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은 호수(湖水)요, 그대 노 저어 오오.

김동명, 「내 마음은」

내 마음은 호수(湖水)요,
그대 노 저어 오오.
나는 그대의 흰 그림자를 안고 옥(玉)같이
그대의 뱃전에 부서지리다.

내 마음은 촛불이요,
그대 저 문(門)을 닫어 주오.
나는 그대의 비단 옷자락에 떨며, 고요히
최후(最後)의 한 방울도 남김 없이 타오리다.

내 마음은 나그네요,
그대 피리를 불어 주오.
나는 달 아래 귀를 기울이며, 호젓이
나의 밤을 새이오리다.

내 마음은 낙엽(落葉)이요,
잠깐 그대의 뜰에 머무르게 하오.
이제 바람이 일면 나는 또 나그네같이 외로이
그대를 떠나오리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문득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노 저어 오오”라는 구절이 떠올랐다. 스스로는 잔물결조차 일으키지 않는, 가만 있는 호수. 그 호수에 그대는 무엇하러 힘써 노를 저어 가야 할까, 생각했다. 전문을 찾아 보았더니 다른 연도 마찬가지다. 바람 불면 사라질 촛불이며 낙엽이라 그대에게 지켜 달라 하고, 기껏 제 힘을 가진 순간에는 나그네 되어 그저 떠나겠다 하고. 애꿎은 그대는 왜 그리도 힘을 써야 했을까.
실은 꽤 젊은 시라고, 기껏해야 80년대의 시라고 생각해 왔는데, 1930년대의 시라는 사실은 오늘에야 알았다. “조국을 언제 떠났노, 파초의 꿈은 가련하다”와 같은 사람의 문장이라는 사실도 오늘에야 알았다. 스스로는 움직이지도 못해 누군가 길어다 주는 물만을 마시며 이역의 조국을 그리워한 파초 같은 사람이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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