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바다맨드라미, 라는 말이 여러번 나왔다. 공룡을 생각했다. 정확히는 공룡을 명명하는 법. 폭군도마뱀(티라노사우루스), 볏달린도마뱀(사우롤로푸스), 덮개달린도마뱀(스테고사우루스) 같은 것들. 그런 이름이 붙은 이유가 잊혀지기에는 너무 늦게 알게 된, 최근에야 이름을 붙이게 된 생물들을 생각했다. (닭벼슬꽃 쯤 되는 다른 이름들 ― 계관鷄冠이나 cockscomb ― 은 연유를 알만하지만) 15세기에도 이미 맨드라미였다는[1]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구급간이방언해救急簡易方諺解』(1489)에서 ‘만라미’가 언급된다고 한다. 맨드라미가 어쩌다 맨드라미가 되었는지를 알기는 쉽지 않다. 분홍바다맨드라미는 늦게 붙은 이름이겠다. 덮개달린도마뱀처럼. 분홍색이고, 바다에 살고, 맨드라미처럼 생긴 것.
공룡은 사라졌다. 이름 붙일 사람이라는 것이 등장하기도 전에. 산호는 여전히 남아 있다. 분홍바다맨드라미는 늦었대 봐야 겨우 맨드라미보다만 늦은 이름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 산호들을 보면서 ― 오직 최근에 종종 공룡 이름을 생각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 공룡까지 거슬러 가는 건 조금 엉뚱하지 않나, 생각하고 있는데 화면에 이름에 관한 문장들이 떠올랐다. 이름 없는 것들에게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들, 그로써 그들을 기억되게 하는 사람들에 관한 문장들이었다.
《코랄 러브Coral Love》(이소정 연출, 2023)[2]반짝다큐페스티발(서울: 인디스페이스, 2023.03.24-26.)에서 보았다.는 해군 기지가 건설된 제주 강정 마을 주변 연산호 군락을 기록하는 이들과 그들이 촬영한 산호들을 보여주는 영화다. 기록하는, 이라고 썼지만 실은 기록을 토대로 군락 보존을 위한 활동을 하는 이들이다. 해군 기지 건설 이후 연산호 군락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기록하고 항구 건설이나 항로 개발을 위한 공사와 항해 선편 증가 등이 그 변화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분석해 대책 없는 공사를 막고 산호 군락 보존 대책 수립을 요구하는 활동 말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런 것보다는 산호에, 산호의 이름들에, 그 이름을 알고 또 부르는 사람들에 집중한다.
산호 보존을 위한 활동들은 ― 스치듯, 이라고 하면 과할지도 모르지만 ― 대화를 통해서만 등장한다. 오히려 그 대화를 나누는 이들은 전문가보다는 애호가로 보인다. 몇 년 전과 눈에 띄게 달라졌다는 것은 알지만, 그것이 해군 기지 탓이라고 짐작은 하지만, 정확한 이유는 알지 못한다. 전문가에게 물어보거나 바다 속에서 길어온 물을 분석해 달라고 어딘가에 맡기거나 해야 한다. 산호 군락의 생태적 가치 같은 것도 언급되기는 하지만 영화에서 보이는 이들의 동기는 대개 그저 사랑이다. 한낱 사랑에 그친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사랑이라는 말로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그저 사랑. 기껏해야 아름다움 정도만을 이유로 댈 수 있을 뿐이다.
수심 확보를 위해 산호 군락이 있는 암초를 파괴할 크루즈 항로 개발은 막았지만 해군 기지는 이미 들어섰다. 조류의 흐름이 바뀌고 바다로 흘러드는 오염물질은 늘었을 것이다. 산호들은 계속해서 죽어가고 있다. 그 자리를 다른 산호가 채우기도 하지만 해수온 상승으로 남쪽 바다에서 넘어온 종들이다. 여전히 아름답다고는 해도, 이들이 보고 있는 것은 서서한 죽음이다. 수 년째 임종을 지키고 있다. 몇 번이고 숨을 참고 물에 뛰어들면서. 어둠 속에서 불을 밝히고 해류에 밀리는 몸을 지탱하면서.
이들은 죽어가는 이의 이름을, 어쩌면 오직 잊지 않기 위해, 되풀이해 부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정말로 사라져버린다면 ― 이들이 이름을 부르는 산호 가운데에는 한반도 혹은 제주도 고유종이 있다 ― 이들이 찍은 사진과 이들이 부른 이름만으로 남을 수도 있겠다. 옛날부터 바다에 드나들던 이들이 부르던 다른 이름도 있었을까. 여전히 누군가는 그런 이름으로 부르고 있을까.[3]충분히 널리 인간의 일상에 ― 특정 언어에 ― 들어오지 않는 생물들에게는 그 동네 사람들만 아는 이름이, 그마저도 없다면 오직 학명만이 붙는다. … 각주로 이동 분홍바다맨드라미가 아무리 뒤늦게 붙은 이름이라 한들, 이미 많은 것이 사라지고 잊혀졌다 한들, 연구실에서 신약의 재료로 호명될 혹은 그마저도 못 되어 다만 표본에 부착될 이름만큼 뒤늦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더 늦기 전에 충분히 이름을 불러보고자 하는 마음이 다일지도 ― 적어도, 주主일지도 ― 모른다. 패배감을 보지는 않았다. 낯간지럽지만 말하자면 지극한 사랑을 본 것에 가깝다. 영화에 주요하게 등장하는 (그리고 이 영화의 프로듀서이기도 한) 최혜영은 연산호 모니터링을 위해 스쿠버 다이빙을 배운 과정을 이야기하며 그런 말을 했다. 따로 많이 연습하기도 했지만 촬영을 시작하면서 늘었다고. 자세히 들여다보고 사진을 찍으려면 물 속에서 몸을 멈추는 법을 알아야 했고, 그것은 실제로 촬영을 하면서 깨쳤다고. 이름을 부르기 위해 들여다 보고 들여다 보기 위해 곁에 멈추는 법을 배우는, 사랑하기에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사람들에 관한 영화를, 공룡의 이름을 생각하며 들여다 보았다.
↑1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구급간이방언해救急簡易方諺解』(1489)에서 ‘만라미’가 언급된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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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반짝다큐페스티발(서울: 인디스페이스, 2023.03.24-26.)에서 보았다. |
↑3 | 충분히 널리 인간의 일상에 ― 특정 언어에 ― 들어오지 않는 생물들에게는 그 동네 사람들만 아는 이름이, 그마저도 없다면 오직 학명만이 붙는다. 《코랄 러브》의 문장들은 한국어와 영어, 두 언어로 제시되는데 한국어로 분홍바다맨드라미니 해송海松이니 하는 이름이 뜰 때 영어 문장들에는 라틴어 학명이 그대로 들어가 있다. |