디지 못해서, 괴롭힘 당해서 ― 죽음의 이유는 다양하다. 어쩌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죽어가는 것도 곧 삶일 것이다. 거리의 삶이란 어쩌면 모두 그런 것이다. 골목길의 고양이에서부터 서울역의 노숙인들까지, 죽음을 향해 저마다의 속도로 나아가는 것, 그것만을 경험하는 것, 그런 삶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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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외길만은 아니다. 질서에서 버림 받은 곳에도 나름의 질서가 있는 덕이다. 아니, 그런 탓이다. 가족을 떠난 이들이 모인 가출팸에도 아빠와 엄마가 있다. 폭력을 피해 달아난 이들 사이에도 폭력이 있다. 그래서 삶이란 때로는 살기 위한 싸움이 되고 때로는 다른 누군가의 죽음이 된다. 버림 받은 이들이 한데 모인다 한들, 꼭 서로에게 기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삶은 여전히 흔들리고, 넘어지면 쉽게 샛길로 빠진다.
영화는 제인이 보듬은 따뜻한 팸과, 제인을 잃은 소현이 찾아간 서로를 믿지 않는 팸을 고루 비춘다. 가능성을 잃은 삶들에도 여러 결이 있음을, 영화는 여실히 보여준다. 착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행복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강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영화는 고루 비춘다. 한 사람씩 죽어 가지만, 그래도 살아 남는 사람들이 있음을, 영화는 끝내 비춘다.
여러 개의 사건들은, 어쩌면 약간의 변주만을 가진 반복처럼 보인다. 편지를 쓰는 소현의 모습으로 시작해 편지를 쓰는 소현의 모습으로 끝나는 이 영화는, 이 불행들이, 그 사이사이의 행복들이 반복될 것임을 암시한다. 때로 그것은 현실일 것이고 때로 그것은 꿈일 것이지만, 분명한 것은 이어지리라는 사실이다. 죽음이라는 경계를 넘어, 한 사람 한 사람이라는 경계를 넘어, 삶은 이어질 것이다.
지친 이에게 내밀었던 초콜릿, 미운 이에게 내밀었던 껌, 함께 나누어 먹었던 케이크가 기억에 스친다. 그렇게 함께 먹을 것이 주어진다면, 그리고 때로 그 힘으로 춤출 수 있다면, 일단은 괜찮을 것이다. 서로의 존재를 아는 한, 서로를 보듬고자 하는 한 말이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소현과 거리에서 마주치는 제인을, 우리가 알아 볼 수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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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로운 삶은 쉽게 바뀌지 않겠죠.
불행도 함께 영원히 지속되겠죠.
그래도 괜찮아요.
오늘처럼 이렇게 여러분들이랑 즐거운 날도 있으니까 말이에요.
어쩌다 이렇게 한번 행복하면 됐죠.
그럼 된 거예요.
자, 우리 죽지 말고 불행하게 오래오래 살아요.
그리고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또 만나요.
불행한 얼굴로
여기 뉴월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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