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 대하여』. 제목은 간명하다. 제목 그대로 이 소설은 딸을 생각하는, 딸을 마주하는 한 어머니의 마음을, 혹은 생각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 어머니의 1인칭 시점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흔치 않게도 여성들의 세계를 그린다. 주인공, 그의 직장 동료들,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그가 보살피는 젠, 딸, 그리고 딸의 파트너까지. 등장인물은 모두가 여성이다. 시간강사 자리를 전전하면서도 교수 자리에 목을 메는 대신 동료 강사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싸우는, 동성 파트너와 7년째 함께 하고 있는 딸을 보며, 평생을 남을 위해 살았으나 이제 연고도 없이 요양 병원에 짐짝처럼 방치된 젠을 보며, 그 둘의 운명을, 혹은 자기까지 셋의 운명을 겹쳐 보며, 주인공은 속이 탄다.
다소간 애매한 소설이다. 성소수자인 딸이 등장하지만 이 소설은 성소수자를 우리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극적으로 딸을 이해하기에 이르는 주인공을 그리지도 않는다. 주인공은 내내 받아들이지 못하고 괴로워하다가 마지막에 가서야 겨우 약간의 마음을 연다. 그 즈음, 소설은 끝나고 만다.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기보단, 그저 묵묵히 한 사람을 관찰하는 듯한 ― 물론 누구를 관찰할 것인가 정하는 데에 이미 하고 싶은 말이 담겨 있는 법이지만 ― 글이다.
성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 쓴 글이라는 느낌은 아니다. 오히려 여성들만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만들다 보니 딸을 동성애자로 설정했다는 (근거 없는) 느낌이 든다. 딸이 수 년째 동성 파트너와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은 주인공을 괴롭게 하는 큰 사건이지만, 그것은 원인의 전부가 아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딸의 어떤 행동이 아니라 딸이 지향하는 삶의 방향 자체다. 작가가 의도한 것인지야 알 수 없으나, 마치 주인공에게서 물려 받은 성품처럼 보이는, 제 안위를 생각하지 않고 옳다는 것을 행하며 사는 그 방향성 자체다.
주인공은 젠이 병원에서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을, 가치가 다하자 병원에서마저 버려지는 것을 참지 못하는 의로운 인물이지만 동시에 딸이 ‘평범한’ 삶을 살기를 바라는, 또한 제 경제 사정을 끊임 없이 생각하는, 어쩌면 속물적인 인간이기도 하다. 그런 주인공의 곁에 한편으로는 의로움 하나만을 지향하며 살았던 젠이, 역시 그런 사람을 살고 있는 딸이 있고 또 한편으로는 이득만을 추구하는 직장 상사1가, 혹은 그에게 순응하며 제 이득을 챙기는 직장 동료가 있다. 『딸에 대하여』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이런저런 사람들의 스펙트럼을 그린다.
여성들만으로 그런 스펙트럼을 그리는 시도가, 여성에게 제 자리를 찾아주는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양한 위치의 여성들을 그림으로써 전형적인 ― 전형적으로 여성혐오적인 ― 캐릭터를 만드는 일을 피하고자 했겠으나, 등장인물들은 여전히 전형적이기 때문이다. 전형적으로 읽기 좋아하는 이의 눈에 이 캐릭터들은 그저 철 없이 꿈을 좇는 여성, 제 앞가림조차 못하는 여성, 그저 속물적인 여성일 뿐일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읽는 것이 이 소설의 잘못은 아닐 터이나, 이 소설에 그런 독해를 막는 힘이 있어 보이지 않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그러나 시작점이라면 나쁜 소설 만은 아닐 것이다. 딸과 극적으로 화해하는 주인공을 보여주는 대신 이제 겨우 대화를 시작하는 주인공을 그리며 끝났듯이, 이 소설이 하고자 한 것이 다만 어떤 물꼬를 트는 것이었다고 한다면, 이 소설은 나름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 여성들만으로도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가능함을, 여성들에게도 차이가 있고 갈등이 있으며 충돌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사랑에 속고 돈에 우는 여자, 그저 사랑으로 자식을 보듬는 여자, 헤스테리로 가득한 여자, 이런 여자들만을 그리는 ― 세상에 여자라고는 이런 사람들밖에 없는 듯 그리는 글들에 지쳤다고 한다면, 다른 글을 찾기 시작하는 책으로 나쁘지 않을 것이다.
『딸에 대하여』. 제목은 썩 좋지 않다. 딸에 대하여 생각하는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 불혹을 훌쩍 넘기고도 여전히 흔들리는 어떤 삶에 대한 이야기, 딸을 매개로 삼지만 그저 딸에 대하여가 아니라 세상과 삶에 대하여 생각하는 한 여성의 이야기다. 딸과 부딪으며, 나머지 세상과 또 부딪으며, 뜻하지 않게 조금씩 제 세상을 넓혀가는, 그런 여성에 대한 이야기다.
- 이 상사의 성별은 표명되지 않았던 것 같은데, 기억이 정확한지는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