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에 났다는 “빵꾸”를 찾아 한 사람이 등장한다. 수도관에 실금이 간 것 같으니 대충 동여매고 포크레인으로 한 삽 푹 떠서 채우면 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도로에 났다는 “홀(hole)”을 찾아 또 한 사람이 등장한다. 싱크홀의 원인은 여러가지일 수 있으니 무작정 덮을 게 아니라 면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연극 〈홀〉은 이 두 사람의 이야기다.
땅을 파는 장면에선 진짜 흙을, 물이 새는 장면에선 진짜 물을 쓰는, 그래서 연극이 끝날 즈음이면 무대가 진흙투성이가 되는 그런 연극이다. 내내 과장된 몸짓과 언어 유희로 관객들을 웃기려 하는 연극, 가볍게 볼 만한 코믹극이다. 그러나 너무 분명히 사회 모순을 지적함으로써 그리 편히 볼 수는 없게 하는 연극이기도 하다.
이 연극은 쉬운 비유들을 통해 몇 가지 사회 문제들을 지시한다. 한때 이슈가 되었던 싱크홀 자체에서부터 세월호 참사에 이르기까지를 말이다. 진실을 (말 그대로) 파헤칠 것인가 덮을 것인가를 두고 승강이를 벌이는 두 사람은, 여러가지 사건 사고들 앞에서 진상조사와 봉합을 두고 대립했던 사회적 흐름들을 대변한다. 땅을 파면 팔수록 심해지는 구린내는 추악한 진실을 상징한다. 그 속에 무엇이 있었는지 연극은 보여주지 않은 채 막을 내리지만, 메시지는 분명하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인물들이 다소 평면적이라는 점이다. 파고자 했던 사람은 끝까지 파고, 덮고자 했던 사람은 결국 자리를 뜬다. 세월호만 생각해도 진상조사를 하려는 측과 그러지 않으려는 측이 변화 없이 대립하고 있으니 섣불리 한 인물을 개과천선 시킬 수야 없는 노릇이지만, 진상 조사를 거부하고 자리를 뜨는 이가 결국 다른 구멍에 빠지고 마는 결말은 쉬워도 너무 쉬운 비유였다.
인물상이 아쉬운 것은 아마도, 싱크홀을 “빵꾸”라고 부르며 덮어버리려 하는 이는 지식도 신념도 없는 육체노동자로 그려지고, “홀”이라고 부르며 파헤치려 하는 이는 지식과 신념을 모두 갖춘 지식노동자로 그려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물론 연극은 진상조사를 막는 배후로 (무대에는 등장하지 않는) 어떤 고위층을 지목하지만) 지식의 부재를 곧바로 신념의 부재로 연결시키는 듯한 구성은 썩 내키지 않았다.
두 사람의 대립은 현재의 시대상을 사실적으로 반영하지만 그리 흥미로울 것은 없다. 이 연극에서 흥미로운 점이 있다면 그것은 오히려 형식적인 측면, 특히 제 4의 벽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배우들은 몇 번인가 객석을 침범하며 관객들에게 말을 건다. (물론 “너무 대답하지는 마, 복잡해 지니까”.) 관객 한 명을 무대로 불러 세우기도 하고, 이런저런 농담들에 대한 반응을 직접적으로 요구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이 연극이 제 4의 벽을 무너뜨리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무대에 등장한 배우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무대와 객석 사이에 안전선을 치고 이 선을 넘지 말라고 당부하는 일이다. 무대의 마지막은 그야말로 제 4의 벽이 물리적으로 세워지고 (비닐 막을 친다) 배우가 객석을 향해 (그러니까 그 비닐 벽을 향해) 땅을 파며 나온 진흙들을 집어 던지는 장면이다. 이 연극이 무언가 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스토리 자체보다는 이처럼 제 4의 벽을 사이에 두고 관객들로 하여금 넘을 수도 넘지 않을 수도 없게 만드는 그 구성에 있을 것이다.
연극 〈홀(Hole)〉과 제 4의 벽
안팎 / 2017.0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