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 없는 암란의 방에서

암란의 방은[1]제람·배수진, 《암란의 방》, 목포: 몬노마노, 2025.11.10-12.07. 2025 서울변방연극제 참가작. 쾌적했다. 원터치식 전자 도어락을 열면 넓은 현관이 나왔고, 이어진 복도에는 청소기와 의류관리기가 있었다. 낡은 목조 건물이었지만 말끔하게 수리를 마친, 복층 구조의 집이었다. 작은 마당도 딸려 있었다. 후끈할 정도로 따뜻해서, 우선 보일러 설정온도부터 낮췄다. 숙박업소에서 잘 때면 이따금 겪는 일이긴 하지만 (이따금인 것은 여행은 잘 가지 않고 일로 외박할 때는 근처에서 제일 싼 모텔에서 자기 때문이다), 내가 살아 본 그 어떤 집보다도 좋았다. 아마 암란에게도 그럴 것이다.

암란은 2018년 예멘 내전을 피해 제주도로 입국한 난민이다. 법적으로는 아니다. 난민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고 인도적체류허가만 겨우 받았다. “제주를 시작으로 서울, 인천, 평택, 익산, 대구, 구미, 김천, 부산, 김해 등을 거쳐 지금은 영암군에 있는 삼호중공업이라는 조선소에서 일을 하며 일터 근처의 직원 숙소에서” 지낸다.[2]『《암란의 방》 안내서』(공연 소품), 8쪽. 다음 인용도 같은 곳. 2021년에 출간된 『‘난민됨’ 여정 안내서』(제람, 나오미, 김다은, 박이랑, … 각주로 이동 목포는 “영암과 생활권을 공유”하는 곳이지만 암란은 “일주일에 7일” 일하므로 이곳에는 없다. 주인 없는 방에서 하루를 묵었다.

공간은 쾌적했지만, 스무 시간 가량의 체류가 마냥 쾌적하지는 않았다. 낯설고 거슬리는 것으로 가득 채워진 공간이기 때문이다. 현관문을 열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실은 청소기나 의류관리기가 아니라 복도 가운데에 놓여 있는 자그마한 상자 두 개다. 크지도 않고 좌우로 공간도 있으므로 무시하기 어렵지 않지만, 방으로 들어가면 사정이 달라진다. 크고 작은 상자가 곳곳에 놓여 있다. 식탁 의자 위에, 침대 위에, 휴지통 위에, 화장실 문 앞에 등등. 치우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3]오수진, 〈기둥들〉, 골판지에 시트지 시공, 40×40×120cm, 30×30×100cm, 20×20×30cm, 10×10×15cm.

무언가 하기를 포기하고 상자를 피해 구석에 적당히 자리를 잡아도 마찬가지다. 이슬람의 기도 시간 다섯 번에 맞추어 뱃고동 소리가 울리고 그 사이에 음악, 바람 소리, 거리의 소음, 폭음 등이 쉼없이 흐른다. 밤이 깊어야 잠잠해지고 동이 트기 전에 다시 시끄러워진다. 떠날 수밖에 없었던, 그러나 수이 떠날 수도 어디선가 제 자리를 찾을 수도 없었던 이들의 삶을 채워 온 그 소리들이 관객의 시간에 끼어든다.[4]목소, 〈다섯 마디〉, 블루투스 스피커와 카펫 아래 스피커 그리고 시계에서 나는 다양한 사운드, 러닝타임 24시간.

관객. 그것이 암란의 방을 찾은 나의 위치였다. 따로 등장 인물이 있지는 않았다. 저 상자들과 소음들을 견디서 안내서에 따라 몇 가지 행동을 수행하는 것, 그러니까 그곳에서의 시간 혹은 나의 경험 자체를 보는 것이 내게 주어진 임무다. 구겨진 채 방 한쪽에 불룩 솟아 있는 얼룩덜룩한 카페트를[5]로와정, 《언더 더 카펫》, 카펫(200×300cm) 위에 uv 프린트, 가변크기. 얼룩덜룩한 무늬는 “참사, 재난, 전쟁 등 극심한 소멸 이후에 발생하는 재(灰)의 … 각주로 이동 보거나 밟고 다닐지 말지를 생각하는 것, 『‘난민됨’ 여정 안내서』 같은 책을 읽는 것, 싱크대 위 선반에 놓인 전자시계에 서쪽을 가리키는 나침반과 목포의 것과 몇 시간 차이 나는 시각이 추가로 표시되어 있음을 발견하는 것, 왜인지 거꾸로 놓여 있는 아랍어 책을 (아랍어는 한 글자도 모르면서 대뜸 코란일까 생각하며) 괜히 들추어 보는 것….

주인은 없었지만 대접은 융숭하게 받았다. 냉장고에는 잘 씻어 넣어둔 몇 가지 채소와 소스가, 식탁 위 안내서에는 타히니 소스를 곁들인 채소구이와 예멘식 토마토 콩 수프, 이렇게 두 가지 메뉴의 조리법이 있다. 감자나 양파 같이 익숙한 것도, 파바 콩비지 같이 낯선 것도 있었다. 재료를 꺼내어 썰고 볶거나 끓이거나 구워 혼자 먹었다.[6]배수진, 《온 더 테이블》. 의자에 놓인 상자를 치우고 자리에 앉았고, 다 먹은 후에는 상자를 제자리에 돌려 놓았다. 요리는 두 번 했고 먹기는 세 번 했다. 상자를 여섯 번 옮겼다.

먹는 법에 대한 안내는 없었고 요리는 한 번에 다 하는 것으로 가정되어 있었다. 첫날 밤에 수프를 끓여 두 번에 나누어 먹었고 이튿날 아침에 채소 구이를 먹었는데 채소 구이는 한 번에 먹기엔 꽤 많았다. 원래는 두 명 분이어서 그런 건지 그저 넉넉히 준 것인지는 모르지만, 예멘의 문화에 대해서도 모르지만, 아무리 먹을 것이 없어도 손님이 오면 잔치를 벌인다는 팔레스타인 사람들, 손님이 제 기호에 맞춰 즐길 수 있도록 탁자에 온갖 담배를 갖추어 놓는다는 레바논 사람들을 생각하며 먹었다. 오며 가며 식탁 가운데에 놓인 마카다미아를 넣은 대추야자와 설탕과 향신료를 넣은 홍차도 먹었다.

“기둥을 자유롭게 옮”겨도 된다고는 해도, 그것이 “‘낯선 존재’의 추상적 구조물”이라고 설명되어 있으면[7]『안내서』, 11쪽. “각자가 마주한 ‘낯설음’을 이 공간에 머무는 이가 직접 기둥들을 움직여 자신만의 환경을 만들며 공연을 완성한다”라고 적혀 … 각주로 이동 조심스러워진다. 식탁에 앉을 때도, 화장실에 드나들 때도 상자를 최소한만 옮겼다가 매번 제자리에 돌려두었다. 휴지통을 쓸 때는 상자가 미끄러져내리지 않을 만큼 조금씩만 열었다. 대각선으로 누워 커다란 침대의 2/3 가량을 차지한 상자는 끝내 옮기지 않았다. 이불 끄트머리를 들추어 몸을 밀어 넣고 상자와 함께 잤다. 느지막히 ― 새벽 세 시가 지나서 ― 잠들었다가 다섯 시 반쯤 굉음에 잠을 깼다. 노랫소리가 크게 울렸던 것 같다.

아침에는 목포역사 내 편의점에서 경향신문을 한 부 샀다. 10면의 〈염전 노동자 10명 중 7명 국민연금 못 받아〉와 11면의 〈숨진 택배노동자 정보 공개 거부한 쿠팡〉, 두 기사를 잘라 “또다른 ‘암란’들의 소식을 다룬 기사”를 모으는 스크랩북에 끼워 넣었다.[8]조간 지면에 실린 것과는 다를 수도 있지만, 〈15년 일해도 남은 건 ‘빠진 치아’···연금도, 가족도 없는 염전 노동자〉, 〈숨진 택배노동자 정보 … 각주로 이동 신문 값은 운영진에게 청구하라고 적혀 있었지만 겨우 천 원이므로 그냥 넘겼다.[9]제람, 〈두 정거장〉. 나머지 하나의 정거장은 “한국의 합법 체류자라면 이를 증명하는 주민등록증을 무료 또는 200원의 수수료를 내고 발급받을 수 … 각주로 이동 작은 용량은 전부 신안산이라 조금 큰 걸 산 탓에 몇 년째 먹고 있는 천일염을,[10]아마 7, 8년 전에, 2 ,3kg짜리를 샀다. ‘신안 염전 노예’ 문제가 알려진 것이 2014년이었으니 아직 그 기억이 선명할 때의 일이다. 원산지를 확인하지 … 각주로 이동, 만날 때마다 ― 이 공연을, 그리고 이 공연으로 이어진 여러 작업을 만든 ― 제람이 밥을 사자 어느날 자신이 난민이라 그러냐며, 자기가 밥값을 내겠다고 했다는 암란을 생각했다.[11]『‘난민됨’ 여정 안내서』의 어딘가.

다음으로는 암란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 참여형 공연에 가더라도 이런 것은 대개 피하고 정 안 되면 일행에게 떠넘기지만 혼자였으니 도리가 없었다. “자신이 가장 편하게 구사하는 언어로 쓴다”라는 지침을 무시하고 영어로 썼다. 암란은 “난민 캠프에서 귀동냥으로 영어를 익혀 일상 회화가 가능할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12]『안내서』, 9쪽. 나는 한국에서 나고 자란 한국인이지만 우리 모두에게 낯선 언어로 쓰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말로 거창하게 시작해서는, 우리가 (내 고향인) 김해의 같은 길을 걸었을 수도 있겠다든가 (한국의, 그리고 열악한 노동 현장의 추위가 고되었다는) 암란에게 이번 겨울은 조금은 따뜻하기를 바란다든가 하는 시답잖은 말을 몇 마디 적었다. 편지는 아랍어로 번역에 암란에게 전할 예정이라고 했다.

상자와 소리, 그러니까 일부러 넣어둔 불편을 빼면, 암란의 방에서 유일하게 곤란했던 것은 구석 작은 방에 놓인 좌식 의자였다. 퇴실 직전에 보기를 권한다는, 그 방과 어느 배와 어느 비행기의 창밖 풍경을 모은 영상을[13]정현지, 〈방-창-문-틀〉, 싱글 채널 비디오, 18분 20초, 가변 설치. 위한 객석이다. 기대어 앉으니 삐걱였고 조금씩 뒤로 기우는 것 같았다. 어디에도 체중을 떠넘기지 못한 채 마치 어디 숨기라도 하듯 구부정하게 웅크린 자세로, 다리 사이에는 자그마한 상자 하나를 낀 채로, 어디로 가는지 ― 어디든 갈 수 있기는 한지 ― 알 수 없는 여정의 텅 빈 풍경을 바라보았다.

주인 없는 친구 집에 머물 때 ― 주로 고양이를 돌봐주러였다 ― 해 온 대로 하고 나왔다. 친구가 챙겨 준 음식을 먹고, 설거지는 해도 제자리는 모르므로 식기건조대에 그냥 쌓아두고, 쓰레기는 분리는 하되 역시 자리를 모르므로 적당히 모아만 두고, 집에서와는 달리 싱크대의 물기를 조금은 훔치고, 베개에 붙은 머리칼을 정리하고, 대강이나마 청소기를 돌리고, 수건은 쓰지 않고.

References
1 제람·배수진, 《암란의 방》, 목포: 몬노마노, 2025.11.10-12.07. 2025 서울변방연극제 참가작.
2 『《암란의 방》 안내서』(공연 소품), 8쪽. 다음 인용도 같은 곳. 2021년에 출간된 『‘난민됨’ 여정 안내서』(제람, 나오미, 김다은, 박이랑, 류혜선)의 어딘가에는 암란이 “목포, 익산, 대구, 김천 등”에서 일했다고 적혀 있었다.
3 오수진, 〈기둥들〉, 골판지에 시트지 시공, 40×40×120cm, 30×30×100cm, 20×20×30cm, 10×10×15cm.
4 목소, 〈다섯 마디〉, 블루투스 스피커와 카펫 아래 스피커 그리고 시계에서 나는 다양한 사운드, 러닝타임 24시간.
5 로와정, 《언더 더 카펫》, 카펫(200×300cm) 위에 uv 프린트, 가변크기. 얼룩덜룩한 무늬는 “참사, 재난, 전쟁 등 극심한 소멸 이후에 발생하는 재(灰)의 이미지”다.
6 배수진, 《온 더 테이블》.
7 『안내서』, 11쪽. “각자가 마주한 ‘낯설음’을 이 공간에 머무는 이가 직접 기둥들을 움직여 자신만의 환경을 만들며 공연을 완성한다”라고 적혀 있다
8 조간 지면에 실린 것과는 다를 수도 있지만, 〈15년 일해도 남은 건 ‘빠진 치아’···연금도, 가족도 없는 염전 노동자〉, 〈숨진 택배노동자 정보 공개 거부한 쿠팡〉.
9 제람, 〈두 정거장〉. 나머지 하나의 정거장은 “한국의 합법 체류자라면 이를 증명하는 주민등록증을 무료 또는 200원의 수수료를 내고 발급받을 수 있”고 “불법 체류자로 일컬어지는 미등록 이주민의 경우 여객선을 탈 수 없”는 목포 여객항이다.
10 아마 7, 8년 전에, 2 ,3kg짜리를 샀다. ‘신안 염전 노예’ 문제가 알려진 것이 2014년이었으니 아직 그 기억이 선명할 때의 일이다. 원산지를 확인하지 않고 적당히 아무거나 사고 넘겼다면 기억이 좀 흐려졌을까. 요리를 할 때마다 생각했다. 그 사이 한 번 더 큰 주목을 받았고, 작년과 올해에도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이들에 대한 기사가 나왔다. 소금은 아직 몇 달은 더 쓸 것 같다.
11 『‘난민됨’ 여정 안내서』의 어딘가.
12 『안내서』, 9쪽.
13 정현지, 〈방-창-문-틀〉, 싱글 채널 비디오, 18분 20초, 가변 설치.

One thought on “주인 없는 암란의 방에서

  1. 한국에 거주하는 인도적 체류자들과 난민인권센터 활동가들이 함께 쓴 글 「 “머물 수 있지만, 살 수는 없는 삶” 한국에 있는 인도적 체류자의 현실」(『인권연구』 제8권 제2호, 2025).

    《뉴시스》연재 “낯선 땅, 가로막힌 삶”
    〈육아·생계 막힌 난민 여성들, ‘버티는 삶’의 현실〉(전상우, 2026.01.01.).
    〈’비자 하나에 인생 묶여’…제도 밖 인도적 체류자〉(전상우, 2026.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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