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합리적 상처들

1914년에서 1918년까지에 세계 역사상 가장 끔찍한 사건들 중의 얼마간을 경험해야만 했던 세대의 사람들 사이에서, 경험의 가치는 떨어졌다. 어쩌면 보기만큼 놀라운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전선에서 돌아온 많은 이들이 침묵하였을 때, 나눌 수 있는 경험이 풍부해져서가 아니라 오히려 궁핍해져서는 돌아왔던 그 때 알 법하지 않았던가? 이후 십 년간 전쟁서적들은 입에서 귀로 전해지는 경험만 빼고 모든 것을 쏟아 내었다. 아니, 여기에는 놀라울 일이 없다. 경험이 이토록 전적으로 부정되었던 적은 ― 전략적 경험이 진지전에 의해, 경제적 경험이 인플레이션에 의해, 신체적 경험이 굶주림에 의해, 도덕적 경험들이 지배권력에 의해 뒤집힌 적은 없었으니 말이다. 마차를 타고 학교에 다녔던 한 세대는 이제 구름 말고는 그대로인 것이라고는 없는 풍경의 들판에 서 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무시무시한 폭풍과 폭발의 역장力場 속에, 작고 연약한 인간의 육신이 있다.

―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1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슬픔은, 말로 옮겨 이야기로 만들거나 그것에 관해 이야기를 한다면, 참을 수 있다.”라고.2 나는 이것이 사실이리라 여긴다. 경험적으로 종종 그러했고, 짐작하기에도 그러하다. 글이든 말이든 문장으로, 그리고 이야기로 만듦으로써 사건과 거리를 둘 수 있게 되기도 했고 사건의 원인이 이해되기도 했으며 앞으로를 가늠할 수도 있었다. 반복을 통해 익숙해지거나 대생화를 통해 거리를 두고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감각들을 잠재우는 일이든, 서사를 구성함으로써 이해하고 예측하는 일이든, 그러나 실은 ― 이것이 나에게 일어난 일이 아니라거나, 나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거나, 혹은 이 아픔에도 이유가 있다는 ― 상상에 토대를 두고 있다. 종종 허망한 일일 뿐이게 되기도 한다는 뜻이다. 어쩌면 상상에 실패할 때, 사람은 무너질 것이다. 상상할 수 없는 상태가 되거나, 혹은 스스로도 감당할 수 없는 상상에 빠져들게 되거나. 그저 무뎌지거나 잊게 되는 일도 있겠지만, 그러지 못하는 일들도 있을 것이다.

여전히 떠오르는 사건 앞에서, 언제나 지금 이 순간 일어나는 일인 듯 생생하게 다가오는 감각 앞에서, 상상에 ― 이러하여도 괜찮다는 상상에 실패한다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상상이다. 이미 끝난 사건이 반복해서 침입해 오는 것은 언제나 상상 속에서이니 말이다. 다만 자발적인 상상이 아닐 뿐, 그러므로 멈출 수 없을 뿐이다. 비요른 멜허스Bjørn Melhus의 〈나는 적이 아니다I’m Not the Enemy〉(단채널 영상, 13:30, 2011)의 인물(들)은 그런 상상에 잠식되어 있다. 세 명, 혹은 네 명 쯤이 출연했던 것 같다. 그(들 중, 적어도 하나)는 ‘참전 용사’다. 죽음으로 가득한 곳에서 돌아온, 그 곳에서 죽임을 수행하다 돌아온 그는 망상에 빠져 있거나 헛것을 보고 있다. 유령의 형상으로 ― 빈 공간에서 갑자기, 그러나 서서히 ― 등장하는 가족들에게 비난의 말, 염려의 말을 들었던 것 같다. 소리가 나는 것을, 사람이 있는 것을, 견디지 못했던 것도 같다. 존재한 적 없는 누군가를 보거나 그에 대한 말을 듣기도 했던 것 같다. 전장을 벗어나 집으로 돌아왔지만 전장에서 입은 상처는 아물지 않았으므로 그는 여전히 아프다. 아물지 않았다는 말로는 부족한 것이다. 여전히 새로운 상처가 생기고 아무는 듯 싶던 상처가 벌어진다. 그러나 그에게 상처를 입히는 존재는 이제 없으므로, 부재하는 존재는 다른 누군가에게로, 혹은 텅 빈 의자 위에로 투사된다. ‘이야기’를 하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이 세계에서 배운 언어로는 하나로 이어지는 서사를 쓸 수 없었으므로, 이 세계에는 없는 언어와 법칙과 작용들이 필요했을 것이다.

며칠 전 어느 대학 식당 입구에서 종이 한 장을 집어들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얇은 책자를 집어 들었으나 실은 반으로 접은 한 장짜리 종이였다. 펜으로 곧은 선들을 긋고 그에 맞추어 바른 글씨로 빽빽하게 무언가가 적혀 있었다. 독특하게 디자인 된 표지를 가진 동아리 출판물 쯤으로 생각하고 집어 들어 읽었다. 스스로를 대전에 적을 둔 60년생 남성으로 소개한 그는 국정원의 감시를 받고 있다고, 국정원이 한때 자신의 결혼을 방해했으며 이제는 강제로 결혼시키려 들고 있다고, 평생을 감시와 훼방 속에 살며 고통 받고 있다고 했다. 나는 합리적인 사람이므로, 얼굴 모를 필자를 의심하거나 염려한다. 내가 만들어 본 이야기들은 다 고만고만하다. 내가 아는 세계는 좁다. 내가 아는 세계에서 국가기관이 무명의 개인을 미행하고 감시하며 결혼을 방해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내가 아는 국가기관은 누군가의 결혼 대신 노동자들의 파업을, 운동가들의 조력을 차단하느라 바쁘다.) 어떤 상처를 입었을까, 무엇이 그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병원에는 다니고 있을까. 잘 곳은 있을까, 그가 흰 종이 양면에 가득 적어 복사해서는 서울의 대학에 두고 간 글 속에서 수십 년째 이어지는 사건을 나는 쉽사리 망상으로 치부하고, 그 사건 바깥에 있는 그의 몸을 걱정한다.

신정균의 〈없는 사람〉(단채널 영상, 8:26, 2017)을 보면서도 그랬다. 영상에는 카메라를 마주하고 앉은 노인이 등장했다. 자막으로 그의 이름이 나왔고 (이름은 잊었다) 그 아래에는 역시 자막으로 ‘은신술 전문가’ 쯤 되는 말이 달렸다. 그는 무언가 말을 했고, 화면이 바뀌면 그의 말을 재연한 장면이 나왔다. 숲을 기어 어디론가 가거나 조심스레 땅을 파 지뢰를 찾거나 하는 모습들. 북파공작원들의 훈련 모습을 담은 오래 된 보도 영상도 나왔다. 다시 화면에 나온 그의 앞에서는 모래시계 하나가 서서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조악한 합성이라고 생각했다. 은신술이라는 것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영상이 잠입술 전문가, 쯤 되는 말과 함께 시작했다면 모래시계 역시 의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은신술이라는 말이 정말로 무협소설 속에만 나오는지, 군대에서는 잡입술이라는 말을 쓰는지, 그런 것들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지만 그랬다. 모래시계가 어떤 원리로 흔들리고 있는지 궁금한 마음을 잠시 밀어두고 그의 말에 좀 더 귀기울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내내 영상의 모든 것이 가짜이며 부러 조잡하게 만든 장면들이 이어지고 있다고 여겼다. 저 사람은 배우이며, 재연 장면은 티브이 재연드라마의 화면 구성을 흉내내어 만들었으며 모래시계는 일부러 대충 갖다 붙였다고 여겼다. 증언자의 상처,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비합리, 그것을 대하는 알지 못하는 자의 태도 같은 것들이 작가의 관심사이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작품 소개에는 담담한 설명이 적혀 있었다. “작가가 인터뷰한 서초한 어르신은 1967년 군복무 당시 특수부대 교관이며 북파공작원으로서 겪었던 무용담을 들려준다. 작품에서 노인은 특수 훈련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은신술’을 이야기함으로써 지워진 과거의 경험을 역설적으로 드러내고, 그가 기억하는 당시 상황이 현재의 단체 활동 장면과 병치되거나 파편적인 이미지로 재현된다.”3

노인의 말에 좀 더 귀기울였다면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알리는 단초를 찾을 수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의 말은 제대로 듣지 못했다. 그에게 관심이 없어서, 혹은 이 작업의 걸치고 있는 경계의 좌표를 확인하는 데에 관심이 없어서는 아니었다.4 이 영상을 본 것은 서울 을지로의 자그마한 공간에서였다. 내가 살았던 방들 중 가장 작은 곳과 비슷한 정도 크기일 것이다. 프로젝터가 설치되어 있고 세 명이 앉을 수 있는 의자가 놓여 있는 공간이다. 의자가 없는 곳에 서거나 앉으면 화면에 그림자를 지우게 되므로, 그 이상은 들어올 수 없는 공간이다. 내가 그곳에 도착했을 땐 〈나는 적이 아니다〉의 중간쯤이 나오고 있었고 두 명이 앉아 있었다. 남은 자리에 앉아 영상을 보고 있는데 누가 들어와서는 그 두 사람에게 말을 걸어 데리고 나갔고, 금세 돌아와 내게 아무개 님이시냐고 물었다. 이 공간에 예약제로 운영되는 프로그램이 있었나, 생각했지만 있더라도 도리가 없으므로 전시된 영상들을 마저 보고 나가기로 했다. 곧 다른 이들이 들어와 앉았고, 나는 슬슬 의심을 시작했다.

아야 모모세의 〈레슨Lesson〉이 상영되고 있었다. 녹색 줄무늬가 있는 배경 앞에 선 사람이 일본어로 된 몇 개의 문장을 반복한다. 그 사람이 말하면 가나와 한자로 쓴, 그리고 로마자로 독음을 표시한 문장이 자막으로 표시된다. (아마도 여기까지가 이 작업의 기본인 듯하고, 저 자막 아래로 영역한 문장과 국역한 문장이 역시 자막으로 더해져 있었다.) 누군가에게 말을 가르칠 때처럼 느리게 또박또박 말한다. 수화일 것도 같은 동작도 함께인데, 같은 문장인데도 몸짓은 많이 다르다. 문장은 기이하다. “이것은 나의 피가 아닙니다”, “이것은 당신의 피가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의 피가 아닙니다” 같은 말이 이어지고 이따금은 피 대신 개가 언급된다. 내내 한 사람만이 등장하지만 뒤로 가면 등장하지 않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영상에 겹쳐진다. 울먹이고 있다.

내가 의심한 것은 새로 들어온 두 사람이 이 영상을 보며 ‘일본어 공부하라는 건가봐’라고 말한 시점부터였다. 몇 마디 말을 주고 받더니 그들은 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영상의 배경 때문에 얼굴이 초록색으로 나온다며 불평했다. 그리고는 다시 영상을 보며, ‘생활 회화 가르쳐 주는 건 좋은데 왜 계속 피 이야기를 하지’라며 의아해 했다. 〈없는 사람〉이 나올 때쯤에는 지쳐서인지 혹은 이 영상의 화면구성이 신기할 것 없는 시사프로그램 쯤 되어보여서인지 대화를 시작했고 목소리가 점차 커졌다. 영상을 보기 위해 온 이들이 아니었다. 이 영상에는 대사를 받아적은 자막이 없었으므로 (정말로 없었는지 조금 의심스럽다) 나는 노인의 말을 들을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화면만을 보면서 근거 없는 추측을 해댔고, 한편으로는 상처를 말하는 일의 무력함을 생각했다.5 밝은 표정과 경쾌한 몸짓으로 반복해 말하는 “피”라는 단어, 이어지는 흐느끼는 소리, 그 다음으로 보이는 군사훈련 장면. 그런 것들이 ― 누군가에게는 어떤 상처를 표현하는 유일한 방식일지 모를 그런 것들이 ― 조금도 전해지지 않고 흩어지는 모습을 보며 상처를 말하는 일의 무력함을 생각했다. 읽었지만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염려했지만 믿지 않았던, 한 장의 종이를 생각한 것도 그때였다.

내가 결혼 방해에 매달리는 국가 기관을 상상할 수 없었던 것처럼, 내 곁에 앉았던 이들이 웃으며 피를 말해야 하는 누군가를 상상할 수 없었던 것처럼, 덴마크의 어느 마을에 산다는 이들도 그랬을 것이다.6 마을 한가운데에 탱크가 등장하지만 그들은 놀라지 않는다. 나 역시 전투경찰의 버스 행렬을 보며 긴장한 적은 있을지언정, 혹은 시가지를 지나는 군용 차량이나 큰 트럭에 실려가는 탱크를 보며 불쾌해 한 적은 있을지언정, 탱크가 지나간다고 해도 두려워하지는 않을 것이다. 배운 바대로 누군가의 상처를 떠올리겠지만, 그것은 나 자신의 상처를 자극하지만 않을 것이며 나는 그것으로 인해 상처 입으리라는 두려움에, 쉽게는, 사로잡히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배웠던 가까운 역사를 몸소 겪어야 했던 이들, 혹은 “1997년 터키 앙카라의 신칸 지역에 등장한 탱크 행렬과 중국 신장에서 벌어졌던 무력 시위”를 자신의 일로서 겪어야 했던 이들이라면, 아마도 다를 것이다.7 영상 속 인물들이 말하는 바를 알아차리지 못했던, 혹은 그들이 무언가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더 두 사람에게도, 나는 쉽게 떠올리지 못하지만 그들로서는 가까운, 어떤 상처가 있을 것이다.

시련에는 이유가 있다고 배웠으므로, 아파도 견디면 좋은 날이 온다고 배웠으므로, 혹은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린 일이라고 배웠으므로 ― 그것이 세상의 이치라고 배웠으므로 낫지 않는 상처란 비합리적인 현상이다. 내가 아는 단어들로는, 내가 이을 수 있는 인과관계들로는 설명되지 않으므로 나는 이야기하기에 실패하고 만다. 나를 위협하는 존재는 이제 내 곁에 없지만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므로 ― 정말로 내 곁에 없는 것이 맞는지 알지 못하므로 ― 실은 어디에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잊을 수 없다. 잊을 수도 없고 익숙해질 수도 업고 견딜 수도 없으므로, 나는 끊임없이 상처로 공격 받는다. 누군가는 이제 그저 상흔만이 남았다고 여길 때에도, 그것은 여전히 생생한 상처다. 배운 바 없는 상처, 낫지 않는 상처, 이해되지 않는 상처란 비합리적인 것이므로, 배울 수 없고 이해될 수 없고 따라서 치유될 수 없다. 어쩌면 육신의 회복력이나 정신의 회복력이 아니라, 비합리적인 새로운 세계, 다른 합리성을 가진 세계가 필요할 것이다. 몸과 마음이 아니라, 세계를 바꿈으로써만 나을 수 있다면, 세상을 바꾸지 않고서는 언제까지고 귀환하는 상처를 다시 맞게 될 것이다.

전쟁, 분단, 식민지배와 같은 일을 일삼는 거대한 세계를 바꿀 수 없다면, 앞에서 늘어놓은 영상들은 다시금 재생되어야 할 것이고 다른 어딘가에서 다른 누군가에 의해 새로이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상처라는 비합리가 이해될 수 있는 세계, 그 상처들을 엮을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다른 언어를 가진 세계, 그런 것은 작게라도 만들 수 있는 법이다. 아니, 그런 작은 세계가 있을 때에야 저 거대한 세계를 향해 말할 길을 찾을 수 있을 테다. 그리고 그런 세계 몇 곳쯤을, 다행히도 나는 가지고 있다. 감상적으로 말해보자면, 그 세계에 누군가를 초대할 수 있기를, 나는 바란다. 그러나 고백건대, 나는 그런 세계의 온전한 성원이거나 그런 세계를 나서서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아무 생각 없이 또, 전쟁에 관한 문장으로 글을 시작하고 말았다. 당시에 전쟁과 함께 벌어졌던 ― 온 일상을 파고드는 ― 거대한 변화를 핑계삼을 수야 있겠지만, 그 정도로는 가려지지 않는다. 전쟁 같은 말을 갖고 오지 않고서는 여전히 비합리를 상상하지도 경험하지도 않아도 좋은 삶을 살고 있음이.

  1. 발터 벤야민, 「경험과 빈곤Erfahrung und Armut」(1933). 인터넷을 검색해서 나온 아무 영역본이나를 중역했다.
  2. 이것은 한나 아렌트가 『인간의 조건』 중 한 장을 시작하며 제사題詞로 삼은 문장이다. 그는 그 아래에 정확한 출전 대신 아이작 디네센의 이름을 적어 두었다. 한 연구자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아이작 디네센은 어느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와 비슷한 문장을 말한 적이 있으나 자신의 생각을 말한 것이 아니라 주변인들이 자신이 그렇게 믿고 있는 듯하다고 말한다며 그들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3. 《상처의 귀환》(스크리닝 프로젝트: 동시상영 기획, 서울: 오픈박스, 2019.05.14-06.08.) 리플렛에서 인용. 인용한 문장들의 앞에는 “신정균 작가는 과거의 특정 사건이나 개인의 경험을 기반으로 기억이 만들어지고 다시 재현되는 경로에 관심을 두고 있다. 실재와 허구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이를 재구성하는 과정을 통해 그 의미를 역추적해 본다.”라는 말이, 뒤에는 “이를 통해 작가는 집단의 구조적 문제에서 기인한 경험을 시작화하여 국가가 개인에게 부여함 임무와 그 의미에 대해 질문한다.”라는 말이 적혀 있다.
  4. 관심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5. 끝내 나는 그들에게 ‘조용히 해달라’고 말해버리고 말았다. 그들은 조용해졌지만, 남은 잠깐의 소리 역시 제대로 듣지 못했다. 그들이 나간 후에도 금세 누군가 들어오고 또 나가고를 반복했는데, 그 탓만은 아니었다. 나오면서 보니 그 공간 앞에는 카페가 있었다. 카페를 찾은 이들도, 카페를 운영하는 이들도, 자연스레 그곳을 대기장소처럼 쓰고 있었다. 입구에는 전시공간임을 알리는 표지들이 붙어 있지만 아무래도 잘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6. 코겐 에건Köken Ergun의 단채널 영상 〈탱크러브TANKLOVE〉(8:04, 2008) 이야기다.
  7. 영상 속 퍼포먼스가 이 사건들을 참고해 수행되었다고 한다. 같은 리플렛에서 인용. 터키의 탱크 행렬은 당시의 쿠데타를 가리키는 것 같고, 신장의 무력 시위는 언제의 일을 가리키는 것인지 찾이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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