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행범이 밝혀지자마자 ‘칼자루를 쥔 사람’마저 곧장 떠오른 것은 다소 아쉬웠지만 끝까지 범인을 잘 숨겼다는 점 하나 만으로도 나쁘지 않은 드라마다. 어릴 적 수술로 감정을 잃은 대신 뛰어난 인지능력을 갖게 되었다는 주인공이 늘 온갖 감정이 비치는 얼굴을 한 것은 다소 아쉬웠지만 (어쩌면 그저 그래 보이게 생겼을 뿐인지도 모른다) 복수심에 불타 정의를 추구한다거나 혹은 이유도 없이 옳고 바르게 타고 났다거나 하는 식의 설정을 피했다는 점 하나 만으로도 나쁘지 않은 드라마다.
어제 종영한 《비밀의 숲》 이야기다. 주인공의 성격이 다소 특이하게 설정되었다는 점을 빼면 특별할 것은 없다. 정의를 추구하는 주인공, 주인공의 앞길을 막으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악당들, 그런 악당들을 한편으로 두려워하면서도 끝끝내 주인공의 곁을 지키는 동료들. 나름의 정의가 실현되며 통쾌함을 선사하는 ― 물론 이런 종류의 통쾌함 다음에는 언제나 허무함이 있다 ― 마무리까지, 모두가 어디선가 본 듯한 요소들이니 말이다.
이렇다 할 감정을 갖지 못한 황시목이 어째서 ‘사이코패스’ 범죄자가 아니라 공명정대한 검사가 되었는지는 불분명하다. ‘정’에 끌려 나쁜 길에 들어서고 만 이창준과 대비해 볼 때에야 의미 있는 설정일 것이다. 한편으로, 그것이 불분명한 만큼이나 정이 넘치는 ― 주변의 모두를 돌보는 한여진이 어째서 이창준이 아니라 황시목과 같은 길을 가게 되었는지도 불분명하다. 이 점만 아니었다면, 한여진은 더욱 매력적인 인물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사명감과 실력 ― 수사 능력부터 격투기까지 ― 을 두루 갖춘 한여진은 혼자서도 극을 이끌 만큼의 저력을 가진 인물이지만 안타깝게도 모두의 어머니가 되고 만다. 사건의 피해자들, 그 주변인들, 그리고 제 동료들 모두를 너른 품으로 보듬은 어머니 말이다. 그럴 사람이 하나쯤 필요했을 것이다. 황시목은 늘 정의를 좇지만 정의감에 불타지도, 타인의 아픔을 알지도 않는 사람이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한여진은, 결국 황시목의 어머니다. 제 자식의 모든 허점을 대신 메워주려 들고 마는 그런 어머니.
후배 여성의 손목을 잡아끄는 이에게 이건 폭력이라고 분명히 말하는 이가 있는,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말하는 이야말로 다른 여자들을 그렇게 대해 온 것 아닐까 하고 묻는 이가 있는, 딸을 지켜달라는 아버지에게 그는 어린 아이가 아니라고 답하는 이가 있는, 주먹으로 남성 형사를 쓰러뜨릴 수 있는 여성이 있는, 여러모로 나쁘지 않은 드라마였지만 못내 성이 차지 않은 것은 그래서였다.
황시목과 한여진의 위치가 바뀐 드라마 ― 그러니까 한 군데쯤 말고는 모든 것이 완벽한 여성 검사와 그를 보조하는 남성 형사가 등장하는 드라마라든가 ― 가 나오는 날은 언제쯤일지 생각해 본다. 전에 보다가 만 스웨덴/폴란드 합작 드라마 《다리Bron/Broen》를 다시 볼까 싶다. (폴란드의 남성 형사와 함께) 극을 이끄는 스웨덴의 여성 형사 사가 노렌Saga Norén은 아마도 아스퍼거 증후군을 갖고 있다. 황시목과 약간은 비슷한 배경을 가진 한 여성이 이끄는 드라마를, 다시 볼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