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는 한의원에 다녀왔다. 며칠 전부터 목과 어깨가 아프다. 그래서 며칠 전에 갔던 그 한의원이다. 근육통 정도로 온 환자는 진료실을 거치지 않고 바로 침대에 엎드린다. 뒤통수만 보고 말도 듣는둥 마는둥 한 후 의사는 침을 놓는다. 사흘 만에 다시 간 것인데, 의사는 처음 침을 놓는다는 듯, 이거 오래 된 거죠, 하고 물었다. 사흘 전에도 그는 같은 질문을 했고, 내가 답하기도 전에 맞아요, 라고 스스로 답했다. 진료를 마치고 계산을 할 즈음에야 의사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진료는 딱히 친절하지 않은데도 의사는 환자들이 나갈 때마다 로비로 나와 인사를 했다. 간호사에게 카드를 건네는 내게 의사는 고개를 숙이지 말라고 했다. 고개를 숙이지 말라고요? 그럼 하늘을 보세요, 그렇게 덧붙였다.
병원을 들렀다 늦게 출근해 일하던 중에 『섬과 섬을 잇다』가 택배로 도착했다. 함께 주문한 시집 한 권과 함께였다. 가까운 서점에는 책이 없었고, 인터넷 서점은 당일배송이 가능한 일반택배와 며칠 더 걸리는 우체국택배 중에서 고르라고 했다. 우체국택배로 책을 받았다. 포장을 뜯는 모습을 본 친구는 무슨 책이냐고 물었고, 대강만 설명했다. 일하기가 싫어서 뭉그적거리다가 퇴근이 늦어졌다. 사무실 가까이 있는 버스정류장을 두고 부러 먼 정류장을 향해 걸었다. 걸으면서는 하늘을 쳐다봤다.
평소와 다른 정류장에서 버스를 탄 탓에 지하철로 갈아타지 못하고 버스로 집까지 왔다. 고민하다 책을 꺼내 들었다. 고개를 숙였다. 나는 멀미가 심하므로, 글이 적은 만화들부터 읽었다. 다행히 멀미는 하지 않았다. 훌쩍거리고 있었던 덕인지도 모르겠다. 집 근처에서 갈아탄 버스에는 앉을 자리가 없었고, 책은 다시 가방 속으로 들어 왔다. 집 앞 편의점에서 라면을 샀고, 티브이를 틀어 놓고 라면에 밥을 말아 먹었다. 오늘은 일찍 자야겠다고 생각했다가 그제야 책이 떠올랐다. 침대에 앉아 책을 펼쳤다.
버스에서 읽다 만 한 편, 그리고 그 뒤의 마지막 한 편, 그렇게 두 편의 만화를 읽고 다시 앞으로 돌아가 르포들을 읽기 시작했다. 여전히 훌쩍거렸다. 하지만 글을 제대로 읽지 못하게 된 것은 이미 몇 년 전의 일이다. 집중할 수도 기억할 수도 없게 되어 약을 먹어 보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지난 달에 읽은 소설의 내용이 기억나지 않듯, 이 책의 내용들도 아마 곧 잊을 것이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적어두기로 했다. 평가할 생각은 아니다. 이런 삶을 ― 주인공들의 삶도 저자들의 삶도 ― 평가할 자격도 배짱도 내게는 없다.
기껏해야 한 번씩 다녀온 곳들이다. 강정마을, 밀양, 쌍용차 평택 공장, 모두 딱 한 번 씩 갔다. 평택에서는 최루액을 맞고 기침을 쏟아내기도 했지만 강정이나 밀양에서는 바다 구경, 산 구경을 했을 뿐이다. 대한문의 쌍용차 농성장에는 여러 번 다녀 왔고 재능교육 농성장이나 비없세 집회에도 몇 번인가 갔지만 그저 가보았을 뿐이다. 콜트·콜텍은 지나가다 우연히 문화제를 하고 있는 모습을 스쳐 보며 술집으로 들어간 적이 있고, 코오롱 집회 역시 한두 번 스쳐 지나가기만 했던 것 같다. 현대차 희망버스에도 타지 못했다.
저자들도 대개 이름만 아는 사람이다. 이름도 모르는 사람도 있고, 글을 볼 기회가 몇 번인가 있었지만 보지 않은 사람도 있다. 짧은 글들이나 만화들을 본 사람도 있고, 기자로 일하던 때 직접 인터뷰했던 사람, 강연을 한다기에 취재했던 사람도 끼어 있다. 집회 무대에서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 사람들도 섞여 있다. 출판사의 이름은 알지만 어떤 책을 냈는지는 잘 알지 못하고, 책을 내기 위해 일한 사람들은 모르는 이름들이다. 표지 디자인을 한 사람의 이름이 그 중에 끼어 있는지는 모르겠다. 따로 적혀 있지는 않다.
책을 읽으면서 사소한 잘못 몇 가지를 발견했다. ‘콩팥’은 ‘콩밭’이라고 적혀 있고, ‘mG(밀리가우스)’라고 되어 있어야 할 곳은 ‘mg(밀리그램)’이라고 되어 있다. 퇴고를 했다면 고쳤어야 했을 듯한 문장도 끼어 있었다. 잠깐동안 편집자들을 원망했지만 곧 그만두었다. 혹여 그들도 비정규직은 아닐까 싶어 검색을 해 보았지만 이렇다 할 것은 찾지 못했다. 이렇게 쓰고 있자니 문득, 인쇄나 제본업체, 배송업체와 서점 어딘가에는 분명히 있었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궁금해진다. 어쨌거나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나 스스로는, 적어도 나의 지위에 대해서는 별 생각이 없다. 탈 없이 살고 있어서는 아니다.
쌍용차 이창근은 동료들의 연이은 죽음을 겪으며 “회사에 대한 분노보다 죽음에 대한 궁금증이 더했다”고 썼다.(36쪽) 짓밟혀 찍히고 찢긴 고인들의 영정에 이경석은 “팔다리만 있었어도 이렇게는 안 당하는 건데!”(16쪽)라는 말풍선을 달았다. 밀양 평밭마을 한옥순은 이렇게 말했다. “그 자리에 숨을 뚝 멈춰야겠는데 그럴 순 없꼬 옷을 벗었어.”, “정말로 땅이 꺼지고 하늘이 무너지는 그런 심정으로 옷을 벗었어.”(75쪽) 기록노동자 희정은 그 뒤에. 그 마음이 그칠 날이 없었다고 짧게 덧붙였다. 옷을 벗은 깡마른 노인은 유승하의 만화 속에서 “가!”라고, 외마디 외치고 있다.(65쪽) 그 앞으로는 침인지 땀인지 슬픔인지 모를 얼룩들을 그렸다. 재능교육에 입사하기 전의 유명자가 사진을 찍고 싶어 했다는 것은, 카메라 살 돈을 벌기위해 학습지 교사가 되었다는 것은 김성희의 만화를 통해 처음 알았다. 『내가 살던 용산』을 읽고서 만나 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만화가다. 학습지 노동자들의 투쟁사를 적고, 재능지부 내의 갈등에 대해 소회를 털어 놓은 하종강은 “부디 잊지 말아 주시기를…….”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문장으로 글을 맺었다.(123쪽)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들이 주인공인 마영신의 만화 제목은 「들리지 않는 연주」이다. 들어주는 이 없는 콜밴의 연주에 관한 것인지, 공장에서 한 손을 다치고 투쟁 중에 분신으로 또 한 손을 다쳐 악기를 들 수 없게 된 노동자의 손에 관한 것인지는 알지 못한다. 이선옥은 ‘문자해고’에 관한 문장들로 글을 시작한다. 콜텍악기 공장의 노동자들, 그리고 그들을 아침저녁으로 태우고 다닌 통근버스의 노동자는 2007년 4월 9일 여느 때처럼 출근한 공장 정문에 붙은 휴업 공고(그리고 폐업 예고)를 보고서야 자신들이 일자리를 잃었음을 알았다. 지도를 보고 강정마을을 찾아간 김홍모는 지킴이 조엔이 작은 깃발에 쓰고 싶었던, 그러나 틀려서 강정주민 영진이 고쳐 준 제주말 한 문장을 받아 적고 제 만화의 제목으로 삼았다. “수눌멍 살게마씸”, 서로 도우며 살아보세. 김중미는 천주교 제주교구장 강우일의 말을 되새긴다. “강정아 너는 이 땅에서 가장 작은 고을이지만 너에게서 온 나라의 평화가 시작되리라.” 이 문장으로 또 한 편의 글이 끝난다.(201쪽) “임태현 씨의 3형제는 모두 현대자동차의 비정규직 노동자다. 임태현 씨가 그중 첫째다.”라는 말로 만화를 시작한 김수박은 중간에 겨우 몇 마디의 해설을 덧붙였을 뿐이고, 마지막 칸 역시 온전히 임태현에게 주었다. “여기는 기차가 자주 지나가는데, 운전자가 노조 가입자면 저렇게 응원 신호를 보내요.”(207, 222쪽) 서분숙은 스스로의 삶을 옷 만드는 일에 비유한 한 노동자의 이야기를 꺼낸다. 그는 누구는 천을 짜고 누구는 바느질을 하듯 자신도 하나의 공정을 맡고 있다고, 그것은 철탑 농성자들을 찾아 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다. 분업이 씁쓸하다 싶을 때 서분숙은 덧붙였다. “그는 살아있다는 그 자체가 하나의 완성된 옷이라고 한다. 살면서, 살아가면서 다시 수선하고 새롭게 만들 수 있는 옷. 그러나 그 누군가의 희생으로 만든 옷은 입을 수 없다.”(238-239쪽) 박해성은 집회 무대에서, 치킨집 무대에서 노래하는 이들을 그렸다. 야속함을 내비치는 노래 가사들을 따라 야속한 삶이 네모칸들 속을 흘러간다.(252, 255쪽) 꾸밈없이 꼼꼼했던 연정의 글 역시 남의 말로 끝난다. 코오롱노조위원장 최일배는 2008년 법원에 제출한 진술서에 이렇게 썼다. “정년퇴직까지는 아니더라도 회사를 그만둘 때는 그동안 고마웠다고 감사인사를 하고 웃으면서 떠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단 하루를 일 하고 그만두더라도 복직하고 싶었습니다.”(277쪽)
『섬과 섬을 잇다』에는 7명이 만화를, 7명이 산문을 실었다. 이경석, 이창근, 유승아, 희정, 김성희, 하종강, 마영신, 이선욱, 김홍모, 김중미, 김수박, 서분숙, 박해성, 연정이 그들이다. 심리치유센터 와락의 권지영이 추천사를 썼고 이선옥이 저자 대표로 서문을 썼다. 한겨레출판의 이기섭이 펴냈고, 편집인은 김수영이다. 출판사의 시스템은 잘 알지 못하지만 책임편집 김회엽, 기획편집 김윤영·임선영·최선혜·이지은·이조운·김준섭, 마케팅 조재성·성기준·정윤성·한성진·정영은·박신영, 관리 김미란·장혜정이라고 되어 있다. 인쇄업체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한국성폭력상담소 『반성폭력』에 기고하고 받은 원고료로 알라딘서점에서 샀고, 집배원과 사내 우편수발 담당자를 통해 책을 받았다.
이 책 어딘가에는 대학을 졸업한 나이의 딸을 딸아이라고 칭한 문장과 담벼락의 꽃을 고향의 여동생에 비유한 문장이 있다.
기억나는 것은 여기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