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은 알지 못했고 《김사월X김해원》에는 별 감흥이 없었다. 잊고 지내던 이였다. 신보를 들어봐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mori in progress: 까마귀의 모음 1집』 출간을 기념하기 위해 열린 작은 술자리에서였다. 책에 딸린 음원 제작에 낭독으로 참여한 김사월을 그곳에서 만났다. 그의 목소리가 좋았다. 실은 또 잊고 지내다가, 친구가 무언가를 선물할 테니 받고 싶은 것을 고르라고 하여 다시 떠올렸다. 《7012》는 그렇게 내 손에 들어왔다.
어쩌면 흔한 감성이다. 적당한 우울함과 적당한 사랑, 힘을 뺀 듯한 목소리 ― 내가 음악을 많이 듣는 이였다면 그와 비슷한 느낌의 가수를 어렵지 않게 찾아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도, 흔한데도, 왠지 더 마음이 가고 귀가 갔다, 고 쓰려는 것은 아니다. 요사이 아침부터 밤까지 반복해서 김사월을 듣는 것은, 그의 목소리나 분위기보다는, 몇 구절의 가사 때문이다. 김사월이 직접 쓴, 가사들 말이다.
첫 트랙, 그러니까 〈달아〉부터다. 제목에도 쓰인 “달아”라는 말이 나를 잡아끈다. 달다는 말일 뿐인 이 단어가, 계속해서 “닳아”로 들리기 때문이다. 달콤한 일에 이끌려 스스로가 닳아가고 있다는 감각이, 이 동음이의어에서 생생히 느껴지기 때문이다. 혹은 짐이라고는 등장하지 않는 〈짐〉의 가사가 나를 잡아끈다. 이 노래에 등장하는 것은 짐이 아니라 “헤어짐”이다. 그도 아니면 “들꽃 향기가 나네요, 아니 들꽃이 아니라 들꽃이라 부르는 향기가 나요”라는 〈설원〉의 첫 문장. 설원에서 날 리 없는 꽃향기, 를 느끼는 환상에 머무는 대신 꽃이라 부르는 향기라고 고쳐 말하는 담담함,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가장 좋아하는 가사는 〈너무 많은 연애〉의 “내가 원하는 건 사랑뿐이었는데 누군가를 목 조르게 해”라는 구절이다. 역시 흔한 감성이지만, “누군가를 목 졸리게 해”가 아닌 시점에서 이미 다르다. 사랑을 원하는 것도, 목을 조르는 것도 모두 나의 일이다. 뜻하지 않게 누군가가 목 졸리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 아니라, 사랑을 원하는 것이 나로 하여금 타인의 목을 조르게 했다는 문장으로 읽는다. 그리고, 사랑을 원하는 것을 멈추지 않은 시점에서 나는, 제 의지로 타인의 목을 조르고 있는 것이다. 내가 아는, 내가 해 본, 사랑은 그런 것이었다.
김사월의 가사들
안팎 / 2018.0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