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용 프로젝트’[1]‘김화용 개인전’이 아닌 이유는 정확히 모른다. 다만 이 전시는 스스로를 “‘소금’을 매개로 한 리서치 기반 작업으로, 긴 호흡을 가진 김화용 … 각주로 이동 《화성에도 짠물이 흐른다》(서울: 세운청계상가 501호 등, 2022.12.16-31.)는 인천을 비롯한 서해안에서 소금을, 소금 머금은 땅에 사는 식물들을, 소금물 ― 바다 ― 을 매개로 오가는 인간들을 관찰하고 기록한다. 그리고는 그 생명과 교류의 가능성들을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최대한으로) 그러모아 소금의 흔적이 포착된 외행성, 화성으로 시선을 돌린다.
전시 공간을 채운 것은 작가가 직접 찍은 것은 아닌 염생 식물 표본 ― 살아 있는 상태로가 아니라, 채집되어 테이프로 표본판에 고정된 상태로 촬영된 ― 사진 몇 점, 화성에서 발견된 소금의 흔적을 찍은 사진 몇 점과 캡션을 제외하면 거의 전적으로, 전시를 위해 제작한 원목 가구 위에 놓아둔 낱장 혹은 책자에 적힌 작가의 문장들이다. 원래는 고미술 복원 연구소라는 세운청계상가 501호에는 전통적인 형태의, 그러나 온전히 옛 방식으로 만든 것은 아니어서 고무 벨트나 쇠와 플라스틱이 들어간 계수기 등이 붙어 있는 방적기나 방직기 등이 놓여 있지만 이것이 전시의 일부인지 원래 그곳에 있던 것인지는 확인하지 않았다. 사이사이 놓인 제습기나 온풍기 역시 그저 실용적인 이유로 그곳에 둔 것인지 다른 의도가 있는지 알지 못한다. 때로 그런 사물들 사이로 몸을 돌려 가며 문장들을 읽었다.
“천일염은 / 바닷물을 염전에 가두고 / 바람과 햇빛으로 / 수분을 증발시켜 얻는다” 같은 비교적 건조한 정보에서부터 “송도 갯벌은 // 썰물 때 / 최대 5~8km 멀리까지 / 모습이 드러나고 / 갯벌 전체 넓이는 / 여의도 면적의 8배로, / 서해안에서도 손꼽히는 / 규모였다. // 하지만 지금은 거의 소실되었다” 같은 약간의 판단이 덧붙은 말, 혹은 “국경은 // 인간 동물에게만 / 인식되는 경계이다” 같은 결연한 선언에 가까운 문장까지가 뒤섞여 있다.[2]“서해안 짠물들의 조금 긴 이야기들, 갯벌과 염생 식물 이미지”가 전시된 청계세운상가 501호의 문장들. 조선이나 신라로까지 시간을 되짚어 가는 문장도, 중국의 동쪽 해안을 향해 바다를 건너는 문장도, 혹은 서해로 흘러드는 강을 거슬러 내륙으로 들어가는 문장도 있다. 모든 글자는 꽤 커서 저시력자도 그럭저럭 읽을 만한, 그러나 이지러져 있어서 누구라도 가끔씩 윤곽을 놓칠 만한 형태로 인쇄되어 있다.
이 운동들은 아마도 “소금이 […] 인류 문명을 이루는 바탕이라는 사실”을 해체해 그 겹겹을 살피기 위한 것이다. 바탕이라는 것은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결국엔 숨겨지고 떠맡겨지는 것이라는, 그리고 그러한 은폐와 전가에는 언제나 대가가 따른다는 사실을 말이다. 문명은 정제된 소금, 바다를 건너 온 문물만을 원하므로 소금의 생산은 봉건 시대에는 노비에게, 현대에는 ‘지적 장애인 염전 노예’에게 맡겨진다. 해외의 문물은 소비하지만 그것을 가져온 이주민들, 그들의 다른 생활 양식은 거부 당하고 저지 당한다. 바닷소금은 정제를 거쳐 식탁에 오를 것이므로 (그러리라 믿고 그러기를 바라므로) 육지의 오물은 거리낌없이 바다에 버려진다.
한윤아는 “이 이야기의 놀라운 점은 소금 결정체를 도사 손에 들고, ‘염생’이라는 혼종적 삶의 양식과, 소금기를 머문[머금은] 땅인 ‘갯벌’을 해방의 영토로 상상하는 것에 있다”며 김화용이 ‘소금 이야기하기’를 계속 수행하면서 동시에 식물, 동물 및 다양한 존재들의 공동체가 그 위에 아른거리게 한다”고 썼다. 조금 끊어서 이야기하자면, 그곳은 정확히는 해방의 땅이라기보다는 해방의 가능성을 품은 땅일 것이다. 기수 유역의 삶이 그저 조화와 적응이 아니라 언제나 밀고 밀리는 소금과의 싸움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적어도 인간의 차원에서) 이곳에서 해방이 이야기될 수 있는 것은 이곳에 유폐된 삶이 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 이곳이 해방의 땅이 되는 것은 이미 어떤 자유가 구가되고 있기 때문이기보다는 문명의 앞마당에서 밀려나고 숨겨진 싸움이 이곳에서는 여전히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해방의 땅에서는, 여전히 남은 정복이 수행될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다. 화성에서 발견된 소금의 흔적은 우리가 만난 적 없는 생명의 가능성, 따라서 우리의 생명/삶에 어떤 변화를 들일 수 있는 가능성이기도 하지만 국격을 빙자하고 무기 개발을 포장하는 우주 산업의 핑계이자 아예 우주 개발의 신호기도 하다. 이 해방의 땅은 유폐된 존재들에게만이 아니라 화성이 “지구를 위해 대기하고 있는 광산”, 정확히는 “우주에 갈 수 있는 기술을 가진 자”들을 위한 광산이 되어버릴 가능성, “지구 미생물들이 화성에 갔을 때 화성을 오염시킬” 가능성에도 바탕이 될 수 있다.[3]“화성 탐사의 계기가 된 화성의 소금물 흔적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를 펴는 여성을위한열린기술랩에 전시된 문장들.
청계세운상가의 한 연구실에서 인현상가 여성을위한열린기술랩으로 이어지는, 그러니까 낡은 전자상가에서 열리는 이 전시에서 소금은 (어쩌면 뜻하지 않게) 기술과 겹쳐진다. 이 전시의 두 공간을 잇는 공식적인 통로(이자 세 번째 전시 공간)는 상가들을 잇는 공중보행로로, “서울 개발사의 여러 층위가 담긴 지붕들과 여전히 건설 ‘중’인 현장들”이 내려다 보이는 길이다. 도시개발과 우주개발을, 그 욕망과 폐기물을 이어주는 이 길을 지나는 관객의 아래에 자리한 상점들에서는 그 역사를 조그만 기판에 축소해 둔 사물들을 전시하고 팔고 수리한다. 내가 그랬듯 길을 잃어서든 혹은 다른 이유로든 전시를 생각하며 그 길을 지난 관객들이, 혹은 이미 그 길을 잘 알고 있는 관객들이 있을 것이다.
조명기기와 음향영상기기, 현대인들의 평범한 일상에서 가장 자주 마주치는 기술들로 만들어진 물건들이 즐비하게 ― 휘황하게 켜진 채로 ― 늘어서 있다. 이곳은 전자기기가 지금만큼 일상화되지는 않았던 시기부터 일반인들에게 어떤 기술들을, 때로는 이를테면 인디 음악 같이 검열삭제된 내용물들을, 접할 수 있게 해 주었던 곳이다. 동시에 금지된, 적어도 많은 이들이 금지되기를 바라는 ― 이를테면 도청 장비나 몰래카메라 같은 ― 기술들이 조용히 퍼져 나간 곳이기도 하다. 여성을위한열린기술랩에 쌓여 있는 여러 대의 삼성 브라운관 텔레비전 역시 수없이 많은 소비자들에게 편의를 준 물건이자 수없이 많은 생산노동자들에게 온갖 상처를 가한 물건이다.
그 여전한 역사는 마치 소금처럼, 우리의 삶 혹은 문명을 떠받치는 동시에 갉아먹는다. 소금만큼은 아니라 해도 기술 역시 그저 거부할 수는 없는 것이라면, 거기에도 마찬가지로 억압과 유폐, 그리고 해방의 가능성이 가라앉아 있을 것이다. 소금은 바다만의 문제가 아니고 해방 역시 바다만의 가능성이 아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을 찾는 것 역시, 바다에 접한 존재들에 떠맡길 일도 바다에서만 도모할 일도 아니다. 관객은 그저 해안에서 출발에 화성에 이른 작가의 시선을 좇는 것을 넘어, 기술이라는 이곳의 또 다른 소금을 추적할 수 있게, 추적해야만 하게 되고 만다.
집에 오는 길에는 1997년부터 몇 번의 인신매매를 거쳐 2003년부터 ‘염전 노예’ 생활을 하다 2015년에야 ― 단속이 시작되자 쓸모가 다해 버려짐으로써 ― 풀려난 이의 역경과 근황을 읽었다. 그날 아침에 공개된 기사였다.[4]박상규, 「돌아온 ‘염전노예’ 오빠의 첫마디… “니, 대학은 졸업했나”」, 《셜록》, 2022.12.30. 이 글은 지난해 11월에 시작된 기획연재 “서칭 포 … 각주로 이동 이 날 전국 각지에서는 정체 모를 비행물체가 목격되었다. 국방과학연구소의 고체추진 우주발사체 시험비행이었다. 국방부가 “우리 군의 독자적 우주전력 건설의 기반을 다지는 중요한 이정표이자, 제7대 우주강국 도약을 위해 진일보한 것”이라 자평한 이 기술은[5]국방부 보도자료, 「고체추진 우주발사체 2차 비행시험도 성공」, 2023.01.02. 정찰위성은 물론이고 탄도미사일에도 쓸 수 있다. 이런 소식들 사이에서는 소금 없이 사는 생명체를, 그런 생명체를 인간의 상상력과 기술로는 쉽사리 포착하지 못할 가능성을, 덕분에 그들의 평화가 조금은 길어질 희망을 생각했다.[6]예컨대 이런 것. “과학계가 ‘액체 상태의 물’과 ‘탄소 기반의 유기물’에 집중하는 이유는 인류가 현재 알고 있는 생명체의 구성 요소가 탄소 … 각주로 이동
↑1 | ‘김화용 개인전’이 아닌 이유는 정확히 모른다. 다만 이 전시는 스스로를 “‘소금’을 매개로 한 리서치 기반 작업으로, 긴 호흡을 가진 김화용 프로젝트 여정 중 한 정거장”이자 “리서치 과정 중 작가의 감각을 통과한 질문 혹은 믜문과, 이를 다시 자신의 맥락으로 답하는 과정을 담은 여러 타래의 글 모음집”으로 소개한다. 이하에서 따로 출처를 밝히지 않은 모든 인용문은 한윤아가 쓴 동명의 전시(혹은 작업) 서문에서 가져온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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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서해안 짠물들의 조금 긴 이야기들, 갯벌과 염생 식물 이미지”가 전시된 청계세운상가 501호의 문장들. |
↑3 | “화성 탐사의 계기가 된 화성의 소금물 흔적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를 펴는 여성을위한열린기술랩에 전시된 문장들. |
↑4 | 박상규, 「돌아온 ‘염전노예’ 오빠의 첫마디… “니, 대학은 졸업했나”」, 《셜록》, 2022.12.30. 이 글은 지난해 11월에 시작된 기획연재 “서칭 포 솔트맨 : 사라진 염전노예를 찾아서”의 여섯 번째 기사다. |
↑5 | 국방부 보도자료, 「고체추진 우주발사체 2차 비행시험도 성공」, 2023.01.02. |
↑6 | 예컨대 이런 것. “과학계가 ‘액체 상태의 물’과 ‘탄소 기반의 유기물’에 집중하는 이유는 인류가 현재 알고 있는 생명체의 구성 요소가 탄소 기반의 분자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외계행성을 탐사하다가 규소(silicon) 기반의 분자하나를 발견했다고 가정해봅니다. 이게 생명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생명체는 탄소 기반의 생명체가 전부입니다. 따라서 규소 기반의 생명체에 대한 조사를 더 이상 할 수 없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듭니다.” 함예솔, 「지구 밖 생명체 찾을 때 왜 꼭 물을 찾을까」, 《이웃집과학자》, 2018.09.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