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마음에 다가가는 법’에 관한 전시라고 생각했다. 무언가를 생각하고서 ‘타인’이라는 말을 고른 것은 아니다. 그들, 그러니까 밀양할매들1, 혹은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운동에 함께 한 주민들이 내게는 타인이었을 뿐이다. 그들을 타인이 아니라고 여기게 된 것은 아니다. 한 번이지만 찾아가기도 했고 기사나 책으로 소식을 챙기던 때가 있었다. 그때에도 그들은 내게 타인이었고, 더 이상 찾아보지 않게 된 지금 또한 여전히 타인이다. 다만 그 전시가 나만을 ― 혹은 그들을 타인으로 여기는 이들만을 ― 위한 행사가 아님을 알게 되었을 뿐이다.
“송전탑 뽑아줄티 소나무야 자라거라”라는 제목으로 책(김영희 저, 교육공동체 벗, 2019)이 나왔고 전시(공동기획, 서울: 연세대학교 백양누리 무악로타리홀, 2019.09.14.-25.)가 열렸다.2 누군가는 책을 냈고 누군가는 전시를 열었다. 책은 아직 펼쳐 보지 않았고, 우선 전시에만 다녀왔다. 출발은 거창하다. 기획자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말할 때 그 시민에 ‘밀양 할매’도 포함되는 것인지, 그렇다면 왜 여전히 탈송전탑과 탈핵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고 말하는 ‘밀양 할매’의 목소리는 ‘성숙한 시민의식’에 못 미치는 ‘생떼’가 되는 것인지 물으려 한다”고 힘주어 말하며 “누가 전문가이고 누가 전문가가 아닌지, 누가 당사자이고 누가 당사자가 아닌지를 구분하는 선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이 선을 따라 누군가의 말은 힘을 얻고 누군가의 말은 발화될 기회조차 갖지 못할 때 이 불균형을 정당화하는 것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을 던진다.3
그러나 전시는 소박하다. 사회학적이거나 철학적인 분석도, 늘 깎아내려진 이 촌로들이 실은 얼마나 훌륭한지를 보여주는 증거도 없다(정확히 말하자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전시장 한켠엔 수 년간 수집된 구술 자료가 놓여 있었고, 꼼꼼히 읽는다면 적절히 인용한 만한 무언가를 찾을 수 있었을는지도 모른다). 대신 벽에 걸린 것은 이주영과 이충열이라는 두 미술가가 마련한 자리에서 주민들이 직접 그린 알록달록한 그림들이다. 밀양의 색을 그려 보라는 말에 하늘색 혹은 꽃색으로 칠한 종이들. 드러누워 몸의 외곽선을 따라 그린 후 떠오르는 것들을 그려 채운 전지들. 힘들었던 순간이든 떠오르는 풍경이든을 묘사한 그림들. 매직이나 크레용 혹은 수채물감 같은 비교적 다루기 쉬운 재료들로, 섞어서 내기보다는 대개 이미 만들어져 있었을 색들로, 서로 나는 못 한다고 몸을 빼거나 너는 왜 그렇게 못 하느냐고 놀리거나 의외로 잘 그린다고 놀라거나 하며 채웠을 크고작은 평면들.
여러 사람이 여러 날 그리고 만들었으므로 여러 점이 걸려 있지만 특별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아니므로, 특별한 기술이 쓰였거나 특별한 상징을 담고 있지는 않으므로, 오래 보아야 알 수 있는 것들은 아니다. 내가 어떻게 그렇게 생겼느냐며 여러 명이 따지고 들었을 법한 서로 마주 보고 그린 상대의 얼굴을, 그들이 한 말을 따다 바닥에 붙였다는 문장들의 험하거나 고운 말들을, 혹은 잡지에서 오린 사진들을 예쁜 사람들과 못난 사람들로 편을 갈라 붙여서4 자신들과 저들 ― 그러니까 한전이라든가 정부라든가 ― 에 빗댄 콜라주 같은 것들을 보며 귀여워 하거나 가볍게 웃거나 잠깐 아파하거나 한 후 나오면 충분하리라는 기분이 드는, 그런 것들이다. 그러나 그것이, 쉽지만은 않다.
하나뿐인 전시장 입구는 둘로 나뉘어 있다. 오른쪽보다 넓게 구획된 왼쪽은 밝은 공간을 향해 트여 있다. 하지만 화살표는 오른쪽으로 가라고 말한다. 늘어진 천들로 시야가 가려지는 어두운 공간이다. 엇갈려 걸린 여러장의 천들에는 논란이 되었던 사건들이나 격렬했던 대치를 보도한 기사들이 인쇄되어 있다. 천에 걸리지 않도록 지그재그로 나아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자극적인 헤드라인이나 사진들이 계속 길을 막는다. 얼른 지나가고 싶지만 앞에 선 누군가가 멈춰 서 있다면 꼼짝 없이 기다려야만 하는 통로다. 한편으로는 이런 식의 보도에 짜증이 나고, 한편으로는 (잊고 있었던 일들이기도 하므로) 그들에 대한 걱정이 인다. 그 통로를 다 지난 후에야 비로소 ‘밀양의 색’들을 칠한 종이들을 볼 수 있다.
농성장을 방문했고 현지의 활동가들이 쓴 글을 읽었다. 하지만 게을렀으므로 횟수는 많지 않았다. 적은 것만을 알았고, 나머지는 기사들, 그러니까 그 통로에 걸려 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단편적인 기사들을 통해 접했다. 예상치 못하게 마주쳤으므로 전시장에서는 동요했지만 언론에 대한 기대가 크지 않으므로 당시에는 기껏해야 혀나 한 번 차고는 보아 넘겼을 것이다. 무슨 일이 있다 한들 그곳까지 달려 갈 것은 아니었으므로, 그저 기사 너머의 사람들을 잠시 안타까워 한 후 거기서 멈추었을 것이다. 하루하루 무슨 사건이 있었는지, 어떤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누가 밀려나고 있는지는 알고 있었지만 거기서 멈추었을 것이다. 비슷하다 여기는 다른 곳들에서의 경험에 비추어 나머지를 짐작했을 것이다. 송전탑이 세워질 산에 올랐던 그날에조차 이렇다 할 대화는 하지 않았으므로, 기사 너머의 사람들을 만나 본 적은 없었던 셈이다.
흔들리며 지난 통로 끝에 붙은 그림들 사이에 구멍 뚫린 백지가 있다. 가까이 가보면 무어라 나지막한 목소리들이 들린다. 둘러 앉아 그림을 그리던 날의 대화를 녹음한 것이라고 했다. 풀색이나 하늘색 혹은 꽃색,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구멍이다. (이렇게 쓰는 것은 내가 오래 서서 그 대화를 듣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 구멍에 오른쪽 귀를 가져다 댔다면 이제 얼굴은 밝고 넓은 공간을 마주하게 된다. 예의 그림들과 문장들이 걸린 공간이다. 천으로 나뉜 다음 공간 ― 그러니까 입구에서 보이던 공간 ― 으로 넘어가면 몇 점의 이미지가 더 걸려 있고 천이 뒷면에는 농성 현장에서의 나날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상이 흐르고 있다. 테이블 위에 놓인 천조각이며 철사며를 엮어 꽃을 만들 수 있다. 맞은 편에 놓인 반으로 꺾인 송전탑 조형물에 한 송이씩 꽃을 건다. 누군가가 어느 종이에 그렸던 모습이다. 머릿속에 송전탑이 서 있다고 했다 한다. 꽃으로 뒤덮어 버리자고 했다 한다.
실은 앎을 막는 ― 그러나 대부분의 앎을 지배하는 ― 언론의 문장들을 뚫고 지나가서야 겨우 닿을 수 있는 곳. 몸을 돌려 귀를 갖다 대어야 비로소 들리는 소리. 그렇게 움직일 때 뜻하지 않게 트이는 시야. 그 끝에서 함께 하게 되는 자그마한 일. 오래 보아야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해서 눈으로 훑고 지나가는 것으로 충분한 것은 아니다. 오래 보아도 알 수 없는 것이라고 해서 보지 않아도 좋은 것은 아니다. 알기 전에 느껴야 할 것들, 느껴야만 알 수 있는 것들, 혹은 몸이든 마음이든을 움직여야만 닿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런 것들에 관한 전시, 그런 식으로 타인의 마음에 다가가는 길에 관한 전시라고 생각했다.
타인의, 라는 말을 뺀 것은 그날 그 그림의 작가들, 그러니까 ‘밀양할매들‘이 전시장에 온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우연히 마주친 것은 아니다. 공지된 날에 맞추어 갔다.) 그림을 그리던 날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거나 어느 그림이 누구 것인지 짐작해 보거나 (모두가 온 것이 아니었고, 그들 모두가 한 날 한 시에 모여 그린 것도 아니었다) 하며 그들은 천천히 전시장을 돌았다. 이후 이어진 이야기 행사의 연단에 줄지어 앉은 그들은 투쟁을 결심하거나 한창 이어가던 때의 이야기들, 할 수 있는 것이 없어보이지만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는 지금의 이야기들 사이사이 고맙다는 말이나 잊지 말아달라는 말들을 반복했다. 그림을 그리던 날에 대한 이야기도 했지만 잘은 기억나지 않는다. 전시장에서의 기분에 대해서도 말했지만 아마 전시 구성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타인의, 라는 말을 빼기로 한 것은 그들 또한 타인들과, 그러니까 나 같은 관객들과 같은 길을 지나며 어딘가에 닿았다고 (아마도 근거 없이) 느꼈기 때문이다. 그들 또한 기사의 터널을 지나 방해하는 문장들을 걷어내고서야 비로소 자신의 마음에 닿았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자신들의 마음에 닿고자 하는 이들이 어떤 길을 거치고 있는지, 그 길의 끝에서 어떤 사람이 되는지를 생각하거나 느끼거나 보았을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그들이 말한 무언가를 듣고 생각하게 된 것일 수도 있지만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자신이 무엇을 바라는지,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어쩌면 홀로도 알 수 있을 테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자신의 곁에 누가 있는지를, 자신의 곁에 누군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만 비로소 또한 알 수 있는 것 혹은 다질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나는, 《송전탑 뽑아줄티 소나무야 자라거라》를, 내 것 네 것 할 것 없이 그저, 마음에 다가가는 법에 관한 전시로 여기기로 했다.
- 이 투쟁을 서술할 때 흔히 쓰이는 ‘할매들’이라는 호칭은 복잡하다. 하지만 내가 길게 생각하고 결단을 내려 여기에서 이 이름을 택한 것은 아니다. 청소, 조리 등을 담당하는 중노년 여성노동자들에게 붙은 ‘어머님’과 같은 호칭을 마주할 때와 비슷한 종류의 불편함을 느낀다. 하지만 여성노동자들이 한편으로는 익숙함과 겸손에 기대고 한편으로는 돌봄에의 사명감과 긍지에 기대어 받아들였던 (그리고 당사자가 아닌 많은 이들이 그저 관성에 기대어 택했던) 그 호칭과는 조금 다른 구석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밀양에 살아 본 적은 없지만 적어도 그 근처에서 살았을 때의 경험에 따르면 ‘할매’는 노년 여성들을 부르는 호칭(이것은 친근하게 낮추어 부르는 말인데, 그에 대응해 쓰이는 높이는 말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이자 그들 스스로가 (주로 어리거나 젊은 이들을 대할 때) 사용하는 일인칭 대명사이다. 엄마나 어머니라는 명칭에 온갖 감상을 쏟아 붓는 이들조차도 이 단어에 특별한 무언가를 투사하지는 않는다. 특별하지 않은 종류의, 늙음이나 무지만이 때로 묻을 뿐이다. 아마 이곳에서도 그런 종류의 겸손과 자기비하를 담은 자칭으로 쓰였으리라. 그러나 앎과 셈을 대신하는 그들의 실천이 이 이름에 덧붙여졌을 것이다. 그런 힘을 갖게 된 그들의 이름이 (적었지만 없지 않았던) 할배들, 할아버지들, 어르신들 앞에 있게 되었을 것이다. ↩
- 자세한 정보는 사전 후원을 받았던 웹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전시 기획자 명단은 여러곳에 다르게 표기되어 있는데, 제일 길게 적힌 것은 “이충열, 이영주, 김영희, 권진송, 윤지현, 말과 연대”이다. ↩
- 앞의 웹페이지에서 인용. 문장을 쓴 사람의 이름은 기재되어 있지 않다. ↩
- ‘예쁜’과 ‘못난’은 적당히 적은 것이고 정확한 단어들은 기억나지 않는다. 저것들이 맞거나 아니면 ‘잘생긴’과 ‘못생긴’ 정도 되었거나 했을 테다. 한쪽에는 연예인들, 다른 투쟁현장의 사람들 등이 붙어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어떤 정치인들이나 사업가들 등이 붙어있었던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